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문제에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2023-06-09 0 By 월드뷰

일산 제자광성교회 박한수 담임목사

한국에 스며들고 있는 동성애 등 성적 타락의 문제에 교회가 나섰습니다. 초교파적으로 “나쁜차별금지법반대기독교연합”이 결성되어 목회자3천명이 모여 “희망의 대한민국을 위한 한국 교회 연합기도회”를 개최합니다. 이 대회를 준비하는 상임총무 안석문 목사(월드뷰 편집위원)가 제자광성교회 박한수 담임목사를 만났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7천명의 제자를 양성할 것을 첫번째 비전으로 삼고 있는 제자광성교회(경기도 고양시)는 민족지도자를 배출하여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안석문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 전 세계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OECD 국가 상당수와 미국의 일부 주 등 선진국의 차별금지법 통과는 한국 사회와 교회에 적지 않은 위협입니다. 감사하게도 한국 교회가 최근 많이 깨어나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16년간 줄기차게 이어 온 헌신자들의 수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월드뷰>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일찍부터 알고 여러 차례 다루어 왔습니다만, 이번 6월호에서는 교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특히 젊은 층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목사님은 최근에 동성애 문제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시고 계신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박한수 천장에서 비가 새듯 동성애 문제가 수면 위로 조금씩 올라오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가만히 있고, 무엇보다 앞장서서 나서야 할 교회조차 나서지 않는 것을 보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회관을 ‘성경 지상주의, 교회 지상주의’로 삼고, 성경과 교회를 지켜내는 것을 저의 필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며 사는데, 아시다시피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경을 왜곡하며 교회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죠. 이건 본능적인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석문 차별금지법을 막기 위한 한국 교회 성도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이하 차금법) 반대를 위한 대규모 집회 참가, 관련 세미나와 문화축제, 반복되는 시위, 지도자들의 기자회견, 작년 9월부터는 사회 명사와 목회자를 초청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목요일 아침 8시에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2년 11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나온 개신교인 인식조사를 보면 동성결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비율이 6년 전에 비해 3 퍼센트나 오히려 늘었습니다. 아직도 개신교인 5명 중 1명이 동성 간 결혼제도에 찬성하고, 비개신교인 5명 중 2명이 찬성하고 있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젊은 층은 기성세대보다 동성애 문제에 더 관대하다는 점인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한수 젊은 층은 동성애를 하나의 트렌드로 생각해요. 동성애 반대 목소리를 내면 꽉 막힌 사람 취급받아요. 심지어 젊은 목사들도 그런 이유로 선뜻 반대하지 못하고 트렌드에 편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문 조사할 때 질문의 문항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가 다르게 나옵니다. ‘동성애’나 ‘퀴어’ 등 원색적인 용어를 넣어 질문하면 압도적으로 반대가 나오지만, ‘차별’, ‘인권’이라는 말을 앞세우면 압도적으로 찬성이 나오죠. 차별금지법 용어 자체가 ‘차별하지 말자’는 말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이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단에서도 목사들이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안석문 적어도 한국 교회 담임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 그룹은 차금법 반대에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 앞 1인 시위에 나온 분들을 보면 차금법을 막으려고 하는 의지가 아주 강합니다. 때로는 자발적으로 연락해서 함께할 수 있냐고 연락도 받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은 오히려 왜 교회가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이처럼 단호한지, 열린 태도가 부족한지, 동성애자들을 위한 포용과 사랑은 안 하는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과 관점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박한수 교회 안의 젊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은 신학교에서부터 자유주의에 물들어서 나오기 때문에 강대상에서 은연중에 단호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만큼 버티는 이유는 신학의 근간에 근본주의 신학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이 무너지는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 진영에서 동성애를 찬성하면서 신학이 갈라졌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나라도 점점 그런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은 동성애 찬성 측이 소수라 힘을 못 씁니다. 교단, 교파, 신학적 성향을 떠나서 ‘동성애는 죄’라는 큰 명분 앞에 이의를 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마지막 때에 보수 신학으로 무장시키신 것이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성혁명주의자들이 뿌린 씨앗을 지금 마귀가 거두는 거예요. 그동안 기독교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죠. 그들은 수십 년 전부터 동성애와 성에 관한 혁명을 단계별로 차근차근 준비해왔어요. 그러나 한국 교회는 개교회 성장에 매몰되어 사회구원은 도외시했던 겁니다. 출산율 문제도 비슷하다고 봐요. 대한민국 출산율이 이렇게 심각해질 줄 몰랐던 거예요. 이미 30년 전에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부터 대비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시적인 수치를 보고서야 허둥지둥하다 보니 늦는 거예요. 2070년이 되면 인구가 3,500만 명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건 방법이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동성애 문제가 대두된 후 20여 년간 한국 교회가 너무나도 은밀하게 진행된 그들의 핵심 아젠다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죠.

