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빈익빈 부익부)에 대한 진실

양극화(빈익빈 부익부)에 대한 진실

2021-09-03 0 By 월드뷰

월드뷰 SEPT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글/ 최정훈(중소기업재무경영연구원 대표)


양극화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고착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격차축소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양극화 의제는 크리스천들에게도 중요한 과제이다. 가난한 자를 돌보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등 어려운 자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가 모든 정책의 우선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대한민국의 양극화 이슈가 어떻게 시작했고, 양극화는 현재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양극화 이슈의 본격적 발단


2011년 4월 국세청 발표 2009년 종합소득세 자료에 따르면, 상위 20%의 1인당 소득이 10년 전인 1999년보다 55% 늘어난 반면, 하위 20%의 1인당 소득은 35%가 줄었다. 또한, 통계청 발표 2009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과거 10년 전 대비 소득 상위 1분위 가구와 10분위 가구의 소득 격차가 2배 늘어났다. 이후 각종 언론에서 소득 격차,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으며 양극화에 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그리고 2010년대 초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디씨인사이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 제기되었고 빠르게 퍼졌는데 당시 양극화 이슈가 가세하며 이내 대한민국은 급격히 소위 “헬조선”이 되고 있었다.


분노하라 드라이브


2015년에 장하성 교수는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청년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장 교수는 청년들에게 자신의 임금에 분노하라고 했다.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은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형태의 격차 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불평등을 방치하면 복지를 늘려도 불평등 해결은 안 된다고 하며 청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의 탓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격차를 만드는 바늘구멍을 넘을 것이 아니라 바늘의 존재에 분노하고 바늘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구체적으로,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 분노하고 행동할 것을 주장했다. 이후 그는 전국의 대학교와 대중 강연 등을 다니면서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에 분노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하라고 주문하며 양극화라는 프레임을 한국 사회 깊이 주입했다.


양극화의 진실 – 통계의 오독


과거 10여 년 전보다 지금의 소득 격차가 늘었으니 양극화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통계의 함정이 있다.

(1) 조세 범위의 변화

전 가구를 소득수준에 따라 10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가난한 1분위 계층의 평균 월급이 10만 원이고, 가장 부유한 10분위의 소득이 100만 원이라고 가정하자. 약간 비현실적이지만, 얼마 후 이 상태에서 월평균 5만 원을 버는 더 낮은 계층이 추가로 생겼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과거에 비해 소득 격차는 10배(10만 원과 100만 원)에서 20배(5만 원과 100만 원)로 벌어졌다. 격차는 2배 벌어졌지만, 이것이 반드시 나쁜 일인가 생각해보자.

비현실적 가정이라고 했는데, 앞에서 비교했던 1999년과 2009년 사이에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 1997년 IMF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김대중 정부는 신용카드 활성화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에 소득이 없는 대학생, 무직자들에게까지 신용카드를 쉽게 발급해 주었다.1) 그런데 이 신용카드의 사용으로 개인사업자들의 매출이 국세청에 그대로 드러났고, 사업자들이 고용했던 아르바이트, 단순노무자, 아파트 경비에게 지급한 급여 등도 철저하게 소득신고를 하게 되었다(급여를 준 것으로 신고가 되어야 사업주 본인의 수입에서 경비를 털어내게 되므로 사업주의 소득세가 줄어들게 된다. 과거에는 커피숍·호프집·주유소 등의 아르바이트 임금은 거의 현금으로 지급했다). 과거에 국세청 소득자료에 포함되지 않아서 소득통계에는 아예 없던 사람들의 소득이 잡히면서 2009년에 낮은 소득군으로 편입되게 되었다. 즉, 실제 소득의 변화가 없더라도 국세청에 소득이 잡히는 것만으로 상위 소득군과 하위 소득군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없던 하위 소득군이 생겼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2) 기업의 글로벌화

GDP는 성장했지만, 결국 기업들만 배를 불려주었고, 가계소득은 그만큼 증가하지 못했다고 하며 양극화를 주장한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기업과 정부가 다 가져가고, 가계 노동자들은 그 몫을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일부의 기업가와 고소득자가 저소득 노동자의 몫을 뺏어갔다는 논리이다. 여기서 하나 물어보자.

GDP 상승률과 임금상승률은 같은 비율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 맞는가?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를 과거에는 모두 국내에서 생산했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해외 생산 비중이 70%로 늘었다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국내의 노동자들에게 똑같이 나눠줘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많은 대기업의 산업구조가 매우 글로벌화되었다. 삼성전자 매출은 국내 판매 비중이 3%이고, 해외 판매 비중이 97%이다. 국내 공장보다 베트남공장에서 대부분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가 부가가치 생산에 기여한 것이 그만큼 작아졌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글로벌화 되는 나라의 공통된 현상이다. 노동보다 자본재인 생산 장비의 비중이 높아지고, 기업이 고도화될수록 이런 현상은 당연하다. 즉 노동자에게 돌아갈 몫을 기업이 뺏어가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따라서 글로벌 시대에 GDP 상승률과 임금상승률을 동일 선상에 놓고 양극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글로벌화에 잘 적응해서 한국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잘한 결과이다.

