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르단 여행기
2022-07-20[ISSUE]
나의 요르단 여행기
– 암만 페트라 & 와디럼 사막체험
김수인 (고등학교 교사)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글로벌교육협력 석사과정에서 시민교육을 전공했다. 9차 개정 교육과정 영어 능률교과서 집필위원과 바른교육학부모연합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데릭 프린스의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을 번역했다. 현재 고등학교 교사이며, 트루스포럼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잠시 코로나가 주춤하면서 지난 2년간 억눌렀던 사람들의 휴양에 대한 욕구가 폭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여행이 자유롭지 않기에 과거 여행지에서의 추억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무더위가 찾아오면 몇 해 전 다녀온 잊지 못할 여행지, 요르단 와디럼의 붉은 사막 한가운데서 맞이하던 한여름 밤이 떠오른다.
에돔 족속의 요르단
이스라엘 지역에서 성경에 나오는 지역들을 탐방하다가 알게 된 것은 성경에 나오는 지역 중 현재 요르단에 속해 있는 곳이 200군데나 된다는 것이다. 우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요단강 세례터가 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 접경 지역에 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지금도 외교적으로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긴장 관계에 있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나라의 경계를 긋기가 애매할 만큼, 역사 속에서 두 민족의 관계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우선 그 뿌리는 배 속에서부터 싸운 야곱과 에서의 형제 관계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이들의 악연은 이스라엘이 겪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나타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유대 민족에게 눈엣가시 같은 역할을 했던 헤롯 가문도 에돔 족속의 후예인 이두메인의 가문이라고 한다.
오바댜서에서는 에돔 족속을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라고 묘사한다. 붉은 털을 가진 에서의 자손들, 에돔 족속의 삶의 터전답게 요르단은 곳곳에 유독 작열하는 태양을 닮은 붉은 모래와 사암 바위가 인상 깊다.
요르단에서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는 ‘페트라(Petra)’와 ‘와디럼(Wadi Rum)’이다. 수천 년 전 에돔의 수도였던 페트라는 현재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 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의 성지순례를 마친 후 개인적으로 요르단을 여행했다.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으로 넘어 가려면 이스라엘 최남단 국경지역인 에일럇으로 가서 요르단 벳산이라는 곳에 있는 출입국사무소에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에서 요르단 국경을 넘어갈 때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요르단 하심 왕국(The Hashemite Kingdom of Jordan)’이라는 간판을 보자, 뭔가 이 길로 시간 여행에 들어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요르단은 입헌군주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전제군주 형태의 왕국이다.
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함께했던 두 명의 지인들과 함께 ‘함자(Hamzah)’라는 요르단 현지 관광 가이드를 만나 요르단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와디럼과 페트라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청년 ‘함자’는 얼마 전에 관광 회사를 차린 사장 겸 가이드인데, 첫 번째 결혼을 미국인 여자와 해서 그런지 영어를 매우 잘했다.
요르단 사람들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이목구비가 또렷하다. 어쩌다 차도르를 쓴 여인들의 얼굴을 마주치면 하얀 얼굴에 웃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간혹 중동 남성들의 매력에 빠져서 그들과 결혼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곤 했는데, 막상 요르단 청년 함자를 보니 중후한 목소리에 선이 굵은 인상이 주는 매력에 그 뉴스에 공감갔다.
하지만 요르단은 여성끼리 여행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곳이다. 아무리 관광객이라고 해도 이슬람 문화 자체가 여성을 하대하는 부분이 있어서 여러모로 주의해야 한다. 다행히 일행 중에 남성 동행자가 있어서 조금 안정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다. 여성들끼리만 오면 현지 남성 가이드조차도 짖궂게 대하기도 한다.
요르단에 도착해 암만 시내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니 도로에서 현대차를 쉽게 만날 수 있었고, 곳곳에 삼성 로고가 크게 찍힌 간판을 내건 핸드폰 상점들이 보였다. 이렇게 낯설고 이국적인 곳에서 한국 상표를 만난다는 건 정말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천혜의 요새 도시, 페트라
이스라엘의 국경 에일랏에서 페트라가 있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 근교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동안 주변의 요르단의 붉은 사막 지역을 돌아보니 마치 화성에 불시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숱한 세월이 빚어놓은 기암괴석들과 뜨거운 모래바람을 맞으니 세월이 멈춘 것 같고, 마치 이곳이 고대 중동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척박하고 마른 땅이 요르단 민족의 옛 조상들, 성경 속 모압과 암몬 족속들의 삶을 거칠게 만들지 않았을까.
한때 에돔의 수도였던 페트라는 이후 나바테아인들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서 흥왕을 누렸다. 그 무역의 통로가 왕의 대로(King’s Way)였음을 보면 당대의 위세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이후로 쇠락의 길을 걷던 이 도시는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된 후 수천 년 동안 잊혀진 도시로 전설 속 장소로만 여겨져 오다 1890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페트라는 ‘바위’라는 뜻으로, 페트라 유적의 거의 대부분은 거대한 붉은 사암을 깎아서 하나의 건물로 만든 형식이다. 1km 넘게 걸어 들어가 붉은 사암이 드리워진 협착한 계곡을 지나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신비로운 알카즈네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데, 정말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든다.
