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2020-12-20
월드뷰 DEC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2 |
글/ 조혜경(소설가)
S에게서 전화가 왔다. 왈츠 반 반장 전화번호 좀 알려줄 수 있겠는가, 물었다. 평소와 달리 건조하고 초췌한 목소리에 이유도 묻지 못하고 서둘러 주소록을 찾아 알려주었다. 다음날 새벽 다시 전화가 왔다. 전날 알려 준 번호는 지난 회기 반장이라고, 이번 회기 천주교 신자인 반장의 전화번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수가 바뀔 때마다 회원도 조금씩 바뀌니 총무는 분기마다 새 주소록을 만들었고, 나눠주면 받아서 나는 운동 가방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손바닥만 한 주소록 몇 장 중 S가 찾는 이름이 적힌 주소록은 없었다. 몇 년 어간 회원 주소록을 사용해 본 일이 없어 나는 주소록 챙기는 것에 무심했다. 왜 이번 반장을 찾는지 S에게 물었다.
“지금… 남편 화장장으로 가려는데, 연도(煉禱)1)라도 바칠 수 있을까 해서…. 너무 오랫동안 냉담했더니 연락할 곳이 없네.”
“… 뭔 말이야? 돌아가셨어? 자기 남편이?”
“… 응… 집에 가서 만나.”
S는 바로 내 집 위층에 사는 왈츠 반 친구다.
내가 이곳 신도시로 이사하고 처음 시작한 운동이 왈츠였다. 이전 도시에서처럼 계속 요가를 하고 싶었다. 9시 좀 지나 등록 장소에 도착했더니 요가는 오전, 오후, 저녁반 모두 마감되어 있었다. 새벽 4시부터 주민들이 줄을 서고 등록 시작하자마자 5분 안에 종료된다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그 경쟁은 뚫을 수 없겠구나, 예감했다. 다른 운동을 찾아보니 한 명도 이름이 적히지 않은 종목이 눈에 띄었는데 그 분기에 처음 개설하는 왈츠 반이었다. 내가 왈츠를 출 수 있을까? 적이 심란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매년 혈액검사 지표의 경고표시로 뭐든 꾸준히 하는 운동을 시작해야만 했다. 왈츠 반의 등록자 1번에 나는 이름을 올렸다.
지금부터 10년 전이니 당시만 해도 낯선 종목이어서인지 수강인원을 가까스로 채워 개강했는데, 부부가 함께 온 한두 커플을 제외하곤 모두 비슷한 나이의 주부였고, 다행히 대부분 왈츠 초보자였다. 영국왕립무용학교에서 수학했다는 여선생님으로부터 스텝 한 발자국씩 배우기 시작했다. 좀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 파트너를 정할 때 키가 좀 큰 사람이 남자 역할을 하기로 해서 나는 남자 스텝을 배우게 되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미인인 S는 여자 스텝을 배우고, 계속 파트너를 바꾸면서 춤을 추기에 S는 매시간 한두 번은 나의 파트너가 되었다. 3년쯤 배우자 ‘테네시 왈츠’나 ‘체인징 파트너’ 같은 곡에 맞추어 A, B 코스를 다 돌며 매우 어설픈, 그러나 스스로 만족하는 왈츠를 출 수 있었다. 목선이 예쁜 S와 드로우어웨이 오버스웨이(Throwaway Oversway)를 할 때면 우리는 함께 한 송이 나팔꽃을 조심스레 피우는 것 같은 황홀감을 맛보기도 했다.
그 S의 남편이 갑자기 죽다니!
전화를 끊고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누군가 내 가슴을 한 대 세게 치고 도망간 것처럼 가슴이 얼얼했다. 넉넉하고 풍요롭다는 한가위 연휴 기간이었는데, 해가 뜨기 전 거실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중앙 광장이 썰렁하고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S는 나와 동갑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우리 동의 동대표였는데, 그도 역시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100세 시대라는데… 50대, 세상을 뜨기에는 이른 나이였다.
