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다시 보는 북한 사회
2021-09-04북한의 비극을 그려낸 세 편의 영화
월드뷰 SEPT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6 |
글/ 김수인(고등학교 교사)
세계 어느 곳에서나 유튜브와 틱톡 등 각종 영상으로 소통하는 시대, 영상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도 북한은 철저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북한에 관한 영상물은 쉽게 구할 수 없으며, 여행자들도 마음대로 사진을 찍거나 북한 주민들과 대화할 수 없다. 여행객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곳의 사진을 몰래 찍어 나오다 들키면,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북한에서 억류되어 결국 고문사한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는 북한 방문 시, 숙소 내부에 있는 포스터를 하나 떼었다는 이유로 생명을 잃었다. 북한의 진짜 모습은 오로지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알 수밖에 없다. 북한의 실상을 담은 영상물은 매우 희소하며 대부분 목숨을 걸고 몰래 촬영한 것이다.
북한의 인권참상을 고발하기 위한 영화들이 간혹 제작되었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의 인권 실상은 어떤 영화 묘사보다도 더 끔찍하며, 영화제작자들도 이들의 증언을 100% 살려 영화에 담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고발영화들은 역사적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역사를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의 수많은 비극이 북한 주민의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북한과의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한국의 청년들이 우상 독재체제에서 살아가는 북한 동포의 고난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또 북한 인권 개선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청년들에게 북한 인권 문제를 좀 더 심도 있게 전할 수 있는 몇 편의 영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북한, 거대한 영화세트장–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태양 아래(2016)’
비탈리 만스키(Vitaliy Manskiy) 감독은 러시아와 북한 정부의 지원을 받아 북한선전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으나, 매번 북한 당국에 의해 거짓과 조작을 강요당하자 북한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영화의 방향을 선회했다.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감독은 자신이 북한에서 본 모든 것 그리고 지금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범죄라고 이야기한다. 8살 ‘진미’는 북한 당국의 기획으로 짜여진 대본대로 매번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담겠다는 리얼 다큐멘터리 오디션을 통해 진미를 만나게 된 제작진은 진미가 참여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기념행사 과정을 촬영하기로 한다. 그러나 제작진이 마주한 진미의 생활은 모두 조작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 집의 모습, 학교생활 등 모두 다 연출이었다. 진미의 집은 새로 지은 대형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고, 진수성찬이 차려진 밥상이 있는 부엌에는 흔한 식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속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 그들은 마치 감정을 표현하거나 느낄 수 없도록 조종받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 영상 속 북한 주민들은 결코 연출된 것이 아니다. 원래 늘 연출된 삶을 강요받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고, 조용히 돌아가는 카메라는 연출된 그들의 삶 그대로를 투영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연출된 것은 영화가 아니라 그들의 일상이다. 북한 사회에서 원래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란 찾아볼 수 없다.
온종일 경애하는 대원수님, 수령님을 찬양하지만 찬양의 이유도 자발적으로 혹은 진심으로 느껴본 적은 없다. 어린 나이에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로움과 즐거움은 빼앗긴 채, 강요당하는 삶의 무게가 버거운 듯 눈물 흘리는 진미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를 잘 전해준다.
한반도 모자 잔혹사–김규민 감독의 ‘겨울나비(2011)’
‘겨울나비(2011)’는 탈북민 출신 김규민 감독의 작품이다. 김규민 감독은 1990년대 초 고난의 행군을 직접 목격하고 겪었던 사람으로서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 아래 삼백만 명 아사의 비극을 영화로나마 표현하고 고발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시골 산골에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진호는 날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며 병든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11살 소년이다. 굶주림에 지쳐 꿈에서조차 닭을 잡아먹는 이 아이는 어머니만을 지극정성으로 생각하는 효자다. 어느 날, 엄마와 다투고 혼자 산에서 나무를 하다 사고를 당해 길을 잃게 된다. 진호는 그렇게 며칠 동안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길을 헤매다 무사히 산에서 내려온다.
