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의 시간에

통증의 시간에

2021-11-25 0 By 월드뷰

월드뷰 NOV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2


글/ 조혜경(소설가)


치통이 또 시작되었다. 위 대문니 쪽이다. 대문니 쪽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이인지 알 수 없어서다. 한 달 전에도 이가 아팠었다. 그땐 어금니였고, 어금니의 잇몸이 꽈리처럼 부풀고 주변 잇몸이 헐었다. 치과에 가는 대신 약국에 들렀다. 소염, 진통제를 주며 약사는 비타민 B군 보충을 권했다. 약사가 준 약을 성실히 바르고 먹자 며칠 지나니 모두 가라앉았다. 몇 차례 치통으로 고생한 경험이 내겐 있다. 주로 어금니 쪽이었다. 한쪽 어금니는 몇 년 어간 주기적으로 잇몸이 곪더니 결국 뽑히고 말았다. 어금니를 그만 뽑는 게 좋겠다고 판정을 받은 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내가 혹시 관리를 잘못한 것 때문이냐고 묻자 의사는 아니라고, 수명을 다한 것이라고 대답해주어 그나마 마음의 괴로움이 조금 덜했다. 결과적으로 이가 뽑혀 사라진 상실감보다 끈질기게 괴롭히던 치통의 사라짐이 우선 후련하게 느껴져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라는 말이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게 2년쯤 전이다. 그리고 다시 반대편 어금니가 심심하면 한 번씩 말썽을 부려오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이번엔 앞니 쪽이다. 앞니가 아프니 어금니가 아픈 것보다 상황이 더 고약했다. 음식물의 저작은 오로지 어금니의 몫인 줄 알았는데, 어금니가 음식을 씹을 때마다 앞니들도 함께 부딪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랫니가 윗니와 부딪힐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통증이 느껴져 어느 쪽으로도 음식을 씹을 수가 없었다. 물을 마실 때 함께 들이켜는 공기도 앞니를 자극했다. 작은 스푼으로 죽을 떠 혀 안쪽에 조심조심 흘려 넣고 빨대를 이용해 물을 마셨다. 하루 이틀을 견디며 이번에도 약국에서 사 온 약이 효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전화를 받기 위해 말을 할 때조차도 앞니에 통증이 느껴졌다. 음성학을 공부해서 공기의 들고 남으로 소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음에도 말을 할 때 입안으로 공기가 드나들고 그 드나드는 바람의 저항을 고스란히 앞니가 받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통증으로 새삼 확인했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아침 식탁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잘못 씹어 내가 움찔거릴 때마다 식구들이 같이 긴장했다. 편하게 대화하고 치즈와 계란을 올린 빵과 사과를 먹으며 뜨거운 커피를 마시던 일상의 아침이 언제였던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치과에 갔다. 부분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파노라마를 찍었다. 의사는 신경 어딘가에 고름 주머니가 잡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지 예상외로 사진이 깨끗하다며 “이러면 문제가 좀 복잡해지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의 통증 호소를 엄살이 가미된 것으로 판단한 것 같았다. 그러기에 스케일링 후 약도 처방해주지 않고 우선 날을 잡아 네다섯 번에 걸쳐 잇몸치료를 해보자고 권했다. “지금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든 것은 어떻게 할까요?”라고 내가 묻자 그는 그제야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처방해주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약을 털어 넣고 그대로 침대에 뻗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꼼짝없이 몇 시간을 누워 생생하게 통증을 느꼈다. 생각이 복잡했다. 이가 내 몸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했던가? 앞니 한두 개에 이상이 생겼다고 이렇게까지 일상이 무너지는 것일까? 진저리치는 치과 치료이지만 차라리 어딘가 곪아 치료를 해야 한다면 마음이 편할 뻔했는데…. 잇몸이 부풀지도, 헐지도 않아 겉으로도 속으로도 멀쩡한데 바람 한 줄기에도 긴장하는 이 통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만병의 원인이라는 그놈의 스트레스? 설마 정신과적인 문제? 그러자 몇 달 전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이 생각났다. 나는 일어나 책을 찾아 펼쳐보았다.

