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개헌과 시장경제질서
2021-03-13
월드뷰 MARCH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
글/ 최대권(서울대 법과대학 명예교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만들어진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을 놓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만 2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6‧25전쟁이 발발했고, 휴전 이듬해인 1954년에 있었던 소위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이라고 불리는 2차 헌법개정은 지니는 함의가 대단히 크다. 첫째는 이승만 대통령체제의 권위주의화의 표현이었고, 둘째는 시장경제체제의 강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전자는 이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 중임 제한 조항 적용배제를, 후자는 제헌헌법이 지녔던 사회주의적 경제 조항의 폐기와 함께하는 시장경제체제의 강화를 말한다.
후자의 예로는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의 국유화 원칙 폐기,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의 국영 또는 공영 원칙의 폐기 및 사영기업의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간절한 필요”에 따른 국유 또는 공유 원칙의 폐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1954년 개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경제조항들이 일부 남아 있었다. 예를 들면, 근로자의 사영기업에서의 이익균첨권 같은 것이다. 그리고 현행헌법 제119조의 제1항에 해당하는 (제헌헌법의) 시장경제원칙이 제2항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반면에 제1항은 사회주의 경제원칙이었다. 이런 사회주의적 경제원칙을 폐기하고, 시장경제원칙을 1항으로 바꾼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1962년 개헌이었다.]
해방정국에서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과 소련의 절대적 후원으로 수립된 김일성의 (사실상 정부인 북조선인민위원회)의 방해와 김구 선생 등의 단독정부 수립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헌법적 틀을 지닌 대한민국 수립을 이끌어 지켜낸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기여이다. 대한민국은 바로 이 바탕 위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과 산업화 노력에 힘입어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의 대한민국과 세계의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인민공화국 전체주의체제의 북한은 대척점에 서 있다. 자유와 경제적 번영의 남북 간 격차는 남북 간 체제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대한민국은 인민공화국 북한과 체제경쟁에서 단연 승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북핵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 하의 통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신생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틀을 지니도록 설계한 대헌장인 제헌헌법에 사회주의적인 경제 조항들이 들어가게 된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 군정 당시 남한 주민의 70%가 사회주의를 선호했다는 여론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또 당시 주요 국가기간산업 대부분이 일제가 남긴 귀속 기업이었던 만큼 제헌헌법의 국·공유화 원칙은 자연스러웠으리라고 생각된다. 또 소수의 자작농을 제외한 농지 대부분(80%)은 지주가 소유하고 있었고, 부분적으로는 농지개혁이 미 군정 당국에 의해 이루어졌다. 북한에서는 1946년에 이미 토지개혁(무상몰수‧무상분배)이 이뤄졌었다. 그러므로 북한의 선전공작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농지개혁을 제헌헌법상의 경제 조항의 하나로 규정하기에 이르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대한민국 정부는 1949년에 (유상몰수‧유상분배 원칙의) 농지개혁법을 제정했고, 1950년의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무렵까지 농지개혁은 사실상 실현되었다. 그리하여 지주나 소작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남한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이 이미 농지를 소유한 자작농이 되어 농민의 인심을 얻는 데 실패하게 되고, 결국 이 요인은 6‧25전쟁에서 낙동강 전선까지 승승장구하던 김일성 북한 정부가 남한 적화에 실패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한편 농지개혁으로 지주들이 받았던 지가증권은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거의 휴지가 되는 바람에 토지 자본의 산업자본으로의 전환은 실패했다. 이러한 마당에 사회주의적 경제 조항을 폐기하고 시장경제체제를 강화하기에 이르게 된 1954년의 개헌헌법은 그 이후에 전개된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헌법적 기틀을 마련한 작업이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뼈대는 법치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을 가져오게 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뿌리내려 성장하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은 권위주의 독재자라는 이름을 공유한다. 그러면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독재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 가운데에서 주로 정치영역에서만 권력의 독점이 이뤄져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권위주의(authoritarian) 독재이고, 전(total) 영역에 걸쳐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가 전체주의(totalitarian) 독재이다.
