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목적 알면 결혼 안 할 이유 없다
2021-05-08
월드뷰 MA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6 |
글/ 이병준(목사, 파란리본 카운슬링&코칭 대표)
“난 결혼 안 할 거고 결혼하더라도 자식 낳을 생각 없어요. 주변에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결혼해서 사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요. 그 어렵다는 대기업에 입사해 뼈 빠지게 돈 벌어 처자식 위해 다 쓰고 나면 자기는 뭔가요? 그건 너무 불합리해요.” 이렇게 말하는 30대 중반의 처조카는 미혼(未婚)이 아니라 비혼(比婚)을 선택했단다. 이렇게 말하는 처조카(작은 아들)와 이태 전에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큰아들로 인해 큰 처형은 지금 죽을 맛이다. 왜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할까?
‘홀로’는 똑똑한데 ‘관계’엔 젬병이다
제도화된 교육, 즉 학교는 인간의 최소단위를 ‘나 (I)’로 규정하고 한 개인으로서의 인권존중과 “네가 원하는 대로”의 교육철학을 주입했다. 여기엔 “네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암묵적 동의도 있다. 이 관점에서의 행복은 ‘개인’의 만족이며 이타적인 행위를 불필요한 희생이나 불합리한 처사로 간주한다. 사회 분위기와 대중문화는 이를 더 부추긴다. 그래서 요즘 부쩍 YOLO (You Only Live Once) 족이 늘었다. 한 번 밖에 못 사는 인생인데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고 애쓰는 그런 인생만 살다가 죽지 말라고 강조한다. 욜로족은 홀로족의 특성이며 미래로 갈수록 더 늘어날 것이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라는 가수 김연자 씨의 “아모르 파티”는 가히 홀로족의 주제곡이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시의 1인 가구의 비율이 40%를 넘었고 절대다수가 청춘들이다. 그런데, 결혼은 최소단위가 둘인 ‘관계’로 시작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모든 관계에는 나름의 관계 패턴이 있다. 그래서 나는 부부 상담을 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부부관계 패턴 분석’이다. 도망가는 자와 잡으러 가는 자, 숨는 자와 찾아내는 자, 형사와 용의자, 군림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 수다쟁이와 침묵쟁이, 천사와 악마 등의 여러 관계 패턴이 있다.
많은 부부가 자신들의 관계 패턴을 확인하고는 적잖이 놀란다. 그동안의 관계 패턴이 갈등과 불행을 초래했다면 소통과 행복을 만드는 새로운 관계 패턴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여기에는 ‘끌림’이 아니라 ‘예의’에 바탕을 둔 소통법이 가장 먼저 요구된다. 연애는 ‘끌림’ 즉 감정이며 나 중심이지만 결혼은 ‘예의’에 초점을 둔 ‘의지’를 동원해야 하는 이타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등장한 행복심리학(긍정심리학)에선 이기적인 사람 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강조한다. 이타성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것은 인간을 위한 사랑이었다. 특히 마지막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덴동산을 만드는 일에 어떤 기여도 안 한 인간이 에덴동산의 모든 풍요를 누린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이 더 기뻐하는 것,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통해 이타적인 행위를 할 때 베푼 당사자의 내면에서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솟아나는데, 이것을 ‘자기효능감’이라고 한다. 욜로족의 내면이 ‘자존감(self-esteem)’에 초점을 두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더불어족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에 초점을 두어 상대를 위한 행복, 더불어 얻는 행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아주 친한 몇 사람을 집들이에 초대했다고 하자.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준비하는 음식이 내가 의도하는 대로 되었다면? 완성된 상차림을 보면 뿌듯한데 호스트로서 ‘심히’ 기쁜 순간은 초대받은 손님(나와 가까울수록 더)이 내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다. 음식을 즐기는 사람은 손님인데 그것을 준비한 내가 더 기분 좋은 것, 바로 그것이 자기효능감이다. 음식준비부터 상 차리기, 나중에 뒷정리까지 내가 수고해야 하는데 수고한 당사자가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는 ‘관계의 역설’이다.
