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의학인가, 성차 의학인가
2021-07-12
월드뷰 JUL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0 |
글/ 고두현(의사)
2013년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수면제로 사용되는 졸피뎀을 여성에게 투약 시 권고량의 절반으로 감량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이유는 여성에게 유독 졸피뎀 관련 부작용이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밤에 약물을 복용한 후 다음 날 아침 운전 중 가수면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낮에 주의집중 장애가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이 유독 여성에게 많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쏟아졌다. 이후 후속 연구를 통해 졸피뎀의 약물 대사가 남성과 비교해서 여성에게서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밝혀냈다. 원인을 추적해 본 결과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수컷 쥐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임상시험도 남성을 주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임상시험 단계에서 폐경과 월경 주기에 따른 여성 호르몬의 변화는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변수가 된다. 이를 정확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기에 임상시험에서 여성을 배제한다는 제약회사들의 공공연한 비밀이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생물학적 남녀 간에 존재하는 의학적인 차이를 연구하는 성차 의학(Sex specific medicine)이 크게 발전했다. 성차 의학의 목표는 남녀 간의 병리 및 질병의 특성, 약리 기전의 차이를 밝혀 임상에서 최적화된 예방, 진단,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하지만 최근 성차 의학이라는 정상적인 의학의 분야에 성을 젠더로 치환시켜 젠더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오용되고 있어 정상적인 성차 의학을 소개하고, 젠더 의학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성차가 발생하는 생물학적 원인
성차 의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남녀의 성차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아야 한다. 의학에서 남녀 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성염색체 X, Y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발생 과정 중 성염색체 Y에 존재하는 SRY(Sex determining region Y) 유전자가 남성의 생식기관을 발생하도록 유도한다. SRY 유전자의 발현으로 정소(Gonad)가 고환으로 분화되고, 고환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어 남성의 성 기관을 만들게 된다. 초기 성 기관 발달 주요 단계에서 SRY 유전자가 없거나, SRY 유전자가 있어도 발현되지 않으면 난소가 만들어지고 여성의 성 기관으로 발생하게 된다. 테스토스테론으로 대표되는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젠은 생물학적 성 기관을 결정할 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에 작용해서 남성의 특징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안드로젠이 안드로젠 수용체와 결합해서 배아줄기세포, 전립선 줄기세포, 조혈 줄기세포, 골수 줄기세포에 작용하게 되고 이를 통해 이차 성징, 정자형성, 근육과 지방의 분포를 결정해서 생물학적 남성의 특징을 갖게 한다. 이로 인해 성호르몬, 혈액, 근육량, 피하지방의 분포 차이, 즉 생물학적 성차가 발생하고 그 결과 생리학적 성차를 유발하게 된다.
성차가 의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금까지 성차가 발생하는 생물학적 원인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는데 이제 성차가 다양한 의학의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보겠다.
먼저 약리학 분야에서의 성차 의학을 알아보면, 미국에서는 1997년~2000년 사이에 10종의 의약품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서 회수된 일이 있었다. 이때 회수된 10종 중에서 8종이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Irving Zucker(2020)는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86개의 약을 대상으로 약이 체내에서 어떻게 흡수, 분포, 대사, 배설되는지(약동학)와 임상적 부작용의 남녀 차이를 비교, 분석했다. 전체 86개의 약 중에서 76개가 약동학적 남녀 차이가 관찰되었고, 59개의 약에서 여성에게 의미 있는 부작용이 관찰되는 것을 확인했다.
백신 예방 접종에서도 성차가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Klein, S.L.(2010)는 황열병(Yellow fever virus) 백신을 주사한 후 발현되는 면역계 유전자의 남녀 차이를 분석했다. 여성에게서만 발현되는 면역계 유전자는 597개, 남성에게서만 발현되는 유전자는 4개였고, 남성과 여성에게서 공통으로 발현되는 유전자는 63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방 접종 후 여성에게서 면역에 관련된 유전자가 더 많이 발현됨을 입증한 연구였는데, 백신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성차에 따라 백신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거나 심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였다.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서도 남녀 차이가 발생한다. 골다공증은 일반적으로 폐경 후 여성에서 발병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골다공증으로 인한 고관절 골절 환자의 1/3이 남성을 차지하는 것을 볼 때, 상당수의 남성 골다공증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협심증, 심근경색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은 미국에서 여성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심장질환에 대한 병태 생리학 연구가 남성을 기반으로 수행되었고 진료 지침 또한 남성 위주로 되어있다. 예를 들어 심근경색에서 전형적인 증상은 흉통인데 이는 누구나 알고 있어서 증상 발생 시 가장 먼저 심장질환을 의심하고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흉통을 동반하지 않은 오심, 소화불량과 같은 비전형적인 증상만 호소하는 환자도 20~30% 정도 되는데 이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많이 관찰된다. 이런 여성 환자들은 대부분 소화기 질환을 의심해서 진단이 지연되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통계에서 보면 남녀 간의 기대수명, 질병에 따른 사망률, 자살률에서도 명확한 차이가 드러난다. 2020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회원국 여자의 평균 수명은 83.4세, 남자는 78.1세로 5.3년의 남녀 차이가 있었다. 이런 경향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관찰되었는데 여성의 평균 수명이 3~10년 정도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7년 암에 의한 연령 표준화 사망률에서도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구 10만 명당 OECD 평균 사망률은 여성 54.9명, 남성 90.1명으로 남성에게서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살률에서는 성차가 극명하게 나뉜다.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은 여성보다는 남성에서 3배 높았다. 종합해 보면 사회, 문화적 영향으로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그 차이가 남녀라는 생물학적 성차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 성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성(sex)에서 젠더(gender)로
