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형된 대통령제와 삼권분립의 훼손

변형된 대통령제와 삼권분립의 훼손

2021-01-04 0 By 월드뷰

월드뷰 JANUAR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3


글/ 윤성이(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 정치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사인 정치, 금권 정치, 정보 정치, 비선 정치와 같은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용어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대통령의 경제적 개입과 전쟁 수행에 있어서 의회의 견제가 현저히 약화된 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즉 대통령제의 핵심 원리인 삼권분립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특히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할 때 제왕적 대통령이 나타난다. 한국의 경우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변형된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대통령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권을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변형된 대통령제의 문제를 극복하고 대통령 권력의 책임성을 강화할 때, 즉 삼권분립의 원칙이 충실히 지켜질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다.


변형된 대통령제의 문제


대통령제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 간의 상호 균형과 견제를 기본 작동 원리로 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 등 분립된 권력기구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역할 수행을 위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는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가 그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국회는 대통령의 의지를 쫓아 무비판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고무도장(rubber stamp)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에도 국회, 특히 여당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은 별로 약화되지 않았다.

입법부가 대통령과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것은 현행 대통령제가 미국의 순수 대통령제와 달리 내각제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달리 우리 헌법은 행정부에게 법률안 제출권과 예산 편성권을 부여하고 있다. 입법부의 고유 권한인 법률안 제출권이 행정부에도 주어져 있는 것은 삼권분립의 기본 원칙을 사실상 위배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가 복잡화되고 다양화되면서 입법과 예산 편성에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입법부가 이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이 훼손된 대통령제가 초래하는 민주주의 왜곡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리 대통령제가 갖는 또 다른 내각제적 요소는 국무위원의 의원직 겸직 허용이다. 입법부가 행정부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국무위원의 의원직 겸직 허용은 대통령의 집권당 장악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문제를 낳는다. 다음 선거에서 재선을 원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국무위원 겸직은 매우 훌륭한 경력 관리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국무위원직을 원하는 국회의원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자가 되기는 어렵다. 국무위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여당의 지도부 인사들은 당연히 대통령의 충실한 추종자가 될 것이고, 대통령은 이러한 역학관계를 이용하여 집권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집권당에 공천을 비롯한 주요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 또한 대통령-국회 권력관계를 왜곡시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맡는 관행은 없어졌다고 하나 여당에 대한 영향력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당내 공천에 있어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 임기 초반에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질 경우 대통령의 영향력은 더 강하게 작동한다. 지역주의 투표 행태와 맞물려 특정 지역의 경우 공천이 곧 당선을 보장하는 현실에서 대통령의 공천권 행사는 여당을 장악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한편 정당의 강한 기율 또한 대통령의 ‘정파적 권한’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 정당의 경우 미국과 달리 당내 기율이 매우 강하다. 소수의 지도부가 당내 공천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고 여야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당론 투표를 강요하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 수준이 매우 낮아 당내 권력은 소수 지도부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비민주적 정당 정치로 인해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기는 더욱 쉬워졌다.


대통령 권력의 책임성 확보 방안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심각한 문제가 대통령에 의한 권력 남용과 권력 사유화에 있다는 주장은 옳다. 그렇지만 세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의원내각제나 이원 집정부제로 통치 구조를 바꾼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칫 제왕적 대통령 대신에 제왕적 수상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정당 기율이 강한 상태에서는 제왕적 수상에 대한 우려는 더욱 심각해진다. 권력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해결책은 권력구조가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견고한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즉, 권력에 대한 수직적 책임성(vertical accountability)과 수평적 책임성(horizontal accountability)을 확보할 때 비로소 권력 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 이제까지 권력의 수직적 책임성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며 이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확보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국민은 선거뿐 아니라 광장 정치를 통해서 권력의 책임성을 묻고 있다. 따라서 일상의 정치 속에서 권력의 책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편 권력의 수평적 책임성은 권력기구들 간의 감시와 견제를 통해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권력을 강화해야 한다. 국회, 감사원, 검찰, 법원, 정보 기구, 국세청 등과 같은 권력기구가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가질 때 제왕적 대통령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진다.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하고, 이는 통치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권력의 책임성을 확보할 때 가능하다.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수직적 책임성과 수평적 책임성 강화가 필요하다.


수직적 책임성 확보


수직적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힘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에 있어서 유권자의 힘이 지금보다는 훨씬 강해져야 한다. 지금처럼 진영 정치와 지역주의에 의해서 유권자의 선택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집권당의 국정 운영 능력, 정당의 공약 그리고 후보의 능력과 도덕성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가르는 실질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진영 정치와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권력을 좇는 정치인과 정당이 자발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은 시민사회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있다. 시민들 개개인이 진영과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패거리 정치판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진영과 지역을 떠나 후보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 여론이 진영과 지역의 집단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과제이다. 여기에서 정치적 매개 집단인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이 진영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 객관적 입장에서 정당과 후보를 평가하고 이를 시민들과 공유할 때 비로소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수직적 책임성을 제대로 물을 수 있다.


수평적 책임성 확보


수평적 책임성 확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순수 대통령제의 원칙에 부합되게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3권분립을 명확히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과 국회 간에 권력의 균형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집권당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을 제한해야 한다. 대통령이 집권당의 총재직을 맡거나 실질적인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아직도 대통령이 집권당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관행은 여전히 남아있다. 대통령제의 기본 원칙인 삼권분립이 실질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여당 또한 입법부의 일원으로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과거 여당이 친노 대 비노, 친MB 대 친박, 친박 대 비박 등과 같은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상당 부분 현직 대통령이 당 운영과 공천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탓이 크다.

국회가 대통령과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하고 권력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 금지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그래야만 집권당이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여당 의원만이 참여하는 당정협의회는 중지해야 한다. 이는 행정부와 여당 간의 권력 융합 현상을 가져와 대통령제의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 이와 더불어 당내 민주주의 확립, 정당의 기율 약화 및 의원의 자율성 강화 또한 대통령 권력에 대한 수평적 책임성을 확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치들이다. 대통령에 대한 수평적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를 강화하고 대통령 비서실의 권한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국정운영이 정부 부처가 아닌 청와대 비서실을 중심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제는 삼권분립의 원칙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의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모두 선거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직접 권한을 위임받는 권력 기구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 모두 국민에 대해 각각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제에서 여당과 야당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기에 앞서 대통령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우선 가져야 한다.

<yun31@khu.ac.kr>


글 | 윤성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상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으며, 정경대 학장과 2020년 한국정치학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 정치와 인터넷 정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