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문제, 변화되는 관계
2021-04-28
월드뷰 APRIL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4 |
글/ 장시경(강사)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작은 도움은 얼마나 유효할까? 커다란 문제는 인간관계를 깨지게 한다. 문제 앞에서 개개인의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던 작은 존재의 도움과 협력으로 다른 결말을 맞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첫 번째 책은 우크라이나의 옛이야기를 러시아의 글 작가 알렉세이 톨스토이(Aleksey Nikolaevich Tolstoi, 1883-1945)가 재화해 발표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커다란 순무’라는 이야기이다. 작품 발표 이후 많은 작가가 이야기를 각색하고 그림을 더해 여러 버전의 순무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지면에서 소개할 책은 헬린 옥슨버리(Helen Oxenbury)가 상상력을 더해 그린 <커다란 순무>이다.
이 이야기의 줄거리와 구조는 무척 간단하다. 밭에서 커다란 순무가 자라자 할아버지 농부 혼자만의 힘으로는 순무를 뽑을 수 없게 된다. 이에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하고, 할머니는 손녀에게, 손녀는 개에게, 그리고 고양이와 쥐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모두가 힘을 합쳐 결국은 거대한 순무를 뽑아내는 이야기이다. 단순한 줄거리에 반복되는 구조와 짧고 간결한 텍스트, 뽑힐 듯 뽑히지 않지만 결국은 뽑히고 마는 순무 이야기는 어린아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한다. 제목과 소재부터가 그렇다.
원제목은 엄청나게(great), 크고(big), 어마어마한 (enormous) 순무인데 순무는 일반 무보다 훨씬 작은 품종이기 때문에 제목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순무는 크기도 작고 맛도 없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빠른 속도로 자라고 영양도 풍부해, 가난한 러시아 사람들이 그나마 손쉽게 먹을 수 있었던 채소였다. 여러 채소 중에서 순무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표지 그림을 보면 순무밭에 유난히 큰 순무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세 사람과 강아지까지 올라타고 있다. 이 순무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가정을 먹여 살린 채소였을 테니 순무는 실로 커다란 존재였을 것이다.
차례차례 소환되는 인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러시아어로 순무(Repka), 할아버지(Dedka). 할머니(Babka), 손녀(Vnuchka), 암캐(Zhuchka), 암고양이(Koshka), 암쥐(Myshka) 모두 ka로 끝나기 때문에 러시아 원 텍스트를 읽을 때는 리듬감이 더욱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문장 구조에 운율이 맞아 읽는 재미가 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개와 고양이, 고양이와 쥐는 관계가 나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인물 사이에도 서로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가 존재한다.
볼품없이 마르고 허름한 작업복 차림인 농부 할아버지와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장식품으로 가득한 생활공간에서 지내는 풍채 좋은 할머니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카락 한 올도 흘러내리지 않게 올린 머리, 어깨에 두른 숄과 뾰족한 부츠를 신은 그녀는 결코 할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지 않을 것 같다. 할아버지는 이런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할머니의 도움으로도 부족하자 할머니는 손녀에게 도움을 청한다.
얌전한 할머니와 대비되게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녀도 할머니와 일상을 같이 할 것 같지 않다. 관계가 어떠하든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모두가 차례차례 순무 뽑기에 동참한다. 그리고 도움이 될까 싶은 가장 약한 등장인물인 쥐까지 합세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순무가 뽑힌다. 표지를 넘기면 나타나는 표제지에 생쥐 홀로 당당하게 그려져 있는데 생쥐가 그려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가 협력했을 때에라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 가장 약한 자가 가진 힘, 그것을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모두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의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림은 헬린 옥슨버리가 그린 초기작품으로 펜화에 색연필과 수채화 물감으로 색을 칠하는 방식을 썼는데, 이는 그녀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던 남편 존 버닝햄(John Burningham)의 영향을 느끼게 한다. 그림의 구성과 시점을 보면 그림책 작가로서 첫발을 뗀 헬린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순무 뽑기의 고단함을 강조하기 위해 원경과 근경을 섞어서 사용했고, 시점이 높은 앵글과 평면적인 구도, 페이지마다 원근감의 깊이도 달라서 역동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분위기를 전한다. 그림책을 보면서 작가가 선택한 구도까지 깊이 생각하는 독자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림의 구도는 독자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이야기의 주제에 한결 깊게 접근하도록 이끈다. 순무는 보이지 않지만 줄기 끝자락을 잡고 당기는 이들의 모습이 높은 앵글로 나타나면, 독자는 드러나지 않은 순무가 얼마나 클지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순무가 나타나지 않는 장면이 반복되며 이 책의 핵심이 커다란 순무에 있지 않고 순무 뽑기에 동참하는 이들 자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순무 뽑기에 동참하라고 요청하는 모든 장면에 도움을 청하는 이는 원경에서 작게, 받는 이는 근경에서 크게 그려진다. 개와 고양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개가 분명 힘이 있지만, 그림에서는 이 관계가 역전돼 보인다. 개는 화면의 끝에서 작게 그려지지만, 고양이는 페이지가 꽉 차도록 크게 그것도 꽃을 병풍 삼아 그려졌기 때문이다. 자유를 방해받아 심기가 불편한 고양이에게 개는 부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쥐는 어떻게 그려졌을까? 생쥐 공간에도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져 있을까? 생쥐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원근감이 무척 깊게 잡힌 그림에서 생쥐는 그 어떤 존재보다 크게 그려진다. 왼편 뒤쪽, 저 멀리 조그맣게 나 있는 쥐구멍 끝에 있는 고양이와 대조적으로 말이다. 이러한 인물의 소개 페이지를 보면 누구에게나, 아무리 하찮은 쥐에게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자기만의 영역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순무 뽑기에 임하는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과연 저래서 순무가 뽑히겠나 싶다.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 할머니를 자세히 보면 할아버지의 멜빵을 당길 뿐이고, 강아지는 손녀의 치맛자락을, 고양이는 개의 꼬리를 물고 있으니 말이다. 실질적인 도움을 못 주고 있지만, 표정만큼은 무척 진지한 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난다.
