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대한민국, 어떻게 만들 것인가?
2021-02-04
월드뷰 FEBRUAR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2 |
글/ 한정화(아산나눔재단 이사장, 한양대 특훈교수)
시작하는 말
새해에는 백신이 보급되어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팬데믹의 위기에서 벗어나 일상을 되찾고, 경제 상황도 호전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기업인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얼어붙고, 각종 규제 입법으로 인한 경영 위기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의 한숨과 고통이 커지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불가피한 외부적 충격에 의한 재난 만이 아닌 정책에 의해 초래된 재난이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국가 지도자는 누구나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며,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왜 의도와 달리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가?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때 보다 강력한 이념형 정부의 특성이 있다. 어떤 정부든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면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으므로, 그 원인을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 정부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올바른 정치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 원인에 대해 의사결정 이론과 성경적 관점이라는 틀을 가지고 분석하여,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분법적 사고 탈피
현 정부에서 정책 결정의 성과가 부진해지는 이유는 정부를 이끌어 가는 핵심 권력층의 세계관과 의사결정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념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이기 때문에 세계관의 핵심 부분이며, 의사결정에 기초가 되는 준거의 틀(framework)로 작용한다. 이념은 올바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주고 행동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합리성이나 유연성의 결여로 인해 흑백 논리,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념이라는 잣대에 비추어 맞으면 선한 것이고, 맞지 않으면 악한 것이라는 가치 전제(value premise)가 지배하는 의사결정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합리적 의사결정은 사실 전제(factual premise)의 기반 위에 가치 전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자연과학적 사실은 검증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만, 사회과학적 사실은 모호한 부분이 있고, 관점에 따라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올바른 사실 이해와 공론화 과정을 통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치 전제가 앞서게 되면 이러한 과정을 소홀히 하거나 답을 정해 놓은 상황에서 검증은 형식에 그친다.
이로 인해 이념 주도형(idealogy-driven) 의사결정이 정책 결정을 지배하면 집단사고(group think)에 빠져 반대의견이나 비판적 견해를 수용하기 어렵게 된다,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면 대안 선택의 폭이 좁아져서 의사결정의 품질이 떨어진다. 특히 선과 악이라는 흑백 논리에 빠지면 전문가가 개입할 여지를 배제하고 공론화 과정을 건너뛰어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을 만든다. 정책 수행의 결과 수많은 이해관계 집단을 혼란과 고통에 빠뜨려 놓고 “좋은 의도로 했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라고 말하는 것은 국정의 책임자로서 무책임한 태도다.
중국은 대약진 운동 당시 모택동의 지시로 참새를 박멸했다. 참새를 인민이 생산한 곡식을 훔쳐 먹는 악한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이 창궐했고, 식량 생산이 급감해 대기근으로 2천만 명 이상이 아사하는 참사를 빚었다. 참새를 선악의 잣대로 판단한 결과이다. 현 정부도 원자력은 악한 것이고 태양광은 선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빠졌다. 원전을 폐기하고 태양광 발전을 장려하자 여기저기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원자력 기술과 전문인력의 상실은 물론이고, 태양 에너지의 가격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정부를 믿고 투자했던 많은 사업자가 손실을 보고 있다.
또한,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며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그 결과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받았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상황이 어려워져 인상 폭은 줄었지만 이미 상당한 내상을 입은 뒤였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소득을 올리자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600만 자영업자 중에 40% 정도가 최저 생계비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상황에서 자영업자의 소득을 알바생에게 강제 이전시킨 결과를 낳았다. OECD 국가 중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많은 우리 현실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주 52시간 근무제’도 어느 면에서 타당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운 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열처리, 표면처리 등 뿌리 산업과 R&D 분야, 스타트 업 등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산업특성과 업무 특성을 반영해 유연하게 접근했다면 현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좌로나 우나 치우치지 말라’라는 말씀을 신명기에서부터 여호수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하셨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이분법적 사고, 흑백 논리에 빠져서 좌우로 치우치게 되는 경향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성경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라는 말씀이 있다(전 7:16). 좋은 리더십과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이방 나그네에게 선대 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가난한 자와 약자에 대한 보호를 강조하셨다(출 22:21-23). 이와 동시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라 하셨다(출 23:3, 6). 또 집 지을 때 작업 안전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여 인명피해를 줄이도록 명하셨다(신 22:8).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고의나 과실 여부를 따져서 과잉 보복이나 처벌을 막도록 하고, 도피성을 만들어서 살인자도 보복 살인을 당하지 않고 정당한 재판을 받을 기회를 주셨다.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국정 리더십의 발휘가 필요하다.
시장원리의 이해와 활용
현 정부에서의 정책 결정이 의도한 바와 다른 결과가 나오거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두 번째 이유는 시장의 원리와 힘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인간의 욕망이 교환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이디어, 열정, 재능, 혁신이 교환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장을 탐욕의 장으로 규정하고 권력의 힘으로 순치시키려고 하면 ‘시장의 복수’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시장이 항상 순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므로 정부의 적절한 개입과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장에서 움직이는 개인의 욕구를 무리하게 억누르려고 하다 보면 역효과가 나타난다.
