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과 변치 않아야 할 것

변하는 것과 변치 않아야 할 것

2021-11-26 0 By 월드뷰

월드뷰 NOV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3


글/ 장시경(SW교육 강사)


작년 초 코로나로 많은 학교가 교실을 닫고, 대신 온라인 강의실을 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하는 필자도 영상으로 수업을 해야 했다. 교사도 영상 강의자료를 만드느라 힘들었고, 학생들도 바뀐 수업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영상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과제를 하는 데 교실 수업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수업에서보다 더 열심을 내어 과제를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한 학기 내내 과제를 한 번도 안 하는 학생도 있어서 영상 수업의 장단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 학기 후 학교 수업 지침이 바뀌어 영상 수업이 실시간 화상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쉽사리 질문을 못 하는 학생, 모니터 아래로 다른 것을 하는 학생, 학급 친구의 작품을 공유하기 어려운 것 등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불편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서비스들이 때마침 나와서 수업의 ‘실재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받았다.

또 몇 개월이 지나고 나니 참여자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메타버스’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내게도 메타버스 플랫폼인 ‘게더타운’에서 수업할 기회가 생겼다. 메타버스에서는 자신이 설정한 아바타를 움직이고, 반응을 표시하는 등 화상 수업에서보다 훨씬 다양한 상호작용과 활동을 할 수 있어서 교육적인 효과와 실재감이 높았고, 학생들의 만족도도 무척 높아졌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달해 불편함이 해소되는 게 고마우면서도 이런 속도로 변해 간다면 2∼3년 후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학생과 얼굴을 마주하며 한 공간에서 만나 같이 호흡하며 수업하는 시간을 대체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말이다.

급변하는 시대 한가운데에 있자니 에밀리 젠킨스(Emily Jenkins)가 글을 쓰고 소피 블래콜(Sophie Blackall)이 그림을 그린 아름다운 그림책 <산딸기 크림봉봉>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원서 표지에 적혀 있는 ‘네 개의 시대, 네 가정, 그리고 맛있는 디저트 한 가지’라는 텍스트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교육 환경, 바뀌는 아이들, 그리고 변하지 않을 가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산딸기와 크림을 재료로 하는 ‘산딸기 크림봉봉’이란 디저트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1700년대부터 2010년까지 네 시대, 네 가정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용하는 기구가 바뀌고, 사회의 변화로 재료를 구하는 과정도 바뀌어 간다. 각 시대의 이야기는 시대와 배경을 제시하고 산딸기를 얻는 장면, 크림을 구하고 단단하게 휘핑하는 과정을 담은 장면, 준비된 재료로 디저트를 만들고 차갑게 보관하는 장면, 디저트가 식탁에 오르고 맛보는 장면이 총 네 개의 장면으로 각각 소개된다. 이들의 시대와 식탁으로 들어가 보자.

1710년 영국에서는 엄마와 딸이 직접 덤불을 헤치며 산딸기를 딴다. 직접 젖소의 우유를 짜고, 나뭇가지로 만든 거품기를 15분이나 휘저어 휘핑크림을 만든다.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산딸기를 씻고 설탕에 녹이고, 생크림에 부어 섞은 후 디저트를 완성해서 언덕에 있는 얼음 창고에 보관한다. 식사를 마치고 아빠와 오빠들이 앉은 식탁에 디저트를 떠준 후에야 디저트를 맛보고, 식후에 여자아이는 부엌에 앉아 양푼에 남은 디저트를 싹싹 긁어먹는다. ‘음, 음, 음’ 하나의 디저트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틀을 꼬박 쏟은 엄마와 딸의 정성이 참 대단하다.

다음 시대는 200년 전 미국 찰스턴이다. 이번에는 노예인 흑인 엄마와 딸이 산딸기를 딴다. 말수레에 우유를 담아 배달해 주는 아저씨 덕에 직접 우유를 짜는 수고는 덜었다. 쇠를 두드려 만든 거품기로 크림을 10분 동안 휘저어 휘핑을 한다. 언젠가 거품기로 휘핑을 해본 적이 있는데 10분쯤 거품기를 휘젓고 나면 팔이 떨어질 정도로 정말로 아프다.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산딸기를 씻은 후 양철 거름망으로 씨를 골라내고, 크림과 섞는다. 완성된 디저트는 지하에 있는 나무상자를 여러 번 덧대어 놓은 얼음 상자에 보관한다. 식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한 노예 모녀는 늦은 밤 벽장에 숨어서야 남은 디저트를 맛본다. ‘음, 음, 음’