마침내 순무가 뽑히고 모두가 한데 뒤엉킨다. 그리고 식탁에 오른 커다란 순무 주위로 모두가 둘러앉아 있는 장면으로 책은 끝이 난다. 시선의 교차 없이 제각기 다른 곳만 쳐다보던 이들, 한 줄로 서서 앞 인물의 뒷모습만 보던 이들이 마침내 큰 문제를 해결한 후 시선을 나누고 한 줄이 아니라 둘러앉아 있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두 번째 소개할 책은 <구덩이에서 어떻게 나가지?>라는 일본 그림책이다. <폭풍우 치는 밤에>라는 작품으로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과 고단샤 출판문화상을 받은 기무라 유이치가 글을 썼으며, 만화 같은 그림 스타일로 사랑받는 그림 작가 다카바타케 준이 그림을 그렸다.
숲에서 들고양이 두 마리에게 쫓기던 들쥐 세 마리가 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뒤쫓아 가던 들고양이들도 함께 구덩이에 빠진다. 구덩이에 들쥐와 들고양이가 함께 빠졌으니 더욱 큰일이다. 세로로 긴 판형에 펼침면 가득 구덩이가 그려져 있어 이들이 빠진 구덩이가 무척 깊어 보인다.
배부터 채우고 나갈 궁리를 하자는 들고양이에게 들쥐는 힘을 합쳐야만 나갈 수 있으니 자신들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며 들고양이를 설득한다. 하지만 어떤 순서로 어떻게 나가야 모두에게 좋을지 반론에 반론을 거듭하며 들고양이들과 들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는 동안 비가 내리고 왈칵 구덩이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며 고양이도, 쥐도 구덩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문제에 몰입한 이들은 구덩이에서 나온 줄도 모르고 밤이 이슥하도록 구덩이에서 나갈 방법을‘아주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또 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구덩이에서 나오려는 일념으로 서로의 어깨에 발을 딛고 서며, 자신 위에 올라탄 상대의 발을 놓칠세라 꽉 잡고 진지한 표정을 한 이 동물들의 모습이 유머러스하다. 탈출에 성공해 들쥐들을 잡아먹으려는 상상 속 들고양이들의 표정 또한 과장되고 익살스러워 웃음을 자아낸다. 구덩이에서 탈출해야만 살 수 있다는 절박한 현실의 문제와 대조적으로 그림체가 익살스럽고 재미있어서 긴장감과 유머를 느끼며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사실 들고양이들과 들쥐들이 모두 함께 좋은 결말을 맞이할 방법은 없다. 들쥐는 들고양이로부터 탈출해야, 반대로 들고양이는 들쥐를 잡아먹어야 행복해질 수 있으니 차례차례 나와서는 이들 모두가 만족할 수 없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비로 이들은 동시에 모두 구덩이 밖으로 나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된 사실을 모르는 체 마음은 여전히 구덩이 안에 머물러 있다. 머리를 맞대고 탈출 계획을 함께 세우며 즐거운 경험을 한 이들은 사태를 파악한 후에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들은 작전을 짜는 일 자체를 즐기게 된 것은 아닐까?
<커다란 순무>에서 모두가 도와 달라는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얼까? 부탁하는 이들은 어떻게 설득을 했을까? 순무를 뽑는 것이 너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나의 절박한 문제이기도 하다는 인식에서 문제 해결에 동참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시작된 순무 뽑기 행렬에 동참해 전심을 쏟은 이들에게 주어진 결과는 참 달콤했다.
<구덩이에서 어떻게 나가지?>에서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는 과정이, 생존이 걸린 절박함에서 머리를 맞대는 연합으로 발전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공동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연대감은 많은 것을 바꿀 힘을 가졌다. 누군가를 이용하려는 마음을 넘어서서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하며, 관계를 변화시킨다.
문제는 분명히 힘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마음을 진심으로 합칠 때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 관계의 변화 또한 맛볼 수 있다. 당신은 문제로 관계를 깨뜨릴 것인가, 관계를 맺을 기회로 만들 것인가.
<rubadub@naver.com>
※ 이 글은 <어린이 교육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현은자, 김정준 외, CUP)>에 실린 저자 집필 원고 내용을 기초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글 | 장시경
전산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동문학 미디어교육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00권의 그림책>을 저술(공저)했으며, 초등학교에서 IT 관련한 다양한 수업을 하며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