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긴급명령만이 해결책인가?

대통령 긴급명령만이 해결책인가?

2021-01-06 0 By 월드뷰

월드뷰 JANUAR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글/ 김정호(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벌써 일 년이나 지속된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사망한 직접적인 피해자도 많고,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줄어든 근로자도 많지만, 특히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에 지난 2월 19일 국회에서, 민주당 민병두 위원장은 국무총리를 보좌하는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에게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노형욱 실장은 “검토하고 있으며, 빠르면 이달 안에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답했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국무조정실은 보도자료를 내고 “노 실장의 답변은 코로나 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경기 회복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긴급재정명령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한 바 없다”라고 부인했다. 황망하게 부인하기는 했지만, 현 정부와 민주당은 코로나 19로 인해서 어려움에 처한 경제 현실이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할 정도로 시급한 사안이라고 인식한 것 같다. 이후 코로나 3차 대유행으로 다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정의당은 12월 15일에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통해 즉시 임대료를 낮출 것을 다시 제안했다.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이 무엇이며, 지금 이것을 발도해야 할 정도인가 생각해보자. 헌법 제76조 ①항에서 긴급재정·경제명령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즉 긴급재정명령은 국가가 내우외환이나 천재지변에 준하는 위기라고 무조건 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국회를 개회할 여유가 없을 때 발동하는 것이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것이 내우외환에 준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국회가 버젓이 회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대통령이 마음대로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동 역사


이를 판단하기 위해 대한민국 역사에서 긴급명령이 언제 어떤 이유로 발동되었는지 살펴보자.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건국 이후 지금까지 16번의 긴급재정명령이 발동됐는데, 긴급명령 1호는 6.25 전쟁 발발로 시작했고, 13호까지는 모두 전쟁의 특별한 사정 아래서 나왔다. 6.25 전쟁 중에는 대부분의 법령공포가 국회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통령 긴급명령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긴급명령 14호와 같이 전쟁 직후에는 통상우편물의 종류와 요금에 관한 법률조차 긴급명령으로 이루어졌다.

[표] 한국의 대통령 긴급명령 발동 사례.

그러나 휴전 이후 사회가 안정되고 국회가 제 기능을 하면서 지난 65년 동안 대통령 긴급명령이 발동된 것은 단 두 차례밖에 없다. 그중 첫 번째는 1972년의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으로 박정희 정부의 소위 8.3조치라고 불리는 사채 동결이다. 자본이 부족했던 당시에 대부분의 기업이 사채 시장에 자본을 의지했고, 사채 이자율이 연 50%에 달할 정도여서, 대부분의 기업이 사채 시장의 떠도는 소문에도 부도에 몰릴 수 있을 정도로 취약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1962년 8월 3일부로 기존의 모든 사채 계약을 무효화하고 새로운 계약으로 대체한다는 혁명적인 조치를 발표했다. 자유시장 경제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치였다. 기간 내에 신고하지 않은 사채는 자금의 출처를 밝혀야 하며, 제때 신고한 사채에 대해서는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하며, 연이자를 16.2%로 제한했다. 이로 인해 기업의 평균 사채 이자가 약 3분의 1로 경감되었고, 이 조치 덕분에 한국 기업들은 1973년 제1차 오일 파동을 견딜 수 있었다. 이 조치는 미리 시장에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생략한 채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이루어졌으며, 야당에서는 국민의 사유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했으나 국회는 그해 9월 9일에 8.3조치를 승인했다.

두 번째 긴급조치는 1993년에 있었던 김영상 정부의 금융실명제 도입을 위한 긴급명령이다. 음성적 금융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서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서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의 비자금이 드러나게 되었고, 한국 금융 거래의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에 합헌결정을 내렸지만, 필자는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잘못했다고 본다. 금융실명제는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매우 필요한 개혁적인 조치이기는 하지만, 당시 국회를 열 수 있었고 긴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야당의 반대가 예상된다고,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내린 것은 위헌적이다. 헌법재판소도 1996년 결정문에서 “위기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전적ㆍ예방적으로 발동할 수 없다”라며 “공공복리의 증진과 같은 적극적 목적을 위해서도 할 수 없다”라고 썼다. 또 “위기의 직접적 원인 제거에 필수 불가결한 최소한도 내에서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와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물론 지난 1년간 겪은 코로나 사태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백신이 보급되더라도 적어도 1년은 지나야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매우 긴급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과연 대통령의 긴급명령밖에 없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현 정부는 거대 여당의 도움을 받아 국회의 동의로 얼마든지 하고 싶은 조치들을 시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굳이 긴급명령을 발동해서 시행하려고 하는 것은 원래 헌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지금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비단 코로나 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2017년부터 문재인 정권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시행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최저임금이 이렇게 급하게 오르지 않았더라면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덜했을 것이고, 일자리도 그렇게 많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의 해결책은 잘못된 정책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잘못된 경제 정책을 수정하지 않고,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자영업자의 임대료를 낮추고 추후 건물주에게 추가경정예산으로 인하분을 보전해주겠다는 것은 정부의 행정력과 재정 살포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임대료를 명령으로 정하는 것도 기가 막히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경기가 좋아지지 않는다. 결국, 돈을 풀어서 잠시 폐업을 연기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런다고 자영업자의 사장이 좋아지지 않는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의 250%까지 올라간 것은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려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어서 경기를 회복시키려고 했지만, 잠시 나아진 듯하다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낡은 기업은 폐업하고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도록 길을 터줘야 하는데 억지로 돈을 풀어서 기존 상점과 기존 기업을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긴급재정을 풀어서 돈으로 나눠주면 결국 일본처럼 된다. 그나마 일본은 엔화가 안전자산이고, 해외 자산도 많아 부채로 인해 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 원화는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위기가 오면, 자본이 빠져나가서 결국 망하게 된다. 게다가 한국은 일본과 달리 해외에 쌓아둔 자산도 거의 없다.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은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임대료를 내려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장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흥하고, 잘못하는 사람은 폐업하는 환경이 되어야 경제가 살아난다. 음식 맛이 좋은 식당은 살아나고 맛없는 식당은 사라지는 것이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사회 전체가 발전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어려움을 핑계로 정부가 긴급명령을 쉽게 발동하는 것은 도리어 국가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일이다. 모두가 어려운 혼란의 시기를 지나면서 다시 한번 경제의 작동 원리를 생각해보고, 경제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진정한 문제 해결의 올바른 길임을 기억하자.

<kim.changho@gmail.com>


글 | 김정호

김정호의 경제TV 대표이자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경제학박사와 법학박사를 받았으며 2018년까지 연세대학교 교수, 자유기업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기업의 탄생>, <기적의 한국경제 70년사> 등 20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