많은 의사가 이런 나의 증상을 신체적 원인이 없는 정신과적 문제로 여기는 것이 억울하고 서러웠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고(Absence of evidence is not evidence of absence)’, 신체적인 원인을 ‘못 찾는’ 것이지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51). <마음이 흐르는 대로(지나영)>.

원인을 찾지 못해 스트레스나 정신적 문제로 돌리는 의사들의 태도에 그녀도 꽤 억울했던 것 같다. 책의 저자는 한국인으로 미국 유명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며 의사다. 40대에 결혼하고 신혼 6개월 차에 주말부부로 지내던 그녀가 남편에게 가기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등 쪽에서 시작된 근육통으로부터 병이 시작되었단다. 그날 남편 집에 도착하여 겨우 기다시피 집으로 들어간 그녀의 병세는 점점 심해져 몇 개월간 자신의 ‘몸 하나하나가 고장 나는 것을 어리둥절하게 지켜보면서 이유도 모른 채 고통받는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머리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 같은 극심한 두통, 장이 끊어지는 듯한 위장의 통증, 매일 밤의 불면과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는 피부, 뼈마디를 찌르는 한기, 잠시 앉아 있거나 서 있기만 해도 툭툭 떨어지는 혈압,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던 날들…. 5개월에 걸쳐 12명이 넘는 전문의를 만나고 응급실도 서너 번을 드나들며 받은 온갖 검사에서도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자 대부분의 의사가 정신과적 문제가 아니냐며 정신과 의사인 그녀에게 되물었단다. 결국, 밝혀진 그녀의 병명은 기립성빈맥증후군과 신경매개저혈압.

그날 그녀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 같다고 했다. 근육통과 오한을 일으킨 감염과 싸우기 위해 몸에서 일어난 면역반응이 잘못돼 오히려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데, 당시 자가면역반응이 자신의 자율신경계를 공격했다고 그녀는 판단했다. 자율적인 조율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오면서 오한, 빈맥, 서맥, 저혈압, 어지럼증, 두통, 수면장애, 위장장애 등이 동시에 줄줄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자율신경 하나에 이상이 생기자 온몸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내 고등학교 때 생물을 가르쳐준 선생님은 실력자이셨던 것 같다.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 말초신경인 자율신경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길항작용 같은 용어들이 지금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더운 여름엔 땀을 흘리거나 헐떡여서 추운 겨울엔 몸을 떨거나 움츠려서 체온을 유지하고, 물을 많이 마시면 몸의 삼투압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량을 늘여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해준다고, 그런데 그런 일을 여러분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몸의 자율신경이 다 알아서 조절해준다고 목소리를 높이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칠판 가득 색색의 분필을 사용하여 신체 기관의 구조를 그리셨다. 물체를 보고 상을 맺는 눈동자의 구조와 그것을 인식하는 뇌의 구조, 포도송이 같던 허파꽈리, 2개씩의 심방과 심실로 나뉘어 피를 내보내고 받아들이던 심장, 피를 거르고 소변을 배출하는 신장, 꽈배기처럼 꼬인 모양의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DNA…. 나는 우리 몸 각 기관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정교함과 치밀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인체를 배우는 매시간 경이로웠다. 당시도 학교에서는 진화론이 대세였는데, 이렇게나 섬세한 구조를 가진 모든 동물이 미생물로부터 진화되었고, 인간은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 보행을 시작한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이론은 허술해도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생명윤리 강좌를 들을 때 한 교수님께서 “난지도(그땐 거대한 쓰레기장이었다) 상공을 쓱 한번 훑었더니 쓰레기 중에서 철판과 나사, 유리 같은 것이 서로 모여 보잉 747과 같은 거대하고 완벽한 비행기가 탄생했다면 여러분 믿어지시나요? 진화론은 그와 같은 논리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되었다.

