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우 휄리스 꽁 제수스
2021-08-17
월드뷰 AUGUST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2 |
글/ 조혜경(작가)
브라질에서 선교하는 한 동문의 위급한 소식이 대학원 동문 카톡방에 처음 전해진 것은 5월 마지막 날이었다.
5월 31일/ 브라질 깜삐나스에서 사역하시는 GMS 박0주, 이0숙 선교사님 부부가 코비드에 확진되었고 두 분 다 폐가 많이 손상된 상황으로 호흡이 어려워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습니다. 두 분 다 기관삽입 호흡을 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 0윤이도 확진되어 입원 예정입니다.
160명이 넘게 모여 소식을 나누는 카톡방에서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심정과 함께 기도하겠다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브라질이라 내게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최근 무척 힘들게 브라질에 두 번 다녀온 경험 때문이다. 브라질 원주민 신학교에 강의하러 가는 남편과 동행했었다. 우리나라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브라질은 정말 멀고 먼 나라였다. 직항은 없고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어느 곳을 경유지로 선택해도 비행시간만 25시간 정도였다. 상파울루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들이기까지 한국의 집을 나서서부터 족히 36시간 이상이 걸렸다. 멍해진 머리와 뻣뻣하게 굳은 허리를 침대에 누이며 일정을 시작도 하기 전에 귀국할 일이 심란했었다.
6월 2일/ 안녕하세요. 저는 박0주 선교사님의 첫째 아들 박0우입니다. 저는 Manaus 삼성전자에서 일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코비드를 걸려서 Campinas에 있는 Madre Theodora라는 병원에 이번(입원)하셨습니다. 전체로는 이제 10일이 됐습니다. … 저는 평생 브라질에 살아서 한국말을 잘 못합니다. … 의사 성센님(선생님)이 메일마다 좀씩 상황이 개선된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우리 자녀 상황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막내 0윤이는 코비드 걸려서 치료를 집에서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지아나 집사님이 돌봐주시고 계십니다. 0은이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코비드 주사를 1차 받고 아기 여권을 기다리고, 한 4주 후에 2차 받으면 브라질로 옵니다. 저는 오늘 Campinas로 왔습니다. 마나우스에 와이 하께우(아내)가 39주차 임산부입니다. 아직 안난 우리 아기 까리나/박0연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아버지 핸드폰으로 동문 카톡방에 박 선교사님 큰아들이 서툰 한국말로 소식을 전해왔다. 그 한 통의 글로 박 선교사님 가족 상황이 환히 짐작되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브라질 상파울루의 신학교를 개척하신 김 선교사님 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김 선교사님은 우리 2년 후배로 브라질에서 결혼하고 그곳에서 자녀 4명을 낳으셨다. 원주민을 위한 신학교를 세우고 원주민 교회 세 곳을 개척해 활발히 선교 활동을 하시던 중 심장마비로 소천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당시 회사원으로 일하던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버지의 모교로 왔다.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이 대학에서 전공한 전기공학 관련 좋은 직장을 접기까지, 서툰 한국어로 공부해야 하는 한국의 신학교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심했을지 짐작되었다. 아버지가 시작한 원주민 신학교와 선교 현장을 외면할 수 없어 아들은 결단을 내린 것이다.
6월 3일/ 안녕하세요? … 오늘 우리 어머니에 상황은 좀 더 좋아지셨습니다. 정신이 좀 깨서 몸을 음지기고(움직이고) 계십니다만, 아직은 목에 삽관을 못 뺍니다. … 아버지는 열이 아직도 높고 새로운 항생제를 받으셨습니다. 근데 폐에서 조그만 구멍이 발견되서 가슴에 튜브를 다라(달았)답니다. 전체로는 의사가 상황이 좀 나빠졌다고 하십니다.
한국보다 의료 시스템이 열악하고 코로나 확진 환자가 많은 브라질에서 박 선교사님 부부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시는 것만도 나는 다행이라 여겼다. 팬데믹 상황이 되면서 선교사님들도 큰 타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분만도 카메룬, 우크라이나, 브라질,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등에서 선교 현장을 두고 귀국하셨다. 중국의 한 교회는 교회 출입문에 ‘출입금지’ 딱지가 붙고 교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교회는 남편이 방학 때마다 방문하여 신학 강의를 했던 곳인데, 여름성경학교에 어린이만 150명이 넘게 모일 정도로 부흥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3개월 단위로 비자를 주던 중국당국이 비자를 내주지 않아 선교사님 부부가 교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러자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많이 흩어졌다고 한다.
6월 5일/ 안녕하세요. 아버지 상황이 아직도 안 좋습니다. 혈액 투석을 하실 때 그 낮인(낮은) 혈압이 더 떨어진답니다. 아드레날린을 최대 주시면서 치료하신답니다. 심장과 신장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감기 폐혈증이랍니다. … 어머니 상황이 좀 더 낫지만 튜브는 아직 안 뺐습니다. 어제는 우리 엄마가 비디오로 캐나다에 있는 손녀를 보았습니다. video call로 같이 기도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 기도하고는 평환(평안)합니다. 많이 기도해주세요.
이 카톡은 한국시간 새벽 4시 10분에 도착했다. 나는 그때 깨어 있어서 “연합해서 기도하고 있어요. 힘내세요!!”라고 답을 달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소식이 올라왔다.
6월 5일 아침/ 담당 의사가 박0주 선교사님의 아드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소견을 말했다고 합니다. (GMS선교부)
6월 5일 오후/ GMS 미국지부에 올라온 가슴 아픈 소식 전합니다. 브라질 박0주 선교사님께서 6월 5일 19시 30분 소천하셨습니다. 박 선교사 장례는 현지에서 섬기는 아만다교회 주관으로 화요일 오후 1~3시 장례를 매장으로 집례하기로 했다고 알려왔습니다.
