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창조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창조되었다

2021-07-11 0 By 월드뷰

월드뷰 JUL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글/ 이왕재(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성경이 말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니 사람이 산 사람(생령)이 되니라(창 2:7).” 이 말씀은 앞뒤 내용을 살필 때 남자인 아담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반론을 설명한 것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창 2:20~21)” 라는 설명을 보면 분명 하나님은 남녀를 다르게 창조하셨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과연 그럴까? 창세기의 남자와 여자의 다른 창조 양상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자.

발생학적으로 볼 때, 수정되는 바로 그 순간에 남녀의 성은 결정된다. 즉, 남자의 성염색체인 X, Y와 여자의 성염색체 X, X가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수정 즉시 남녀의 성은 확정된다. 구체적으로 남자의 X와 여자의 X가 만나면 여성(XX), 남자의 Y와 여자의 X가 만나면 남성(XY)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수정란이 모체의 자궁에서 착상이 되어 발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시기까지는 전혀 남녀의 차이를 알 수 없게 발달이 이루어진다. 결국, 남녀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생식기관의 발달 양상이다. 소위 미분화성샘 (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시기의 성 기관 전구체) 발달이 진행되어 어느 시기가 되면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어 확연하게 남녀를 외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남자는 남성의 외부생식기가 두드러지게 발달하고, 여성은 여성 고유의 외부생식기 형체를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분명 수정란 상태에서는 외부적으로는 남녀를 결코 구분할 수 없다. 미분화성샘의 발달 시기까지는 그 차이를 알지 못하다가 발달의 어느 순간부터 외부생식기 모양의 차이에 의해서 남녀의 외부적 구분이 명백해진다는 뜻인데 이는 남녀의 외부생식기가 실은 같은 줄기세포에서 유래함을 의미한다. 그 양상을 보면 대개는 같은 줄기세포인데 남성에서는 발육을 촉진시켜 남성의 성기를 형성하게 하는가 하면 여성에서는 발달을 억제해 그 결과 음핵이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결국,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음핵은 같은 줄기세포에서 유래했음을 알게 해준다. 이런 식으로 남녀는 유독 생식기관에서만의 차이에 의해서 외견상의 성별이 나누어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발생학적 차이를 바탕으로 남녀의 차이가 기술될 것이다.

