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로 보는 한미동맹 재점검
2021-11-08
월드뷰 NOV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
글/ 신범철(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들어가며
국제관계의 근저에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현실주의적 흐름이 존재한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나라가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외교를 전개하는 이유다.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이유는 테러와의 전쟁이 종결된 이후 전략적 중요성이 낮아진 아프간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계속 주둔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은 몇 년 전부터 출구전략을 구상했고, 작년 2월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탈(脫)아프간 정책은 구체화되고 있었다. 이미 2조 달러가 넘는 비용을 지출했고, 2,400명 이상의 인명 손실을 겪은 미국의 아프간 철수 자체를 비난하기도 어렵다. 다만 미국도 미군 철수를 앞두고 이렇게 빠른 속도로 아프간 정부가 무너질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그간 아프간 재건에 조금 더 노력했어야 했고, 보다 안정적인 미군 철수 계획을 수립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프간의 미군 철수가 한미동맹에 주는 교훈은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동맹국의 지원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아프간 국민이 얼마나 탈레반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지를 알 수 없지만, 반대하는 국민은 보다 조직적인 저항을 해야 했다. 더구나 정부군이 존재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아프간 사태는 국가를 수호하려는 국민적 의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
미국의 아프간 대응을 보면 오늘날 미국은 더 이상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대규모 지상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 같다. 탈냉전 직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간과 이라크에 전면적인 군사개입을 감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다한 전비 지출과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미국 대외전략의 수정을 가져왔다. 이미 오바마 행정부부터 아시아·태평양의 재균형을 외쳤고, 트럼프 행정부를 거쳐 다시 바이든 행정부로 이어지며 미국의 대외전략은 중국 견제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대규모 지상전이 아닌 해군과 공군력 중심의 군사력 증강과 외교 네트워크 강화를 통한 대중국 압박전략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아프간 사태는 중동지역에 관한 미국의 관심이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중동 정책의 변화도 시사한다. 아프간 철수 이후 미국의 영향력은 소위 ‘시아 크레슨트(Shia Crescent, 시아파 초월지)’ 서쪽 지역으로 축소될 운명에 놓여 있다. 즉,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을 때까지는 이란을 좌우에서 포위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시리아–이라크–이란’으로 이어지는 시아 크레슨트의 서쪽 지역에만 영향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든든한 우방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간의 긴장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중동지역 전반에서 미국이 지녔던 전략적 입지는 약화되고 있다.
끝으로 아프간 사태는 미국이 중장기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적은 지역에서 장기간 주둔하지 않는다는 점과 주둔지역 주민의 반대가 있으면 떠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물론 미군의 조기 철수 과정에서 탈레반의 카불 점령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 아프간에 조금 더 주둔하며 초강대국의 책임을 다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간에 주둔해야 했는가에 대한 여론 역시 차갑다. 전략적 가치가 적은 지역이나 미군을 환영하지 않는 지역에 미군을 배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아프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다.
아프간 사태와 한반도
한반도는 미국이 최대 도전으로 생각하는 중국과 인접해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하에서 아프간의 전략적 중요성은 낮지만,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아프간 사태로 인해 급변할 가능성은 적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외교적 관여와 압박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유연한 외교적 접근을 통해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제안하고 있으며, 인도적 지원에도 적극적인 입장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제재를 완화해줄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재개에 맞서 선(先) 제재완화나 선(先)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조건 있는 대화 재개를 주장 중인 상황이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이중기준 철폐나 적대시 정책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통신선 개방이 이루어지고 종전선언이나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실질적 성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북한에 있어 아프간 사태는 기회 요인으로 인식될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의 주둔 여건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키다 보면 언젠가는 미군이 한반도를 떠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여론을 악화시키기 위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한반도에 긴장을 몰고 온다는 식의 선전·선동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의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아프간 상황을 대입하지는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아프간과 같이 주한미군 철수를 희망하는 기존의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절실히 원하고, 현재 한국의 문재인 정부도 희망하는 대북제재 완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중국은 대북제재로 북한을 바꿀 수 없다는 논리로 제재 완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여론전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이 거부할 경우,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으로 규정하며, 한국 내에서 미국의 이미지가 나빠지도록 만들고자 할 것이다. 한국 내 반미 여론이 증대되는 것은 주한미군의 주둔 여건을 악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한반도 정세와 한·미동맹의 중요성
향후 한반도 정세는 북한의 대화 공세와 한·미동맹 이간책이 동시에 전개되며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기가 예상된다. 임기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희망하며 종전선언과 같은 형식적 성과라도 달성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에 국론은 분열된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국내의 정치적 갈등 상황이 한·미동맹의 불안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북 현안에 대해 미국과 조율해가며 갈등을 예방해야 한다.
아프간 사태처럼 당장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의 핵 위협 앞에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구비한 첨단무기체계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재래식 무기로 핵무기를 억제하기는 역부족이다. 그 결과 북한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굴욕을 겪다가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 상황은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한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의 핵 억제력이 북한의 핵 능력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김정은 정권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기에, 핵무기 사용을 승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동맹 강화를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다행인 것은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다. 동시에 준수한 국방력과 외교력이 있다. 미국도 이런 좋은 파트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 국민의 한·미동맹에 대한 지지도도 높다. 일부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77%가 튼튼한 한·미동맹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에도 큰 문제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을 지나치게 강조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 간 네트워크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물론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행보를 일방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되겠지만, 적절한 수준의 협력을 통해 동맹 간 유대를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정학적 이유로 인해 한·미가 중국에 관한 입장이 똑같을 수는 없다. 이점을 설득하면서 미국의 대중전략에 협력을 넓혀가며 한·미 전략동맹을 내실화해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인권 존중, 지역 평화와 법의 지배 원칙 그리고 첨단산업 공급망 협력의 수준을 높여가면, 한·미동맹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다. 아프간 사태의 대(對)한반도 파급효과는 매우 적다고 본다.
<bcshin70@gmail.com>
글 | 신범철
전 국립외교원 교수, 외교부 정책기획관,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 그리고 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제사회연구원 원장 겸 외교안보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백석대학교 초빙교수를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