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선다
2021-01-09
월드뷰 JANUAR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
글/ 권순범(언론인)
신뢰도 최하위 한국 언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어느 사람의 말을 믿는다고 하는 비율이 10명 중 2명꼴이라면 그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굳이 만나지 않는 게 속 편한 일이다. 설사 만나더라도 그 사람 말을 그냥 듣기만 한다든지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언론 신뢰도가 그 수준이라면 이는 다른 이야기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2020년 6월에 발표한 <2020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한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21%로 나타났다. 미국과 프랑스, 브라질, 스페인, 일본 등 조사 대상 국가 40개국 중 가장 낮았다. 특히 20대 여성은 뉴스를 신뢰한다는 응답률이 13%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뉴스 리포트> 조사 대상으로 포함된 2016년 이후 신뢰 비율을 보면 2016년 23%, 2017년 23%, 2018년 25%, 2019년 22%이다. 지난 5년 동안 비슷한 추세를 보이지만 2년 전부터는 다소 하락세가 눈에 띄며 불명예스럽게도 5년 내내 조사 대상 국가 중 신뢰도 최하위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9년 12월에 발표한 <2019 언론수용자 조사>에서도 언론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우리나라 언론은 ‘공정한가’라는 질문에는 5점 기준으로 2.81점을, ‘정확한가’에 대해서는 2.96점을 줬다. 공정성과 정확성은 신뢰도의 출발점이면서 언론이 언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인데 이런 점수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나라 언론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의 낮은 신뢰도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것은 언론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제한된 정보에 접근할 나름의 권한을 갖고, 엄격한 훈련을 통해 익힌 팩트 체크 능력으로 분석한 정보를 권위 있는 메시지로 탈바꿈시켜 개인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언론이다. 개인은 세상을 직접 보는 것 같지만(look at) 대부분 사안은 언론을 통해(look through) 보고 읽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안도 정작 평가할 때는 언론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결국, 언론 보도를 통해 개인은 선택하고 판단하며 그런 판단이 모여 여론이 형성된다. 언론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제4부라 불리며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자 핵심 가치로 존중받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언론이 전하는 메시지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뢰받지 못하는 언론은 식견을 갖춘 시민을 키워낼 수 없으며 합리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없다. 이는 사회 전반의 신뢰 수준까지 떨어뜨리며 언론이 우리나라 발전의 디딤돌은 고사하고 걸림돌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궁극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정파성 심화와 뉴스의 질 저하가 신뢰도 하락 원인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 시대와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글과 말을 통해 때로는 애국지사로, 때로는 민주 투사로 그리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어느 정도 이뤄낸 시대에서도 정론을 통해 이 나라를 통합하고 발전시킨 지식인 집단으로 존중받았다. 그 와중에 왜 부침이 없었겠는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과 오욕 중심에 언론이 서 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국민은 큰 틀에서 언론을 믿고 힘을 보태줬으며 언론도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전횡에 부단히 맞서며 국가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국민이 믿음을 거두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진 언론의 정파성과 디지털 환경 변화의 부작용을 들여다보며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정파성이란 언론사들이 각기 지향하는 이념적 목표에 따라 보도의 방향이 정해지고 시각과 강조점, 의미 부여 차이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선거 때만 되면 경험한 일들이다. 그런데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나 부정 선거 의혹, 부동산값 폭등,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 대립 등 일련의 사회적 쟁점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정파성이 드러나도 너무 드러나고 있다. 신문은 발행의 편의성 등을 이유로 정파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추세이지만 문제는 도를 넘어섰다는 데 있다. 방송은 전파라는 것이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파성을 띠면 더욱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준조세인 수신료를 기본 재원으로 운영하는 국민의 방송이라는 공영 방송에서도 몇 년 전부터 그런 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은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전한다“라고 변명할지 모르나 그것이 정파성일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은 ‘객관적 사실’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알려주고 판단은 시청자나 독자에게 맡기면 된다. (여기서 굳이 ‘객관적 사실’이라 함은 진실이 아닌 사실이 있기 때문에 진실인 사실을 객관적 사실이라고 쓴 것이다.) 언론이 판관, 그것도 어느 한 편에 선 판관이 되다 보니 어느 한 편의 주장이나 이익을 대변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언론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의견이 다른 국민을 포용하고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기는커녕 적대감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 정치 상황에 언론이 예속된 것이 지금의 언론 상황이라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까. 언론이 정파성에 함몰돼 권력 감시 기능을 소홀히 하면 이 나라는 흡사 과속 운전 방지턱이 없는 길을 질주하다가 결국 큰 사고를 칠 수밖에 없는 자동차 꼴이 된다.
신뢰 추락의 또 하나의 원인은 언론 환경 변화에 따른 부작용인 뉴스의 질 저하이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한 언론계 진입이 쉬워지면서 언론사는 그 수가 늘어났다. 기존 언론이 누리던 기득권 또는 독점권은 상당 부분 소멸했다. 그 결과로 뉴스의 생산과 배포 수단이 민주화가 된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결과까지 민주화됐을까에 대해선 의문이다.