결혼의 목적을 제대로 안다면 결혼 안 할 이유가 없다
청춘들의 눈에 비춰진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자기가 봐도 죽도록 고생해서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젊음을 다 보내고 가끔 부부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다면 말이다. 그래서인지 “저는 우리 부모님이 저한테 하셨던 것처럼 제 자식에게 해줄 능력이 없어요.”, “결혼이 우리 부모님처럼 사는 거라면 저는 그런 결혼 안 할래요.”라며 결혼 포기를 말하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 또 결혼은 아무래도 여성들에게 불합리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남편(아버지) 때문에 속상하고 부부싸움이나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혼자 눈물 삭히는 엄마의 모습을 본 딸에게는 결혼이 혐오 자극일 뿐 선호 자극일 수 없다. 또 평생을 힘겹게 살아온 엄마가 딸에게 “너는 절대로 네 아버지 같은 사람 만나지 마라.” 라거나 “너는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면서 평생을 살아라.”라고 말하며 비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모님 세대에는 결혼의 진짜 목적을 잘 모르고, 그저 생존의 차원에서 결혼생활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의 목적은 무엇일까?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은 지구상 최대의 거짓말이요, 대중문화의 세뇌일 뿐이다. 물론 지금도 동화나 영화, 대중가요나 드라마는 그런 내용을 계속 그려내고 있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C. Jung)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결혼을 통해서 신분 상승을 꿈꾸려는 무의식이 있다. 용사나 전사, 영웅이나 정복자를 기대하는 것은 남자에 대한 여자들 집단 무의식이고 천사나 선녀, 우렁각시나 평강공주를 기대하는 것은 여자에 대한 남자의 집단 무의식이다. 전자를 ‘신데렐라 신드롬’이라고 하고 후자를 ‘온달 신드롬’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마치 복권도 안 산 사람이 당첨되기를 희망하는 것과 같고, 어떤 투자도 하지 않은 사람이 배당금을 듬뿍 받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해외여행을 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만약, 비행기를 열 시간이나 타고 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기후와 풍경, 사람과 음식이 한국과 똑같다면 가겠는가? “안 간다”가 아니라 “미쳤냐?”라고 반문해야 한다.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와 목적은 단 한 가지다. 다른 것을 즐기러 가는 것이다. 한국과 다를수록 여행지의 매력은 크고 가격도 높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완전히 다르게 창조하셨다. 즉 결혼은 ‘완전히’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그 다름을 평생 엔조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세 가지 차원의 즐거움이 있다. 첫째, 몸과 몸의 엔조이는 성(sex)이다. 짐승은 종족보존을 위해서만 성을 사용하지만, 사람은 종족보존 외에도 친밀감을 위해서 성을 사용한다. 짐승은 암컷이 엎드리고 수컷이 뒤에 서는 후배위의 교미(交尾)란 용어를 쓰지만, 사람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전인격적인 교류로써 성교(性交)라는 표현을 쓴다. 성을 누리기 위해선 생물학적 남자(♂)와 여자(♀)가 필요하다. 남자와 여자는 상호존중과 인격적 배려를 바탕에 두어야 만족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각적 출동이 가능한 남자에 비해 10~20분의 예비 작업(전희)을 필요로 하는 여성의 신체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결혼한 여자가 정기적으로 오르가슴을 경험하고 산다는 것은 그녀의 남편이 배려심이 많은 남편이란 뜻이다.
둘째, 마음과 마음의 엔조이는 정서적 교류이다. 부부가 되어 마음과 마음이 통할 때 그 행복은 아주 특별하다. 이 영역의 교류가 많을수록 부부는 마치 오랜 친구와 같은 관계로 발전한다. 그래서 행복한 부부관계는 ‘사랑(love)’을 넘어 ’우정(friendship)’으로 결속된다. 창밖에서 세레나데를 불러 주고, 장미꽃을 갖다 바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푸념을 푸념으로 받아주고 오롯이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의 편안함도 필요하다. 정서적 교류를 도와주는 분야가 문학과 예술인데 그런 까닭에 국어, 영어, 수학은 생존의 3 교과이지만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행복 3 교과인 음악, 미술, 체육이 필요하다.
셋째, 영과 영의 엔조이다. 사람은 밥 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밥이 아무리 풍요롭게 제공되어도 존재 이유와 목적이 없으면 공허하다. 이것을 실존적 공허감이라고 한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 중 복지국가일수록 자살률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한국의 자살률 또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데 외적으로는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지만 영성적 삶의 가치가 턱없이 부족해 정신적 영양실조나 아사 현상이 자살로 드러나는 까닭이다.
결혼은 창조주를 닮은 창조자로 사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탁월한 실력으로 풍요와 인정을 얻는 사람이다. 남을 행복하게도 만들지만, 자신도 그것을 통해 행복을 누린다. 마찬가지로 결혼의 행복은 남편과 아내 각자가 배우고 익힌 전문가가 되어 창조해 내는 기술이다. 임신하고 출산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창조의 행위요,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창조자의 삶이다. 결혼의 시작은 남편과 아내로 출발하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날, 엄마 아빠로 탄생한다. 예술가가 되는 과정이 어렵기만 하고 부담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과정일 뿐, 높은 수준에 이르고 나면 그때부터 얻는 부와 명예를 비롯한 삶의 유익은 실로 엄청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부담과 의무로만 가득 찬 세계가 아니라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면서도 나도 행복하게 사는 예술 행위다. 관계적 실력이 탁월할수록 얻는 유익이 많다. 따라서 욜로족으로 살면 평생을 홀로족으로 살아야 할 테지만 더불어족으로 살면 더 불어나는 삶의 신비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ddr3651@hanmail.net>
글 | 이병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목사이며 파란리본 카운슬링&코칭 대표이다. 심리상담학 박사이며 부부 상담과 자녀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 부부 어디서 잘못된 걸까>, <왕이 된 자녀 싸가지 코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