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의 생명윤리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의 생명윤리

2021-02-20 0 By 월드뷰

월드뷰 FEBRUAR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4


글/ 이길찬(새길교회 목사)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는 20세기 복음주의 지성을 대표하는 개혁주의 사상가이며, 라브리선교회(L’Abri Fellowship)의 창시자이고, 프로라이프(Pro-Life) 운동의 선구자이다. 그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목회 사역을 하다가 1948년부터 스위스에서 선교사로 사역했으며, 1955년부터는 라브리선교회를 설립하여 지성인 대상의 복음 전도와 변증 사역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을 계기로 쉐퍼는 생명윤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84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기독교 생명윤리 사상을 전파하고 낙태와 영아살해, 안락사를 반대하는 프로라이프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쉐퍼의 생명윤리 사상과 프로라이프 운동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행동 이면에 있는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상이 변하면 행동이 바뀐다는 주장을 쉐퍼는 반복적으로 한다. 쉐퍼가 보기에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낙태와 영아살해 그리고 안락사가 급증한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유대-기독교적 사상에서 인본주의 사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사상은 유한한 인간의 이성을 만물의 척도로 삼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을 잃어버리고 윤리적 상대주의에 빠졌다. 윤리적 상대주의를 기반으로 할 때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를 죄로 규정할 수도 없고 비판할 수도 없다. 또한, 인본주의 사상은 인간을 우연한 존재로 보고, 그저 물질에 불과한 존재로 보는 유물론에 빠졌다. 유물론적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물질에 불과하므로 그의 생명을 보호할 가치도 없고, 그를 존엄하고 고귀하게 대우할 이유도 없다.

사상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해답은 어떤 면에서 의외로 간단하고 쉽다. 다시 유대-기독교적 사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삶의 통합점이며 도덕의 절대적 기준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을 믿으며, 그분의 말씀과 규범대로 살면 된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격적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적 인간관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므로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 등의 생명윤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세계관과 사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적인 인간관과 기독교 생명윤리 사상을 충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이처럼 행동의 이면에 있는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쉐퍼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2. 논리적 설득에 집중한다.


왜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를 반대해야 하는가? 왜 이런 행동이 잘못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쉐퍼는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답하기보다는 주로 논리적인 관점에서 답한다. 왜냐하면 비(非)기독교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토대 위에서 설득하기보다는 논리적인 토대 위에서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즉 쉐퍼는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되 논리적인 이유에 근거해서 그런 일들이 잘못임을 말한다. 쉐퍼가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를 반대하는 논리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를 찬성하거나 이런 일들을 실행하는 행동 안에는 자체적으로 여러 가지 모순이 있다. 예를 들어 조산아와 미숙아를 살리기 위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하면서도 정상적인 태아를 낙태시킨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선천성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난 아기는 살해하면서도, 더 심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인 장애자들을 적극적으로 돌보며 그들에게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한다는 것은 역시 논리적인 모순이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살리고 어떤 사람은 죽이는 것은 임의적인 결정이며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낙태를 정당화하면 연쇄적으로 영아살해와 안락사도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 인간 생명의 시작점이 언제인지에 관해 수정설(受精設) 이외의 모든 이론에 논리적인 타당성이 전혀 없다. 수정 순간부터 출생까지 태아는 질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그저 형태와 크기와 기능에 있어서 성장할 뿐이므로 수정과 출생 사이의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인간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태아는 수정 순간부터 계속해서 인간이다.

둘째, 역사적 사례와 경험에 근거할 때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는 잘못이다. 만약 낙태를 허용하면 아동학대가 많이 감소할 것이라고 미국의 낙태 찬성론자들이 주장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되었다. 미국의 경우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게 된 후에 아동학대가 급증했고, 나치 독일에서 안락사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 안락사 대상자들이 계속 확대되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또한, 임신 1기에만 낙태를 허용하더라도 결국은 임신 말기까지 낙태가 확대될 수 있다는 독일 연방대법원의 우려를 근거로 제시한다. 비록 ‘미끄러운 경사면 논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쉐퍼는 이 용어가 담고 있는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를 반대했다.

쉐퍼가 논리적 설득에 집중한 것은 전략적인 방법이다. 만약 윤리와 종교의 차원에서만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를 반대했다면 설득력이 약했을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 설득에 집중함으로써 쉐퍼는 비기독교인들의 마음도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보다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종교와 윤리에 호소하기보다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고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사람을 설득하는 데 집중했다.


3. 반(反) 생명의 문화에 직접적으로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쉐퍼는 무고한 생명을 위협하고 살해하는 반(反) 생명의 문화에 직접적으로 저항했다. 말로만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에 반대하지 않고 행동과 삶으로 반대했다. 예를 들어서 국가의 세금이 낙태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도록 법적인 투쟁을 하고, 낙태시술소 앞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거리시위를 하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낙태를 금지하는 입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낙태를 고려하는 임신부를 설득하도록 프로라이프 운동을 지도했으며 또한 본인이 직접 이런 활동에 가담했다. 또한 쉐퍼는 위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교회와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도와주도록 했다. 즉 “낙태하면 안 돼”라든지 “안락사하면 안 돼”라고 말만 하지 않고, 낙태와 안락사를 고려하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이 낙태와 안락사를 실행하지 않도록 실제로 도와줬다. 예를 들어 미혼모에게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고 기거할 장소를 제공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또한 말기 환자들을 찾아가 대화하고 책을 읽어주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돌봐주고 함께 있어 주는 호스피스 사역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쉐퍼는 국민을 계몽하고, 설득하고, 교육하는 사역을 했다.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의 실상을 고발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책과 영화를 만들었으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프로라이프 운동의 자료들을 제공하여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교회 안에서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의 문제점을 교육하고 설교하도록 노력했다.


글을 마무리하며


만약 20세기 후반에 쉐퍼가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거나, 기독교 생명윤리 사상에 근거한 프로라이프 운동을 전개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수천만 명이 살해되었을 것이며 반(反) 생명의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득세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생명윤리 문제에 있어서 성경적인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반 생명의 문화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살해되고 생명윤리의식은 더욱 심각하게 타락할 것이다. 쉐퍼처럼 구령(救靈) 운동뿐만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살리는 구명(救命) 운동에 헌신하고 생명 지킴이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coramdeo-cha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