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등장과 쇠락

복지국가의 등장과 쇠락

2021-12-04 0 By 월드뷰

월드뷰 DEC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2


글/ 권혁철(자유와시장연구소 소장)


복지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과 현재 정치권에서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보면 대한민국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대략 그림이 그려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퍼주기 복지 천국’이다.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사회의 무한 보살핌을 받는다. 태아를 위해 무료 검진을 비롯한 각종 지원과 혜택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출산축하금부터 시작해서 무상보육의 혜택을 받고, 교육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료이며 대학도 최소한 반값 등록금 아니면 무료다.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할 때가 되면 모든 취업자는 고연봉의 정규직에 취직한다. 비정규직이나 낮은 연봉의 일자리는 처음부터 존재해서는 안 된다. 혹여 실업자라도 되면 실업급여를 충분히 받아 실업에 대한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어야 한다. 결혼하면 신혼부부를 위한 집이 넉넉히 마련되어 있으니, 집 걱정으로 결혼을 미룰 이유가 없다. 누구든 집은 반값에 사거나, 국가가 제공하는 아주 좋은 환경의 집을 아주 저렴하게 세 들어 살 수 있다. 아파도 병원비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언제나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연금이 노후를 충분하게 대비해준다. 혹 연금을 준비하지 못했거나 부족하다면 노인수당을 받아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 있다. 개인은 일체의 위기나 위협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고, 국가가 ‘무한돌봄’, ‘무한책임’을 진다. 인생 전체가 장밋빛이며, 그야말로 ‘복지 천국’이다.

듣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이런 사회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나라치고 제대로 된 나라가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현재 ‘무상의료’가 마치 최선의 정책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참혹하다는 것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역사적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바로 휴전선 너머 북한이야말로 ‘무상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의료 복지 천국’이다. 2015년 1월 북한의 노동신문에 나온 김정일의 발언은 이렇다.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어린이로부터 애기 어머니,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고 돌봐주며 돈 한 푼 받지 않고 무상으로 치료해주는 나라는 세상에 없습니다.” 이 말대로 북한이야말로 ‘무상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무상의료 현실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무상의료’가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인가?


복지는 시작부터 정치적 내 편 만들기 시도였다


분명한 역사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런 터무니없는 약속을 하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득세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허무맹랑한 약속에 유권자들이 열광하고 표를 주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이것을 잘 이용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있는 가정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무상보육을 약속하고, 대학생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반값 등록금을 약속하며, 노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노후보장을 약속하는 식이다. 또, 아픈 사람에게는 무상의료를, 실업자에게는 공공부문의 일자리 제공을,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저임금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약속한다. 이 모두가 특정 계층, 특정 그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일종의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고, 유권자는 특혜를 받을 기대에 해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다. 결국, 정치인은 특혜를 제공해 유권자의 표를 획득하고, 유권자는 그 특혜를 받는 대가로 자신의 표를 제공한다. 즉, 복지란 근본적으로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유권자의 표를 사는 표 매수 행위나 다름없다.

실상, 복지국가의 등장 자체가 집권 기반을 다지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19세기 말 독일에서 철혈(鐵血)재상으로 불리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가 시작한 복지제도를 복지국가의 출현으로 보는데, 그때 복지제도가 철저하게 집권세력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이유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은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되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독일제국을 선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회는 불안했고 정치 상황은 불안정했다. 특히 유럽에서 연이은 혁명의 결과로 대중민주주의가 시작되고 있었고, 산업화와 더불어 급격히 증가한 노동자들은 정치세력화되고 있었다. 게다가 1873년부터 시작된 불황은 사회주의 세력이 자라기에 좋은 토양을 제공했고, 이 사회주의 세력은 의회까지 진출해 독일제국을 흔들었다.

