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국가

자유와 국가

2021-11-03 0 By 월드뷰

월드뷰 NOV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글/ 이상원(전 총신대 교수, 월드뷰 편집위원)


자유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창 1:26~27). 이 말은 하나님과 인간은 닮았다는 뜻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범죄 하여 타락했을 때,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크게 손상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이후의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창 9:6). 이 말의 의미는 타락한 이후에도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 중에서 타락 사건 시에 손상된 부분은 무엇이며,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개혁신학의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좁은 의미의 형상과 넓은 의미의 형상으로 나누고, 좁은 의미의 형상은 인간 타락 사건을 계기로 심각하게 손상된 반면, 넓은 의미의 형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해석한다. 좁은 의미의 형상은 참된 지식, 의로움, 거룩성을 의미한다(골 3:10; 엡 4:24). 참된 지식이란 하나님에 관한 온전한 앎을, 의로움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 만한 완전한 의를, 거룩성은 하나님과 같은 정도의 거룩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적인 의미의 형상을 가리킨다. 인간에게 있는 종교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그러면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넓은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과 인간이 여전히 닮은 부분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영이신 것처럼, 인간도 영이다. 하나님의 영이 영존하시는 것처럼, 인간의 영도 영존한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이신 것처럼, 인간도 인격적인 존재다. 인격적인 존재라는 말은 이성과 의지와 감성이 있다는 것,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이 있다는 것, 말로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언표성, 사랑의 교제가 가능하다는 것 등을 포함한다. 이와 같은 인격성의 특징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격성의 특징은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나 사역에 있어서나 어떤 피조물의 간섭이나 영향도 받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서 행동하신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게도 피조물로서 일정한 한계가 있긴 하지만, 바로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이 있다. 이른바 ‘자유’는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하나님 형상의 증거다.


선악과 사건에서도 자유를 보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주실 때, 아담과 하와의 자유를 존중하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이 자유를 잘못 행사하여 그 후 인류 사회에 어마어마한 비극이 찾아올 것을 아셨으면서도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자유의 행사를 허용하셨다. 왜 그러셨는가? 자유를 상실한다는 것은 인간이 본능에 내장된 원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짐승이나 공학적인 원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기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은 인간을 짐승이나 기계로 대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타락할 수 없는 짐승이나 기계를 원하지 않으시고, 타락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를 원하셨다. 타락한 이후에도 인간은 죄수(罪獸, a sinful beast)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罪人, a sinful human)으로 남는다.

자유가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 형상의 중요한 특성이고, 하나님이 인간 타락 시에도 자유의 행사를 막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도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행사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권리로서 어떤 다른 권리보다 우선하는 권리다.


시민의 정당한 자유권 보장은 국가의 의무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자유가 침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나는 영적인 차원에서 발생했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차원에서 발생했다. 영적인 차원에서 인간은 죄와 사망의 굴레에 포박되었다. 죄의 굴레에 포박된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유를 활용하여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사망에 포박된 인간은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차단당했다. 죄와 사망의 굴레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가능해졌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사회적 차원에서는 특정한 사람의 자유권 남용으로 인하여 한 사람의 자유 행사가 다른 사람의 자유권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에 자유권의 남용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통제는 국가기관을 통하여 시행된다. 국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국민이 선을 행하는 것을 장려하고, 악을 행하는 것을 처벌하는 기관이다(롬 13:4). 이 말씀에 따라서 국가는 자유의 정당한 행사를 보호 및 장려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 분명한 자유의 남용을 처벌한다.

국민의 정당한 자유의 행사를 보장해주는 것이 국가에 주어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일차적 소명이라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유권 행사의 남용을 통제하는 것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이차적 소명이다. 일차적인 소명인 정당한 자유의 행사를 보장하는 것은 자유의 남용을 차단하는 것보다 항상 우선한다. 자유의 행사는 타락 이전의 시기에 인류 전체의 역사에 심대한 부작용이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이 보장해주신 절대적인 하나님의 형상성의 표현이다. 반면에, 자유 행사의 통제는 타락 이후에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시작된 것으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국가라는 기관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시행하시는 일이라는 점에서 자유의 행사를 보장해주는 것은 자유의 행사를 통제하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자유의 행사에 대한 통제는 자유의 행사가 남용되어 이웃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이 명확할 때만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자유권 1: 신교(信敎)의 자유


국가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종교든지 자유롭게 신봉하고, 그 종교에서 규정하는 교리를 자유롭게 설파하고, 예식을 자유롭게 시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헌법적 민주주의 정체가 출범한 역사적 이유도 바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고자 하는 데 있었다. 서구의 역사를 보면 종교 간의 갈등이 심했고, 종교 간의 갈등은 대부분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것도 같은 구약성경을 공통된 경전으로 삼고 있는, 역사적으로 보면 뿌리가 같은 형제종교라고도 할 수 있는 개신교, 로마 가톨릭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 사이에서 어떤 다른 종교 간의 갈등보다도 심각한 피의 숙청이 뒤따르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중세시대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 종교개혁시대와 아일랜드와 유고슬라비아에서의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갈등, 2차 세계대전 시의 개신교와 유대교의 갈등 등, 형제종교 간에 벌어진 이와 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신교(信敎)의 자유를 제1 강령으로 삼는 헌법적 민주주의 정체가 형성된 것이다.

