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순교

6·25전쟁과 순교

2022-06-01 0 By 월드뷰

월드뷰 JUNE 2022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발행사

글/ 김승욱(발행인, 중앙대 명예교수)

들어가며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현상에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까지 덮친 최악의 퍼펙트 스톰 경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 이후 최악의 상황에서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하지만, 사실 지금이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국가재정은 건전했고, 가계부채도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성장율은 7퍼센트 수준이었으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지도 않았고,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금 모으기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계부채가 폭탄의 뇌관이라고 할 정도이고, 국가부채가 GDP의 50퍼센트에 달합니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350개 공기업 부채가 583조 원에 달합니다. 필요 이상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정치방역으로 소상공인의 빚이 새로운 위험요인이 되었습니다. 잘못된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전세대란 재현 우려도 있습니다. 부동산 재폭등 염려로 공급을 늘리기 위한 규제 완화도 어렵습니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가 더 커졌으나 빈곤계층을 지원하려고 해도 정부 곳간이 비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가와 곡물 가격이 떨어질 기미가 없고, 중국의 코로나 재창궐로 인한 도시 봉쇄는 글로벌 공급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은 40년 만에 최고로 오른 물가를 잡기 위해서 금리를 빠르게 올려, 세계 경기 침체의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는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라고 하며 자유를 35번 언급하면서, 자유화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도약과 빠른 성장으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기아와 질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연의 위협 앞에서 속절없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시작한 곳은 중세 말기에 유럽 서쪽 지역입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개인의 중요성과 천부인권이 발견되고, 자유, 자립, 자치 정신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재산권이 확립되면서 개인의 창의성이 발휘되어 기술혁신이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비로소 자연의 재앙 앞에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근대화는 전 지구로 퍼져 나가, 전체주의 왕조국가 조선에도 기독교를 통해, 그리고 일제시대를 거치며 유입되었습니다. 해방 후 민주공화국이 수립되고 선진국처럼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고 정권이 주기적으로 교체되면서 민주주의도 성숙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서구 근대문명의 원동력인 개인의 자유를 체질화하여, 상식이 통하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국가나 남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고, 사상의 자유를 가진 진정한 자유인의 대한민국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더 이상 진영 논리나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으로 가득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밝힌 자유의 중요성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역사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려운 경제위기 속에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성공적으로 자유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자발적 금 모으기’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갈라진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6·25전쟁 이전부터 좌익과 우익이 서로 피의 복수를 했습니다. 먼저 북한에서 공산혁명에 장애가 되는 지주 세력과 기독교인을 반동세력으로 몰아서 잔인하게 살해했고, 남한에서도 대구폭동, 제주 4·3사건, 2·7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등으로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휴전 후에는 남북이 상대를 주적으로 여겼고,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라고 하며 그 후손들을 정치범 수용소로 보냈고, 남한에서도 연좌제로 후손들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이런 과거 역사로 인해 감성적으로 적개심의 골이 깊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오늘날까지 그 증오가 내려왔기 때문에 이 감정의 벽이 무너지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대한민국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남북통일은 더욱 어렵고, 어쩌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민단인 ‘집단학살’ 의혹이 제기되는 이때,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해서, 6·25전쟁 당시에 있었던 순교와 학살 문제를 돌아보면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국민의 갈등이 통합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특집 주제를 “Adventus: 진실화해위원회에 바란다: 6·25전쟁과 순교”로 잡았습니다.


커버 스토리


국민통합의 차원에서 작년에 출범한 긴실화해위원회 김광동 상임위원을 통해서 갈라진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봤습니다. 김광동 상임위원은 한국 근·현대 정치사를 다룬 <4.19와 5.16 연속된 근대화 혁명 (2018, 기파랑)>이라는 책도 썼는데, 그 책에서 4·19와 5·16은 상호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계승적인 것이며 양자 모두 대한민국 건국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근대화를 발전시킨 상호 보완적인 과정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 국민의 통합을 저해하는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로해서 화해하게 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이 어떠한 것이 있는지, 그리고 미흡한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았습니다. 지금 진행중인 제2기 위원회 활동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달의 특집(ISSUE)  


6·25전쟁과 학살

특집 주제와 관련해서 10편의 칼럼을 세 가지 소제목으로 실었습니다. 첫째는 “6·25전쟁과 학살”에 관한 4편의 칼럼입니다. 먼저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한국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의 연구책임을 맡은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의 박명수 교수가 이번 연구의 의의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번 연구를 통해서 남침한 인민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개신교 1,026명, 천주교 119명 총 1,145명이 희생됐다는 결과를 발표했는데, 해방 이후 한국 교회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산주의와 싸운 강력한 반공집단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교회가 억울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이웃 사랑을 실천했으며, 이 정신을 가진 교회가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권순도 감독은 제주 4·3사건 당시에 순교한 제주도 출신 최초 목사인 이도종 목사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중심으로 제주 4.3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경에 1,500여 명의 인민자위대원이 제주도의 24개 지서 중 11개 지서와 서북청년단 숙사, 사무소 등을 습격했습니다. 이렇게 습격하게 된 이유는 1년 전인 1947년, 3·1절 기념행사 가두 행렬과 시위행진을 금지한 미 군정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강행했고, 이를 막는 경찰이 타고 있는 말의 항문에 죽창을 찔러 경찰이 떨어지고 발포가 일어나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결과 약 1년 동안 제주도에서는 계속적으로 소요 사태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 간에 무장 충돌이 있었고, 그 결과 4월 3일에 습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미 군정이 제주도에서 1947년에 3·1절 야외 기념행사를 불허한 이유는 1946년 10월 1일에 있었던 대구폭동을 가까스로 진압해, 좌익이 주도하는 집회는 폭력적이며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에 북한 노동당 지도부에서도 4·3무장 봉기가 남로당 지도부와 제주도당이 무모하게 진행되어서 더 많은 인명피해를 보게 되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안순우 목사는 아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는 피카소의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의 배경이 신천 학살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황해도 신천에는 1958년에 ‘미제학살기념박물관’이 세워졌는데, 2014년에 김정은이 재정비해서 19개의 방에 대량 학살의 참상을 자세히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와 관련하여 안순우 목사는 공산주의자인 피카소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습니다.