전체주의 독재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일당독재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나치당, 공산당, 노동당 등 단일정당이 국가권력을 독점하며 경제‧사회‧문화 등 전 영역을 지배하기 때문에 다원주의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이나 중국을 보면, 전 영역에 걸쳐 일당독재(공산당 또는 노동당)의 당 영도주의 및 민주적 중앙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가 지배한다. 원래 전체주의국가에서는 토지 등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배급제까지 시행하는 국가 경제가 원칙이다.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영역에서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운영하지만, 국가기업의 비중이 크고 경제의 최종 고삐를 국가가 쥐고 있다. 북한의 경우에는 배급체제가 실패하면서 장마당 경제가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전체주의 독재와 차별화하지 않고 폄훼하고 있지만, 정치영역에서 야당이 활동할 수 있었으며, 종교의 자유가 있었고, 부분적 탄압은 있었을지언정 언론의 자유가 있었다. 또 사영기업(재벌기업까지) 성장의 사례를 보면 이들이 시행한 권위주의 독재는 전제주의 독재와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체주의 국가의 법치주의와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국가의 법치주의를 우리나라에서는 차별화하지 않고 있으나, 이 경우에도 차별화해서 사용해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위에서 지시한 바가 최하계층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즉 일당독재 및 민주적 중앙집권제를 위해서 법치주의가 중시‧강조되지만, 그들의 법치는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법치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the Rule by Law)’라고 불려야 옳다.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체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도 법치주의는 필수다. 즉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의 뼈대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필수 요소인 (언론의 자유, 사유재산권, 계약의 자유 등) 기본권의 보장, 권력분립, 사법권의 독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와 장치가 작동될 수 있도록 담보하기 위해서는 권력 통제(control of power)를 핵심요소로 하는 법치주의가 필수다. 그래서 이때의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라고 하여 차별화해서 불러야 정확하다. 근래에 검찰과 관련해서 자주 쓰이는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법의 지배 원리의 한 측면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인권선언(1789년) 제16조는 기본권의 보장과 권력분립이 없는 나라는 헌법이 없는 나라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북한이나 중국은 헌법이 아예 없는 나라다. 그들의 헌법에 기본권(예컨대 언론의 자유)에 관한 규정이 있지만, 권력분립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인권선언이 현행 헌법의 한 부분임을 선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원리(입헌주의)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담보하게 하도록 헌법에 기본적 인권을 천명해야 한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을 행사할 정부는 기본적 인권 보호에 봉사토록 구성‧조직하라는 것이 주권재민, 선거제도, 의회주의,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사법권독립, 법의 지배 등의 원리임을 주의해야 한다. 전체주의 북한이나 중국에서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우리가 겪고 체험한 권위주의의 역사는 그 속에서 교육받고 자란 중산층의 성장으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원리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게 만들었다. 1960년의 4‧19혁명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의 6월 항쟁 및 민주화와 함께 한 자유와 번영의 역사가 대표적 표현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나라에 안정(stability)을 주며 나라를 위해 일(performance)하는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의 확립과 수호에, 그리고 박정희 정부는 경제발전‧산업화 등 국가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므로 민주적으로는 문제가 있었을지라도 그 정당성(legitimacy)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민주적으로 태어난 정부라도 일에 무능‧무책임하거나 업적이 없고 오히려 국가발전을 후퇴시킨다면 그 정당성은 부족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체제를 도입한 이승만과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그러면 입헌주의 및 법의 지배의 원리가 어떤 모습으로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이끄는데 기여하는지 살펴보자.
법의 지배의 원리에서 말하는 법은 ①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연법, 상위법, 정의 등을 포함하며, ② 국가권력 담당자를 향하고 있고(권력 통제기능), ③ 보편적으로 적용되며, ④ 무엇이 법이냐의 판단은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법기관이 행한다(사법권의 독립).
이러한 요소를 지닌 법의 지배(the Rule of Law)의 원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작동의 기초가 되는 법 제도의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과 법의 안정성(legal stability)이 나온다. 말할 것도 없이, 재산권이 보장되기 어렵다면, 예컨대 법이 언제 바뀔지 몰라서 불가능하다고 하면, 언론의 자유나 계약이나 투자 등 경제활동의 자유가 위축되리라는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컨대 법 해석이 정치적 필요성이나 편의성에 따라 자주 바뀐다고 하면 법의 예측 가능성과 법의 안정성은 상실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불가능해진다. 그럴 때 투기가 활발해지고 규제는 양산되며, 정치적 유대나 인맥에 따른 코드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와 부의 양극화가 심화 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핵심적 요소로 하는 민주주의이며, 시장경제는 재산권 보호와 계약의 자유 등 경제활동의 자유로 이뤄진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헌법적으로 자유를 공유한다. 재산권이란 (경제적) 자유권과 다름없다. 자유는 오로지 공공의 필요성(국가 안전 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이 있을 때 최소한의 제한을 법률로서 가할 수 있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행 여부의 감시를 (규제 입법의 경우를 예로 들면) 사전적으로는 국민의 대표기관(국회)이 행하지만, 이차(사후)적으로는 사법부가 감시 (위헌법률심사)를 한다. 이 감시 장치의 작동에는 법 지배 원리의 작동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중과세가 사유재산제의 실질적인 부정인지, 규제 입법이 꼭 필요한 최소한의 법률상 규제인지 혹은 행정명령에 의한 것은 아닌지, 그 규제가 모호하거나 애매해서 경제적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의 감시가 법 지배 원리의 작동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로 인해 국민 누구나 각자의 능력을 기회 균등하게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시장 원리에 따라 전체로 어우러질 때 사회 전체의 생산성은 북한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체제 우월성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제헌헌법)은 이러한 경쟁력 있는 체제(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를 도입‧강화해 온 것이다. 이 자유 체제의 도입을 이승만 대통령이 주도했으며, 그 기초 위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에 따른 산업화를 이룩함으로써 체제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된 것이다.
<choidk@snu.ac.kr>
글 | 최대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하고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School of Law 에서 법학 석사학위와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학을 가르켰으며, 현재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