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중의 밀착과 미국의 대응
2021-03-18
월드뷰 MARCH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COLUMN 3 |
글/ 정교진(평화통일연구원 연구교수)
지난 제8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의 미국에 대한 ‘최대의 주적’ 발언은 선전포고이자 편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당 대회 시 김정은의 발언은 중국에 대한 화답이자 남한에 던지는 미끼라고 평가한 바 있다. 확실한 반미연대로 남·북·중(한·중·조) 동북아 삼각편대를 구축하자는 신호 말이다. 그런데, 이미 문재인 정부는 작년 9월 22일,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코로나 대응을 위한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제안하면서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안보협력체’라는 포석을 깔아 놓았다. 이번 김정은의 결단으로 3국은 장단을 맞추고 합을 이루었다. 남·북·중 밀월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과연 바이든(Joseph Robinette Biden Jr.) 신(新)행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응: 북핵 문제 다자적 협의체 구축
바이든 신행정부는 국제사회의 다자간 협력으로 대응할 공산이 크다. 이미 미국은 다자협의체 구성을 모색하고 있고, 연내에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모임을 주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회의인 만큼 중국과 북한은 배제 대상국이다. 반면에 한국은 초청대상국이다. 그에 앞서 6월경에 영국에서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가 개최되는데 영국이 7개국 외에 한국, 호주, 인도를 초청했다. 이른바 D10(주요 10개국 민주국가) 정상회의이다. 그 모임 전후로, 적어도 미·중 신냉전 구도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관건은 그때 한국이 어느 쪽에 서 있느냐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과 중국이 손잡는 것을 미국은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바이든에게 당선 축하 전화할 때(2020년 11월 12일)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미동맹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4개국(미국, 일본, 인도, 호주)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에 들어오라는 문 정부에 대한 강력한 사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서 확인한 대로 문 정부는 쿼드보다 동북아안보협력체 쪽으로 발을 빼는 모양새를 취했다. 미국의 심기가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변수를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차선책도 마련했을 것이다. 필자는 그 후속책을 미국 주도의 다자협의체제 방안으로 본다. 즉, 쿼드나 동북아안보협력체로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이 둘을 결합한 복합체제로 끌고 갈 확률이 높다. 당장 시급한 북핵 문제부터 말이다. 이렇게 되면 6자회담 당시의 일본을 비롯한 인도, 호주, 그 외 관련국들도 북한 문제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다자구도 방식은 바이든 신행정부의 국무장관을 비롯한 핵심 대외정책 책임자들의 면면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특히, 토니 블링컨(Antony John Blinken)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 문제를 ‘이란 핵 합의’ 모델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오바마 정부 시기(당시 부통령실 국가안보 보좌관) 이란 핵 합의 모델에 직접 기여했으며 누구보다도 이란 핵 협상 모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2018년에도 그는 북핵 해법을 이란 핵 합의 모델로 강조한 바 있다. 이란 핵 합의는 미국, 이란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7개국 다자협의체였다. 즉, 이란 핵 합의 방식 적용은 곧 4자, 6자 협상을 넘어 다자적 협의체 구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과거 중국이 주도했던 6자 회담 방식과는 다른 양상일 것이다. 미국은 이 다자협의체야말로 남·북·중 밀착 관계를 끊을 수 있는 묘수로 볼 것이다.
문제는 이란 핵 합의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면, 북핵 동결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란 핵 합의의 주요 골자가 핵 동결 및 핵시설 사찰 수용과 그에 대한 대가로 경제 제재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당시, 이란 핵 무력이 미완성 단계였던 것을 고려하면, 북한에 똑같이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이란 핵 합의는 핵 동결에만 치중한 나머지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허용해주는 실책을 저질렀다. 트럼프(Donald John Trump) 전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한 주요 원인이 바로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억제 차원이었다. 당시의 이란과 현재 북한의 핵 능력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 수준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북한은 현재 미국 본토를 위협할 만한 투발 수단을 갖추었고 핵 능력도 이미 완료된 상태이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 모델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북한 상황에 맞게 협상안을 조정할 것이다. 즉 핵 동결이 아닌, 핵 폐기로 또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술 억제 및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내걸 것이다.
