헌법을 훼손하는 차별금지법
2024-07-23음선필 (홍익대학교 법학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및 법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입법학회장, 한국헌법학회 및 한국공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이자 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아울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자문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 법제처 법제자문관의 역할도 맡고 있다.
당면 국가과제로서 법치주의 확립
1948년 대한민국 성립 이후 국가과제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신생 민주공화국의 건국 이후 1950년대에는 전쟁 복구라는 긴급한 과업을 마무리하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산업화를 달성하였으며, 그 물적 토대 위에서 1980년대 민주화의 전환을 이루었다. 그 이후 복지국가의 길을 닦아가고 있다. 앞으로 통일이라는 지난한 과업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어떠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는가? 필자는 법치주의(rule of law)의 확립이라고 본다. 민주주의가 공고화 단계로 진입하면서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확보되는 법치주의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목도되는 민주체제의 역동성이 이제는 법치주의의 안정성으로 승화하여야 한다. 이는 사회 갈등의 합리적 해결을 위한 기준과 절차의 규범화를 의미한다. 법치주의는 최고법인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법체계의 정합성과 규범력의 확보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법치주의는 법규범과 이를 뒷받침하는 도덕규범 및 종교규범이 부합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규범체계의 충돌과 이로 인한 혼란은 언제든지 법규범에 대한 무시와 반발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법의 규범력이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 하위의 규범인 법률이 대부분 헌법의 명문 규정·기본원리 및 가치에 충실하게 만들어지고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적 원리와 가치에 배치되는 내용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사회의 기존 질서와 제도를 변혁하려는 세력이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경우, 때로는 헌법적 원리와 가치를 훼손하는 법률을 만들 수 있다. 최근 대표적인 예로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의 제정 시도를 들 수 있다.
평등이념 과잉으로서의 차별금지법
제17대 국회부터 시도되었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직전 제21대 국회에서 더욱 요란한 의제가 되었다.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이라 불리며 내용이 대동소이한 법안이 4건이나 발의되었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도덕적 명제를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성을 지닌 법규범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 강제력을 동원하는 법규범에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여성·노약자 등에 대한 모든 차별을 없애려는 것으로 선전된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이미 현행 법체계에서 다양하게 보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은 ‘실질적 평등’을 구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차별금지사유와 차별금지영역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넓히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차별금지사유로 열거한 19개 항목 이외에도 해석에 따라 다른 사유가 제한 없이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차별금지영역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이다.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 이용뿐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생활 영역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 여부를 둘러싼 국민 간 갈등과 대립이 자주 발생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차별행위자에 대하여 강력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차별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함으로써 피해를 주장하는 자의 소송상 지위를 매우 유리하게 만든다.
평등권은 원래 국가와 국민 간에 적용되는 공권(公權)임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은 개인 간의 관계에서 다른 사인(私人)에 대하여 직접 평등한 처우를 요구하는 권리를 부여한다. 이로 말미암아 사적 관계의 중요한 원칙인 사적 자치의 원칙과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계약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 국민의 자유권이 침해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주요 기본권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억압한다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표현의 자유는 학문적 성과, 양심에 따른 판단, 신앙고백을 널리 알리게 한다는 점에서 학문·양심·종교의 자유를 뒷받침한다. 시비(是非)·선악·정사(正邪)·미추(美醜)에 대한 가치판단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순간, 정신적 자유는 질식한다. 이를 토대로 하는 자유민주체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가 인권체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비중 때문에 헌법은 이를 매우 두텁게 보장한다. 만약 표현의 자유를 규제해야 한다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을 주문한다.
대표적인 원칙이 ‘명확성의 원칙’이다.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규정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인데, 만약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무효로 한다는 원칙이다.
또한 ‘명백·현존 위험의 원칙’도 있다. 문제가 되는 표현이 실제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경우에만 억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어떤 표현이 단지 위험한 경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규제할 수 없으며, 실제 그 해악을 초래할 위험의 정도와 근접성을 따져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은 명확성의 원칙, 명백·현존 위험의 원칙을 어기며 그 이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괴롭힘이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하여 다음에 해당하는 행위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경우를 말한다. 1) 적대적, 위협적 또는 모욕적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 2)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을 야기하는 행위, 3) 멸시, 모욕, 위협 등 부정적 관념의 표시 또는 선동 등의 혐오적 표현을 하는 행위. 여기서 ‘적대적, 위협적 또는 모욕적 환경’,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 ‘멸시, 모욕, 위협 등 부정적 관념’이라는 불명확하고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괴롭힘의 사유를 매우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괴롭힘은 피해자의 주관적 고통에 따라 성립되므로 그 적용에 있어서 자의성과 위험성이 매우 크다. 이처럼 차별금지법은 불명확한 개념인 혐오 표현을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이를 불법적인 차별행위로 간주하며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강력한 제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대학교수가 수업 시간에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주체사상이나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이단종교를 비판하면 어떻게 될까? 이는 ‘사상’이나 ‘종교’를 이유로 그 추종자인 종북좌파와 이단종교 신도를 괴롭히는 것이 되어 차별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동성애의 의학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료인 때문에 동성애자가 모욕감이나 두려움을 갖게 됐다면 어떻게 될까? 그 의료인은 혐오 표현에 의한 차별행위자로 간주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차별금지법이 이른바 ‘차별 광고’도 차별행위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차별 광고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나 불리한 대우를 표시 또는 조장하는 광고 행위’를 말한다. 예컨대 신문·인터넷신문, 정기간행물, 방송, 전기통신을 이용해 광고 형식으로 이단이나 동성애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비판 의견을 제시하면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여기서 문제는 분리·구별·제한 등의 영역, 동기나 목적, 심지어 합리성 유무를 따지지 않고서 이를 무조건 차별행위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조건 차별금지’를 추구하는 진영논리의 결과물인데, 한국사회의 사고를 하나로 통일시키겠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들어 있다.