시장은 인간의 필요(needs), 욕구(wants), 욕망(desire) 등이 혼재되어 있고,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은 생필품도 제대로 사기 어렵지만, 과시적 소비를 위한 호화 사치품도 동시에 존재한다. 국민소득 3천 달러 미만이었던 시대에 쉽게 구매하기 어려웠던 자동차나 가전제품이 지금은 중산층이 누리는 보편적인 재화가 되었다. 사람은 가능하다면 더 나은 주거환경에서 살고자 하며, 투자가치까지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소유하려고 한다. 인간의 욕구나 욕망을 무시하고 세금을 높이고 대출을 막으면서, 공공주택을 늘려서 필요나 채우라고 하는 반시장적인 발상으로 접근을 하다가 부동산 가격 폭등과 전세난이라는 정책 재난을 초래한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 체제의 핵심은 소유권에 대한 존중과 시장거래의 자유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많은 모순이 있지만, 개인의 자유를 존중함으로써 성취욕을 높이고 경쟁과 위험부담을 통한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활성화할 수 있는 강점도 있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커지는 문제는 세금과 함께 복지 등의 정책 수단을 통해 풀어야 한다. 욕구나 욕망을 없애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장 자체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쓰게 되면 수요, 공급의 불일치에서 오는 부작용이 커지고 시장 전체의 파이가 줄어든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합리적으로 조정되는 곳이다. 시장이 위축되면 혁신과 기업가 정신도 위축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배급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없고 존엄성이 동물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개인의 소유권과 시장을 무시하는 사회는 정부의 권력이 비대해지고, 비대해진 정부 권력은 부정부패와 새로운 특권층을 만든다. 이는 공산주의 사회의 역사를 통해 이미 경험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온 천하가 그분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소유를 허락하셨고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하셨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장사지내기 위해 토지를 거래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창 23장), 요셉도 흉년 기간에 저장된 곡물을 팔아서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했다(창 41장). 소유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청지기적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다. 탐욕으로 인해 자기 배만 불릴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신 것은, 그만큼 재물의 사용이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마 6:21). 인간의 본성에 대해 명확하게 통찰하신 말씀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시장이 망가지고 역효과가 나면서 국민의 삶은 어려워지게 된다. 시장의 힘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실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소통과 화합의 국정 리더십
현 정부가 소통과 화합을 통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과도하게 권력투쟁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권력투쟁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타협과 조정이 어렵고 민생중시의 정책개발과 수행이 어려워진다. 정치는 권력투쟁의 장이기도 하지만 이해관계 조정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념형 정부에서는 적과 동지를 확실하게 가르기 때문에 극단적인 권력투쟁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현 정부는 검찰개혁과 공수처 만드는데 전력을 다하다가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19로 국민의 민생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극한 대립은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도대체 검찰개혁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면서, 민생의 문제가 산적해 있는 가운데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법만 양산해 내고 있다. 경제는 실용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택해야 하고,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대안을 놓고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정치가 권력투쟁의 장이 되면 조정과 타협이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이를 벗어나기 위한 통치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열왕기서에 북 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 이후 심각한 권력투쟁으로 인해 왕권이 안정되지 못했고 정치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한두 차례 회복이 있었지만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민생이 어려워졌고 국력이 쇠퇴하고 말았다. 남 유다도 몇 차례 개혁이 있었지만 악한 왕들이 나타나 백성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이방 신을 숭배한 백성에 대한 징계가 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력이 쇠하여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강성했던 나라가 주변 국가들의 침략에 시달리다 망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도 분쟁하는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고 하셨다(마 12:25). 과도한 권력투쟁은 실용적인 민생경제 정책 추진을 어렵게 하고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러한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한 소통과 화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 정부는 태생적으로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 현 정부의 방식대로 경제에 접근하면 위기 상황을 극복해도 역동적이고 활기찬 나라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고 사실에 근거하여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면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장에 개입할 때는 시장원리와 시장의 힘을 지혜롭게 이용해야 한다. 소통과 통합의 정치를 통해 제로섬 권력투쟁의 딜레마를 탈피하고 민생을 살리는데 정치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정부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기업인의 사업 의지와 투자 의욕을 높이도록 격려해야 한다. 기업을 옥죄고 기업 의욕을 떨어뜨리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면서 경제가 호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를 마차에 비유하면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말이 힘있게 달려주어야 한다. 말에 해당하는 것이 기업가정신과 기업이다. 의욕도 없고 힘도 빠진 말에게 채찍질만 가한다고 잘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를 격려하고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 각계각층의 공감대 확산과 의지의 결집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남은 기간만이라도 균형감각을 가지고 시장 합리성을 존중하며 갈등을 줄이고 화합을 실현하는 정치 리더십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hanjh@hanyang.ac.kr>
글 | 한정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3대 중소기업청장, 기독경영연구원 원장, 벤처산업연구원 원장, 중소기업학회 회장, 인사조직학회 회장, 전략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 회장이며 한양대학교 특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