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규칙의 3무 허용, 무지와 게으름의 상징

2021-12-23 0 By 월드뷰

한일 관계사 왜곡의 시작: 조일수호조규 – 강화도 조약 (5)


월드뷰 DECEMB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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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병헌(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조·일 무역 규칙에는 양곡의 무제한 유출, 무관세, 무항세 조항이 들어 있었다.

이는 1876년 조일 수호 조규(속칭 강화도 조약)의 후속 조치로 같은 해 7월 6일 체결된 무역 규칙(貿易規則)에 대한 리베르스쿨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이다. ‘3무 허용’으로 일컬어지는 이 서술은 2019학년도까지 사용된 대부분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은 모두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1) 양곡의 무제한 유출


교과서 대부분에서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이라고 서술한 근거는 아래의 무역 규칙 제6칙이다.

제6칙, 이후 조선국 항구에 주류(住留)하는 일본 인민은 양미(糧米)와 잡곡을 수출입(輸出入)할 수 있다(第六則, 嗣後於朝鮮國港口住留日本人民糧米及雜穀, 得輸出入).

국가 간의 조약이든 개인 간의 계약이든 조문을 있는 그대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위와 같이 제6칙은 조선 항구에 있는 일본인이 양미(糧米)와 잡곡을 수출입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조문 어디에도 ‘무제한’이나 ‘유출’이란 단어가 없다. 유출이라는 단어는 ‘불법 유출’, ‘무단 유출’처럼 주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며, 몰래 빼돌리는 것도 유출이고, 알게 모르게 술술 빠져나가는 것도 유출이다. 더구나 유출이란 말에서 수출입에 전제되는 대금의 지불도 없이 그냥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원문에서 수출과 수입을 할 수 있다고 하였음에도 수입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무역 규칙 제6칙에서 양미와 잡곡을 수출입할 수 있도록 정함으로써 조선 정부는 이제 일본의 곡물 수출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으로의 곡물 수출량이 급격히 늘어나 심각한 식량 부족 현상과 함께 미곡 가격이 급등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가중되었다. 이것이 무역 규칙 제6칙의 본질이며 그로부터 초래된 결과이다.


2) 무관세 허용


관세(關稅)는 수출입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에 관해 위 교과서에는 ‘무관세 조항이 들어있었다.’라고 하였으나 무역 규칙에는 무관세 조항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무역 규칙에는 관세를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세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있을 이유가 없다. 즉, ‘무관세 허용’이 아니라 ‘관세를 설정하지 않았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1876년 수호 조규를 체결할 당시 조선 정부는 관세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였다. 그 때문에 관세 설정을 요구하지 못하였고, 일본 정부는 자신들에게 손해가 될 관세 조항을 애써 설정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협상 과정에서 관세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경험이 없었던 조선 정부는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이후 관세 설정 없이 일본과의 무역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879년, 영중추부사 이유원은 북양대신 리홍장으로부터 관세 설정에 대한 제안이 포함된 서신을 받게 된다.

관세를 정하면 나라의 경비에 적으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으며 상업에 익숙하면 무기 구입도 어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고종실록, 1879. 7. 9. 기사>

이 제안에 따라 조선 정부는 관세 설정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경주한다. 1881년 10월에는 조영하를 리홍장에게 보내 관세와 외교에 능한 인물의 추천을 요청하여 전 독일 영사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를 외교 및 재정 고문으로 초빙하기도 하였다. 1882년에는 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김홍집이 관세 설정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다가 1882년 조미 조약에서 처음으로 관세를 설정하게 되자 일본도 더 이상 이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1883년 조일 통상 장정 제9관에 관세를 설정하고, 이어 세칙(稅則)을 체결하여 마침내 관세를 부과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무역 규칙에서 관세를 설정하지 못한 것을 두고 ‘무관세 허용’, ‘무관세 조항 삽입’, ‘무관세 인정’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3) 무항세 허용


관세가 수출입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라면, 항세(港稅)는 무역을 위해 입항하는 상선(商船)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이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일본국 소속의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천재교육>

‘일본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항세를 내지 않는다.’<리베르스쿨, 지학사>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항세를 내지 않는다.’<미래엔>

‘일본 상품에 항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미래엔>

▲ 「무역규칙」 항세

이를 보면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나, ‘일본국 소속 선박’과,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이라는 차이가 있다. ‘일본국 소속 선박’이라 하면 모든 일본 선박이 항세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 되고,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이라 하면 일본 정부 소속 선박이 항세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물론, 다른 선박의 항세 납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조항은 아래의 제7칙이다.

제7칙
항세(港稅)  
연외장(連桅檣) 상선 및 증기 상선의 세금은 5원이다. (모선에 부속된 각정(脚艇)은 제외한다.)
단외장(單桅檣) 상선의 세금은 2원이다. (500섬 이상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단외장 상선의 세금은 1원 50전이다. (500섬 이하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모든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고종실록, 1876년 7월 6일 기사>

제7칙은 분명히 ‘항세(港稅)’라는 제목 아래 상선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항세를 정하였다. 가장 큰 상선은 5원, 중간 상선은 2원, 맨 아래 작은 상선은 1원 50전으로 정하고 마지막에 상선이 아닌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에 대해서는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상선이 아닌 정부 소속 선박이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즉, 제7칙은 무역을 위한 상선은 선박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 항세를 납부해야 하며, 상선이 아닌 일본국 정부 소속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두었던 것이다.

이러한 무역 규칙에 대한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오류는 기본적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신편한국사> 서술에 기인한다.

무역 규칙으로 이름이 붙은 통상 장정은 일본 측이 내놓은 원안에 1개 조가 더 추가되어 11칙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일본의 경제적 침투를 합법적으로 승인한 조약이었다. 11칙 중에서 특히 제6칙과 제7칙은 조선의 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주었던 조목이었다. 제6칙은 ‘사후 조선국 항구들에 주류하는 일본인은 粮米 및 잡곡을 수출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제7칙은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港稅를 납부치 않음’으로 되어 있다. 제6칙으로 조선의 미곡이 대량 일본으로 유출하게 되었고, 제7칙으로 일본 선박이 항세, 즉 관세를 납부하지 않게 되었다. <신편한국사>

여기에서 ‘조선의 미곡이 대량 일본으로 유출하게 되었고’라는 서술이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으로 바꾸어 수록되었으며, 항세 부과 부분은 배제한 채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港稅를 납부치 않음’이라 한 서술은 ‘정부’가 있고 없는 차이만 있을 뿐 그대로 반영되었다. 또, ‘일본 선박이 항세, 즉 관세를 납부하지 않게 되었다.’라는 서술은 미래엔 교과서와 백과사전에 검증 없이 그대로 실렸다.

관세를 설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무관세 허용’이라 하며, 상선의 크기에 따라 항세가 부과되었음에도 ‘무항세 허용’이라 하고, 양곡 수출입이 가능하도록 한 조항을 두고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이라고 집필자 멋대로 서술한 것이 무역 규칙에 대한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이다.

이 내용에 대해 필자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탓인지 2020년부터 사용 중인 고등학교 교과서는 오류를 다소 수정하였다. 하지만, <신편한국사>는 여전하다. 조속한 시정이 절실하다. (다음 호에 계속)

<cleanmt2010@naver.com>


글 | 김병헌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성균관 대학교와 경원대학교 강사를 거쳐 독립기념관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는 <국역 사재집(思齋集)>, <국역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역주 이아주소(爾雅注疏) 전6권>, <화사 이관구의 언행록>, <國史, 이대로 가르칠 것인가!>,<30년간의 위안부 왜곡, 빨간 수요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