세계 최고의 방송으로 꼽히는 영국 BBC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온, 오프라인을 융합하는 체제를 갖추는 등 세계 언론 시장에서 디지털 시대를 선도했다. 그런 BBC가 2016년 내놓은 <BBC 뉴스 미래 보고서>는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보고서는 앞부분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디지털 시대 개막에 따른) 최종 결과는 민주화되지 못했다. 정보의 불균형이 점차 확산하는 시대이다. 데이터는 더 많아지고, 의견도 다양해지고 표현의 자유도 늘어났다. 그러나 정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가 더욱 불확실하다.” 이 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BBC 뉴스의 목적은 잡음(noise)이 아니라 뉴스(news)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BBC 뉴스는 “정확성과 불편부당성, 다양성 등 전통적 저널리즘의 가치를 고수해야 한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영국은 대부분 나라에서 공정성fairness이란 표현을 쓰는 것과 다르게 불편부당성impartiality 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당돌하고 당당한 보고서이다. 우리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고서이다.
원칙으로 돌아가자. 공정성과 정확성 회복
지난 2020년은 혼돈의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의 공습 탓이 컸지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돈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언론은 그런 혼돈의 시대를 관찰자로서 기록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지만 때로는 혼돈의 원인을 제공하는 역할도 안 했다고 할 수 없다. ‘객관적 사실’을 보도한다는 언론의 기본원칙이 무너진 탓이다.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건너뛴 탓이기도 하다. 보도는 ‘사실’을 전하면 되고, 기자 개인이나 언론사 ‘의견’을 전하려면 기자 칼럼이나 사설을 통해 주장하면 되는데, 요즘 들어서는 ‘사실’과 ‘의견’이 섞여 있는 보도를 보게 된다.
2021년을 시작하면서 언론은 자유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신뢰를 회복해야 하며 그 방법은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해법은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우리 곁에 있다. 그것은 공정성과 정확성 준수이다. 언론의 목적이 객관적 사실 보도, 다른 말로 진실 보도라고 한다면 공정성과 정확성은 진실 보도로 가는 통로이며 언론이 언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언론사들이 사시 등을 통해 공정 보도를 내세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한국기자협회는 “기자는 공정 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라고 윤리 강령에 담아 놨다. 다 아는 내용, 아니, 다 알아야 하는 내용이지만, 최근 들어 오히려 소홀한 경향이 있어서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이름으로 새삼 강조하는 것이다.
언론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정량 분석이 가능하기에 이 글에서는 정성적인 논의가 필요한 공정성을 우선 다루겠다. 방송은 법에서부터 공정 보도를 강조한다. 방송법 1조에서는 방송의 공적 책임을 거론하며, 5조는 국민 화합과 민주적 여론 형성을 공적 책임으로 규정한다. 6조에서는 보도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라고 적시한다. 공정성의 잣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규정 9조에서 설명한다. “방송은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여야 한다”라고 못 박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공영방송인 KBS는 제작 가이드라인에서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 “공정성은 외견상의 단순한 중립성에 의해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진실을 추구하는 윤리적 자세로 접근할 때 확보할 수 있다. 권력에 의한 맹종이나 맹목적인 비판, 작고 힘없는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배려나 무관심은 다 같이 유의해야 할 태도이다. 어떤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과 생각이 같은 취재원이나 사례만을 편향적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용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제작진의 편견이 개입될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어떤 사실을 생략하거나 의견을 마치 사실인 양 위장해서는 안 된다. 앵글의 조작, 그래픽의 왜곡 등 교묘한 방법으로 내용의 공정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보수 언론으로 분류되는 조선일보는 사시에서 불편부당을 내세우며 불편은 좌파나 우파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의미이고, 부당은 어떤 정치력, 지배력 또는 경제력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그 뜻을 풀이하고 있다. 진보 언론이라는 한겨레신문 역시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진실을 추구한다는 취재 보도 준칙을 갖고 있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언론학 교과서에 나올만한 명문으로 된 원칙을 이미 갖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2021년에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언론이 원칙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며 촉구한다.
언론도 하나님의 것, 언론 통해 하나님 나라 확장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의 동역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창세기 1장에서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란 말씀은 흔히 문화 명령이라고 불리며 그리스도인들이 실생활에 적용해야 할 말씀이다. 한국 교회,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지만, 그보다는 언론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메시지를 생산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론도 하나님의 것이다. 언론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야 한다.
<sbkwon1108@naver.com>
글 | 권순범
KBS에서 사회부, 경제부, 보도제작부 기자 등을 거쳐 상파울루 특파원과 보도국 편집주간, 시사제작국장, 정책기획본부장을 지냈다. KBS 퇴직 이후 순천향대학교에서 초빙 교수로 방송 저널리즘을 가르쳤으며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