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법치

헌법과 법치

2024-07-04 0 By 월드뷰

월드뷰 07 JULY 2024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over Story

최대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

최근 정치권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을 자주 제기하고 있으며, 개헌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제헌절이 있는 7월을 맞이하여 최근 나오고 있는 개헌 논의가 바람직한 것인지, 그리고 헌법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졌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최대권 명예교수로부터 들어본다(편집자 주).

김승욱 안녕하십니까? 박근혜 정부 때 국정 역사 교과서 현대사 집필을 함께 하면서 헌법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는 좀 알게 되었지만, 이번 특집을 위해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교수님께서 어떤 분야를 전공하셨는지요?


최대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y)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법대 학창 시절에 신태환 학장님으로부터 미국 경제학을 배우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UC 버클리 대학에 갔는데, 그곳은 정치학과 안에 법률학(jurisprudence) 전공이 있었습니다. 제 최종 학위가 정치학 박사(Ph. D. in Political Science)인데 법학을 전공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의아해했습니다. 요즘에는 일반대학교 나와서도 법학대학원(Law School)에 가서 변호사도 되고, 의학전문대학원(Medical School)에 가서 의사도 되지만, 예전에는 학문 간 경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법과대학에서 헌법을 가르친다고 하니까 의아해 했지요. 요즘은 전문성을 강조하다 보니 학문이 세분화되어 있는데, 사실 너무 좁은 범위의 학문을 배우고 사회에 나와서 리더가 되면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들이 정치학이나 경제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너무 부족하면 제대로 된 법률해석을 하기 어렵지요. 저는 헌법을 전공하면서도 사회과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법학만 공부한 사람들과 달리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승욱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내각제로 개헌하자, 대통령 임기 개헌하자, 헌법 전문 수정하자 등 헌법개정에 대한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이렇게 헌법개정을 자주 하는지요?


최대권 우리나라는 1948년에 헌법이 제정된 이후 1987년까지 총 9차례의 헌법개정이 있었습니다. 선진국에 비해서 우리의 헌법개정이 빈번하다는 것은 곧 우리 헌정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민주주의가 오래된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는 잘 안 바뀝니다. 그만큼 민주주의가 안정됐다는 의미이지요. 미국은 1787년에 연방헌법이 제정된 이래 20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 27번의 개정밖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제정 직후인 1791년에 미국 권리장전이라고 여겨지는 첫 10개 수정헌법의 개정이 이루어진 것을 제외하면, 연방헌법은 개정할 때 1개조씩 밖에 개정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개헌에 필요한 모든 주(州)의 동의를 얻기 위해 수년에 걸친 논의 끝에 개정이 이루어집니다. 일본은 1947년부터 시행된 헌법을 아직 한 번도 개정하지 않았습니다.

김승욱 공화제를 채택한 이후 역사가 수백 년이 되는 선진국에 비해서 아직 건국 80년이 되지 않은 대한민국은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대권 사실 저는 헌법개정을 자주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었는데 근래 긍정적으로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라는 걸 해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왕이 중심이 된 정치체제가 아니라 국민이 주체가 되는 이러한 헌법관에 기초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요. 헌법개정은 국민이 나라 운영을 배우는 과정의 한 부분이므로 일부 바뀌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도 있습니다. 헌법개정을 많이 했다는 것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는 것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익혀가는 방법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는 거지요.
영국의 경우 성문헌법은 없지만, 영국 사람들은 헌법을 가르칠 때 제일 먼저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부터 시작합니다. 왕정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 있었던 여러 가지 문서들이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1215년 존 왕(King John)이 봉건 제후와 런던 시민들에게 굴복해서 작성한 마그나카르타, 1628년의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 1699년의 권리장전(Bill of Right) 등을 거치면서 일종의 헌법이 고쳐진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헌법의 뼈대가 만들어진 것이죠. 따라서 헌법의 역사는 개인으로 치면 곧 족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수정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승욱 우리나라는 1987년에 헌법이 9차례 개정되어 현행헌법이 시행된 지 40여 년 지났으므로 과거 우리 헌정 역사에 비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개헌 없이 헌법이 유지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헌법을 개정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인지요?


