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는 시간

함께 웃는 시간

2021-12-26 0 By 월드뷰

월드뷰 DEC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2


글/ 김민정(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


나에게는 비법 그림책이 몇 권 있다. 만남이 긴장되거나 대화나 놀이가 쉽지 않은 아이를 만날 때 유용한 책들이다. 비법 그림책으로 만나면 낯을 가리는 아이와도 손을 잡을 수 있고, 말수가 적은 아이와 한 마디라도 나눠볼 수 있다. <아빠와 함께 피자 놀이를>과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책이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함께 깔깔 웃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웃음은 참 좋다. 함께 웃는 건 더 좋다. 함께 소리 내어 웃으면서 놀면,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돈다.


사랑을 굽는 시간,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은 재미있으면서도 뜻깊은 그림책을 많이 남긴 윌리엄 스타이그(William Steig)의 작품이다. 피자 놀이라는 제목과 표지가 안성맞춤이다. 피자 상자 같은 정사각형 판형에 피자같이 동그란 아이 얼굴이 그려져 있고, 선명한 빨강과 초록 글자들이 아이의 동그란 얼굴을 감싸고 있다. 표지의 아이는 보는 사람마저 따라 웃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천진하고 순수하게 웃고 있다. 피자 상자를 여는 느낌으로 표지를 열면, 토마토소스를 발라놓은 것 같은 빨강 면지를 만난다. 표제지에는 피트가 피자 놀이를 하려고 탁자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다. 표지부터 면지, 표제지를 지나면서 독자들도 덩달아 피자 놀이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된다.

피트는 기분이 좋지 않다. 친구들하고 공놀이를 하려 했는데, 비가 왔기 때문이다. 피트가 속상해하는 걸 아빠가 모를 리 없다. 아빠는 속상해서 늘어져 버린 피트를 피자로 만들기로 한다. 아빠는 피트를 식탁에 눕히고, 이리저리 문질러 밀가루 반죽을 한다. 반죽을 쭉쭉 잡아당기고 피자 반죽을 돌리듯 던져 올리기도 한다. 물로 기름도 발라주고, 땀띠 분으로 밀가루도 살살 뿌려준다. 장기 말로 토마토도 얹고, 종잇조각으로 치즈도 얹는다. 엄마는 “토마토 없는 피자가 좋은데.”라고 놀이를 거들기도 하고, 피자 반죽이 된 피트를 간질여 피자 반죽이 데굴데굴 뒹굴며 웃음을 터트리게도 한다. 피자가 다 만들어지면 아빠는 소파를 오븐인 척 피자가 된 피트를 오븐에 넣는다. 피자가 노릇노릇 잘 구워지면 손날로 피자를 써는 시늉을 한다. 피자가 도망을 가고, 피자 요리사는 도망가는 피자를 쫓아간다. 아빠 요리사에게 잡힌 아이 피자는 아빠의 품에 폭 안긴다. 그 새 비는 그치고, 아이는 공을 들고 밖으로 놀러 나간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작품답게 인물들의 표정이 생생하고 재미있다. 장면마다 바뀌는 표정을 보면 인물의 감정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이 아주 솔직하고 투명해서 인물들이 더 귀엽게 느껴진다. 비가 내리는 창을 내다보는 피트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면 이 아이에게 나가 놀지 못하는 게 대단히 큰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실망했는지, 눈도 코도 입도 다 아래로 축 처져있다. 하지만 아빠가 피트를 안고 피자를 만들기 위해 식탁으로 가는 바로 다음 장면에서 피트는 눈을 반짝 뜨고 방긋 웃는다. 장면마다 표정이 이렇게 바뀌니 그림에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피자인 척하는 동안 피트는 눈을 감고 입을 꼭 다물고 충실하게 피자 역할을 하고, 피자 요리사인 아빠는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한다.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처음에는 ‘이게 뭔가’하고 갸웃하는 표정이다가 곧 놀이 분위기를 알아채고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놀이에 참여한다.

