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와 커뮤니케이션
2021-09-11제2부 선교사와 타문화 사역 (6)
월드뷰 SEPT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3 |
글/ 전성걸(글로벌연합선교훈련원 상임대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과연 무엇일까? 성경도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복음 메신저인 선교사는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이해하고 준비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하면 커뮤니케이션이란 실로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해 가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표정에서 옷을 입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SNS 이모티콘에서 집을 짓는 건축 방식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일을 통해 인간은 무언가를 소통한다.
적절한 표현을 찾아서
카자흐스탄 교회 개척 사역 중 경험했던 사례가 있다. 어느 토요일 저녁 지도자 학교 성경공부 모임이 시작되기 전, 현지인 지도자 중 한 카자흐인 형제가 나를 찾아 왔다. 그는 “지도자 학교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건의했다. “이름을 바꾸자고요? 왜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도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 공산주의 시절에 많은 억압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억압은 늘 시민의 지도자라고 선전했던 정부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자유를 찾은 우리는 지도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가 들려준 대답은 내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이 이야기는 타문화 선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은 문제임을 알게 해 주는 사례이다. 외부자로서 선교사들이 빈번하게 직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선교사는 특정 단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그 단어의 기원뿐만 아니라, 그것이 특수한 요소가 부여되어 새로운 의미로 활용되는 단어인가를 확인해야 할 때가 있다. 타문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적절한 표현을 찾아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이란 언어적 문제에만 국한된 것일까?
커뮤니케이션 이해하기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일까? 문화와 사람들 간의 간격을 넘어 복음의 교량을 건설해야 하는 선교사들은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커뮤니케이션의 정의와 더불어 몇 가지 일반적 특징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자.
첫째, 쉽게 말해 커뮤니케이션이란 마음과 마음이 만나 상호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다. 즉, 참여자가 발신자(화자)와 수신자(청자)의 역할을 교대함으로 서로 의미를 전달하는 의사소통이다. 약속된 기호를 통해 서로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 중 공통된 의미를 수립하고, 나아가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따라서 두 참여자 간의 가치 기준(준거의 틀)이 다를 경우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선교지에서 우리가 흔히 겪게 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바로 이 때문이다.
둘째,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글이나 말로 소통되는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가장 많이 활용되는 의사소통법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언어적 의사소통은 발신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15~30% 정도만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반해 몸짓, 표정, 스킨십 등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상호 75% 정도의 내용을 전달한다고 한다.
셋째,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피할 수 없으며, 그 활동을 통해 수많은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메시지와 함께 음성, 몸짓, 시선, 태도, 복장, 물리적 환경 등은 다양한 부수적 메시지를 보낸다. 이런 추가적 메시지는 메시지를 확인시켜주기도 하고, 약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을 당한 유가족을 위해 검은 옷을 입는 것은 유가족에게 고인을 기린다는 주요 메시지를 확인시켜준다. 반대로, “불이야!”하고 소리 지른 후 피하지 않는다면 급박함의 메시지 전달은 약화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성경적 기초
성경도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렇다. 서로 커뮤니케이트 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은 한 본체에 삼위가 따로 존재하심으로 서로 밀접한 커뮤니케이션 관계에 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천지창조의 과정을 통해 성경 속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사회적 성삼위(Social Trinity)로서, 그리고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들과 소통하시는 커뮤니케이터로서 존재하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만나게 되는 커뮤니케이션의 정점은 무엇일까? 그 정점은 슬프게도 인간 타락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 그러나 첫 아담의 범죄와 타락이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초래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자신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총체적 단절이 시작되었다. 단절의 원인이 죄에 있듯이 커뮤니케이션의 회복 또한 죄의 극복에 달려 있게 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커뮤니케이션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선택하셨다. 바로 인간이 되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그분은 자신을 인간의 본성과 문화 속으로 스스로 제한하셔서 하나님과 죄인들 간의 다리 역할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죄로 단절된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회복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찾아오신 것이다.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적 기초이다. 그 기초 속에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 있다.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관계 성립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삶에 인격적으로 참여하셨다.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또 다른 목적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각 문화적 상황에 정확히 이해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정확히 이해되게 하기 위해서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사람들의 준거틀을 사용하신 것이다. 우리의 언어, 문화, 그리고 인간의 형태로 교량을 만드시고 건너오신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를 얻으셨다. 복음 전달자는 무엇보다도 외부자의 관점이 아닌 내부자의 관점을 갖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내부자의 관점을 갖게 하는 좋은 방법은 수신자들 속에 함께 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결국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최종 목적은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에 응답하게 하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질문하신 이유는 아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깨어진 관계에 아담이 응답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기 때문이었음을 보아야 한다.
선교사에게 있어 커뮤니케이션은 어쩌면 복음 전달의 수단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비록 언어 구사력이 멋들어지지 못해도 뜨거운 가슴으로 인내하며 사랑할 때, 현지인들 가슴에는 복음의 빛이 더욱 밝게 비칠 것이다. 선교사의 삶이 성육신적 메시지가 될 때 그들은 복음의 의미를 가슴에 아로새길 것이다. 사랑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자! 인격적 커뮤니케이터가 되자!
<chunsunggeol1@gmail.com>
글 | 전성걸
캐나다 NSCAD University (B.A.), Tyndale Seminary (M.Div.)를 졸업하고,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학위(D.Min. in Intercultural Studies)를 취득했다. 카자흐스탄에서 교회 개척 선교사로 사역했으며, GMF 산하 한국글로벌리더십연구원(KGLI) 원장과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글로벌연합선교훈련원(TMTC) 상임대표 및 MEX 디렉터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타문화 관계전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