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라는 이름의 교육재앙

교육복지라는 이름의 교육재앙

2021-12-11 0 By 월드뷰

월드뷰 DEC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글/ 천세영(충남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교육복지는 교육재앙으로 돌아왔다


교육복지란 나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교육복지는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회칠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으며 그것이 왜 문제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시작은 2011년 8월 24일에 치러진 서울시민 무상급식 주민투표였다. 무상급식으로 시작된 교육 포퓰리즘은 들불처럼 번졌고, 반값등록금, 무상교복, 무상고교교육을 지나 이제 무상 과일 간식까지로 번지고 있다. 도무지 그 끝이 안 보인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뭐가 나쁜가? 국가 재정이 풍부해져서 모두가 도시락, 책값, 옷값 등 일체의 걱정 없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 무엇이 나쁘다는 말이냐고. 그러나 이는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말이며 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말이니, 궁극에 가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불벼락을 불러올 말이다. 세상의 이치는 말한다. 돈을 쓸데는 널려 있으나 돈주머니는 비어있는 것이며, 오늘을 아껴 내일을 준비하는 자만이 자녀와 후손의 미래를 편안히 한다고 말한다.

서울시민과 대한민국의 국민은 무도한 죄를 짓고 말았다. 그것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되자 코로나가 세상을 덮치고, 학교와 아이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동안 스마트교육과 디지털교과서와 온라인수업을 미리미리 준비하자고 했더니, 무상급식에 돈을 써야 한다며 반대했다. 미래기술을 개발하고 첨단지식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혁신과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지만, 반값등록금으로 재정을 묶고 알량한 정부지원금으로 대학을 옥죄고서는 애꿎게도 벚꽃 피는 순서로 문을 닫아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코흘리개 영·유아 아이들을 한 반에 열다섯, 스무 명씩이나 선생님 한 분께 맡기고서는 천사처럼 엄마처럼 돌보라고 무도한 강짜를 피우고 있다. 더욱 가관은 선거에 눈이 먼 교육감들이 눈에 보이는 전시성 행사에 돈을 펑펑 쓰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자영업자, 서민, 청년의 비탄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도 폭등한 부동산 덕분에 걷힌 세금은 교육감들의 돈주머니를 부풀렸다. 학교와 선생님들은 제대로 쓸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도 전자칠판과 태블릿 노트북을 나누어준다고 하며 그린스마트학교라는 황홀한 용어를 써가며 학교건물을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이제는 무상급식에 이어 간식과 용돈까지 지급하려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교육 정치와 포퓰리즘을 끊어내야 한다. 그것을 끊어내지 않고는 나라와 후손의 미래가 없다. 앞으로 남은 일 년 안에 끊어내야 한다. 2022년은 대통령선거가 있고 교육감 선거가 있는 해이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에게 공약 제1번으로 교육복지 포퓰리즘의 절단을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교육감 선거를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교육 정치 포퓰리즘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치지도자들 눈에는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이 교육재앙이 되고 있는 실정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정치지도자뿐 아니라 국민도 당장 편안함에 눈이 멀었고, 나이든 어른들은 꼰대가 되어 ‘라떼는…’ 만을 외친다.

그러니 공부를 해야 한다. 도대체 이 재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살피고, 널리 알려야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재앙의 신호가 있었지만 딱 두 가지만이라도 기억을 다시 살려야 한다. 그 첫째는 무상급식이요, 둘째는 반값등록금이었다.


2011년 무상급식 투표로부터 교육재앙은 시작되었다


2011년 8월 24일 서울시장은 교육감과의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대결에서 졌다. 당시 교육감은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나쁜 투표라며 서울시민을 선동했고, 민주사회의 기본권리인 투표권 포기를 강요했다. 시장은 25.7%의 투표율로 정치적 실패를 당했다. 결국, 무상급식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교육복지 포퓰리즘의 유령은 광풍처럼 온 나라를 휩쓸었다.

2011년 전국 초·중·고 학생 수 7백만 명 중 무상급식 학생 수는 15%, 100만 남짓이었는데 십 년이 지난 2021년에는 5백여만 명으로 거의 모든 초·중·고생이 대상자가 되었다. 전체 학생 수는 줄었지만, 무상급식 학생 수는 크게 늘어 급식에 들어가는 총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만 6세에서 17세에 이르는 초·중·고학생은 총 5백5십만여 명이며, 만 3세에서 5세에 이르는 유치원생은 130만 명 가까이 추산된다. 이들을 위해 총 60조 원 정도의 돈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감의 통장에 두둑이 쌓인다. 유치원생 130만 명에 5조 원 정도(1인당 연간 4백만 원, 월간 33만 원 남짓)가 지원되는 반면 초·중·고생에게는 연간 천만 원이 넘는, 월간 90만 원 넘게 거의 3배가 지원된다. 그렇다면 유치원 교육비는 초·중·고생에 비해 원래 이렇게 적게 드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어린아이일수록 선생님의 손이 많이 간다. 즉 학급당 학생 수가 초·중·고등학교의 경우 20명을 적정선으로 한다면 유치원생은 10명 이하여야만 하며, 교육예산은 대부분 선생님 인건비라고 할 때 결국 유치원생 교육비가 더 비싸야 한다. 부족한 교육비는 고스란히 젊은 학부모의 고통으로 귀결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형님네는 월 4만 원 남짓 급식비도 안 내고 도시락 싸는 수고도 더는 대신, 사정이 더 박한 30대 동생네는 유치원생 자녀를 위해 급식비와 간식비까지 부담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것은 2011년에 모두 경고되었던 이야기들이다. 결국은 재정난에 이를 것이며 그 손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반값등록금이 불러온 대학재정 파탄