안석문 동성애 문제를 일반 국민이 잘 모르게 된 이유는, 2011년 인권위가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제정한 인권보도준칙 제8장에 성적 소수자 인권조항을 넣으면서 더 확고하게 언론의 입을 막아버린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 중 양심적인 기자가 기사를 쓰면 좌표가 찍혀 기자 생활이 곤란하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동성애자 인권만큼 일반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합니다. 에이즈가 동성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학적 진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한데, 이는 무시했습니다. 게다가 치료비용의 90 퍼센트는 국민건강보험공단, 10 퍼센트는 국비와 지방비에서 부담해, 결국 100 퍼센트 국가 예산으로 지급하니 국민의 세금 지출이 어마어마합니다. 5년 전 기준으로 연간 천억 원 이상 비용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언론의 이런 한계점과 정부의 방관, 커져만 가는 국민 부담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박한수 거의 20여 년 동안 정치 지형 자체가 너무 기울어져 버렸어요. 저는 전교조가 의롭고 좋은 분들인 줄 알았어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미군들이 주둔하면서 일어난 여러 가지 나쁜 이야기를 들었잖아요. 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라면서도 신선하게 느꼈었죠.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선생님들이 전교조 교사들이었는데 그들이야말로 내로남불이지요.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소홀하면서 그런 선동을 하고, 그렇게 공교육을 통해 뿌려놓았던 씨앗들이 정치, 언론, 교육할 것 없이 전 영역에서 열매를 거두는 중입니다. 그 세력들이 언론뿐만 아니라 이제는 심지어 법조계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직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았음에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나라 못지않게 엉터리 판결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잘못 의식화된 사람들이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거예요. 운동장이 벌써 너무나 기울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우리나라의 언론이나 구조 속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남은 배 열세 척을 이끌고 나가 싸운 것처럼, 마지막 보루는 교회고 교회 강단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입’이라고 생각해요. 세상 언론이 ‘사탄의 입’이 되어 이렇게 나오고 있으니, 이제 교회가 하나님의 입이 되어야죠.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한때는 천만 명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것은 다 허황된 숫자고, 지금 기독교인의 숫자는 4~5백만 명도 안 된다고 봅니다. 많이 잡아서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보는데, 그래도 그 많은 사람을 매주 한곳에 모아 인식을 강화하고 깨울 수 있는 집단은 교회밖에 없어요. 목회자들이 이런 사명 의식을 가지고 설교를 통해서 성도들을 깨워낼 수만 있다면 동성애 진영에 맞선 반대 진영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할을 못 해내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습니다.

안석문 “약할 때 강함 되시네(You are my all in all)”라는 찬양의 작사자인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 목사는 이 가사가 동성애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삶을 노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는 복음으로 극복하는 것이 기독교적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한수 그렇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대안입니다. 복음은 동성애 문제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어그러지고 부조리한 죄와 악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유일한 무기인 이 복음을 교회가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간디가 “나는 예수를 존경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싫어한다.”라고 했어요. 비슷한 일이 이 시대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이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이렇게 평가하는데 아직 한국 교회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말로만 한국 교회가 위험하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텅텅 비었다고 하는데, 아직은 견딜만해서 그런지 교만해요. 세상이 교회를 향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르고,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외쳐도 사람들이 교인들 때문에 안 듣는 거죠.
