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육과 국가의 역할

역사 교육과 국가의 역할

2021-11-10 0 By 월드뷰

월드뷰 NOV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0


글/ 이명희(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이게 나라냐?


언제부터인가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 어린 말이 국민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러한 한탄은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가?’ 즉, ‘국가의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인가?’를 제기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2014년의 ‘세월호 참사’와 2017년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최근의 ‘조국 사태’와 ‘LH 투기 의혹 사건’ 등을 겪으면서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또 국가 권력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라는 매우 어려운 정치적 문제와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오랜 중앙집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근래 새로운 대통령이 집권하면 국가 비전과 함께 국정지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주요 정책과제를 제시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과 “국민이 주인인 정부” 등 5대 국정지표와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라는 새로운 원칙에 따라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를 시작하자”라고 호소하며 많은 국민에게 기대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5년을 마무리해 가는 지금, 임기 초기에 국민이 가졌던 기대와 감동은 오히려 좌절과 실망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무엇이 이러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했는가? 그들이 내세운 ‘협치와 합의의 정치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불안과 분노를 넘어서 공존과 포용의 공동체를 실현’하겠다는 국정 목표는 왜 허황된 구호가 돼 버렸는가? 왜 국민은 “이게 나라냐?”는 말을 더 자주 입에 올리게 되었는가?


국가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인식 필요


현대사회는 한편에서는 글로벌화와 보편화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화와 다양화, 개별화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글로벌스탠다드와 같은 보편적인 기준의 도입과 확립이 중요해지고, 이를 위해서 국가의 범위를 뛰어넘는 국제기구나 세계정부의 역할이 더욱 크게 요청된다. 반면 현대인의 개별화 역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즉 국민은 더 이상 일률적이지 않으며, 다양성을 더해가고 있다. 따라서 정치나 행정에 대한 요구도 매우 다양하게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분권은 더 강화되고 실제화될 필요가 있으며, 그 내용은 더 세부화되어 더욱 다양해진 주민 생활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반된 추세 속에 종래의 국가가 행한 역할의 한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국가가 역할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각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 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개인의 안전한 생활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주된 역할을 국가가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 속에서 국가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되어야 할까?

오늘날 국가든 개인이든 많은 문제를 점점 더 시장을 통해 해결한다. 따라서 국가는 무엇보다도 시장이 잘 기능하도록 하는 능력을 기르고 축적해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해결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국가는 시장의 무엇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실패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다음으로 국가가 감당해야 할 일과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일은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과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로 나누어야 한다. 개인의 일은 개인이 감당하되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때는 특정 개인을 무조건 구제하는 ‘약자 구제’보다는 ‘약자 부활’을 더 우선적으로 지향해야 한다.

많은 것이 글로벌화 되는 가운데 개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국제협력과 협조를 통해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국제 연대와 협력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 이상 대외 원조를 받던 시대의 대외관계나 냉전 구조하에서 통용되었던 외교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상황과 질서 속에서 발전된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는 국제공헌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협력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되풀이되는 정부 실패


우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이전 군사정부 시절과 같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국가 비전과 국정지표 그리고 주요 정책과제를 설정해 대통령 즉, 중앙정부가 중심이 되어 국정을 운영해왔다. 그 결과는 대체적인 실패였다. 대통령 대부분이 불행한 결과를 맞이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정부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민의식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지향하고, 국민의 생활은 글로벌화 되었다. 하지만, 실제 국정 운영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진정 민주주의 국가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 각자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공화주의 국가이기 위해서는 특정 계층이나 진영을 넘어 국민 모두를 보듬고 존중하는 공존과 포용의 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글로벌 사회의 선도적인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스탠다드를 내적으로 확립해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는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 비전과 국정지표 그리고 국정과제를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밀어붙였다. 국가 비전이나 국정과제에 대한 국민의 활발한 토론이 없었다. 중요 국정과제에 대한 정책적인 선택지가 다양하게 제시된 적도 없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천안문 열병식 참여에서 보듯이 국제사회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한 채 외교 혼선을 초래하기도 했고, 최근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에서 보듯이 정부가 바뀌면 외교정책도 따라 바뀌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 신뢰가 추락하는 일도 발생했다.