지난 도시에서의 위층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날은 주일 새벽이었고, 남편은 지방의 한 도시로 출장 중이었다. 갑자기 천장을 드릴로 뚫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45분이었다. 악- 악- 어떡해- 어떡해- 외마디와 함께 누군가 이방 저방으로 뛰는 우당탕 소리가 벼락 치듯 들렸다. 바로 위층이었다. 나는 혹 소란이 멎을까 잠시 기다리다가 인터폰으로 경비아저씨께 전화했다. “304호에 무슨 일이 난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한 번 올라가 보시겠어요?” 그리고 나도 바로 외투를 걸치고 문밖 복도로 나갔다. 계단으로 아저씨가 올라가시는데 벌써 아파트 앞에 번쩍번쩍 불빛을 쏘며 구급차가 도착했다. 조금 후 이동 침대에 누군가 실려 내려오고 그 뒤에 한 여자가 널뛰듯 뛰며 함께 내려왔다. 여자는 침대가 차에 실리는 동안에도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아!! 어떡해! 어떡해!”
2층 복도에 나란히 서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경비아저씨가 내게 말씀했다.
“저 댁에 중풍 맞은 노인이 계시는데, 일이 난 것 같네요. 그런데 저분은 할머니가 아니라 따님이신 것 같은데….”
새벽을 가르던 그 비명과 초겨울 새벽 찬 아스팔트 위에서 뛰던 여자의 맨발이 계속 생각나 나는 날이 밝기까지 어두운 거실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네덜란드에서의 공포가 엄습했다. 내게 여전히 잠재해 있는 트라우마였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때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침대 위에서 울고 있었다. 공격받은 벌레처럼 몸을 공같이 말고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너무 아픈 것인지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신음만 뱉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 너무 충격이었다. 검사 결과 위궤양이었다. 네덜란드 의사는 예전 같으면 입원해야 하는 병이지만 약이 매우 좋아졌다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 병은 그 후 남편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우리 가족의 일상을 쥐락펴락했다. 우리는 날마다 약을 먹듯 산책을 했다. 막 태어난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두 딸과 함께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를 부르며 나무다리를 건너고, ‘염소길’과 ‘당나귀길’을 걸으며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을 불렀다. 그러나 그 고운 동요 뒤엔 항상 슬픔과 두려움이 함께 있었고, 나는 성경의 인물 나오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방 땅에서 남편과 두 자식을 잃고 며느리와 귀향했던 나오미. 몸무게가 채 50㎏이 되지 않던 남편의 허약한 몸에 무시로 폭군처럼 찾아오던 통증. 그와 함께 일상이 멈춰버리던 시간.
월요일 아침, 다시 만난 경비 아저씨가 나를 보자 말씀하셨다.
“아이고! 저승사자가 사람을 잘못 데려간 것 같아요. 돌아가신 분이 할아버지가 아니고 사위라네요. 그래서 그날 따님이 그랬던가 봐요. 밤새 안녕이라더니, 참 젊은 양반이…”
며칠 후 아파트 앞 쓰레기장에 생소한 짐 한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 붉은 끈에 묶인 책 몇 권과 종이 상자에 담긴 남성의 옷가지, 가방,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던 몇 켤레의 신발들. 위층 망자의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초라해 보이는 짐 더미 위로 초겨울 짧은 석양빛이 비끼던 그 장면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며칠 후 나는 S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식사하자고 청했다. 그사이 S는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물기를 덜어내는 길가 나뭇잎들처럼 그녀도 마르고 건조해 보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 길가에 핀 꽃에 눈을 주며 그녀가 허허로이 말했다.
“코스모스가 참 이쁘네. 함께 꽃놀이, 단풍 구경 한 번 간 기억이 없어. 참 원망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제 명을 제가 재촉했으니….”
당뇨병을 앓던 그녀의 남편은 그사이 두어 차례 저혈당 쇼크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단다. 추석이 다가오니 장남인 남편은 부모 형제 맞을 생각에 소주 한 상자를 사다 놓고, 좀 과음을 했던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햇살이 따사롭게 드는 한식당 창가 자리에 앉아 나는 천천히 밥을 먹으며 그녀가 식사를 조금이라도 더하기를 바랐다.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얼음 넣은 냉수를 마시며 그녀가 말했다.