특정한 종교가 사회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결과를 낳을 때 국가권력을 통한 통제가 불가피한데,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국가권력의 통제는 악한 결과를 법적으로 통제하는 데 머물러야 하며, 그것을 빌미로 하여 종교 내부의 교리 설파나 예전 시행에까지 간섭하여 통제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종교는 적그리스도적(的)이며, 성경의 가르침에 명백히 반하는 행태를 보일 때가 있다. 이 경우에도 국가는 이 종교 자체를 법적 강제력의 힘으로 폐기시키고자 해서는 안 된다. 아담과 하와가 자유를 남용하여 반성경적인 결정을 했어도,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자유로운 선택을 끝까지 존중하신 것처럼, 비록 적그리스도적인 종교라 할지라도 국가권력이 그 종교를 강제력으로 폐기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헌법적 민주주의 정체가 형성된 역사적 이유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최근 한국 정부가 코로나19를 빌미로 하여 한국 교회의 예배에 대하여 보여주는 태도에서는 헌법적 민주주의 정체 탄생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이유가 바로 신교(信敎)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데 있다는 인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코로나19의 팬데믹적인 전염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국가의 통제는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지만, 과학적 근거도 충분히 밝히지 않은 채 교회를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언론 몰이를 하고, 그것을 빌미로 예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했던 시도는 두고두고 현 정부의 치명적인 종교 탄압적 실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마스크 착용을 철저하게 하는 등 기본방역수칙만 잘 지키면 짧은 시간 동안 모이는 교회의 예배에서는 전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당 규모와 상관없이 10명, 20명, 99명 등 자의적으로 집회 인원을 제한하는 것도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신중한 고려를 찾아볼 수 없는 탁상행정 만능주의적인 거친 태도다.


자유권 2: 표현의 자유


국가는 사회구성원들이 이웃에게 명백한 폐해를 끼치지 않는 한 종교적이고, 정치적이며, 사상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주어야 하며, 이를 표현하는 방법으로써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최근 올해만 해도 벌써 다섯 번이나 발의된(98% 이상 동일하고 중복된 내용을 담고 있는) 차별금지법안의 심각한 문제는 종교적이며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표현의 자유를 전체주의적 독재체제에서나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금지하고, 법을 어기면 가혹한 징벌적 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차별금지법은 비윤리적이고, 음란을 조장하는 것이 명백하다. 5,000년 동안 인류문화와 사회를 지탱해온 건강하고 견실한 성 윤리를 해체하는 동성애와 젠더주의에 대한 신학적이고 도덕적이고 의료적인 진실과 비판을 ‘혐오’라는 주관적인 족쇄를 씌워서 입을 틀어막는 악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타 종교에 대한 교리적이고 윤리적인 평가와 비판, 정치적 입장에 대한 윤리적이고 사상적인 평가와 비판, 그리고 특정한 이념에 대한 윤리적이고 이념적인 비판까지도 모두 포함하여 ‘혐오’라는 주관적인 범주에 집어넣어 차단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유린하는 법안이다.

이와 같은 악법을 집권당 국회의원 다수의 힘과 정부 권력을 이용하여 정치, 사법, 교육, 언론, 문화 등 사회 전 분야와 연대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연 현 집권당 구성원들이 헌법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를 의심하게 하고 있다. 현 집권층은 특정한 이념적인 입장을 절대적인 옳음으로 전제해 놓고, 이 전제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다른 의견들을 무시하거나 혐오라는 범주에 집어넣어 배격해 버리는 전체주의적인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현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코로나19의 전염 우려를 빌미로 자의적인 행정명령을 통하여 차단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실내에서 수십 명 이상이 모여 업무를 보는 것, 공간이 꽉 막힌 지하철 안이나 역사에서는 아무리 많은 인원이 지나다녀도 통제를 하지 않으면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야외집회에 대해서는 코로나 전염을 빌미로 일인 시위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렵다.


자유권 3: 신체의 자유


국가는 이웃에게 명백한 피해를 가하는 경우가 아닌 한, 그리고 명백한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로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경우가 아닌 한, 국민이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사회가 어떤 조치를 가하고자 할 때 그 조치를 받아들일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사회가 제시하는 어떤 공동체적인 가치가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신체적 생명권은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에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인간의 목숨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마 16:26).

최근 정부는 국민에 대한 백신 접종률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위하여 어린 청소년과 상당수의 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의무접종까지 포함하여 접종률 제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접종을 마친 국민과 미 접종 국민을 구분하고, 접종을 마친 국민에게 인센티브를 주어서 미 접종 국민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점차 좁혀감으로써 접종을 받도록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백신을 맞을 것인가의 여부는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로 두어야 하며, 강제접종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백신 접종에 뒤따르는 장·단기적인 후유증이 무엇인가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의 강제접종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된다. 노인층이나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 보호를 제외하고 건강한 일반 국민에게는 자연적인 면역이 형성되기 때문에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없으며, 더욱이 젊은 층에는 설령 코로나19에 감염된다고 하더라도 그 위험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낮으며, 백신 접종을 통하여 집단면역은 불가능하다는 사실 등이 알려져 있다.

문제는 백신을 접종받고 나서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급사하는 사례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망하는 사례보다 월등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 없이 코로나19에 걸리는 경우, 일정한 휴식을 취하거나 치료를 받으면 쉽게 낫고 자연면역까지 얻을 수 있었던 멀쩡한 사람이 오히려 백신 접종 때문에 고귀한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 이들의 생명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과도하게 백신 접종을 장려해 백신 접종비율을 높이는 데 적극적인 정부 당국이 정작 백신 접종 후 급사한 국민에 대하여는 무책임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위선적인 태도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국가는 사회에 명백한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아닌 한, 국민의 자유(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를 절대적인 우선순위에 두고 보호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는 인간의 인간됨의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하나님 형상의 증거로서 하나님이 인류 타락으로 인한 전 인류적인 후유증을 예상하시면서도 철저하게 보장해주신 천부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 A.), 동 신학대학원(M. 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 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 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한동협 현대성윤리문화교육원 원장, 월드뷰 편집위원, 차바아 운영위원, 복음법률가회 운영위원, 카도쉬 아카데미 고문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