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 폰테스,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정신
2021-03-01
월드뷰 MARCH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발행사 |
글/ 김승욱(발행인, 중앙대 명예교수)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 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 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혼란의 시대에 미래의 방향 설정을 위해서, 월 드뷰는 2021년 한 해 동안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원으로 돌아가자! (back towards an origin!)라는 주제를 가지고 특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월호 경제 분야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정치 분야를 다룹니다.
이달의 특집(ISSUE)
지난 세기말, 공산권 붕괴로 국가주의는 역사 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 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빈부격차 확대와 구직난 등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국가의 역할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 가 마침 불어닥친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국가주의가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서 국가가 사생활과 경 제활동, 심지어는 교회의 예배까지 통제하고 있지만, 누구도 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팬데믹으로 4차 산업혁명의 방아쇠가 당겨졌다고 합니다. 그간 AI, 사물인터넷(IoT), 자율 주행차, 5G 등으로 큰 변화의 여건은 갖추어졌지 만 이에 대응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강의와 회의에 익숙해졌고, 많은 곳이 자동화되어서 이제는 팬데믹이 사라져도 온라인 언텍트 활동과 국가 기능의 확대는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각국은 정부지출을 크게 늘렸습니다. 이를 경제사학자 로버트 힉스(Robert Higgs)는 “양적 큰 정부(big government)”로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양상도 크게 변했는데 힉스는 이를 “질적 큰 정부(Big government)”라고 했습니다. 코로나 위기가 지나가면 양적 정부확대 현상은 크게 줄겠지만, 질적 정부확대 현상은 줄어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동서양의 문화 차이로 인해 뉴노멀 시대에 대응하는 방법도 달라질 것입니다. 중국과 같은 공산권 국가에서는 정부 통제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고, 서구 선진국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역 시 큰 변화가 없겠지만, 한국과 같이 문화적으로는 동양권에 있으면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 본주의를 도입했던 나라들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예를 들면, 빅데이터를 민간기업과 정부 중에 누가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를 선택을 해 야 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물인터넷(IoT)과 자율 주행차가 모은 데이터, 개인의 통신기록 및 금융 거래 등 빅데이터는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빅데이터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앞으로 빅데이터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최근 아시아 최대 자산가이며 중국에서 재물의 신으로 불리는 알리바바의 마윈이 추진한 알리바바 산하의 핀테크 기업인 앤트 그룹의 상장이 좌초됐고, 마윈의 재산은 이후 두 달 동안 120억 달러(약 13조 원)가 증발했습니다. 그 이유는 9억 중국 인의 빅데이터 구축에 공산당이 위협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거대한 힘을 개별 기업 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입니다. 반면에 공권력을 가진 정부가 빅데이터까지 독점하면 조직이 너무 비대해진다는 것이 서구 세계의 생각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화폐 금융정책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연방은행이 민간 기구로 되어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화폐의 안정성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을 대통령의 권한 밖에 두기 위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이제 서구 국가들은 통화만큼이나 중요한 빅데이터를 정부 통제하에 두기보다는 기업이 경쟁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기업 중 이 빅데이터를 누가 장악해야 할 것인지, 우리도 선택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팬데믹이 진정되면, 국가의 간섭과 역할을 어느 정도로 돌려놓을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정부가 빅데이터를 독점적으로 통제할 수 있 는 권한이 생기면, 조지 오웰이 염려한 통제사회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지금 안면인식기 술을 통해 14억 인구를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민주사회가 될 가능성이 멀어지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과거 왕조시대와 공산권의 역사적 경험으로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 분립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공(公)과 사(私)에 대한 인식
과거 왕조시대에는 ‘사(私)는 악한 것이고, 공(公)은 선한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한국인에게 흐르는 이런 의식이 최근에는 더 커졌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이제는 낙후된 지역의 재개발도 민간기업은 못하게 하고, 공공이 개발해야 한다는 취지의 25번째 부동산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점점 민간의 역할은 줄어들고, 공공의 역할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의식의 밑바닥에는 국가주의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적 극적 역할을 높여나갈 것입니다.”라고 선언했습 니다. 자본주의의 약점인 빈부격차 확대 경향을 어느 정도 완화하려는 노력은 정부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평등을 정부가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목표로 정부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면 결국 국가주의라는 덫에 걸리게 됩니다. 국가주의는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경쟁의 효율을 부정하며, 국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위험 한 생각입니다. 과거 왕조 국가나 독일의 나치, 구 소련 등을 봐도 역사적으로 국가주의가 성공한 예 가 없습니다. 국가의 힘으로 불평등을 없애겠다는 생각은 결국 경제후퇴와 일부 특권층과 대다수 국민 사이의 절대적 양극화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약속했습니다.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과정을 공정하게 해도 결과적으로는 불평등이 발생합니다. 사람이란 능 력도 다르고, 부지런함도 다릅니다. 운도 각자 다 르게 따릅니다.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나타날 수밖 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스포츠나 예술 분야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축구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개인의 차이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손흥민 선수가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골을 넣더 니, 최근에는 두 번이나 골대에 맞고 나오거나, 골 키퍼에게 막히는 등 골로 연결이 잘 안 됩니다. 경 기에는 운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결과가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과가 정의롭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지 애매합니다.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의 결 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을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들 이겠다는 의미일까요? 그렇게 해석되지 않습니다. 불평등한 결과를 다시 평등하게 만드는 것을 정의로 본다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 치 현실에서 볼 때, 정의로운 결과는 결국 결과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모두 공공으로 개발하고, 민 간의 불평등한 결과는 세금 등을 통해 공공부문으 로 흡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손홍민 선수가 자신의 능력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다른 선수와 평등하 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회수하겠다고 한다면 그것 을 찬성할 국민은 얼마나 될까요? 불평등은 어느 정도 완화해야 하지만 완전히 해소하는 것은 바람 직하지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국가의 힘으로 결과적 절대 평등을 달성하려고 하면 결국 국가주의로 빠지고, 역사의 퇴보로 이어집니다.