이러한 불안한 정치 상황을 타개하고자 비스마르크는 황제인 빌헬름 1세((Wilhelm I)에게 긴급보고서를 제출해 복지 국가적 수단을 통해 노동자들을 독일제국의 우호세력으로 끌어당길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를 계기로 탄생한 것이 사회보험을 기반으로 하는 독일의 복지제도이다. 1883년에 병 치료와 부상 수당 지급을 위한 의료보험, 1884년에는 산업재해보상, 그리고 1889년에는 폐질 및 노령연금보험 관련 법이 제정 공포되어 실시된다. 지구상 최초의 복지국가 모델의 탄생이며, 이것은 오늘날 독일 사회보장제도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대중민주주의의 확산과 사회주의 세력의 득세 그리고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 및 사회주의화 경향 속에서 노동자들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세력으로 끌어오기 위해 시작한 것이 복지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회주의 세력은 복지제도의 등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이들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의 명분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 어떠한 개혁도 노동자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가 아닌 독일제국의 우호 세력화되는 것이 더 큰 걱정거리였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상 첫 복지국가는 이처럼 사회주의자들의 반대 속에서 태어났다.


복지국가 국민은 수혜자인 동시에 부담자


‘복지 천국’은 환상이다. 복지의 특혜를 받는 계층은 ‘혜택은 내가, 부담은 타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반값 등록금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반값 등록금이 시행되면, 우선 대학생은 부담을 덜고, 그 비용은 현재 대학생이 아닌 사람들이 부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혜택을 받아 부담을 더는 대학생도 조만간 졸업하고 나면 이제 다른 대학생의 등록금을 부담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부담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평생 질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하면, 대학 4년 동안의 등록금을 본인이 지금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평생을 나누어 부담할 것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본인이 모두 부담하는 것과 같다. 언뜻 보면 수혜자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잠시일 뿐, 결국은 모든 부담을 본인 스스로 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하지만, 복지비용 모두를 세금 등을 통해 유권자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국민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통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이 모자라면 적자 재정으로 충당한다지만, 이것 역시 국민의 부담이다. 국민 스스로 부담하지 않는 복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복지국가의 몰락은 예정되어 있다


이런 사정은 복지국가의 쇠락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복지국가가 무르익을수록 국민의 일할 의욕을 감소시키고, 점점 더 많은 국민을 국가에 의존하게 만든다. 또한, 복지지출은 소비성 지출에 치중되기에 경제 전반적으로 투자가 줄어들고, 생산성이 떨어지며 경제성장의 침체나 정체를 가져온다. 따라서, 복지국가가 진행될수록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의 비중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에, 부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비중도 또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도 감소하게 된다. 결국,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때 완전한 몰락을 막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기사회생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서구 복지 국가들이 복지제도의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던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1942년 비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외쳤던 영국은 1970년대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총리의 개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복지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연금 수급 나이를 65세에서 68세로 상향 조정하고, 일자리 제안을 반복적으로 거부하는 실업자에게는 최대 3년 동안 실업수당을 중단하도록 했다. GDP의 12%나 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부터 예산을 25% 감축하고, 공무원의 임금 동결 등으로 세출을 축소했다.

이른바 ‘아젠다 2010’과 ‘하르츠 개혁’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개혁도 마찬가지다. 2010년에는 연금을 동결했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중을 52%에서 43%로 낮추었다. 또한 진료비의 자기 부담 비중을 늘리고, 의료부문에 경쟁을 도입하고 있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는 근로자는 국가건강보험이 아닌 민영건강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으며, 병원의 소유권을 민영화하고 있다.

복지국가의 모델로 자주 언급되는 스웨덴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 50%나 되었던 법인세율을 절반으로 줄였고, 거의 90%에 달했던 소득세 한계세율도 55%로 축소했다. 연금도 개혁하여 ‘기여한 만큼 지급하는 제도’로 바꾸었다. 1993년 GDP 대비 71.7%나 되었던 정부 지출 비중을 2007년에는 51%까지 무려 20.7%포인트나 줄여버렸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게 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


독일의 경제 장관과 수상을 역임하면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에르하르트(Ludwig Wilhelm Erhard)는 “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정책이야말로 가장 좋은 사회보장정책이며, 경제정책이 성공할수록 사회보장정책은 필요가 없어진다”라고 했다. 또한, 사회복지정책이 과도해진 복지국가는 ‘계급이 없는, 그러나 혼이 없는 기계화된 사회’를 만든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에르하르트는 국민에게 국가에 의존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용기를 가질 것을 호소했다. ‘복지 천국’의 약속이 아니라, 국민이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이고, 그런 정치인이야말로 훌륭한 정치인이다.

<kwonhc12@gmail.com>


글 | 권혁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자유기업원에서 법경제실장, 자유기업센터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자유와시장연구소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