페트라는 고대 역사를 증언하는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1962),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의 미장센이 되기도 했다. 어드벤처 영화 속에서 고대 신들이 성배와 갖은 보화들을 숨겨둔 것 같은 장엄하고 거룩한 성지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혹은 ‘스타워즈’와 ‘마션’, ‘트랜스포머’ 등 SF 영화의 화성 배경이 되기도 하는 우주적 신비를 연출하는 초현실적인 매력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페트라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려하고 대표적인 유적은 알카즈네인데, 알카즈네가 어떤 용도로 사용된 건축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고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은 신전 혹은 무덤이라고 추측되지만, 화려한 문양의 외형과는 달리 내부에 들어가면 텅 빈 공간 이외에 특별한 것은 없다.
거의 한 마을과 같은 규모를 가진 페트라 유적지에서 알카즈네를 제외한 나머지 600여 개의 굴들은 대부분 무덤 용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에 숭배되던 신들에 관련된 유적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종교적 용도였을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페트라 유적 중심부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기원전 4세기 경에 나바테아 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머릿속에 상상해 보았다. 마지막 때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성경의 예언에서 핍박받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곳 페트라 지역으로 피신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페트라는 현대 시대에도 전쟁 시 천혜의 요새로서의 지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고요와 순수를 품은 사막, 와디럼
페트라 1일 투어를 끝내고 와디럼 사막 투어와 베두인의 텐트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와디럼은 아랍어로 ‘계곡’을 뜻하는 ‘와디(Wadi)’와 ‘달’을 뜻하는 ‘럼(Rum)’이 합쳐진 말로, ‘달의 계곡’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막 깊숙이 들어가면서 이곳 저곳에 자연이 빚어놓은 희한한 모양의 바위들이 보였다. 석양 노을에 비친 와디럼의 사막은 더욱 붉디 붉었다.
와디럼에서의 사막 투어는 내게 특별했다.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과 싸우느라 이 사막이 무척이나 적대적이게 느껴진다. 그러다 한낮의 뙤약볕을 보내고, 밤을 맞은 중동의 사막에는 지독한 적막이 찾아온다. 낮에는 종종 양 떼와 낙타 떼를 모는 베두인 목동들이 지나가곤 하지만, 어둠을 맞은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다.
메마른 모래사막에 살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서식하는 동식물도 거의 없다. 생명체도 없고, 습기도 없고, 그렇기에 박테리아나 동식물의 썩은 부유물도 없다. 사막은 그야말로 세상 어느 곳보다 더욱 깨끗한 상태다. 모든 것이 죽은 것같이 보이는 그 사막은 사실은 깨끗함, 고요함, 순수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치 창조주 하나님의 내면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구의 모든 환경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곳에 편재하실 것이다. 아마존 열대우림과 같은 곳에도, 북유럽의 서늘하고 건조한 툰드라 지역에도, 온화하고 아름다운 지중해의 해안에도 편재하신다. 그런데 지구의 숱한 아름답고도 다채로운 환경을 두고서, 왜 하필이면 이렇게 척박하고 건건한 중동의 메마른 땅을 인류 구원사의 주요 무대로 삼으셨을까?
그날 나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느즈막히 와디럼 사막에서 지는 밤을 맞이하며 조금 알 것 같았다. 밤이 내리기 시작하면 정갈함과 고요함이 온 사막을 가득 채운다. 눈을 맞출 수 있는 것은 하늘의 별과 달뿐이다. 이쯤 되면 내가 지구별을 떠나 우주의 머나먼 행성에 불시착한 것이 아닌가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막에서 밤을 맞이하면 세상은 아스라이 멀어지고 세속에서의 번잡한 생각의 주파수가 모두 셧다운 된다. 대신 우주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아마도 태고 때부터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주파수에 귀 기울여진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첫 장면에서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는 이와 같은 리비아 중동 사막에 불시착하여 베두인에게 구조된다. 사막에서는 타는 듯한 태양 속에 모든 것이 말라버리고 모든 불순한 것들이 제거된다. 그리고 오직 순수만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중동의 사막이다. 그랬기 때문에 순수의 아이콘인 어린 왕자를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텍쥐페리가 순수한 영혼의 어린왕자를 리비아 중동 사막에서 만났던 것처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던 아브라함도, 형을 피해 돌베개를 베고 자던 야곱도, 떨기나무 앞의 모세도 이런 중동의 광야 사막에서 하나님과 조우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을 대면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이 광야 사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원래부터 하나님께서 속세의 시끄러움과 지저분함 속 보다는 이런 고요하고 정갈한 곳에 거하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주적인 고요함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고단한 인생에 피할 길을 찾아 이르게 된 곳, 중동의 광야 사막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즐겨 거니시는 산책로이자 장막이 있는 곳이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지극히 제한하는 광야를 싫어하고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한다. 인생에서도 자원과 물이 가로막힌 광야와 같은 시간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광야 같은 시간은 홀로 광야에 거하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이자 우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차원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르단 사막 투어의 밤은 말로만 들었던 광야의 의미에 대해 체험케 해준, 내 인생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밤이었다.
kim2shine@gmail.com
광야에 거하신 주님을…
오늘 이 자리에서도 만났으면 좋겠네요^^
순간순간이 광야임을 고백하며…
그어떤 것보다 그분께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귀한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