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언어에 관하여
2021-12-24
월드뷰 DEC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
글/ 육진경(전국교육회복교사연합 대표)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주시경, ‘한나라말’ <보중 친목회보> 제1호, 1910)
한 말을 쓰는 사람과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함으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잘 닦아지나니라.
그 말과 그 글은 그 나라에 요긴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나,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지니 나라도 점점 내리어 가나니라.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하략)···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게 하는 것이다. 의사소통 기능이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또한,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킨다고 하였다. 여기서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서는 일이 남북한 언어의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일도 그렇지만 말과 글은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져서 나라도 내려간다고 하였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어떠한지를 잘 간파한 한힌샘의 글이다.1)
남북한의 언어는 그 차이가 있지만, 중간에 통역을 따로 둘 만큼 다른 언어는 아니다. 70여 년의 분단 세월 동안 남한말과 북한말은 사회적 변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원래 방언 정도의 차이가 있는 데다가 사회, 정치적인 요인으로 그 정도가 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주된 차이는 어휘에서 두드러진다.
천만다행인 것은 분단되기 전 우리말과 글에 대한 규범이 정립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1933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에서 처음으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고 1936년 사정(査定)한 표준말 모음을 낸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어문 규정이, 용어 등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기에 함께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정권 주도로 언어 정책이 시작되었다. 북한말은 정권 초기부터 사회주의 목적을 가지고 어휘를 다듬었다. 사고를 바꾸기 위해, 즉 교화의 목적으로 언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있다. 이런 부분은 남북 언어의 이질성을 가져오게 한 요인이 되었다.
반면에 남한말은 초기에 민간 주도로(예: 한글학회) 어휘 다듬기를 하다 보니 강압적이지 않고, 홍보도 잘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남한은 강압적이지 않게 느슨하게 어휘 다듬기를 했다고 할 수 있고 북한은 정권 주도로 강하게 어휘 다듬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남) 벤또오 → 도시락
사시미 → 생선회
시야게 → 끝손질, 마무리(북) 채소 → 남새
하복 → 여름옷
후불 → 뒤치르기 (현재는 후불로 쓰인다고 함.)
북한말은 1964년부터 추진된 어휘 다듬기 활동에서 한자어와 외래어 대략 5만여 어휘를 다듬었으나, 1986년 2만 5천 어휘를 남기고 절반은 폐기하였다.2) 고유어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정권 주도로 교화 목적으로 언중(言衆)을 끌고 가고자 했던 일은 결국 무리한 것이었다.
남북한 어문 규정 중 사이시옷 표기와 두음법칙 표기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표준어 규정에 이미 복수 표준어 규정을 두고 있어서 이런 표기와 발음 문제는 시간을 두고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남) 나뭇잎, 냇가, 귓병, 전셋집, 등굣길, 장맛비, 북엇국
(북) 나뭇잎, 내가, 귓병, 전셋집, 등굣길, 장마비, 북어국(남) 역사, 여성, 노동
(북) 력사, 녀성, 로동
북한말 중에서 남한말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들이 있는데 특히 체제나 이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예를 들면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 아기씨 등은 봉건 사회의 계급적 특성을 상기시키는 말이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다음의 예는 남북한이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남) 고용: 삯을 주고 사람을 부림
(북) 고용: 제국주의자, 반동 통치 계급의 앞잡이로 매수하여 예속 부리는 것(남) 궁전: 임금이 거처하는 집
(북) 궁전: 어린이들이나 근로자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교양 수단들과 체육 문화 시설을 갖추고 정치 문화 교양 사업을 하는 크고 훌륭한 건물(남) 동무: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
(북) 동무: 로동 계급의 혁명 위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혁명 대오에서 함께 싸우는 사람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남) 종교: 초인간적, 초자연적 힘에 대해 인간이 경외, 존중, 신앙하는 일의 총체
(북) 종교: 신이 있다며 맹목적으로 믿고 숭배하는 것(남) 어버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