최대권 영국은 민주주의 역사가 유산(heritage)이 되어서 전체를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헌법을 개정할 때 전면적으로 다 고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민주주의체제를 버리고 일당독재체제로 들어가지 않는 한 기존의 헌법은 기본이 되는 것이니 다 고칠 필요가 없는데, 한국 사람들 성격이 급하다 보니까 대폭적으로 개헌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 헌법을 그렇게 대폭 수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 국가로서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들 중에 우리나라는 세계의 모범 국가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양당체제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된 것 같습니다. 평화적 정권 이양의 경험도 쌓았고, 9차례 헌법을 개정하면서 민주주의 정치 질서를 확립했다고 봅니다. 그동안의 헌법개정은 발전 과정의 시행착오 형태였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해가면서 전 세계에 모범을 보인 모델 국가입니다. 경제적으로만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어느 정도 모델이 될 만합니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까?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거대한 비민주적인 전체주의 세력이 옥죄고 있는 지정학적 여건, 북한 김일성 일가의 독재체제와 대치하면서 이만큼 일궈온 것을 생각하면 그동안 잘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기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부러 의식하고 넣었는지 거기에 어떻게 그런 조항이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 개발도상국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으니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리한 여건하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재산권 보장,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통해서 경제 부흥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도 부흥했고, 지금 K-컬처가 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가 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모든 것이 헌법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체제의 바탕에는 헌법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은 건축물을 지을 때의 주춧돌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승욱 7월은 제헌절이 있는 달입니다.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념하여 제헌절이 만들어졌고, 이후 헌법 제정의 의미를 온 국민이 되새기고자 공휴일로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2007년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2006년에 주 40시간 근무제(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휴일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식목일, 한글날 등과 함께 공휴일에서 빠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글날은 2014년에 다시 공휴일이 되었는데, 제헌절은 여전히 공휴일이 아닙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빠진 것은 그만큼 헌법의 중요성을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제헌절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최대권 저는 헌법을 공부하면서 이승만 박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왕정에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상해에서 독립운동하던 분들이 끼치는 영향이 컸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했고, 또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기 때문에 미국 연방과 각 주의 민주주의 헌법들을 많이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굉장한 혜안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반드시 미국의 민주주의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동력이 되어 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건국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1952년 발췌개헌이나 1954년 제2차 헌법개정 등은 그때 상황의 변동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정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시행착오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 제헌헌법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Weimar constitution)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1918년에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하고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헌법은 기본적인 내용만 넣고, 나머지 구체적인 조항들은 일반 법에서 규정하곤 했는데, 당시 독일도 민주주의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헌법에 구체적인 조항들을 많이 넣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제헌헌법을 만들 때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한 유진오 박사가 일제 시대 때 공부했고, 일본 헌법은 독일 헌법을 참고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 것이죠. 특히 경제·외교 조항 같은 건 결정적으로 바이마르 헌법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독일은 헌법 개정을 자주 했습니다.

김승욱 현재 대통령 5년 임기 조항과 단임제를 두고 개정 논의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단임제의 경우 성공적으로 평가된 대통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고, 장기 집권을 막겠다고 하는 의도는 좋지만 대통령이 너무 빨리 레임덕이 되어서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어렵다는 등의 비판이 있습니다. 또한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기 때문에 여소야대 국회에 발목 잡혀 여당이 제대로 정책을 실행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고,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별도로 치러야 하는 잦은 선거에 대한 비판 등을 이유로 임기와 단임 조항에 대한 개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대권 개헌에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이상한 조항을 넣자고 우기는 세력들이 생기니 헌법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임기의 경우 5년 단임제가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특별히 불리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좀 더 지속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유진오 박사의 헌법 초안을 보면 처음에는 의원내각제를 하려고 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강력히 주장해서 대통령 중심제가 되었습니다. 아직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원내각제는 정치적 혼란만 가져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19가 일어난 이후 1960년에 있었던 제3차 개헌에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했습니다. 이후 1961년에 5·16이 발생하면서 다시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제로 바꾸었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는 불과 1년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 현실정치 실정에 비추어 봤을 때 의원내각제는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령 정당만 하더라도 정당 안에 지휘부가 형성되면 그 지휘부가 정당을 이끌고 가는 것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지속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리더십이 확립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강제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방법으로 해야지요.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전에는 중심인물을 세워놓고 민주적으로 하게 만드는 쪽이 좀 더 긍정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대통령 중심제는 독재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장착된 민주주의가 상당 정도 생활화된 오늘날, 적어도 우리나라가 독재화된다는 것은 지금의 정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만큼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했으니까요.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볼 때도 그렇고,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자유와 평등과 재산권 보장, 계약 자유의 원칙 등을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질문하신 대로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맞지 않는 문제도 있지만, 견제와 균형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오히려 여소야대가 되면 견제를 더 잘할 수 있는 효과도 있지요. 반대로 여당 의석수가 더 많아 여대야소가 되면 권력 집중현상이 나타나 민주주의 원칙인 견제에 훼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 의해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든지 하는 급변 상황이나 남북 대결이 변수이긴 한데 그런 점에서는 대만이 긍정적인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만은 대륙의 공산당 일당독재와 대만의 자유민주주의화가 양존합니다. 거대한 중국에 비하면 대만은 훨씬 작은 나라이지만 국제 정치의 현실로 봐서는 대만이 그렇게 쉽게 공산화되거나 중국에 흡수된다고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독재체제가 들어서기 어렵다고 보고 따라서 대통령 중심제를 운영하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대통령제는 선출된 군주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기둥을 굳건히 세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대통령이 앞장서고 거기에 대해서 국무총리가 너무 지휘명령을 받는 체제가 되어서 좀 문제가 되는 측면은 있습니다.