젠더 의학의 문제점을 말하기 전에 우선 젠더가 언제부터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또 그 용례의 변화를 알아야 한다. 젠더는 그 뜻이 명확하지 않아 국어로 번역되지 못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회, 문화적 의미의 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사용할 때는 그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생물학적 성과 구분되는 성 역할로 사용하기도 하고, 성 정체성으로도 사용되며, 생물학적 성과 성 역할 그리고 성 정체성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로도 사용한다. 젠더는 중세시대에는 ‘gendre’로 표기해, ‘종류, 유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1900년 무렵부터는 ‘남성, 여성, 중성’을 가리키는 문법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를 현대적 의미의 젠더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존스홉킨스대학의 심리학자 존 머니(John Money) 이다. 머니는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실험 사례를 발표하면서 젠더가 생물학적 생식기관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양육과 교육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확산하면서 1980년대 학계에서 젠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여기서 젠더는 타고난 성에 국한되지 않고 반복적, 후천적인 행위의 결과로서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즉 남성과 여성이 아닌 다양한 성, 유동적인 성,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성을 말하는 것이다. 추후 머니의 젠더 실험 사례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젠더라는 용어는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되었다. 젠더가 공식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사용된 것은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였다. 여기서 성별이라는 용어를 섹스 대신 젠더로 채택했다. 또한, 성인지 관점을 모든 연구, 행정 절차, 법 제정에 반영하는 정책인 젠더 주류화를 회원국에 의무화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젠더 정책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젠더 의학도 젠더 주류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젠더 의학은 2005년 론다 슈빙어(Londa Schiebinger) 교수가 젠더 혁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젠더 혁신은 젠더 분석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해서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슈빙어는 3가지 전략을 주장했는데 첫째는 숫자 고치기(fixing the numbers)이다. 이는 연구 현장, 의사결정기구, 연구 참여자의 성비 불균형을 없애라는 것이다. 둘째는 기관 고치기(fixing the institutions)이다. 젠더 평등에 장애가 되는 조직문화, 제도를 전부 제거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지식 고치기(fixing the knowledge)이다. 이는 젠더 분석을 과학/의학 분야에 적용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조하라는 것이다. 슈빙어는 이 3가지 전략에 맞춰 국제기구, 학술 단체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UN, WHO, 기타 NGO, 학술 단체들은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그 결과 유럽에서는 1,700억 유로(한화 230조)의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Horizon 2020 사업에서 연구비 심사 시 젠더 연구 방법을 필수 사항으로 채택했고, 의학 학술지 편집 정책에서도 논문 게재 시 젠더 분석을 포함 시키기를 권고했다.
젠더 의학 어떤 문제가 있나?
성차 의학을 젠더 의학이라고 할 때의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일단 의학에서 젠더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그 용례는 대부분 생물학적 성(Sex)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젠더에 따른 연구 결과’라고 발표된 논문을 찾아보면, 젠더를 남성(male), 여성(female)으로만 구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의학적 차이는 젠더가 아닌 X, Y 염색체에 기반한 생물학적 성에 의해 도출되기 때문이다. 젠더가 심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반증이다. 젠더는 자기 생각과 느낌에 따라 변하는 허상 같은 개념이고 정의도 모호하다. 젠더에 따른 의학적 차이가 발생해도 이는 성 정체성 혼란에서 유발되는 정신질환 문제, 비정상적인 성행위에서 오는 건강상의 문제, 젠더에 따라 편중된 위험 행동(음주, 흡연) 등에서 찾아야 한다. 질병의 발생에는 생물학적 성차와 함께 영양 상태, 생활 습관 등의 사회, 문화, 환경적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젠더 연구자들은 생물학적 성을 제외한 모든 영향을 젠더 차이에 의해 유발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모든 사회, 문화적 원인이 ‘젠더와 연관된다’라고 판단할 근거는 전혀 없다. 또한, 질병 발생에 생물학적 성보다 젠더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질병마다 생물학적 성차, 사회, 문화적 차이가 복잡하게 영향을 미치기에 어떤 것이 주요한 병인인지 밝히기가 쉽지 않다.
의학에서 남녀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에 관련된 의학을 성차 의학으로 부르고, 실제 의료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성 혁명 사상에 오염된 젠더 의학에서는 남녀 이외 트랜스젠더, 수많은 종류의 젠더퀴어, 그리고 간성 까지 정상으로 인정하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객관적인 과학의 영역이 아닌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하다. 따라서 우리는 젠더 의학이 아닌 성차 의학이라고 불러야 한다.
<kodh9923@naver.com>
글 | 고두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천대 의학전문대학원 석사를 마친 후 안양샘병원 내과, 인하대병원 소화기내과에서 전임의 수련을 받았다. 현재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연구팀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