이처럼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학문·종교·양심적 표현이 혐오 표현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만약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동성애, 종북 추종세력, 이단종교에 대한 비판이 혐오 표현이라는 이유로 학문적 논의가 차단된다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신적 자유가 질식당하는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혐오 표현을 이유로 한 무조건적인 차별금지는 합리적 차별을 인정하는 평등원리와 양립할 수 없다. 이같이 차별금지법이 비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국민 입에 재갈을 물리는 독재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
차별금지법은 종교적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등에서 차별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 기관·단체 및 기업에서 동성애자나 다른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거나 해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신학교에서 동성애자나 이단종교 신도의 입학·편입을 거부하거나 자퇴를 요구하거나 퇴학을 시키는 것이 어렵게 된다. 또한 신학교에서 동성애 및 성별전환 반대 강의도 어렵게 된다. 그 결과, 종교교육과 선교 목적의 기관이 점차 세속화되고 말 것이다. 이뿐 아니라 길거리나 직장에서 전도하는 것도 어렵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전도 행위가 괴롭힘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차별금지법을 도입한 여러 나라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경제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
차별금지법은 종래 사적 분야에 해당하는 고용 관계의 형성, 재화 및 용역의 제공에 대해서도 평등이념을 과도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로써 종래 자유롭던 계약·거래행위가 차별행위로 취급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차별금지법의 근로자 및 사용자 정의는 노사관계 기본법인 근로기준법의 그것보다 훨씬 넓다.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파견사업자뿐 아니라 사용사업자도 사용자 지위에 있게 된다. 그래서 사용사업자가 직접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와 파견받은 근로자 간에 처우를 달리하면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가 되어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차별금지법에는 기업은 물론 영세한 소상공업자의 경제활동을 힘들게 하는 규정이 많다. 예컨대 ‘모집·채용 광고 시 성별 등을 이유로 한 배제나 제한을 표현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에 따르면, ‘대졸 공개채용’은 학력을 이유로 한 차별로서 금지 대상이 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채용에서 탈락한 사람이 차별받았다고 주장하면 사용자는 채용에 활용한 자료나 내역을 모두 공개하여야 한다. 그리고 임금을 차등 지급하거나 호봉 산정, 연봉 책정 등 임금 결정 기준을 다르게 정하는 것이 차별행위로 여겨진다. 이에 따르면 학사, 석·박사 간 연봉 차이도 차별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는 능력에 따른 정당한 차이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 또한 은행 등 금융기관은 대출할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해서도 안 된다. 그 결과 상환 능력이 충분한 정규직이 사실상 손해를 보는 역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의 조사, 법원의 차별중지 등 임시조치와 이행판결 및 이에 따른 이행배상금, 그리고 손해배상 또는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최소 500만 원)의 책임이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차별행위 여부를 다투는 절차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자가 차별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한다. 피해자가 차별 사유를 여러 개 주장하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정당성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 예컨대 동성애자이며 이단종교 신도인 여장 남성이 만약 해고나 승진, 고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기업 인사 책임자나 고용주는 여러 가지 차별을 받았다는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 만약 하나라도 입증하지 못하면 차별행위로 인정된다. 이는 이른바 ‘차별 호소인’으로 하여금 매우 유리한 입장에 서게 만든다. 이에 비하여 소송절차에서 비용이나 심리적·사회적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소상공업자나 중소기업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이것만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평등)에 대한 특별법으로서 다른 법률의 차별행위 유형을 그대로 옮겨 규정하거나, 이를 더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이 다른 법률의 권리구제 절차 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까닭에, 여러 권리구제 절차의 중복 적용이 허용된다. 예컨대 모집·채용 상의 차별금지, 임금 등에서의 차별금지, 해고 등 불이익 처분의 금지에 대해서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기간제법 등이 중복해서 적용된다. 그래서 모집·채용 시 남녀를 차별하는 경우,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하고, 차별금지법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책임도 져야 한다.
평등이념도 헌법 질서 내에서 실현해야
인류 역사에서 인권의 발전은 평등이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확대 적용하였기에 가능했다. 그러한 점에서 평등원리는 ‘기폭제’였고 ‘돌파구’였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평등원리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며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계기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이러한 기초 위에 서 있다. 만약 평등이념이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면 대한민국의 헌법체계는 혼란에 빠지게 되며 인권의 발전은 멈추고 만다.
차별금지법이 실질적 평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며 획일적 평등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은 ‘자유 억압법’이요, ‘획일적 평등법’이요, ‘평등 강요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금지법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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