흥미롭게 생물을 공부한 고등학교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내 몸속의 기관과 작용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코로나19로 어디를 가든지 이마를 들이밀거나 손목을 내밀어 재는 체온이 36.5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통과되는 것도, 밤이 되면 졸리고 아침이 되면 절로 눈이 떠지는 것도, 나는 쿨쿨 잤지만 밤사이 자지도 졸지도 않고 나의 심장은 수축과 확장을 계속한 것도 다 자율신경이 제대로 일하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았다. 사실 자율신경이라 이름 붙여진 존재 자체를 의식해 본 일이 없다. 어디 자율신경뿐이겠는가? 고장 나 불편해지거나 병들기 전까지는 신체의 어느 기관에 대해서도 찬찬히 들여다보고 대견히 여기며 감사해본 일이 없다. 누구라도 다 그럴 것이다.

치과에 다녀온 이틀 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여섯 번의 항생제 복용에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부비동에 염증이 생겨 이와 턱이 아팠다는 지인의 얘기가 생각나서였다. 친절한 이비인후과 의사는 꼼꼼히 검사를 마친 후 고개를 저었다. 나의 치통이 이비인후과 쪽 원인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나의 표정에서 보이는 통증이 안타까운지 조금 더 강력한 항생제를 처방해주겠다고 말했다.

병원 문을 나서는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증거의 부재’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집으로 오는 길에 운중천으로 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길이다. 걸으면 골이 흔들리고 동시에 이도 흔들려 그간 며칠 문밖에 나오지 못했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혀로 윗니를 지지하며 나는 조심조심 천천히 익숙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4월 말부터 피기 시작한 앙증맞은 패랭이꽃은 연이어 피고 지고를 계속하면서 여전히 손톱 같은 선 분홍빛 꽃을 매달고 있었다. 며칠 새 키가 훌쩍 큰 가우라는 연분홍, 하양, 진분홍 꽃을 일제히 피워 팡파르를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름의 혹독한 땡볕을 묵묵히 견디고 고운 꽃을 피우는 식물의 단단함에 마음이 뭉클하며 숙연해졌다. 산과 접한 언덕길로 돌아 의연한 자태의 자작나무와 은행나무 사잇길을 걸어 돌아오면서 나는 종합병원에 가서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보는 대신 이비인후과 원장의 더 강력한 항생제를, 그리고 내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틀 후부터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의사들은 통증의 정도를 숫자로 물었다. “10중 얼마쯤이에요?” 말씀도 못 하시고 두 손을 다 편 다음 손가락 한 개를 접거나 두 개를 접어 표시하셨던 아빠가 생각났다. 아, 이 정도로 아프셨구나. 가슴이 아려오며 아빠가 보고 싶었다. 나에게 물어본다면 손가락 하나의 반만 접어야 할 것 같이 하루에 0.5 정도씩 통증이 경감되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나아지고 있었다. 나는 일상을 다 내려놓고 종일 침대에 누워 가장 통증이 덜 한 자세를 잡고 밀린 책을 읽었다. 배가 고프면 일어나 살금살금 걸어 주방으로 나갔다. 혼자 걸어 나갈 수 있음에, 수저를 들고 먹을 수 있음에, 흘러 들어가는 죽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 소화해주는 위와 장이 건강함에 감사했다.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감사였다. 정교하기 그지없는 우리 몸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중한 병이 들었다 낫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자고 깨고 먹고 일하는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극심한 통증의 시간에 나는 ‘창조’에 대해, ‘감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처음으로 간밤에 한 번도 깨지 않았다. 눈을 뜨고 혀로 앞니를 탐색해본다. 아직은 통증이 조금 남아 있다. 나는 일어나 주방으로 나가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만들어 가지고 온다. 한 모금 입에 물고 노트북을 켠다. 암호를 넣자 눈에 익은 바탕 화면이 떠오른다. 그리웠던 얼굴처럼 반갑다. 열이틀 만에 돌아온 일상, 축복의 아침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hkcho7739@naver.com>


글 | 조혜경

2004년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2004), 기독신춘문예 대상(2006)을 수상하였고 문예진흥기금을 수혜(2006)했다. 저서로는 <꿈꾸지 않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