김승욱 우리나라 제헌헌법이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헌법에 경제 조항이 없는 나라도 많다고 하는데, 지금이라도 경제 조항들을 빼버리면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헌법 119조 1항과 2항이 서로 충돌을 일으켜서 그것을 해석하는 문제로 서로 의견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현행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여 대한민국이 어떠한 경제체제를 가지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조항이 서로 배타적(이율배반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제1항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틀 위에 세워져 있음을 명백히 하는데, 바로 이어서 제2항에서는 국가가 균형성장, 적절한 소득분배 유지,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다릅니다. 2항만을 근거로 삼는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벌기업을 규제하고, 소득재분배를 위해서 친서민정책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칠 경우에 제1항의 국민의 ‘자유’를 상당히 침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2항을 제1항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보칙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제1항과 동일한 선언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해석과 정책이 가능해져 문제점을 지적한 학자들이 많았고, 정권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면서 많은 갈등을 낳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세한 경제 조항이 헌법에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대권 헌법은 자주 손대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서 적응해 나가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경제 조항이 조금 디테일한 측면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경제 조항도 추상적으로 돼 있으니까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걸 뺀다고 정치권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부족하더라도 있는 건 그대로 두고 해석이 달라서 싸우더라도 그 안에서 융통성 있게 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승욱 최근 자주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는 주장들을 합니다. 현재 우리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갈 문구를 자꾸 늘리자고 합니다. 그런데 헌법에 전문은 왜 필요한가요? 많은 나라들이 헌법에 전문이 없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최대권 우선 영국은 헌법 자체가 없습니다. 미국과 독일은 헌법 전문이 없고, 프랑스나 일본은 전문이 있습니다. 이처럼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원칙은 없습니다. 사실 전문이 있고 없고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데 우리는 걸핏하면 헌법 전문에 5·18 정신도 넣자, 제주 4·3도 넣자, 심지어는 세월호도 넣자고 합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역사책을 헌법으로 해야 하지요. 그리고 전문에 넣으려는 정신이 무엇인지에 관한 정의를 분명히 내리고 국민적 합의를 먼저 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헌법은 일단 결정되면 가능한 고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을 보세요. 처음 제정 당시에 좀 고치고 그 후에는 거의 고치지 않습니다. 물론 시대에 맞게 약간의 수정은 할 수 있지만, 족보를 뜯어고칠 수 없는 것처럼 헌법은 자꾸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김승욱 헌법 개정에 비판적이신데 그렇다면 통일을 대비하는 입장에서 헌법 조항을 바꾸자는 주장은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 우리나라 헌법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하고 북한도 우리 남한 영토를 헌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근거해 탈북자가 넘어오면 바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만약에 북한에서 연고가 벌어지면 우리가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대비라는 것은 북한이나 북한 주민의 지위에 대한 것, 통일의 방식이나 절차에 관한 것, 그리고 통일에 대비한 정부 조직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먼저 되어야 고칠 수 있지 않나 싶은데, 현시점에서 통일을 대비해서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만약 고친다면 어떻게 고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최대권 통일을 대비해서 중립적인 헌법을 만들자, 또는 연방제 헌법을 만들어서 통일하자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것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과 같은 일당독재체제하고 다당제 경쟁체제가 있는 대한민국 시스템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중립적인 헌법이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바람직하기로는 자유민주주의에 의해서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야지 그 중간 영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을 대비한 헌법이 불필요할뿐더러 오히려 혼란만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만일 통일이 되면 또다시 개헌하자고 그럴 건가요? 헌법이 삼천리 반도를 전부 관할하는 헌법으로 통하면 되는 것이지 우리가 지금 북한체제와 타협해서 통일헌법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뿐 아니라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당독재체제와 다당제는 양립이 안 되는 거니까요. 하나를 선택하는 거고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통일이 되어야지 일당독재가 권력을 유지하는 통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양립 불가입니다.