그 이전에 추가로 살펴볼 부분은 수정 전후의 현상이다. 수정은 전적으로 정자 주도로 이루어진다. 일단 질 속에 사정된 정자의 수는 정상적으로 3~5억 개에 이르는데 질 속에서 대부분 희생당하고 극히 소수(300~500마리)만이 살아남아 자궁을 통과하는데 이때 다시 대부분(90%)이 희생당하고 오로지 10% (30~50마리)만 생존해 나팔관 (자궁관)에 진입하여 그중 가장 생존력이 강하고 운동성이 뛰어난 한 마리만 자궁관 팽대부에 가부좌 틀고 기다리는 난자와 수정을 이루게 된다. 난소에서 배란된 난자는 전혀 운동성이 없으므로 전적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난소에서 배란되어 자궁관 팽대부까지 운송된다. 수정과정을 살펴보면 부지런한 정자가 꼼짝 않고 자궁 팽대부에서 기다리는 난자에 접근함을 알 수 있다. 향후 성경에 기술된 남성과 여성의 역할 차이에 대한 중요한 점들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성경 창세기에 남자는 죽도록 일을 해 가족들을 부양해야 함을 기술하고 있지만, 여성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더하신다고 기술되어 있다. 즉, 여성이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여성에게는 출산이라고 하는 그 어떤 일보다도 의미 있고 중요한 역할이 숙명적으로 짐 지어져 있기 때문임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 기본 원칙이 깨지면서 가정 해체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남녀는 평등하다. 그러나 차이는 있다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지만, 결코 동등할 수 없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어찌 동등할 수 있겠는가? 키가 큰 사람은 큰 사람에 맡는 역할을 하고 작은 사람은 작은 사람에 맡는 역할이 정당하게 인정될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평등임에도 그 사실을 종종 많은 사람이 잊고 동등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사회의 질서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우월하다. 키가 더 크고 근육량도 더 많아서 힘도 더 강하고 체중도 더 많이 나간다. 그에 맞추어 남성은 여성보다 휴식 상태의 호흡량도 기본적으로 더 많다. 예컨대 휴식 상태의 아주 평온한 상태에서 남성은 일 회 흡입하는 호흡량이 650ml 정도인 데 반해 여성은 450ml 정도다. 꽤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흡입된 산소를 운반하는 차량의 역할을 하는 적혈구의 수도 남성이 여성보다 약 20% 가까이 많은 것이 정상이다. 우리 몸을 방어하는 또 다른 혈구 세포의 하나인 백혈구 수에는 남녀의 차이가 없음을 고려해 보면 분명 남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여성이 평생 에너지를 덜 쓰면서 살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아주 흥미로운 점은 남녀 지방조직의 분포양상의 차이다. 원론적으로 지방은 저장된 에너지이다. 그래서 탄수화물 (4Kcal/g)보다도 무려 2배(9.4Kcal)가 넘는 에너지 효율을 나타낸다. 그러한 지방의 분포양상을 보면 남녀가 분명하게 차이를 보인다. 남성은 운동으로 단련된 경우 신체의 특정한 부위의 아주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지방조직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은 전혀 다르다. 신체 단련을 통해 군살 하나 없어 보이는 여성이라 하더라도 전체 피하에 지방층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 다만 신체 유지를 위한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지방층의 두께가 달라질 뿐이다. 심지어는 필자가 해부실습 때 만났던 시신의 경우 거의 제대로 드시지 못한 채로 길거리에서 사망한 할머니로 소위, ‘무연고 시신’이었는데 외견상으로 많이 마른 분이었는데 막상 시신 해부를 위해 피부절개를 했을 때 온몸에 노란 지방층이 얇게 자리 잡고 있어서 해부하는 데 꽤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이후 해부학 교수가 되어서도 이러한 현상은 끊임없이 관찰되었다. 즉, 여성에게 있어서 피하지방은 단순히 저장된 에너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지방은 여성 피부의 유연한 탄력성과 매끄러운 피부 유지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 나아가 체온 유지를 위해 남성보다 에너지를 덜 생산해도 되는 좋은 단열재로 무장되어 있으니 여성들이 산소를 덜 사용하고 그래서 수명도 10% 이상 남성보다 길 수밖에 없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남녀 간의 차이는 우리 몸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호르몬의 양의 차이다. 특히 성호르몬이라고 이름 붙어 있는 호르몬은 남녀에서 모두 생산되지만, 그 생산량과 조절에 있어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남성 호르몬의 대표인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은 남녀가 모두 생산하지만, 남성에서 훨씬 많은 양을 생산하고 주로 남성에게 작동되어 충동적인 성행동 양상을 주도하고, 수염이 나게 하며 근육량을 유지해주는 등 남성을 남성답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반대로 에스트로젠이라는 여성 호르몬은 남녀 모두에서 생산되지만, 여성에게서 더 많은 양이 만들어질 뿐 아니라 남성의 경우 간에서 그 호르몬을 비활성화시킴으로 주도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여성을 여성답게 유지해주고 가임기간에 있는 여성에게는 배란을 주기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생식에 대단히 중요한 호르몬이다. 이상의 차이들을 요약하면 결국은 남성과 여성은 생식기관의 차이가 전부며 근본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이 차이에 근거하여 이어지는 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님이 남녀의 차이를 만드신 이유


왜 하나님은 이러한 차이를 만드셨을까? 그 역할이 분명하게 다르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앞의 창세기에서 정확하게 다르게 제시된 역할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평등(말로는 그리하지만)하다고 하지만 실제는 동등함의 주장 하에 이루어지는 보이지 않는 강한 사회적 추진력이 가정 해체의 시작이 되고 있음이 실로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출산과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여성들이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듣기 좋은 명분 아래 산업 현장으로 나올 때 가정 해체의 발단이 제공되는 것이다. 우선 능력이 우수하여 산업현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들은 당연히 일을 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기여해야 하지만 그 결과들을 보라. 우선 경제력이 생기니 결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성경적으로 볼 때 경제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배우자인 남성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경력 여성들의 결혼관은 독신도 문제없다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어렵사리 결혼한 경우에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결혼생활의 가장 중요한 축인 축복 된 성생활의 유지가 거의 불가능하다. 힘들고 피곤하면 성의 즐거움을 터득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의무감으로 이루어지는 성생활에 의해 자녀를 낳기도 어렵지만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이후에 이어지는 원만한 성생활의 실패는 가정파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배우자의 외도가 유일하게 크리스천에게 허용된 이혼의 사유임을 인지할 때 크리스천임에도 너무나 많은 부부가 이혼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마치 모든 가정 해체의 문제가 여성에게만 있다는 투로 기술된 듯하여 필자도 마음이 불편하다. 다만 이 글은 가정 해체의 모든 이유에 대한 글이 아니고 가정 해체와 연관을 지을 수 있는 남녀의 차이에 대한 신앙적, 과학적 이유만을 따지다 보니 여성의 적극적 사회참여라는 시대적 추세 때문임을 고려해 주시기를 당부한다.

<kinglee@snu.ac.kr>


글 | 이왕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해부학(면역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면역학회 회장, 대한해부학회 이사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보건복지부 보건의료 R&D 전략기획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비타민C 박사의 생명이야기〉, 〈비타민C가 보이면 건강이 보인다〉, 〈생명의 파수꾼 비타민C가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