집에 있는 엄마는 다친 진호를 걱정하며, 사진 속 친애하는 김일성 김정일 수령에게 간곡히 빈다. 하지만 장기간의 굶주림에 정신착란증세가 와서 흙을 집어 먹기도 한다. 어느 날 집에 커다란 셰퍼드 한 마리가 있는 걸 발견한 엄마는 진호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개를 잡아서 끓인다. 그리고 진호의 친구 성일이가 밖에서 부르는 순간, 진호가 사라졌다는 것을 문득 깨달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실제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2000년대 초까지 기근이 극심했을 때, 북한 곳곳에서 일어난 인육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실제로 굶주림과 지병으로 정신착란증세가 왔던 어떤 사람이 자신의 딸을 잡아먹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북한과 중국에 많이 회자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식량계획(WFP)은 북한 전체 주민의 3분의 1이 심각한 수준의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했다. 인간이 자유를 잃어버리고 우상이 지배하는 곳, 신명기 20장 57절에 기록되었듯 몸의 소생의 살을 먹게 될 것이라는 저주의 끔찍한 비극이 북한에서 펼쳐지고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천국의 국경선을 건너다–김태균 감독의 ‘크로싱(2008)’
한국인들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주목받았던 북한 주제의 영화를 손꼽으라면 배우 차인표가 주연으로 활약한 ‘크로싱(2008)’일 것이다. 이 영화는 2000년대 후반부터 국제사회에 드러난 탈북자들의 삶을 가장 사실적이고 휴머니즘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규모나 스케일, 작품성 면에서 크로싱 이후로 이렇다 할 북한 인권 영화들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 속에는 북한 해외 노무자, 꽃제비, 교화소 등 북한 정권에 의해 철저히 착취당하고 은폐된 인권 실태가 주인공의 내러티브를 통해 반영되어 있다. 한때 축구선수였고 탄광 노동자로 일하던 용수는 폐결핵 환자인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중국행을 결심한다. 간단한 감기약이나 항생제조차 구하기 어려운 북한 실정에서 용수는 약값을 벌기 위해 벌목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은다. 하지만 불법 노동 현장이 발각되며, 모은 돈을 모두 빼앗기고 불법체류자 신세로 경찰에 쫓기는 용수의 모습은 북한 해외 노무자들의 불안정한 삶을 보여준다. 그는 탈북 브로커에 의해 안전한 대한민국 대사관으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인터뷰에 응하면 돈을 준다는 말에 탈북자들을 대변해 인터뷰를 하지만, 그 길로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남한행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낯설지만 북한에 있는 아들 준이를 데리고 오겠다는 희망 하나로 열심히 남한에 적응한다.
한편, 아내는 곧 죽게 되고 아들 준이는 아버지 용수를 찾아 홀로 헤매던 중 꽃제비가 된다. 하지만 준이는 국경선 근처에서 붙잡혀 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영화는 많은 탈북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지옥보다 더 끔찍한 고문과 수용소를 보여준다. 한편, 준이는 머나먼 몽골 고비사막을 통해 한국 대사관에 가려고 국경을 지키는 공안들을 피해 도망가다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에서 외로이 짧았던 삶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준이의 신발과 유품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아버지 용수의 모습은 지금도 국경선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꽃제비들과 탈북 동포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비추는 것 같다.
탈북자들의 실제 체험한 증언은 사실 너무 끔찍해서 영상으로는 차마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고 한다. 영화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지만, 감독이 상영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스크린에서 보는 것보다 현실은 10배나 더 참혹했다는 감독의 고백도 있다. 이러한 영화들은 통렬한 현실 고발과 함께 탈북자의 인권에 대한 대중의 각성을 일으켰다. 2000년대 초반 북한 인권의 실태를 고발하며, 다양한 인권 활동과 청원 등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가혹한 고문 행위를 일삼던 북한의 20개의 정치범 수용소는 최근에는 폐쇄 및 통폐합되어 4개만 유지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전하는 시청각적 계몽이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창조적으로 담아내는 도구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면 사회가 각성되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이후로 북한 인권 영화들이 전하고 던지는 메시지의 기조도 조금씩 변했다. 이전에는 북한 인권의 비극을 노골적으로 전했다면 지금은 탈북자들의 한국 사회 적응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방침을 고발하는 영화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유튜브와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오늘날에도 북한은 언론과 미디어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폐쇄적인 국가다. 이러한 북한 사회의 진실을 보여주는 영상 자료와 문화 콘텐츠들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영상세대인 청년들 가운데 뜻있는 분들이 북한에 대한 주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북한의 처절한 인권 실태를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주길 바라며 이와 함께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북한에 대한 많은 증언을 영상 기록으로 담아내지 않는다면, 북한의 진실은 먼 훗날 역사 속에 사라질 수도 있다.
<kim2shine@gmail.com>
글 | 김수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글로벌교육협력 석사과정에서 시민교육을 전공했다. 9차 개정 교육과정 영어 능률교과서 집필위원과 바른교육학부모연합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데릭 프린스의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