저희 교회에서는 동성애자 상담도 하고 있습니다. 외국에 있는 자녀가 성 정체성에 혼동을 겪고 있어서 상담을 위해 귀국했는데, 부모가 기도하며 피눈물을 흘립니다. 또 한 젊은 친구가 동성애자인데 교회에 왔어요. 예배드리면서 엄청난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데, 동성애는 끊었는데 음란중독, 우울증, 자살 충동이 왔어요. 마귀가 동성애로 시작해서 한 영혼을 인질로 잡고 결국 가룟 유다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해야 끝나는 거예요. 저는 동성애는 전염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멀쩡한 사람도 동성애자를 만나 대화하다 보면 그 생각과 사상이 옮아요. 참 안타까운 것은 이 친구가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받으러 가면 그 의사가 ― 기독교 재단의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 “너무 큰 죄의식을 가지지 말아라. 너는 그냥 그렇게 살면 된다.”라고 말해요. 교회에서 2~3시간 상담하고 붙들고 기도했는데, 거기 가서 다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오는 거예요. 결국 괴리감에 다시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어떤 세상의 상담이 이걸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그 안에 성령의 불로 예수가 임재하는 것, 결국 그것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반연 상임총무 안석문 목사

안석문 아멘. 동성애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면 마치 자신들도 완벽한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또 대리모 통해 자신들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대리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친모를 잃은 것인데 과연 이 아이들의 인권은 누가 지켜줄까요? 성인 여성의 인권은 이야기하는데 아동 권리, 태아 권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박한수 사실 굉장히 이기적인 것이죠. 동성부부 밑에서 자라며 정서적·사회적 결핍과 불안정 속에서 살아갈 아이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에게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키우고 싶으면 애완견을 입양해 키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아이에게 동성부부 밑에서 자랄 것인지에 대한 동의도 없었죠. 아이가 엄마에게 배우는 것과 아빠에게 배우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동성부부 사이의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아빠, 엄마-엄마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질서에 따른 온전한 가정에서의 삶을 일평생 경험하지 못하며 살 텐데, 그 왜곡된 가정문화 속에서 얼마나 왜곡된 생각을 가지게 될지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무시무시한 소리지만 그중 엄청나게 탁월한 세상의 지혜를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자라서 세상을 지배했을 때, 바로 그 아이가 적그리스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안 된다고 막아내는 것은 방어 수준입니다. 방어 수준으로는 진영을 계속 빼앗기거나 유지만 할 뿐 탈환은 못 하지요. 결국 공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소극적으로 나쁘다고, 안 된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교회 안의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고, 적극적으로 성경적 성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성경적 성교육을 강의할 만한 강사들이 거의 없습니다. 일반 학교에서는 교육부 지침에 의해 의무적으로 일정 시간 성교육 강의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그 강사들 중 젠더 이데올로기에 빠져있거나, 페미니스트이거나, 실제 동성애자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 쪽 진영의 강사들은 강의를 하고 싶어도 학교로부터 채용되지 않으니 교회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겁니다. 성교육 시간을 확보해놨는데, 강사를 보내달라고 하면 자꾸 젠더 이데올로기를 가진 진영에서만 오겠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저희 교회는 성경적 성교육 강사를 양성하고 실제로 일선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요청하면 가서 강의도 해줍니다. 그러나 요청이 많지 않아요. 또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앉아있어도 공교육 교과서를 비롯해 유치원 때부터 나쁜 성교육을 받았던 아이들의 머릿속에 성경적 성교육 내용이 자리 잡기란 어렵습니다. 교회에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교정해주는 교육이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술과 전략 측면에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석문 포괄적 성교육에서는 동성애를 정상적이라고 가르치고, 낙태를 권리로 가르치고, 청소년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동의하면 성관계를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언론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끊임없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차금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이들은 이미 차금법과 관련한 일자리와 단체도 등록하여 재정적으로 지원받아 안정적으로 싸워나가고 있고, 아직 이에 대항하여 싸우는 단체나 성도는 한국 교회 전체 수에 비하면 아주 소수입니다. 잘못된 성교육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장기적인 싸움과 대한민국의 근본적이고도 지속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악법을 막아낼 조직과 재정, 무엇보다 준비된 일꾼 등이 필요합니다. 물론 교회가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 잘 싸워주어서 인식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교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박한수 목사들이 먼저 이 분야에 대해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냐면, 개인의 남녀 육체에 대한 욕구와 끌림의 방향성을 의미하는 성적(性的) 지향을 학업 평가를 나타내는 성적(成績) 지향이라고 알고 있어요. 포괄적 차별금지법 조항에 “성적(性的) 지향 등에 의해서 차별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성적이 나쁘다고 차별하면 안 되지”라고 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말 다 했지요. 그리고 사실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면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어떤 문제가 있나요?”라고 물으면 열의 아홉은 대답을 못 해요.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같은 언어 자체를 이해 못 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10분만 공부하면 알 수 있는데 모른다는 것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요.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 외치는 것이 전도가 아니고 확실한 인프라를 구축하여 돈과 인력을 가지고 맞서 싸워야 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는 상대편은 그런 면에서는 기가 막히게 잘해요. 그런데 우리 쪽은 전략가가 없어요. 