2018년 말에 발표된 OECD 통계에 따르면 초·중·고등학생의 학생당 교육비는 OECD 평균인 1만 불 수준보다 더 높아서 미국과 맞먹는 데 비해, 대학의 경우는 OECD의 3분의 2,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21년 현재 학생당 교육비로만 비교해보면 대학은 초·중·고등학교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상당수의 지방사립대학은 재정적으로는 사실상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 모든 원인은 대학이 자립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대학재정평가사업과 이른바 반값등록금으로 국가가 대학을 옥죈 탓이다.

재정평가와 지원 사업을 무기로 한 국가의 대학 압살의 기원은 이십여 년 전의 BK21 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K21 사업이란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명분으로 경쟁력이 있는 대학을 대학원 대학으로 키우고, 나머지 대학들은 직업 교육 중심 대학으로 남게 하겠다는 단순 무식한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지방 국립대학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명분은 국립이든 사립이든 공통된 평가 기준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서울대학교를 빼고는 사실상 모든 국립대학이 지방에 소재하기 때문에 지방 대학이 안고 있는 구조적 불리함을 도외시한 결과였다. 불행히도 BK21 사업은 지속되었고, 오히려 그 규모를 키웠다. 더 나쁜 결과는 수많은 아류를 만들어 내고 대학에 대한 정부 통제는 끝도 없이 커졌다는 것이다. 지방 대학을 핑계로 누리사업이 나오고, 이에 질 새라 수도권대학 특성화 사업이 나오고 이후로 이름도 모를 재정평가 사업들이 줄을 이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구조개혁평가라는 이름으로 대학을 교육부 앞에 줄을 세우고 온갖 통제를 가하고 있다.

대학은 국가가 관여할 곳이 아니다. 국가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정부가 결국 대부분 대학과 특히 지방 대학을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었다. 큰 정부 국가주의라는 좌파 이념이 학문의 자유라고 하는 대학의 헌법적 권리를 짓밟은 것이었다.


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렇든 저렇든 돈만 많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화수분은 없으며 황금알 거위도 없다. 그래서 학교는 늘 가난했으며 교육 비용은 부모가 버는 돈의 크기와 학교장이 확보하는 예산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다다익선의 원리에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써도 모자란 것이 교육이다. 그것은 곧 자식 사랑이며, 우리의 미래인 것이다. 물론 교육만이 아니고 인간의 욕망이 다 그럴 것이다. 다만 그러한 욕망을 억제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선한 욕망만을 가지라는 것이 선인들의 지혜이고 역사의 가르침이다.

무상급식 재정과 반값등록금을 메울 재정은 처음부터 확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국교육의 성공 과정에서 교육재정의 안정적 확보는 매우 중요했다. 그렇지만 1948년 건국 이래 교육재정이 충분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두 번씩이나 교육세 파동을 겪었고, 1970년대의 잡부잡종금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태어난 육성회비도 그 후 학교운영비로 바뀌었다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나라가 잘살게 된 최근에 이르러서다.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일까? 그것은 돈을 버는 일이 간단치 않다는 뻔한 이치 때문이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과 같은 교육복지 재정이 투표를 통해 개인 간, 집단 간 정치적 게임으로 둔갑한 후, 모두가 공짜에 맛이 들었고 눈이 어두워져 버렸다. 결국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지만 곧바로 조세 분쟁이 일어나고 부자들은 힐난의 대상이 된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을 반대하는 사람은 부자이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조세를 거부한다고 지탄받는다.

과연 그러한가? 조세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부자 증세든, 부자 감세든 그 모든 것은 국가 경제의 틀 안에서 정해지는 것이며, 무리한 증세는 저항을 넘어 피난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국고의 해외유출과 그에 따른 투자와 경제위축으로 이어진다. 당장은 부자 증세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결코 지속할 수 없다. 혹자는 빚을 내자고 할 것이나, 이는 결국 지금 재학 중인 아이들이 미리 빚을 내서 밥을 먹고 나중에 빚을 갚아야 하는 꼴이며, 생색은 현재의 어른들이 내고 부담은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죄악이다. 그리고 그 끝은 모두가 망하는 길이다. 교육복지 정치 포퓰리즘을 끊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sychun56@gmail.com>


글 | 천세영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했다.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및 한국학술정보원장을 역임했으며 스마트교육학회를 설립하는 등 평생 교육 연구와 현장 개선을 위해 자문 활동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한국교육모델의 해외 전파를 위해 국제개발 협력자문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