놀이에도 성공과 실패가 있다. 놀이의 성공은 즐거움과 몰입으로 가늠된다. 세 가족은 성공적으로 즐거운 놀이에 몰입한다. 놀이 참여자들이 훌륭한 덕분이다. 피트는 자기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가시를 세우지 않고, 아빠의 놀이 제안에 기껍게 반응한다. 아빠는 기분이 나쁜 아들을 단박에 알아보고 아들의 기분을 풀어줄 방법을 재빨리 찾아 시늉이라고 하기에는 진지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논다. 엄마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그들의 놀이를 충분히 존중하고, 상황을 알아채고서는 곧바로 그 놀이에 뛰어든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같이 즐겁기로 마음먹었으니 놀이의 모든 순간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아빠랑 함께 하는 피자 놀이를 지탱하는 힘은 사랑이다. 사랑은 상대를 잘 알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지혜로운 방법으로 건넨다. 이 그림책의 모든 장면에는 사랑이 퐁퐁 솟아난다. 특히, 아빠가 ‘이 녀석을 피자로 만들어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아이가 이미 아빠의 마음을 알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피자 반죽 행세를 시작한 장면은 부모와 아이가 얼마나 마음이 잘 통하는지, 이제껏 얼마나 재미있게 놀아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장면이다. 지금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우리가 같이 재미있기로 마음먹고 사랑으로 함께 놀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성장을 쌓는 시간,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이 몸으로 즐겁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는 말로 즐겁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그려내는 작가 캐빈 행크스(Kevin Henkes)가 글을 쓰고, 낸시 태퍼리(Nancy Tafuri)가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빌리’라는 아이다. 빌리는 이제 다 커서 혼자서 밥도 먹고, 옷도 입고, 부엌 찬장에서 컵도 쉽게 꺼낼 수 있다. 장화도 잘 신고, 전화도 잘 받는다. 빌리는 정말 다 커서 바지가 짧아졌고, 신발도 새로 사야 하게 되었다. 빌리는 이렇게 자랐지만, 더 많이 자라고 싶다. 엄마, 아빠보다도 더 크게,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으로 말이다. 엄마, 아빠는 그런 빌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를 상상하는 놀이는 재미있다. 엄마는 “우리 빌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커진다면 우리 집 지붕이 모자가 되겠네.” 하고, 아빠는 “그럼 창문은 소매가 되고, 우리 집 벽은 윗옷이 되겠지.”라고 상상을 더한다. 빌리는 소리 내어 웃으며 지붕이 자그마한 모자가 될 정도로 커다래진 자기 자신을 상상한다. 상상 속에서 엄청나게 커진 빌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할머니 집까지 두 발짝이면 걸어갈 수 있고, 목이 마르면 호숫물을 마신다. 그뿐만 아니다. 빌리가 ‘후-’하고 불면 구름이 다 날아간다. 빌리는 무지개를 목걸이로 걸고, 초승달로는 콧수염을 달 수 있다. 한창 재미있게 커다래진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만족감이 차오르면, 엄마와 아빠는 빌리가 지금 딱 자기의 나이만큼 잘 자라고 있다고, 지금은 빌리만 한 아이들이 잘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잘 자란 빌리는 혼자 힘으로 침대에 올라간다. 잠자리에서도 빌리의 상상은 이어진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달이 겨우 알사탕만 한 것이었다. 빌리는 달을 손으로 잡아본다. 꿈속에서 빌리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다.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판형도 크고, 표지의 제목과 그림도 커다랗다. 대부분 장면에서 빌리는 널찍한 펼침면에서도 단박에 시선을 끌 정도로 크게 그려진다. 상상이 시작되기 전 아이는 극단적으로 클로즈업되고, 상상이 시작되면 주변의 나무며 호수가 조그마하게 그려져서 빌리의 상대적인 크기를 부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가 되고 싶은 빌리의 소망을 그림이 시원하게 이뤄주는 셈이다. 특히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커다랗게 자란 빌리가 입김을 불어서 구름을 날려 보내는 장면은 대담하기까지 하다. 넓은 펼침면이 빌리의 얼굴과 구름으로 꽉 차서 빌리가 정말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가 된 것 같다. 해님으로 공놀이를 하는 장면은 펼침면의 반 이상을 샛노란 해님에게 내어주어 시각적으로 강렬한 효과를 준다. 커다란 판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멋진 장면이다. 이렇게 즐거운 상상 놀이를 마치면 빌리는 현실의 크기로 돌아온다. 엄마에게 안기면 엄마 가슴까지 겨우 닿고, 침대에 올라가려면 다리를 힘껏 쭉 뻗어야 한다. 침대에 누우면 빌리는 인형들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이다. 하지만 빌리는 꿈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가 될 수 있다.

상상 놀이는 빌리를 성장시킨다. 빌리의 가족들은 계속 깔깔 웃으면서 상상을 이어간다. 한없이 커지는 상상은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상상 놀이를 끝내고 마주하는 현실도 만족스럽다. 상상 속에서라면 너무 쉬웠을 일을 영차영차 해야 하지만 그쯤은 잘 해 낼 수 있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언제나 빌리를 응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는 상상 놀이를 마친 후 기쁘게 현실을 인정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상상 여행은 현실을 인정할 힘과 함께 계속해서 꿈을 꿀 힘을 준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웃음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과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는 그림책 속에 웃음이 가득 담겨있다. 책을 톡톡 털면 웃음소리가 쏟아질 것 같아서 책에 익숙한 아이들과는 책을 흔들면서 웃음소리를 줍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책을 높이 들고 여기저기에서 흔들면 아이가 웃음을 받으러 뛰어다니면서 까르르 웃는다. 특별히 우스운 것이 없고, 책에서 떨어지는 웃음소리를 줍느라고 웃은 건데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게 된다. 웃음은 웃음을 부른다.

웃음은 사랑의 땅에서 피는 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어야 농담이 재미있고, 놀이가 즐겁다. 뼈 있는 농담에 마음 놓고 천진하게 웃기 어렵고, 의도가 있는 놀이가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즐거운 시간, 편안한 웃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편하게 거저 얻어지지도 않는다. 피트와 빌리의 가족이 잘 보여준 것처럼 사랑해서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운 관계, 함께 더 즐거워지고 싶어서 같이 노력하는 관계에서만 진짜 웃음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정말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어미가 젖 먹이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신다(사 49:15).’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사랑은 피트와 빌리의 부모님 사랑에 비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피자로 만들며 귀여워해 주시고,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서 제일 큰 아이라 말씀해 주시는 상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걸리는데, 하나님은 언제나 더 섬세하게 우리를 살펴주시고,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신다. 하나님 사랑을 흠뻑 누리자. 그리고 싱그럽고 활기차게 웃자.

<chulsucomeon@naver.com>


글 | 김민정

성균관대학교 아동문학미디어교육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그림책 전문가 과정’ 강의를 하고 있으며, 동 대학의 아동청소년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