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역할: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2021-11-06
월드뷰 NOV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
글/ 나성린(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 명예교수)
서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좌파진영과 우파진영 간에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많다. 특히 우파진영의 한 후보가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삶을 모두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가 상당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논쟁은 경제학이 생겨난 이후 계속되는 논쟁이다. 좌파와 우파가 이 논쟁을 두고 확연히 갈린다. 좌파는 경제의 자원 배분을 국가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기본적으로 시장이 이를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세기 내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이 두 가지 이념의 경쟁은 결국 공산주의 국가들이 철저히 패망함에 따라 일단 결론이 났다고 할 수 있다. 즉, 국민 개개인의 삶을 포함한 국가 경제의 생산과 분배를 국가가 계획경제 아래 모두 담당해야 한다는 공산주의 이론은 그 극심한 비효율성으로 인해 국민의 먹거리조차 해결할 수 없는 제도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시장경제를 파괴하고 자본가계급을 없애 국가가 모든 생산과 분배를 담당했던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들이, 결국 권력자들만 잘사는 독재국가가 되었고 노동자와 농민을 굶어 죽게했다. 공산주의를 창안한 이상주의자들이 세상의 자원은 유한하고 인간은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몫을 가져간다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 또한, 나의 삶을 국가가 모두 책임져준다면 과연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겠는가?
정부의 역할
그러나 20세기의 경험적 결말이 모든 자원의 배분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장경제가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해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하여 경제성장에는 강점이 있으나, 시장의 한계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원 배분이 왜곡되어 비효율성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는 재화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모든 가격이 결정되고, 이 가격이 자원의 배분을 주도하는 것이다. 모든 개인은 노동자이든 생산자이든 소비자이든 이 가격에 따라 각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을 하다 보면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되고 이것이 경제성장을 가져온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은 태어나면서부터 능력이 부족하거나 가진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불공정한 경쟁이 되고, 그 결과 불평등한 분배가 초래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을 그대로 두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사회가 불안정해진다. 결국, 기득권층을 타파하고 사회를 뒤집어엎자는 선동자들이 생겨나고 다수 국민이 그에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불평등을 완화하고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시장경제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환경오염과 같은 외부성, 공공재, 자연독점, 불완전한 정보 등이 존재할 때도 시장에만 맡겨두면 자원 배분의 왜곡, 즉 시장의 실패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서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경제는 가능하면 시장의 작동원리를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부와 소득을 재분배하고 사회복지제도를 만든다든지, 공장의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환경규제와 환경세 등을 부과한다든지, 도로와 공원과 같은 공공재를 정부가 공급한다든지, 시장에만 맡겨두면 자연독점이 발생하는 철도나 전기와 같은 국가기간산업에 공기업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더 근본적으로 국가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외적의 침략을 막는 국방이나, 각종 사회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치안 질서 유지, 시장경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계약과 사법제도 등의 작동을 위해 정부지출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어디까지,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하나?
정부가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나, 관건은 어느 정도까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이다. 정부가 모든 것에 개입하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이고, 시장이 모든 것을 하면 자유 방임주의가 되어버린다. 20세기 공산주의의 패망 후에 대부분 나라가 시장경제체제를 경제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나, 여전히 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정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의 개입 정도가 크면 좌파라 불리고, 시장에 맡기는 정도가 크면 우파라 불리는 것이다. 특히 성장과 분배, 효율성과 평등성 간에 어떤 쪽을 더 중시하는가에 따라 극우, 합리적 우파, 중도, 합리적 좌파, 극좌 등의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생긴다. 미국·영국·일본 등은 상대적으로 우파진영에 속하고, 러시아·중국 등은 좌파진영에 속하며, 유럽국가들은 그 중간 지점에 속한다. 물론 유럽국가들은 그 자체 내에 우파정당과 좌파정당이 혼재해 있다.
문제는 정부개입의 적정한 정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합의가 없다는 데에 있다. 다만 역사적 경험에서 과거의 유럽 복지국가·베네수엘라·브라질 등과 같이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국민 개개인이나 기업들이 열심히 하려는 인센티브를 잃게 되고 그 결과 경제가 망가진다. 경제가 망가지면 사회적 약자 계층이 가장 먼저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빈곤을 척결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사회복지제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명품이다.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한 지나친 사회복지지출은 한 나라의 경제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빚더미에 앉게 한다. 특히 무능한 정부가 마치 자신들이 전지전능하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개입하게 될 때 시장은 무너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는 것도 우리는 목격한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기업과 달리 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는 관료제의 특성에 의해 경제를 망가뜨린다.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역할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 세계 최빈국에서 역사상 최단 시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최근엔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진입하는 기적을 이룬 나라다. 이것은 개발 초기에 부존자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부족한 국가자원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선택과 집중하여 배분하면서 몇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밀어붙인 결과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독재와 인권유린이 있었고, 심각한 정치·사회적 불안이 존재했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룬 후에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복지제도를 점차 도입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우리 경제 수준에 걸맞은 사회복지제도도 안착시키기에 이르렀다.
21세기 들어와 우리나라도 OECD에 가입한 만큼,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이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기업과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자는 주장들이 대두되면서 비로소 진정한 우파 정책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실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은 좌파집단에 의해 친재벌 우파 정책으로 매도되어 역풍을 받고, 제대로 실천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경제정책을 실천하기가 매우 어려운 국민 정서가 지배하고 있다. 개발시대 동안 정부가 모든 자원의 배분을 주도했고, 국민 또한 그러한 체제에 익숙해 있기에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집값이 오르거나 세계경제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민간기업에 의해 사고가 발생해도, 국민은 정부에 책임을 묻고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이 외에 1970~80년대 좌파운동권세력들이 우리 사회의 주요 조직을 장악하고 반기업·반시장적 정서를 부추기면서 과도한 규제, 지나친 증세, 포퓰리즘적 정부지출과 같은 사회 모든 부문에 과도한 정부의 개입을 주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삶을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라는 주장의 진정성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들어섰고, 또 앞으로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시점에 들어섰다.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부의 정보취득 능력에도 한계가 있고, 또 개발시대와 달리 정보의 한계와 능력이 부족한 정부 관료가 모든 경제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고, 선진강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다만 여러 가지 개인적 한계로 경쟁에 뒤처진 사람이나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사회보장제도의 강화와 기업지원강화를 통해 선택과 집중의 역할을 정부가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방만한 정부 예산을 필요로 하는 무조건적인 보편적 복지보다는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이 가는 맞춤형 선별적 복지가 더 합리적일 것이다.
앞으로도 불평등의 해소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장원리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되어야만 한다. 어떤 경우에도 개인과 기업의 창의, 혁신과 자본축적 노력을 저해하는 과도한 정부의 규제와 세금폭탄 등은 지양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와 소득 주도 성장정책의 실패는 잘못된 정부개입의 전형적인 실패사례로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nasl9765@naver.com>
글 | 나성린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 교수와 18대, 1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