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예배는 바른 대안인가?
2021-04-04
월드뷰 APRIL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2 |
글/ 이상원(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前 총신대 교수)
비대면 교회 생활이 대면 교회 생활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다음의 상황에 대하여 Yes라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대면이 뉴 노멀이 되었으므로, 결혼생활도 비대면으로 하자. 결혼예식도 비대면으로 하고, 첫날 밤 잠자리도 비대면으로 하고, 사랑도 비대면으로 하고, 향후의 결혼생활도 비대면으로 하자. 그것이 뉴 노멀의 새로운 결혼생활이다.”
COVID-19의 전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정부가 주일에 모여서 드리는 대면 예배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거나, 혹은 허용해도 사실상의 금지나 다를 바가 없는 수준으로 축소할 것을 명령하고, 주일 예배 이외의 모든 유형의 교회 소모임을 금지함에 따라, 예배를 중심으로 한 교회 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정부는 대면 예배의 대안으로 인터넷 화상 예배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정부의 조치가 발표되자 기독교계의 반응은 세 갈래로 나뉘었다.
a. 대다수 교회가 정부의 조치에 순응해 소그룹모임 중단은 물론 주일 대면 예배를 비대면 예배로 전환했다.
b. 소수의 교회는 정부의 대면 예배 금지조치가 과도한 규제이며 예배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라고 항의하면서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한 대변 예배를 강행했고, 정부로부터 교회 폐쇄조치를 당했다.
c.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비대면 예배가 가상현실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예배 패러다임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비대면 예배로의 전환을 권장했다. 물론 기독교 변두리에 있는 몇몇 교회나 기독교단체가 방역수칙을 준수하지 않고 주일 대면 예배를 드린 경우가 보도되긴 했지만, 이 경우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극히 예외적인 사례이기 때문에 이 경우를 일반화시켜서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한 98% 이상의 선한 교회들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교회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는 두 가지 쟁점이 숨어 있다. 하나는 COVID-19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전염병인가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터넷 가상현실을 통한 비대면 예배는 대면 예배의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특정한 장소에서의 모임’에 대한 해석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COVID-19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전염성 질병인가? 만일 COVID-19가 중세시대에 유행했던 페스트나 문둥병과 같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질병이라면 주일 예배라 하더라도 금지되어야 한다. 기독교 윤리에 있어서 인간 생명의 가치가 정당하게 희생될 수 있는 경우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경우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된다. 주일 예배를 포함한 모든 행위는 인간의 생명이 중대한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그 실행이 유보될 수 있다. 예컨대, 예수님은 안식일 예배를 드리시는 도중에 손 마른 환자를 발견하셨을 때 예배를 중단하시고 이 환자를 치유해 주셨다(마 12:9~14; 막 3:1~6; 눅 6:6~11). 손 마른 환자는 석회 반죽을 건물 벽에 바르는 미장이로 석회에서 나오는 독성 때문에 손이 마르는 직업병에 걸린 사람이었다. 이 병은 손 마른 환자 자신의 생명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이 환자 가족의 생계도 위험에 빠뜨렸다.
COVID-19가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은 질병의 정체에 대한 많은 연구조사를 통해 지나치게 우려할 만한 질병은 아니라는 의학적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COVID-19는 감기의 일종으로 치사율은 일반적인 감기와 비슷하지만, 마스크를 철저하게 착용하면 감기나 독감보다 치사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으나 마스크 착용 역시 실질적인 백신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간 마스크를 착용하고 드린 대면 예배 6만 건 가운데 전염 사례가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고 해서 대면 예배를 금지한 사례가 없다는 사실을 참고할 때, COVID-19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한 교인들을 대상으로 주일 대면 예배 참여를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의학적 사실을 외면한 과도한 규제다.
다음으로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터넷 가상현실을 통한 비대면 예배는 대면 예배를 대체하는 온전한 예배인가? 사실상 인터넷 가상현실은 이미 사회의 여러 모임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각종 회의나 강의 방식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주일 예배의 경우에 인터넷 가상현실을 통한 비대면 예배를 비상한 경우에 잠정적으로 대면 예배를 대신할 수 있는 보완장치로 활용하지 않고, 대면 예배를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새 시대의 새로운 예배방식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같은 예배방식의 전환을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까지 칭송하는 것은 예배의 본질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근거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성급하고 경솔한 주장이다.