이란 핵 합의 모델 적용의 핵심은 미·북 양자회담 형식은 배제하고 다자적 협의체 구도로 간다는 것이다. 또한, 정상들 간의 협상(Top-Down)이 아니라 실무자 간의 협상(Bottom-up) 방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 성 김(Sung Yong Kim) 전 주한대사가 지명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아태 차관보는 국무부에서 한반도와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실무를 책임지는 최고위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김정은의 대미 강경 메시지 이후 성 김 대사를 동아태 차관보로 지명했다. 성 김 지명자는 2008년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 겸 대북특사였으며 2008년 6월 북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발현장에 미국 대표로 참관한 바 있고 2018년 트럼프와 김정은의 첫 정상회담 시 실무팀 대표로서 북한과 사전 협상을 했던 인물이다. 정상회담 전후로도 북한의 외교 협상팀과 판문점, 싱가포르에서 수차례 미팅을 가진 바 있다. 또한, 마이크 폼페이오(Michael Richard Pompeo) 전 국무장관의 방북 당시에도 평양에 동행한 인물로 누구보다 북한 문제에 깊이 관여해왔으며 미국 내에서는 ‘북핵통’으로 통한다. 이번 그의 부상은 과거 그의 대북정책 행보에 대한 긍정적 평가이자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신호다. 그의 대북 정책 기조는 과거 대북 행보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해서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핵시설 신고를 요구한 바 있다. 이것은 이미 과거에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발현장을 경험한 성 김의 아이디어일 수 있다. 거기에 ‘영변 핵시설 플러스 알파’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도 북핵 문제의 키를 ‘핵시설 신고’로 볼 수 있다는 예상을 가능케 해준다. 핵시설 신고에 있어 과거처럼 꼼수나 보여주기 쇼는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탄탄한 경험이 축적된 그 앞에서는 말이다. 적어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북한에 끌려갈 인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그의 발언을 보면 중국과 문 정부가 기대하는 ‘비핵화와 제재 완화의 동시적 조치’와 상당히 결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그는(당시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북한이 핵무기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안보와 번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억지 및 외교적 압박 등 모든 수단을 써야 한다고 했다. 이만큼 그는 남북한에 호락호락지 않는 상당히 껄끄러운 존재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동아태 부차관보로 임명된 정 박(전, 브루킹스연구소 석좌)도 최근에 문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판한 대북 강경파이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는 김정은의 대미 강경 메시지에 강수로 응수를 한 것이다. 동시에 지난 18일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발언인 ‘김정은의 비핵화의지 확약’에 대한 하나의 경고장을 날린 셈이기도 하다.
미국, 한미동맹 위기관리 적극적으로
8차 당 대회 시, 김정은의 한미군사훈련 중단 메시지에 대해 지난 18일, 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3월 연례 한미군사훈련 재개와 관련, 필요하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전문가들은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고 지적했다. 문 정부의 북한과의 거리 좁히기가 미국과의 거리 두기로 나타나고 있다. 한미동맹의 금이 간 지는 오래고, 폐기될 위험수위까지 다다랐다. 북한에 대한 구애가 구차할 만큼 도가 지나쳤다. 한미군사훈련 중단문제를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그 절정을 보여준다. 이것을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어떻게든 열어보겠다는 구애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 동맹 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행위이며 미국에 굴욕을 안기는 처사이다. 그럼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크게 동요하는 것 같지는 않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지명자는 청문회에서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 특히 한국과 긴밀히 상의하고 모든 권유를 재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라고 했다. 뿌리치고 있는 한국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신호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급히 북한도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유연한 시각을 가지면 좋겠다는 발언으로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완급조절을 했다.
25일 외교가에 따르면 블링컨 지명자와 정의용 신임 외교부 장관 지명자가 청문회 통과 후 곧바로 미팅을 가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 둘의 만남 이후에 한미관계가 분명하게 설정될 것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수위를 조절하며 한발 물러난 것처럼, 정의용 지명자도 같은 자세를 취하지 않을까 예상해보지만, 과거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직접 전달한 장본인인 만큼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거수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다시금 제시하며 설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보인 문 정부의 감언이설에 바이든 정부는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싱가포르 합의문 이행 및 계승을 주문하는 문재인 정부에게 바이든 행정부는 이행 불가라고 분명히 선을 그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가 매우 굳건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싱가포르 합의 당시 ‘모호한 약속’, ‘동맹 약화의 신호’라고 혹평을 마다하지 않았다. 전자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뭉뚱그린 것을 지적한 것이고 후자는 아무런 조건 없는 한미군사훈련의 중단을 지적한 것이다. 바이든은 당시 이 두 가지 점을 크게 우려하며, 싱가포르 합의를 정상 간의 합의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한미장관회담에서 블링컨은 한미군사훈련 중단문제를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깊은 유감 표명을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이 중국으로 편승하는 것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원천봉쇄 전략으로 나올지, 어쩌면 더 강한 수를 쓸지도 모른다. 족쇄를 채울 수도 있다. 그 방법은 매우 다양하며 미국은 가시적 효과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외교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현실감각을 잃은 문 정부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자 역풍이다. 트럼프 때 보다 더 매서운 맛을 볼지도 모른다. 문 정부는 북한, 중국과의 로맨스를 꿈꾸지만, 치정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아무리 로맨스를 꿈꾼다고 하더라도 지난 1월 26일, 시진핑 주석과 통화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발언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중국 공산당 창립일은 1921년 7월 1일로 6개월을 앞당겨 축하한 것이다. 당장은 충격 여파가 크지 않더라도 6·25사변을 전후로 해서 이 메시지를 듣는다면 과연 어떨까. 너무나 소름 끼치는 발언이다. 조국을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순국 장병에 대한 모독이며, 모든 국가유공자 가족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소리다. 더 나아가, 자유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며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는 끔찍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동맹국인 미국으로서도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다. 미국의 동맹위기 관리 시스템이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zekiel21@snu.ac.kr>
글 | 정교진
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B.A.)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북한 선교(탈북자 사역)을 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선교회 북한선교부장을 역임했으며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북한학과(Th.M. 및 Ph.D.)를 졸업했다.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사랑깊은교회(침례교)에서 청소년부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역사 위에 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