커버스토리
한국 사회가 선택해야 할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정말 정의로운 사회가 어떤 사 회일까요? 이를 분별하기 위해서 아드 폰테스, 즉 원점으로 돌아가서 건국기에 대한민국을 세운 우 리 선조들이 꿈꾸고 만들려고 했던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살펴보려고 합니다. 절대왕정과 신분제 그리고 식민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선조들은 어떤 꿈을 안고 대한민국을 건국했는지, 대한민국 건국 정신을 살펴 봅니다.
이번 커버스토리는 1948년 8월 15일, 미 군정으로부터 국권을 이양받으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전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행한 기념사 전문을 현대어로 바꾸어서 실었습니다. 이 기념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의 기초를 6가지로 언급했 습니다.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고, 국민의 권리 와 개인 자유를 보호할 것이며, 자유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내용입니다. 표지 그림은 기념사를 읽는 이승만 대통령입니다(그림 김은선).
이 기념사 끝에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로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이는 임시정부가 출범한 1919년을 대한민국 1년으로 본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건국 시점으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1919년 4월을 건국 원년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와 1948 년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것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 심지어 단군개국설까지 다양합니다. 2018년에는 건국 70주년인가 아닌가로 논란을 빚으며 결국 여야가 행사도 따로 했습니다. 세계 10위 의 경제 대국이 나라의 생일에 대해서 국민적 합 의가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이런 것도 합 의에 이르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승만은 1919년 임시정부 시절에도 초대 대통령이었고, 1948년에도 초대 대 통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중요시했으며, 자신이 쓴 기념사에 연도를 이렇게 표시했지만, 공식적으로는 1948년이 정부 수립 1주년 행사였으며 이듬해부터 건국 2주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저마다의 근거는 있겠 지만 이를 하나로 통합해내는 것이 정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기념사와 함께, 타임(Time)지(紙)에 커버스토리로 실렸던 이승만에 관한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타임지는 이승만 대통령을 두 번 커버스토리로 다루었습니다. 첫 번째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직후이고, 두 번째는 휴전되기 직전입니다. 오늘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친일파 독재자라는 비난과 건국 대통령이라는 찬사로 매우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당시 외국인 기자의 눈에 비친 객관적인 모습은 좋은 역사적 사료라고 판단되어, 이를 번역한 이영진(호서대) 교수의 소개 글과 함께 전문을 실었습니다. 이 타임지 기자는 이승만 대통령은 때때로 자기를 반대 하는 자의 인권을 임의로 억압하기도 했지만, 철저한 반공주의자이며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고 공정하게 선출된 대통령이자 오늘 또 다른 투표를 하더라도 그 자리에 다시 선출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특집(ISSUE) 칼럼
특집 칼럼 전반부에서는 “이승만이 꿈꾼 나라”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이 되기 전의 이승만의 행적과 생각을 6개의 칼럼으로 나누어서 소개했습니다. 시대순으로 소개하면, 먼저 이승만의 출생부터,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청년 이승만이 어떻게 배재학당에 들어갔으며, 한성감옥에 갇혀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 대해서 교회사를 전공한 호서대 윤은석 교수가 소개했습니다.
20대의 대부분을 한성감옥에서 보낸 이승만은 감옥에서 영어사전을 번역하고, 옥중 도서관 을 만드는 등 국민을 깨우치기 위한 일을 계속했 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위기를 느 끼고 한성감옥에서 <독립정신>을 집필하게 됩니다. 이 책에 관해서 이승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독립정신>의 해제를 쓴 연세대 김명섭 교 수가 <독립정신>이 어떻게, 왜 집필되었으며, 이 책이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설명했습니다. 김명섭 원장은 이승만 전집을 발간하기 위해서 전력하고 있습니다.