비대면 예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장의 유일한 성경적 근거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내용을 보도한 요한복음 4:21~24이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산”이나 예루살렘이 아닌, 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을 명령하신다. 비대면 예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장은 이 말씀에 근거해, 참된 예배는 특정한 장소에서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 모이지 않아도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새로운 시대의 예배방식으로 제시하셨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본문은 이 해석을 지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 본문에서 예배 장소를 “이 산”이나 예루살렘으로 한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을 뿐, “특정한 장소에서 모이는 것”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산”이나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장소들도 신자가 모이는 곳이면 예배처소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특정한 장소에 물리적으로 모이는 예배”를 부인하시지 않았다. 예수님 말씀의 뜻은 “어떤 장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든 간에,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마태복음 18:20 말씀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예수님은 명확히 특정한 장소에서의 모임을 교회로 정의하셨으며, 이것이 표준적인 예수님의 교회관이다. 게다가 구약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용어인 카할이나 에다, 그리고 신약의 교회를 가리키는 용어인 에클레시아는 모두 이론의 여지 없이 “특정한 장소에서의 모임”을 뜻한다. 성경은 특정한 장소에서의 모임을 해체하는 말을 한 일이 없다.
바른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비대면 예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장은 한국 교회 문제의 핵심은 예배당이라는 장소를 교회로 오해하는 데 있다고 진단한다. 건물이 곧 교회라는 관점으로부터 사람이 곧 교회라는 관점으로 인식을 전환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이런 전환이 제2의 종교개혁이라는 논증을 폈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이라는 가르침은 충분히 교육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이 교회라는 인식은 이미 많이 보편화되어 있다. COVID-19로 인해 초래된 문제는 건물이 교회냐, 사람이 교회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평일에 드리는 예배나 성경공부나 기도회를 불가피한 경우에 인터넷 가상현실을 통해 드릴 수 있느냐의 여부도 아니다. 쟁점은 신자가 동료 신자들과 함께 모이지 않고 혼자 고립된 공간에서 드리는 예배가 바람직한 주일 예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처럼 비대면 예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장은 요한복음의 관련 본문에 대한 해석과 교회론에 오류가 있는 주장일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핵심교리인 성육신, 십자가상의 죽음, 부활,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도 배치된다.
영이신 하나님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 어느 곳에나 계실 수 있는 분이시며, 실시간으로 무한한 숫자의 사람들과 소통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모든 사역을 동시에 행하실 수 있는 전능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떤 가상현실상의 비대면 작업도 무한히 초월하는 “super-super-비대면 작업”이 완전히 가능한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어코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하셨다.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이 특정한 장소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서 신체적으로 죽으셨다. 바로 이 특정한 장소에서의 신체적인 죽으심을 통하지 않고는 인류구원의 길은 전혀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예배에 대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부활하게 될 신자들의 몸은 시공을 초월한 몸이지만 동시에 특정한 시공간 안에서 특정한 신체를 가진 몸이기도 하다. 또한, 신자들이 들어갈 “새 하늘과 새 땅”은 3차원적인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있는 곳이며, 장차 이곳에 들어갈 신자들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모두 모여서 영원히 함께 생활해야만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장차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오늘날 인터넷 화상 대화자들처럼 몸은 혼자 고립된 방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만 가상현실을 통해 함께 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혼자 고립되어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모든 신자가 함께 모여서 생활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신자가 장차 들어가서 생활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생활 모형의 핵심인 안식일 혹은 주일 예배 방식에 대해 하나님은 반드시 “회중들이 함께 모이는 예배”여야 함을 특정해 강조하셨다. 이 예배는 “각 처에서” 곧, 특정한 물리적 장소에서 “성회”로 모이는 모임이어야 한다(레 23:3). 초대 교회 교인들은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로마 당국의 가혹한 박해에 직면했을 때, 박해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모임을 폐하고 흩어져서 개인이 따로따로 예배드리는 편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기어이 카타콤에 모여서 “모이는 예배”를 드렸고, 바로 이 “모이는 예배” 때문에 순교 당했다. 이 같은 가르침이 바른 예배와 교회 생활에 대하여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인터넷 가상현실의 세계는 실체가 추상화 혹은 영화(靈化)된 영지주의적인 세계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자 시도하는 사변과학자들은 썩어서 부패하는 인간의 몸을 새로운 세계 건설에 방해물로 인식하고 몸으로부터 해방된 정신만으로 세계를 추구하는 현대판 이원론적인 영지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가상현실을 통한 예배를 새로운 시대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일부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준수하기 위해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주일 대면 예배를 시행하고, 이 때문에 정부로부터 부당한 핍박과 고통을 받는 바로 이 시점에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비대면 예배를 전면 권장하고 나서는 것은 형제 교회의 고난과 아픔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없는 거칠고 무정한 태도다. 이들의 주장은 COVID-19에 대한 의학적인 사실관계를 책임 있게 파악하지 않은 주장이며, 가상현실 모임에 뒤따르는 이원론적 영화(靈化)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근거에 대한 신중한 검토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예배의 본질을 바꾸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의학과 문화에 대한 학문적 이해와 신학에 대한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가 없는 목회자들이, 미디어의 검증되지 않은 기사와 인기가 있는 일부 저작자의 대중적인 분석에만 근거해 성급하게 단정적인 제안을 하는 것은 교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교계 지도자들은 사상누각은 외관은 그럴듯하게 보여도 반드시 무너진다는 격언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동 신학대학원(M.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 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 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