이런 것에서부터 밀린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TV 등 언론 토론에서 번번이 지고, 그래서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오히려 정당화되고, 그리스도인은 고작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억지 부리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입니다. 사상공격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으려면, 결국 기독교인들이 부지런히 깨어 공부하고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의 리더인 목회자들의 역할이 너무 큽니다. 먼저 목회자들이 깨어 일어나서 자꾸 외쳐 알리고, 가능하면 성도들과 함께 현장에 나와서 직접 경험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갑니다. 한 번은 그쪽 진영에서 작심하고 행진하며 올라와 국회 앞에서 40일을 단식투쟁했는데, 우리도 맞불 시위하려 평일에 1인 시위를 갔습니다. 그런데 평일 낮에 우리 교인이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왔어요. 학교는 어떻게 하고 데려왔느냐고 했더니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아이가 엄마와 같이 시위했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삶 교육입니다. 때로는 이런 일로 인해서 극단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지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만큼, 성령 받은 만큼, 세상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이 따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안석문 교육과 교과서가 미래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성취기준 안에 복음과 진리를 위협하는 내용이 많아 교계에서 싸웠습니다. 특히 성을 쾌락의 도구 그리고 자유와 권리의 시각으로만 접근하고 생명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끊고, 책임은 도외시하고 절제를 통한 사회질서와 상호존중을 잊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결국 심각한 저출산과 대한민국 소멸 위기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정 교육과정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일부만 수정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개정 교육과정 논란에 대해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박한수 상대 진영에서는 왜 그동안 조용하다가 이번엔 시끄럽냐고 묻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가 전에는 몰랐다가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5년마다 한 번씩 상정되는 교육 개정안에 이미 그 안에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교육과정이 인본주의에 물들어서, 우리 자녀들을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음란하게 만들고, 부모 슬하로부터 일찍 독립시켜서 성경적 가치를 깨 버려서, 결국 가정파괴, 교회파괴, 신앙파괴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뒤늦게 이를 알게 되어서 나서게 된 것이죠. 제가 볼 때 교과서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아마 성경이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같을 겁니다. 교과서 내용은 100 퍼센트 신봉하잖아요. 교사들도 교과서 범위 밖을 넘어서 가르칠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교과서가 세상의 기준인데, 그 기준이 틀리면 방법이 없습니다. 개정 교육과정의 전면 폐기냐 일부 폐기냐 하는 문제는 그 안의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할 일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다 나쁜 것이 아니라 그중 몇 가지 독소조항 때문에 법안 전체가 문제가 될 수 있듯이, 교육과정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학생들의 인권을 챙긴다면 뭐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속에 음란과 낙태를 조장하고, 피임을 가르치고, 조기 성애화를 통해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어릴 적부터 음란한 문화를 심는 독소조항 몇 개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음식에 머리카락 한 가닥 들어가 있어도 음식 전체를 바꿔 달라고 하지 머리카락만 빼 주세요 하는 사람은 없듯이 이 부분에서는 단호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호해야만 우리의 마땅한 권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안석문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독교 대안학교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효과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유학도 보내고, 국제학교, 영어 대안학교 등에 보냅니다. 믿음이 좋은 가정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서 기독교 대안학교를 보내기도 하고, 공교육의 문제점 때문에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해서 대안학교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교회 입장에서는 기독교 대안학교 설립 운동도 필요하지만, 현재 공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교회에서 올바로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도 대안학교를 운영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개해주세요. 그리고 한국 교회 또한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박한수 깨어난 부모들은 이미 탈출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젠더 이데올로기에 물든 학교 공교육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애들이 학교에서 가져오는 가정통신문만 봐도 이상한 내용과 위험한 요소들이 너무 많고, 그 외 왕따 문화 등 수많은 나쁜 교육의 폐해를 잘 알기 때문에 말 그대로 대안, 즉 학교의 대안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 대안학교도 역시 경쟁주의, 학업 지상주의로 가니까 막대한 경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생각해오다가 3년 전에 대학을 보내는 대안학교가 아닌 성경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차피 요즘 아이들은 어지간하면 4년제 대학은 가게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학력이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올 테니 ‘아이들을 가슴이 따뜻하고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가진 아이들로 키워보자’, ‘평생 하나님께 예배만 드리며 살면 어떠냐’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성경 대안학교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성경을 위주로 가르치고 있는데 저는 이 과정이 방어무기가 아니고 일종의 공격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에는 교회 다섯 중 하나에 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런 정도까지는 어렵겠지만 교회도 용기를 내서, 목사들 자녀만이라도 성경적으로 교육하면 나중에 세상의 판도가 바뀌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 이름을 “아둘람 학교”라고 지었어요. 다윗 시대에 아둘람 동굴에 세상에 한 맺히고 상한 자, 찢긴 자들이 와서 다윗과 함께 있다가 나중에 이들이 다윗 왕국에 참여하게 됩니다(삼상 22:2). 공적인 학교는 아예 가지 않습니다. 교육부에서도 허락을 해줍니다. 대신 전화가 와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방치하지는 않는지 관리를 하지요.