“집 내놨어. 이 양반이 대출을 한도 것 받아 다 주식을 한 것 같아.”
다시 내 가슴이 쿵 떨어졌다. 말을 잃은 우리는 창밖 풍경에 눈을 주며 오래 찻집에 앉아 있었다. 초록에 곱게 단풍이 들고 있었다.
며칠 후 S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보니 바닥에 화분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내일 이사 가. 화분 다 나누는데 자기한테도 하나 주고 싶어서….”
“그 많던 화분을 다 나눠줘?”
그녀의 집 거실엔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식물이 있었다. 수많은 다육식물과 오랫동안 키웠을 큰 화분들이 창가에 가득했다. 그 화분들을 다 나눠준다는 거였다.
“이사 갈 집이 10평이나 될까? 너무 좁아. 사람도 다 못 들어가게 생겼어.”
“아이고, 아까워서 어떡해! 애지중지 키웠는데!”
“이게 뭐 아까워… 사람도 갖다 버리고 왔는데….”
말은 그렇게 담담하게 했지만, 그녀의 눈가엔 금방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차마 그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꽃나무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 내가 잘 키워 놓을게.”
제법 큰 토분에 담긴 군자란과 아까시나무, 그리고 막 삽목해 놓은 어린 산세비에리아 화분을 나는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다음 날 아파트 앞의 재활용장 앞엔 그녀가 이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마련했을 새 장롱과 거실 탁자, 의자 등 너무도 멀쩡한 가구들이 내려와 있었다. 막상 팔아보려니 돈도 얼마 되지 않고 중고가구 장사와 시간 맞추기도 어려워 그냥 다 돈 주고 버린다는 것이다.
고르고 골랐을 이삿짐을 실은 작은 트럭이 먼저 떠나고 그녀가 두 자녀와 함께 탄 자동차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참고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버려진 S의 가구들을 망연자실 바라보며 아파트 입구 계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잿빛, 비가 흩뿌릴 것 같은 하늘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냥 두면 비에 젖어 다 못 쓰게 될 가구들.
결혼 때 마련한 오래된 장롱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던 지인을 나는 떠올렸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사진을 찍어 전송하자 흔쾌히 자신이 그 장롱을 들이겠다고 했다. 나는 용달차를 수소문해 바로 장을 실어 보냈다. 장을 받아준 지인이 고마웠다. 지인은 들인 장롱이 방의 침대와 한 세트인 것처럼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어 무척 감사했다.
S가 떠나고, 다음 해 나도 왈츠를 그만두었다. 몇 년 어간 성실하게 배운 나는 모든 여자 회원이 가장 함께 춤추고 싶어 하는 남자 파트너가 되었지만,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나르듯 춤을 출 때마다 엄마가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척추가 부러져 걷지 못하고 내 옆으로 오셔서 안간힘을 쓰며 재활 중이셨다. 나는 왈츠 대신 날마다 엄마 손을 붙들고 걸음마 연습을 하고, 엄마 집을 나와서는 운중천을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했다.
언제라도 원치 않는 일이 우리 앞에 예고 없이 닥칠 것이다. 긴 싸움이 될 질병이 ‘생각하지 않은 날’ 느닷없이 찾아와 일상이 휘청이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알지 못하는 시각에’(눅 12:46) 사랑하는 사람과 생의 경계를 넘는 이별을 하는 날도 올 것이다. 인간은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으며, 내일 일은 그러므로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시 144:4)”같은 것이다. 오직 예수께만 소망이 있는 이유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
<hkcho7739@naver.com>
1) 연도는 가톨릭에서 연옥 영혼들을 위해 드리는 독특한 방식의 기도임.
글 | 조혜경
2004년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2004), 기독신춘문예대상(2006)을 수상하였고, 문예진흥기금을 수혜(2006)하였다. 저서로 <꿈꾸지 않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