나는 맥이 풀렸다. 만삭의 아내를 두고 떠나와 부모님 두 분 다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마음을 졸이다가 아버지 소식을 직접 들었을 아들 생각이 먼저 났다. 그 심정이 어떨까…. 가슴이 먹먹하게 아팠다. 시차가 12시간인 브라질은 지금 겨울이다. 브라질의 겨울은 뼛속을 파고드는 한기가 있다. 아들 마음속을 파고들 한기가 느껴졌다.
6월 7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머니소직(소식)을 기다리면서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사랑하는 아버지의 영혼을 하나님에 따뜻한 성령에게 맞깁니다. 우리 아버지가 30년 동안 이 마른 나라 브라질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전도하시고 끝까지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우리 아빠를 꼭 잘 챙겨주세요. 우리는 여기서 우리 어머니를 잘 돌봐주겠스니 걱정하지 마라고 전달해주세요. 제 소원을 일어지겠 하셔서(이뤄지게 하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만 더 요청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어머니를 완전히 회복해주십시오. 간청합니다. 마음이 찌저지는 기분이 옵니다. 너무 슬퍼서 힘이 다 빠졌습니다. 저 부서진 영혼을 재발 다시 세워주세요. 이 무식하고 이 절망적인 0우 마음을 고쳐주세요. 하나님 계획이 이루어지는 사실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행위를 이해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다 하나님한테 맞깁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눈물이 가득 차올라 카톡을 제대로 읽기 힘들었다. 너무 슬퍼 힘이 다 빠진 아들이 찢어지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버지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말, 그럼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한다는 고백….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아들아!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영혼을 받으실 뿐 아니라 아버지는 지금 ‘천사도 흠모할 아름다운 모습으로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실 거란다!
님된나는 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이국땅에 뼈를 묻는 박 선교사님처럼 130여 년 전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신 선교사님들 묘지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양화진 선교사묘역은 고요했다. 방문객은 눈에 띄지 않고 일꾼 몇이 조용히 묘지 주변 풀을 뽑으며 정리하고 있었다. 첫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와 연세대학을 세운 언더우드, 첫 감리교회인 정동교회와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 이화학당을 세운 스크랜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세브란스 병원과 의학교를 세운 에비슨…. 너무도 귀에 익은 이름의 묘비가 6월의 따가운 햇볕 아래 고요히 서 있었다. 결핵을 알리기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했던 아들 셔우드 홀 등 3대에 걸쳐 6명의 가족이 합장된 로제타 홀의 묘, 아내와 자녀 등 7명이 함께 안식하고 있는 언더우드, 하디 가족… 많은 선교사가 가족과 함께 이 땅에 묻혀 있었다. 태어난 지 1년 이내에 사망한 어린이들 65명 무덤이 한 곳에 조성된 G 구역에서 나는 발걸음을 쉬 떼지 못하고 한참 서 있었다.
양화진 선교사묘역을 둘러보고 있을 때 브라질에서 거행된 박 선교사님의 장례식 사진이 전달되었다. 브라질 원주민들에 의해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되는 장례식 사진을 선교사묘역 중앙의 커다란 단풍나무 그늘에 서서 한 장 한 장 보았다. 박 선교사님의 평안한 영정사진을 보자 며칠 힘들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어디서 오는지 알 길 없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가 내 마음에도 차올랐다.
6월 9일/ 안녕하세요 우리 어머니가 어제 밤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개인병실로 온겼습니다 … 어제밤 저하고 0윤이가 엄마한테 아버지 소식을 들렸습니다(드렸습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어머니가 다 이해하시고 좀 더 좋아지시면 본인이 (동문 카톡방에) 말씀을 하시겠답니다. …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한테 막끼는 딸 0연이를 받기 위해 마나우스로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어머니 빨리 회복되길 기도해주세요, 아픈 마음을 치유되길 기도해주세요.
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이제 태어날 딸을 위해 아픈 어머니와 동생을 두고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아들. 주께서 그가 가는 길에 동행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6월 10일/ 안녕하세요. 우리 어머니가 이 순간에 병원에서 나오십니다. 기도해주시는 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치료해주시라는 기도를 요청합니다. 어머니 몸을 전체로 회복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박 선교사님 사모님 퇴원 소식과 아들의 감사 글을 읽자 포르투갈어 한 문장이 떠올랐다.
쏘우 휄리스 꽁 제수스!
브라질에서 배워 원주민과 함께 불렀던 찬송의 한 구절이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 후렴구가 브라질 찬송가는 “쏘우 휄리스 꽁 제수스(Sou feliz com Jesus) 쏘우 휄리스 꽁 제수스 메우 쌩욜(Sou feliz com Jesus, meu Senhor”이다. “예수님과 나는 기쁘다 예수님과 나는 기쁘다 나의 구주”라는 뜻이다. 지구 반대편 땅끝에서 찬송 가사 그대로의 삶을 사시는 박 선교사님 가족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해주실 것을 나는 믿는다.
자신의 꿈을 접고 아버지 뒤를 따라 신학을 선택했던 김 선교사님 아들도 그 힘든 신학 과정을 마쳤다. 작년에 강도사 인허와 목사 안수를 받고, 결혼하고 브라질로 돌아가 아기를 낳았다. 이 아들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아버지가 세운 신학교와 원주민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 어떤 풍파가 몰아친다 해도 오늘도 땅끝에서 선교는 진행 중이다. 예수님과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글 | 조혜경
2004년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2004), 기독신춘문예 대상(2006)을 수상하였고 문예진흥기금을 수혜(2006)했다. 저서로는 <꿈꾸지 않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