세 번째 시대는 100년 전 미국 보스턴, 엄마와 딸은 시장에서 산딸기 두 통을 산다. 우유병에 든 우유는 현관 앞에 배달이 되고, 엄마는 요리책을 참고하여 손잡이가 달린 거품기로 5분 만에 휘핑을 마친다. 지친 기색 없는 모녀는 완성된 디저트를 주방 안에 있는 아이스박스에 보관한다. 엄마와 딸도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한다. ‘음, 음, 음’

마지막 네 번째 시대는 가까운 몇 년 전 미국 샌디에이고이다. 아빠와 아들은 슈퍼마켓에서 산딸기와 크림을 산다. 요리법을 인터넷으로 찾아 인쇄하고, 전동거품기로 2분 만에 손쉽게 젓는다. 수돗물로 산딸기를 씻어 전기 믹서로 갈고 설탕에 녹인 후 생크림에 부어서 디저트를 완성하여 냉장고에 보관한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친구들을 불러 식사 시간을 가진 후 함께 나누는 디저트. 누구도 힘든 기색 없이 가뿐하게 준비하고, 모두 즐겁게 단숨에 먹어 치운다, ‘음, 음, 음’

지난 300년 동안 조리도구의 발달로 요리하는 수고를 많이 덜게 되었다. 성인 여자가 15분이나 땀을 흘리며 휘저어야 만들 수 있던 휘핑크림을 남자 어린이가 전동거품기로 2분 만에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물에 직접 물을 길으러 가는 수고 대신 주방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되었고, 언덕에 있던 얼음 창고는 주방 한쪽에 놓인 냉장고로 대체되어 오가는 수고도 줄어들었다. 남성들은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는 모습만 그려졌는데, 마지막 시대에서는 아빠와 아들이 장을 보고, 식사 준비도 모두 하는 등 사회적인 변화도 많이 일어났다. 이들이 쓰는 기구와 준비하는 주체 모두 다르다. 네 시대, 네 가정에는 이렇듯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제 ‘하나의 맛있는 디저트’를 생각해 보자. 디저트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달랐지만, 같은 디저트를 만들었다.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수고의 시간과 강도는 다르지만, 그 과정 또한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점은 직접 디저트를 먹고 맛있다고 느꼈다는 점이다. 네 시대의 네 아이가 모두 같이 감탄하며 먹는다. 글은 일반적인 검은 텍스트로 쓰였는데 준비 과정에서 엄마가 건넨 크림을 먹고 아이가 내는 탄성 ‘음’, 그리고 남은 디저트를 핥아먹을 때 내는 소리와 느낌 ‘음, 음, 음’, ‘살살 녹아요, 녹아!’는 빨간색으로 쓰였다. 맛있는 디저트는 시대, 인종, 신분, 성별을 불문하고 사랑받는다!

디저트를 다 만들고 나서 아이들은 숟가락에 묻어 있는 크림을 핥아먹는데, 이 아이들이 식후에는 제 발로 부엌으로 돌아와 양푼에 묻어 있는 남은 크림을 모두 싹싹 긁어먹는다는 점이 재미있다. ‘산딸기 크림봉봉’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맛을 한 번이라도 더 맛보려고 제 발로 부엌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교육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자. 수업하면서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수업으로 낸 과제 외에도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볼 때다. 그런 학생은 수업 내용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맛을, 만들어 가는 재미를 알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할 때 실재감도 중요하고, 학습을 촉진하는 새로운 도구들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고, 그 맛을 진심을 담아 전하는 것일 것이다.

<산딸기 크림봉봉>에 2021년 오늘날의 이야기를 뒷이야기로 붙여 보라고 하면 ‘왜 직접 요리를 해요? 새벽 배송시키면 되지 않아요? 그리고 꼭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먹어야 해요? 줌으로 화면 켜 놓고 각자 집에서 먹으면 되지?’라고 할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몇 년 후 미래의 아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서 ‘로봇에게 시키면 알아서 만들어 줄 거예요. 메타버스에서 만나요.’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고, 불편함을 해소할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고의 가치를, 좋은 것을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입맛을, 만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교회 학교가 문을 닫아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영상 예배를 드린 지도 일 년이 넘어간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영혼의 입맛이 변하지 않도록 부모는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라는 말씀처럼 자녀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며, 우리 자녀들이 매일매일 적어도 부모와의 만남 속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면 좋겠다. 그리하여 스스로 부엌으로 들어가 양푼에 남아 있던 크림을 맛보는 아이들처럼, 하나님을 사모하는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

<rubadub@naver.com>


글 | 장시경

전산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동문학 미디어교육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00권의 그림책>을 저술(공저)했으며, 초등학교에서 IT 관련한 다양한 수업을 하며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