이승만은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귀국해서 기독교청년회(한국YMCA)의 총무 겸 학감에 취임해 교육과 기독교 전도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105인 사건을 빌미로 많은 기독교인을 체 포하자, 망명길에 올라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했 습니다. 1913년에 하와이에서 이승만은 <한국 교회 핍박>을 발간하여 105인 사건의 전말을 고발했습니다. 이 책에는 이승만이 추구했던 사상과 정 치 체제, 기독교 신학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책의 해제를 쓴 김명구 교수가 “이승만의 <한국교회 핍박>에 나타난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정리했습니다.
이승만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에 서울 에서 만들어진 한성정부의 집정관에 위촉되고, 이 어 상해에서 3개 임시정부가 연합해서 만들어진 임시정부에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그 는 임시정부 대통령의 자격으로 각국과 파리강화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알리고 국내외 동포 에게 독립을 위한 헌신을 촉구하는 ‘대통령 선언 서’를 발표했습니다. 교회사를 전공한 박명수 서울신대 명예교수가 임시정부 시절 이승만의 활동을 설명하면서 특히 김구와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 지 소개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내부갈등 등으로 인해 임시정 부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이승만은 미국으로 돌아가 하와이에 머물면서 외교독립노선을 고수하며 독립운동을 합니다. <선지자 이승만 대통령>을 저술한 박원철 목사가 하와이 독립운동 시절 이승만의 활동을 정리했습니다.
이승만의 건국 비전
이어 후반부에서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의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비전에 대해 서 6편의 칼럼과 그의 글을 소개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나라는 조선 시대와 달리 신분의 차별, 남녀의 차별, 빈부의 차별, 지방색이 없는 나 라였습니다. 이승만학당의 주익종 연구원은 이승 만의 국민통합 이념인 일민주의를 소개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정신 중 또 하나의 핵심은 반공정신입니다. 이상규 고신대 명예교수는 이 승만의 반공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서울신학대학 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양준석 연구교수는 이승만의 반공정신과 냉전 시대에 대해서 칼럼을 썼습니다. 이어 이승만 박사가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17일에 서울중앙방송국에서 방송했던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의 전문을 현대어로 수정해 실었습니다. 이 연설문은 공산당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정면 대결 선언으로 추정됩니다.
북한, 소련, 중국이 연합한 공산세력과의 국운을 건 6·25전쟁이 끝난 다음 대한민국은 반공이 국시가 되면서 헌법에서 사회주의적 조항들이 사라지고,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모습으로 바뀌게 됩 니다. 이에 대해서 서울대 법대 최대권 명예교수 는 “1954년 개헌과 시장경제질서” 칼럼에서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만든 자유시장 경제는 우리가 사사오입 개헌이라고 부르는 제2차 헌법개정에서 이루어진 자유시장 헌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교육혁명가 이승만 대통령의 교육입국론>을 저술한 현경사회복지회 김현태 회장은 한강의 기적을 가져온 이승만의 교육정책에 관해서 썼습니다.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의 산업발전을 위해서 저렴한 전기는 필수적이었는데, 대한민국이 일찍 원 자력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 이승만 대통령 덕분 이라는 취지로,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정범진 교수가 “건국에너지 원자력”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맺음말
오늘날 한국 사회를 전환기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 좌우익으로 나뉘어서 갈등했고, 냉전 시대 최전방의 각축장이었습니다.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과 중국 중심의 국가주의가 충돌하는 신냉전 시대에, 지금도 한국은 양측으로부터 자기 진영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친중 및 친북 태도를 보입니다. 공정을 명분으로 불평등을 타파하겠다면서 세금을 크게 늘리고, 정부지출을 확대하는 등 국가 역할을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의 역할과 개입을 강조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국민의 몫입니다. 어떤 것이 더 정의롭고 공평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상속과 부동산 보유에 징벌적 과세가 공정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빈부격차를 완화하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평생 벌어서 죽을 때 자녀에게 집 한 채 물려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 다. 젊은이들도 금융권에서 쉽게 돈을 빌려 큰 부담 없이 내 집을 마련해 살 수 있게 해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은행 대출을 지렛대로 활용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전 국민을 임대주택에 살게 해서, 평생 정부에 임대료 내게 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부자와 가난한 자, 집 가진 자와 못 가 진 자, 자본가와 노동자로 가르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절대적 평등에 집착하다 보면, 발전도 없고, 국가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하나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나라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탄생(3월 26일)을 축하합니다.
글 | 김승욱
중앙대학교에서 31년간 경제사 과목을 담당한 중앙대 명예교수이며, 현재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신제도주의 경제사학 분야의 박사학위(Ph.D.)를 받고 UNPD 국제 전문 가와 경제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9년에 9명의 교수와 함께 “기독교학문연구회(현 “기독교세계 관학술동역회”)”를 창립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회장으로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