순교 신학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호남신학대학교 최상도 교수는 6·25전쟁 당시 정치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남북한 교회가 모두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을 지적했습니다. 남한의 교회 지도자들은 ‘대한 기독교 구국회’를 결성해 전쟁을 지원했고, 북조선 기독교도 연맹을 중심으로 한 북한 교회는 인민군의 서울탈환 환영예배를 드렸고, “8월 5일 평양 및 북한 전 지역에서 개최된 궐기대회를 통해 전국의 교인들에게 ‘정의의 성전’에서의 인민군의 승리를 위한 예배와 기도를 호소하며 북의 전승을 위한 기도회를 가졌”으며 무기 대금 헌납 운동도 전개했다고 합니다. “남과 북의 교회는 국가 권력의 시녀로 폭력과 파괴의 전쟁 지지와 동조의 과오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남북한 교회가 각각 전쟁을 지원한 이유는 공산주의를 수용하느냐 반대하느냐가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6·25전쟁과 순교

두 번째로는 6·25전쟁 당시의 순교와 관련된 4편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본지의 이상원 대표주간은 노벨상 수상 후보로까지 올라간 김은국의 <순교자>를 재조명했습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순교가 기독교 신앙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장로교사학회 김남식 회장은 6·25전쟁 당시 77명이 순교한 염산교회와 전 교인이 순교한 야월교회를 중심으로 영광군의 집단학살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북한군과 공산당이 많은 이를 학살한 이유는 종교의 자유를 부인할 뿐 아니라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탄압의 차원을 넘어 말살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장로교역사학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한 아산동산교회 황기식 목사는 인민군 6사단이 벌인 전남 지역 네 교회의 순교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순교와 화해

마지막으로 미시적으로 인물에 초점을 맞춘 개별 순교 사례와 화해와 관련된 글을 3편 실었습니다. 한국 순교 역사상 가장 존경을 받는 두 인물이 있다면, 주기철 속사와 손양원 목사일 것입니다. 이 중 이데올로기적 대결이라는 해방 공간의 대표적인 순교자는 손양원 목사입니다. 특히 그는 용서하지 못할 자를 용서하여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의 전형을 보여 주었고, 영화 “사랑의 원자탄”을 통해 잘 소개되었습니다. 교회사를 전공하고 손양원 목사를 연구한 이상규 명예교수는 손양원 목사의 순교와 사상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박명수 교수와 함께 “한국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를 함께한 장금현 박사는 임자도에 위치한 임자진리교회의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양반집에서 태어난 조선 여인 문준경이 어떻게 신안의 21개 섬을 순회하며 곳곳에 교회를 세워 섬마을 교회의 어머니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순교했는지를 드라마처럼 설명했습니다. 또한 그 후손들이 어떻게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었는지 감동의 스토리를 들려주었습니다.  

한국순교유적연구회 김헌곤 대표는 가족 중 7명이 순교했으며, 현재 일가친척 25명이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는 대표적인 순교자 가족입니다. 6·25전쟁 당시 정읍 두암교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의 가족 7명, 친척 15명, 지인 한 명이 순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 4형제는 가해자를 찾아가서 그들을 용서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50여 년간 그들을 선대하였다고 합니다. 김헌곤 목사는 세계 각처에서 기독교인의 사랑으로 순교하고 용서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용서하는 자가 승리자이며, 한국 사회에서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억울함을 극복하고 화해할 수 있는 힘은 기독교가 강조하는 사랑에서 나오므로 국민통합을 위해 한국 교회가 화해에 앞장서야 한다는 확신을 전합니다.


나가며


지난날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명칭과 같이 진실을 밝히고, 서로 화해하는 두 가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철하게 객관적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으면 서로 잘못된 사실에 기초해서 상대를 비방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
도 밝혀진 다음에는 화해와 용서가 필요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바로 오늘날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계에서는 순교자의 실상이 교단별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는 주목을 받지 못했고 보상도 없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아울러 기독교의 사랑을 보여 주어서 한국 사회 전체의 통합에 기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월드뷰 발행인 김승욱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현재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및 학교법인 청지학원 이사를 맡고 있다.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신제도주의 경제사 분야의 박사학위(Ph.D.)를 받고 UNIDO 국제 전문가와 경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9년에 9명의 교수와 함께 “기독교학문연구회(현 “사단법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를 창립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2년간 회장으로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