국가정책은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중앙정부, 그것도 청와대에서 정한 대로 위에서 밑으로 지시되고, 심지어는 국회조차도 거기에 장단을 맞추어왔다. 정부·여당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은 제왕적 대통령의 정책을 무조건 옹호하고, 야당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은 그것을 무조건 비판하고 반대하는 행태를 보였다. 심지어는 같은 정부·여당 내에서도 편이 갈라져 자기편과 자기 진영만을 편드는 극단적인 편파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거듭되는 정부 실패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총합된 결과가 아니겠는가?


국가 정책의 ‘사유화’와 역사교육의 실패


대한민국의 국가 정책은 모름지기 ‘민주적’이어야 하고 ‘공화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합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많은 정책은 ‘민주적’이지도 ‘공화적’이지도 않게 수립되고 추진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수도 이전’을 대통령 공약으로 내걸고 대선에서 승리해 추진하다가 위헌 판결을 받고 혼란스러웠던 예를 들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수도 이전 정책은 대선 공약 이외에는 그 어떤 민주적인 절차나 공론화 과정도 없이,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만으로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서도 ‘공화’와 ‘민주’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실패한 사례가 많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는 많은 수의 국민을 설득 혹은 이해시키지 않은 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성급하게 추진하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 국민 모두의 의견을 소중히 하는 공화주의의 원칙을 무시한 결과였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공론화 과정 없이 대통령의 결단으로 추진했다. 한국사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고 대다수 국민이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역사교사 및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 특히, 많은 수의 역사교사와 역사학자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했다. 즉, 공화주의의 원칙이 무시되었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뀌자 ‘적폐’로 낙인찍혀 철저하게 부정당하는 참담한 결과로 귀결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도 유사한 실패 사례이다. ‘적폐’를 정권 내지는 정파적 차원에서 규정하고 추진했다. 이러한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적폐청산’은 국가와 정부가 국민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정파적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과거사조차도 ‘적폐’로 규정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이 ‘반제국주의 민중민주주의 운동’을 중심으로 더욱 고착화 되었다. 이 연장선에서 문재인 정부 버전의 새로운 검정 역사 교과서가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의 의견은 제기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교육부 내에 적폐청산추진팀이 활동며 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여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위한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지침을 단기간에 졸속으로 개발했다. 그 후 교과서 집필과 검정도 일사천리로 추진되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 문제가 사법의 판단 대상이 되어 단죄됨으로써 1965년에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문재인 정부의 역사교육과 과거사 정책은 대한민국의 전체역사 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성’과 ‘공유성’을 방기하고, 특정 이념이나 진영의 의향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이것은 정책의 공공성에 대한 도전이며, 특정 이념과 진영에 의한 정책의 사유화(私有化)이다.


역사교육은 ‘민주·공화·국제협력 주의’의 원칙하에!


역사교육은 국민의식의 형성을 직접적으로 지향하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역사교육은 공교육의 핵심적 영역이며, 국민의 중요한 관심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만큼 역사교육은 헌법정신과 가치를 엄격히 구현하는 방향에서 그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그리고 국제평화주의를 지향한다. 그것은 헌법 제1조와 전문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정책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크게 실패하고 말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또다시 진영논리나 이해관계 때문에 국가의 중대사를 그르쳐서는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mhlee9811@hanmail.net>


글 | 이명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본 筑波(츠꾸바)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교조와 역사 교과서 문제를 비판했으며,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수립과 추진에 일조했다. 2013년에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주 집필자로서 민주당과 좌파진영 시민사회로부터 비판과 공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