김승욱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우리나라 3심제도는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으로 대법원이 최종적 심판기관입니다. 그런데 2004년 행정수도 이전문제와 대통령 탄핵 사건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3심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최종적 심판기관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두 곳이 있는 것인데, 왜 일원화하지 않는 것인지요?


최대권 헌법재판소 제도는 독일에서 배웠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배울 때는 독일이 최고였거든요. 그런데 미국은 헌법재판소가 없고 연방대법원에서 다 합니다. 연방대법원에서 나온 판례가 헌법에 관련된 것이면 그것이 곧 헌법 재판입니다. 그러니까 헌법이 바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헌법이 바뀌는 건 곧 국민의 권리 의식이나 법 의식이 바뀌는 것이므로 의미가 바뀌는 차원의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이걸 공식화한 게 헌법개정인 것이죠. 그것으로 조문화가 되는 건데 추상적인 조문이 하나 딱 있으니까 대법원 판례가 헌법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도 3심으로 하면 안 되느냐고 하는데, 그것은 헌법에 비추어 검토하는 것이니까 3심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같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공존하는 이 시스템도 나쁠 것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나라의 판사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헌법 케이스를 다룰 만큼 능력이 있는 재판관을 양성하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헌법재판관은 판검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판검사는 주로 민사사건이나 형사사건이 중심이고 그분들이 다 헌법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헌법재판관이 된다는 게 어폐가 있습니다. 일본은 헌법재판소가 없고, 헌법 불일치 판정은 대법관들이 합니다. 대법관 중에는 교수가 두 명 정도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헌법재판관에 전문직 변호사들의 반대가 심해서 교수들을 넣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과대학을 다녀도 대학원 가서 교수가 되겠다는 학생들은 소수지만 분리돼 있고, 나머지는 고시 공부해서 판검사 되고 대법관까지 됩니다. 헌법재판소를 만들어 놨는데도 헌법재판관에 헌법 전공하고 평생 연구한 헌법학자들은 못 들어갑니다. 반면에 독일이나 일본은 헌법재판소를 안 만들었지만, 대법관 임명할 때 법관이 아닌 교수들도 한두 사람 정도 헌법재판관에 임명합니다. 대법원은 최종 결정이니까 법적인 사고와 함께 사회 변화가 반영이 돼서 최종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법률가들의 카르텔이 작용해서 판검사 출신이 아닌 사람은 대법관도 못 될뿐더러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못 됩니다. 그러니까 전부 헌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판검사 출신들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김승욱 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하는 것이 대통령 탄핵이나 위헌법률 심사 등인데, 노무현 정부 시절 수도 이전 논란 때 우리나라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법’을 통해 위헌 판정한 것도 헌법재판소였지요.


최대권 수도 이전 판결 당시 헌법재판소 판결에 제가 쓴 논문들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 수도 이전을 하면 안 되는가’를 다룬 논문도 있고, 그밖에 ‘수도 이전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글들을 잡지에 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도를 서울이라고 하는 것은 관습법’이라는 논리로 수도 이전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균형발전을 이유로 수도 이전을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0개 혁신 도시 건설을 했고, 공공기관들을 지방으로 이전했습니다. 이것은 가령 부동산 명도소송에서 이겼으면 건물 본채뿐만 아니라 거기에 딸린 사랑채나 헛간도 다 포섭되는 법인데, 마치 본채에 딸린 사랑채나 헛간은 별개인 양 논리를 전개해서 행정수도 이전이 가능한 것처럼 정당화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인 것이죠.

김승욱 그렇군요. 전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현실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지방의 혁신 도시 몇 군데에 강연하러 가봤는데, 공무원들이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서 근무해 주말부부가 되어 매우 불편해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대도시 주변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좀 덜한데, 그 외의 혁신 도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불편을 호소하더군요. 우리 5천만 명의 인구에서 그렇게 많은 지방 도시를 수도권과 비슷한 경쟁력을 가지도록 키우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법 적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