안석문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와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초교파 모임인 차반연(나쁜차별금지법반대기독교연합)을 중심으로 “희망의 대한민국을 위한 한국 교회 연합기도회”를 영락교회에서 6월 13일 개최합니다. 한국 교회가 연합하여 기도하고, 사회와 가정을 허무는 차별금지법을 바로 이해하고 막아서자는 차원에서 먼저 목회자 3천인 대회를 합니다. 저는 주관단체 서울차반연의 상임총무로도 섬기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목회자들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차금법 제정을 반대하는 각 영역에서의 함축적이고 분명한 반대 이유를 한국 교회와 사회에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교회가 먼저 깨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 밖에 또 교회가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요?.
박한수 대의민주주의의 취약점이자 강점은 ‘다수’입니다. 숫자가 많으면 정당화되지요. 수십 년 전에도 동성애자들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들이 의견을 드러내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지금의 동성애가 왜 힘을 얻느냐 하면 그 수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호주에서 토요일에 동성애 집회를 하면 100만 명씩 모인다고 해요. 그럼 그다음 날 교회는 그곳을 다시 거룩하게 만들겠다고 초라하게 몇백 명이 행진하는데, 언론에서 보도조차 안 해줍니다. 사람이 모여야 돈이 되고 언론이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제주도 경우도 동성애 축제를 하려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이유가 그렇게 이슈가 되어야 언론이 취재를 오고 상권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와 호주도 동성애 키워드가 돈벌이가 되니까 시작된 것이거든요. 사람들이 붙으면 후원이 되고, 후원 모금으로 큰돈이 모이고, 큰돈이 모이니까 점점 알리게 되고, 하나의 관광상품으로까지 개발하고요. 사실 들여다보면 동성애자들은 실제로 차별금지법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요. 그 주변에 붙어서 기생하려는 단체들이 그들을 내세워 돈 벌려고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2021년 청주시의 자택에서 자살한 변희수 하사 경우도 그냥 두었으면 죽지 않았을 거예요. 그 사람을 이용하려고 주변 사람들이 성명서 내고 국회의원들이 가서 대단한 애국자처럼 치켜세우면서 이용하다가 결국 그 사람은 쓸쓸하고 외롭게 자살했어요. 그가 괴로움으로 죽어갈 때 그 옆에 누가 있었습니까? 옆에 붙어서 부추기고 했던 정치인, 기자 등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이것이 딱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가룟 유다를 예수님 팔아넘기는 데 써먹고 버리는 거예요. 동성애와 관련된 것에서 이득을 보고 탐하는 자들이 그것을 이용해서 전국 지자체에 단체를 만들고 성평등위원회니 국가인권위원회니 이런 위원회를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서 사무실 차려놓고, 시와 자치단체에서 인건비를 받아먹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이 진짜 동성애자, 아이들의 인권에 관심이 있을까요? 저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그들의 밥벌이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이 침해받으면 난리가 나는 것이죠. 앞으로의 싸움은 숫자 싸움입니다. 많이 모이면 돼요. 많이 모여야 언론에서 덤벼들어요.