(북) 어버이: 인민 대중에게 가장 고귀한 정치적 생명을 안겨주시고 친부모도 미치지 못할 뜨거운 사랑과 두터운 배려를 베풀어 주시는 분을 끝없이 흠모하는 마음으로 친근하게 높이여 이르는 말.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 최고 지도자로도 쓰임
북한은 ‘수령’, ‘당’, ‘인민’이 삼위일체적 관계를 이루며 ‘수령’이 아버지, ‘당’이 어머니, ‘인민’은 자식이라는 새로운 가족 개념으로 인민을 세뇌시켜서 고유의 ‘아버지’, ‘어머니’의 의미를 변질시켰다. 이념과 가치의 다름으로 의미가 다른 말들이 생겨난 것이다. 같은 말을 사용하더라도 그 말이 가진 의미가 다르면 소통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남북의 이러한 언어 차이는 통일의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점은 북한 이탈 주민들의 정착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북한 이탈 주민들은 남한 사회 정착 과정에서 언어 차이로 인해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고 호소한다. 또한, 언어 문제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소외당하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한글로 된 간판을 보면서도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남북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큰 차이에 당혹해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차이’를 이야기하면 통일에 방해가 되고, ‘같음’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남북한에 대한 정확한 현실을 파악하고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야 오히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남북한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아직 다른 언어라고까지 할 만큼 변이가 생긴 것은 아니며 어문 규정도 같은 뿌리를 두고 있으니 다행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한 언어의 ‘차이’를 직시해야 남북한 언어의 소통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겨레말큰사전>은 남한과 북한이 공동으로 추진하여 남북의 언어 차이를 극복하려는 최초의 우리말 사전으로 약 30만 개의 올림말을 실을 대사전이다. <겨레말큰사전>에 체제나 이념과 관련한 어휘, 현재 쓰임이 거의 없는 한자어, 현재 쓰임이 거의 없는 전문용어 그리고 일부 외래어 등은 제외하였다고 한다. 남북한 언어학자들이 가장 큰 의견 차이를 보인 것이 체제나 이념에 관련한 어휘라고 한다. 이점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사회가 지향하는 체제와 이념, 가치는 삶의 전 부분에 스며들고 우리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기 때문에 쉽게 타협할 수 없기에 학자들도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정권 주도로 다듬은 말인 ‘얼음보숭이’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 되었고, ‘에스키모’라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남북한의 학자들이 애써서 만든 겨레말큰사전에 올라간 말도 언중들에게 설득력을 잃으면 ‘얼음보숭이’처럼 외면당할 수 있다. 언어는 아무리 아름답게 다듬었다 해도 언중이 사용하지 않으면 사어(死語)가 되기 때문이다. 남북한 통일 언어로 <겨레말큰사전>에 올린 말이라 하더라도 결국 남한말과 북한말이 경쟁하여 경쟁력 있는 것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저 보고만 있자는 것은 아니다. 일제 시대 학자들이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여 지금의 남한과 북한 문법의 토대를 만들었던 것처럼 분단이 지속되는 시기에 통일 언어를 준비하는 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남한이 문화적으로 우위(優位)에 있으니, 북한은 따라올 것이라는 나태한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난 곳 방언으로, 그들의 방언으로 북한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북한의 언어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해할 때 깊이 사랑할 수 있고, 목마른 그들의 심령에 김씨 일가의 우상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말, 알아들을 수 없는 외래어, 외국어를 섞어 쓰는 우리의 언어 습관이 소통을 가로막아서 복음의 통로를 가로막는다면 주님을 위해 기꺼이 나의 언어 습관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다듬은 우리말로 북한 동포들과 이질감을 줄일 수 있다면 그 작은 일에서부터 통일로 한 걸음 나아가리라 본다.
우리와 함께 하는 3만의 탈북민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이 통일 언어가 될 것이다. 한반도 남녘에서 북녘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전하며, 어둠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성도들의 찬양 소리가 울려 퍼질 그날을 꿈꿔 본다.
<sarang2624@naver.com>
1) 한힌샘은 주시경의 호
2) 권재일, <남북 언어의 어휘 단일화>,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 64.
<참고문헌>
권재일, <남북 언어의 어휘 단일화>,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전영선, <북한의 언어: 소통과 불통 사이의 남북 언어>, 경진 출판사, 2015.주시경, ‘한나라말’ <보중> 제1호 보성중학친목회보, 1910.
글 | 육진경
새하늘교회 사모로 주일학교를 섬기고 있으며, 31년 차 중학교 교사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한 전국교육회복교사연합(약칭 리커버)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