(3) 가구의 분화

두 자녀와 부모가 함께 사는 4인 가족이 있다고 가정하자. 두 자녀와 아버지가 각각 200만 원씩을 벌었다면 이 가구의 합계소득은 600만 원이다. 이 가정이 자녀 1, 자녀 2, 부모의 세 가구로 분화했다면 한 가구의 소득은 200만 원으로 떨어지게 된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가구의 분화가 많이 일어났다. 부동산 정책이나, 실질적인 소득 증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복지제도 등을 가구 분화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자녀가 결혼하더라도 대가족으로 함께 사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결혼하면 독립하는 것이 기본이 되었다. 부동산 정책도 가구 단위로 적용되기 때문에 자녀가 빨리 독립해 무주택기간을 쌓아두는 것이 유리하다. 노인들의 복지제도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노년의 부모가 자녀들과 가구가 분화되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많다. 이런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서 가구가 분화되었고, 그 결과 청년 가구나 노년 가구가 늘어나면서 통계상으로 저소득 가구가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역시 통계 착시 현상이다.


실제 양극화 정도 – 지니계수


[그림 1] 로렌츠 곡선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경제적 불평등(소득 불균형)의 척도는 지니계수이다. 사회 전체 가구원들을 소득수준에 따라 일렬로 세우고, 가로축과 세로축을 누적백분율로 표시할 때, 만약 사회 전 가구가 완벽하게 똑같은 소득을 가졌을 경우에는 45도 대각선이 된다. 현실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림과 같이 아래로 늘어진 곡선의 모습이 나온다. 이를 고안한 미국의 통계학자 로렌츠(M. Lorenz)의 이름을 따서 로렌츠 곡선이라고 부른다. [그림 1]에 나타난 이 로렌츠 곡선에서 A의 면적이 작을수록 이 사회의 소득이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탈리아의 통계학자인 코라도 지니(Corrado Gini)는 이를 이용해서 소득불균형을 숫자로 나타낼 것을 고안했다. 이 그림에서 삼각형 BCD의 면적에서 A의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을 지니계수로 명명했다. A가 줄어들어서 BD 대각선에 일치하게 되면 지니계수는 0이 되며, 이는 완전 균등을 의미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러한 사례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지니계수는 0과 1 사이에 존재한다. 대체로 지니계수가 0.4 이상이면 빈부격차가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0.7 이상이면 소득 양극화로 인해 심각한 사회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림 2]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니계수(가계동향조사)는 0.3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준임을 알 수 있고, 특히 이명박(2008-2013), 박근혜(2013-2017) 정권에 들어오면서 지니계수의 추이가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역대 진보 정권에서 지니계수가 올라가는 추이를, 보수 정권에서 지니계수가 낮아지는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림 3] OECD 국가의 지니계수 (2013)
[그림 3]에서 보듯이 양극화 프레임을 강하게 만들어가던 당시 2013년 기준 OECD 내 우리나라의 지니계수 수준은 OECD 평균이다. 그렇지만 인구 2천만 명이 넘는 나라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우리나라는 독일, 프랑스에 이어 3위로 지니계수가 낮다. 즉,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평등한 국가인 것이다.


인적자본지수(Human Capital Index)


세계은행(WB)에서 2018년에 인적자본지수를 개발해서 발표했다. 이는 그 나라의 보건(5세 생존율, 의료·보건)과 교육 상태를 반영해서, 오늘 태어난 아이가 18세까지 얻게 될 인적자본의 총량을 측정한 것이다. 즉 5세까지 아동 생존율, 학업 예상기간, 60세까지 성인 생존율 등을 측정해서 완전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을 때를 최대치 1로 가정하고, 0과 1 사이의 수치로 표현된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전 세계 157개국 중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교육열과 보건·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진 아시아 및 유럽권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인적자본지수가 높다는 것은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오늘 태어난 아이의 미래 생산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통계상 지표로 보면 어느 모로 보나 우리나라는 평등한 국가에 속해 있으며 미래가 기대되는 나라로 공인되어 있다.


사람들은 과연 양극화 때문에 분노하는 것인가?


2019년 7월 17일 자 블룸버그 오피니언에는 “사실 양극화(불평등)가 그들을 화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Maybe Inequality Isn’t What’s Making People Mad)”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는 미국인에게 부익부 빈익빈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지 1979년을 기준으로 두고 조사한 자료다. [그림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92년부터 2009년에는 양극화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17% 감소했지만, 실제로 지니계수는 20% 이상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를 문제로 인식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지니계수는 보합세를 유지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즉, 미국인들은 의외로 지니계수가 늘어날 때는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지니계수가 줄어들거나 보합일 때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비율이 높아졌다. 즉, 실제와 인식하는 것에 괴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급여가 올라가지 않으면 양극화가 심화된다고 느끼고(나만 어렵고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된다고 생각), 급여가 잘 올라가면 실제로 양극화가 진행되더라도 양극화가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론


우리나라에 빈부격차는 존재하지 않으며,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 통계로도 세대 간, 가구원 수 간 빈부격차는 존재한다. 가장 많이 빈부격차가 나타나는 계층이 65세 이상 노인이며, 단독 가구의 소득이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다.

크리스천은 그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돌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 하지만, 거짓된 양극화 프레임을 남발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 그런가 보다 하면 되지 뭐 그렇게까지 강력히 반대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라는 거짓을 방치해 둔 결과가 헬조선이라는 말의 탄생이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실패를 국가의 책임이라고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며, 그 결과는 현 정권의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다. 크리스천들은 특히 거짓을 경계하고 진리에 민감해야 한다. 거짓으로 쌓아 놓은 양극화 프레임은 철저히 꿰뚫고 경계해야 한다.

<calsams@gmail.com>


1) 결국 ‘묻지마 심사’ 신용카드는 2003년에 일어났던 신용카드 사태의 주범이 되기도 했다.


글 | 최정훈

트루스포럼의 운영위원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한라이프 보험설계사(MDRT 종신회원(14회)), 한국MDRT협회 사무국장이며 중소기업재무경영연구원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