안석문 끝으로 목사님께서 한국 교회와 국민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박한수 이 싸움이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교회가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왜곡된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정교분리 원칙은 미국에서 세상의 정치권력이 교회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청교도들이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법인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왜곡되어서 “교회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 또한 교회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영적이고 거룩한 것이라고 교육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바꾸지 않고는 세상은 안 바뀝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하나님의 뜻을 정치로 구현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정치란, 우리가 기도하고 거룩한 순결로 무장해서 깨끗한 정치, 하나님이 기뻐하는 정치, 결국 정교분리 논리에 속지 말고 우리가 정치에도 진출하고 국회의원도 되어서 다수가 국회를 움직이자 하는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 30여 개 국가 중에 우리나라만 2007년에 시작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시도에도 불구하고 16년째 버티고 있잖아요.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숫자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전 세계에서 동성애 집회할 때 반대 진영이 몇 배 더 많이 모이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아내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아니면 진작 넘어갔습니다. 구체적 대안으로 말씀드린다면 기독교인의 의식이 빨리 바뀌어야 합니다. 김준곤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귀는 성도가 길바닥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나가서 외칠 때는 외치고 투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 복음의 실천이라고 봅니다. 작년 7월, 우중(雨中)에도 불구하고 퀴어 행사를 반대하는 “2022 동성애·퀴어 반대 국민대회”가 서울시의회 앞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비가 쏟아짐에도 동성애 반대 진영은 흐트러지지 않고 시청 앞에서 동성애 퀴어 행사 진영에 압도적 숫자로 맞섰습니다. 언론 보도가 제대로 안 나와서 안타깝지만 분명 그들은 섬뜩했을 것입니다(올해는 퀴어 행사 측이 7월 1일로 집회신고를 했으나 현재 서울시에서 불허하였다). 그들이 하면 우리도 맞불집회를 합니다. 올해는 30만 명을 목표로, 그 다음에는 50만 명, 100만 명이 모이면 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아직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역사로 신앙이 건강합니다. 교회에서 동성애 지지한다고 하면 이단 취급을 받습니다. 요즘은 목회자에서 성도로의 하향식이 아니라 성도에서 목회자로의 상향식으로 가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먼저 깨어나고 있어요. 지금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문제에 침묵하고 가만히 계시는 목사도 있지만, 성도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이런 와중에 우리 교회는 대체 뭐하고 있는가 외치는 날이 오기 전에 목사님들은 어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웃음). 나중에 떠밀려서 하면 우습게 될 수 있어요. 성도들이 들고 일어날까 봐 목사들이 할 수 없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도 좋다고 봐요. 결국은 좋은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가시적인 열매라고 봅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절대 진리로 믿는 신앙인들과 목회자들이 아직 대한민국에 많고 이것을 공통분모 삼아 이 문제에 대한 대책 논의를 하고 있기에 아직은 소망이 있습니다. 다만 이제 이 골든 타임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의 5년을 중요하게 보고 그때까지 막아내어 우리가 세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낙동강 전투처럼 역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 세계 영적 지형도를 봐도 여기서 우리나라가 밀려버리면 정말 끝입니다. 미국, 유럽 할 것 없이 선진국이 다 넘어갔습니다. 네덜란드 10대 청소년 아이들의 50 퍼센트가 성전환자들(생물학적인 성과 자신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뉴질랜드, 호주 같은 곳은 신앙으로 동성애 성향을 원래대로 바꾸고자 하는 ‘전환치료’ 자체를 하는 것이 위법입니다. 부모조차도 자녀에게 전환치료를 못 하도록 막습니다. 그저 자녀들이 성 정체성에 혼란이 와도 그대로 놔두라는 거예요. 부모가 자녀를 치료하려는 자체를 금하는, 이것이야말로 독재국가 아닙니까? 심지어 교회가 성도들의 은사 기질을 발견해주는 것처럼, 동성애적 성향이 없는 아이들도 데려다가 새롭게 동성애 기질을 발견해주기도 합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이러한 실상을 너무 모르고 있어요. 나만 아니면 되지, 내 자식만 아니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성도들이 품고 있습니다.

안석문 청소년 시절 아이들은 하루 몇 번도 더 바뀝니다. 정서적으로도 요동치고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에 있는 아이들 성을 주관적으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목사님, 오늘 장시간 동안 허심탄회하게 필요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