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 조화를 위한 입법 방향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 조화를 위한 입법 방향

2020-12-06 0 By 월드뷰

월드뷰 DECEMBER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글/ 권우현(한국기독문화연구소 변호사)


Ⅰ. 들어가는 말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2012년의 합헌결정을 뒤집어 2019년 4월 11일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합헌결정에서 태아의 생명권에 대해, 그리고 대법원도 다양한 판결에서 생명권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한 바 있기에, 태아의 생명권을 임산부의 자기결정권보다 후순위로 인식한 헌법재판소의 2019년도 결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의 대의명분으로 삼은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검토하면 그동안 법학자와 법조인들의 담론을 벗어나지 못한 평범하고 추상적인 수준에 그쳐 충분한 설득력이 없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고 헌법재판소 결정의 기속력에 따라 태아와 임산부의 법익을 균형 있게 구현하기 위한 입법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주요 국가별 낙태허용 시기


프랑스, 독일, 덴마크, 핀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아일랜드 등의 국가에서는 임신 12주까지는 임산부의 요청으로 낙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경우에도 임신 12주의 범위에서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12주 이후 낙태허용 사유는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임산부의 건강이나 태아 건강상의 이유로 한정하여 낙태를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을 기준으로 하여, 독자적 생존능력이 없는 시기의 경우는 임산부의 요청으로 낙태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독자적 생존능력이 있는 경우는 임산부의 생명이나 건강 보호를 위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태아의 생명권을 더욱 보호하기 위해 태아 심장박동법을 입법화하고 있다. 2019년 5월 기준, 미국에서는 4개 주(앨라배마, 미시시피, 오하이오, 조지아)가 태아 심장박동법을 인정하고 있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된 후(대략 5주에서 6주)에는 법이 규정한 사유 이외에는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Ⅲ. 바람직한 개정입법안의 방향


1. 낙태죄의 주체

낙태죄의 주체를 현행법대로 유지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행법에 대해서는 그동안 일부 여성계에서는 낙태죄가 오로지 여자만을 처벌하는 악법이라며 지속해서 낙태죄 폐지 운동을 추진해 왔다. 비록 태아의 법률적 부(父) 또는 생물학적 부(父)가 형법상 낙태죄의 교사범이나 방조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는 하나 이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워 실질적으로 태아의 부가 낙태 교사나 방조범으로 처벌받는 사례는 흔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여성계의 입장, 즉 처벌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태아의 생물학적 부 또는 법률적 부를 포함하여 태아의 부모를 낙태죄의 주체로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다른 방안으로 낙태죄의 주체를 오로지 의사로만 한정하는 방안이 있을 수도 있다.

필자는 생명 잉태에 기여한 남성이 낙태에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본다. 이에 태아의 생명권을 두텁게 보호하고 생명 잉태에 공동관계에 있는 남성에게도 낙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우는 방향이 타당하다고 본다.


2. 허용되는 낙태 시점의 설정

가.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의 규범조화적 입장

종교적・철학적 관점에서 생명의 시점을 논하지 않더라도, 이미 헌법학계와 대법원에서는 수정란 착상 시점을 생명의 시기로 보고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임산부의 결정가능기간을 수정란 착상 시부터로 본 것으로 보아 헌법재판소 역시 생명의 시기를 수정란 착상 시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학적으로 태아의 심장 박동은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 출생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지표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들도 심장이 뛰고 있을 때를 ‘살았다’라고 하며, 심장이 멈추었을 때를 ‘죽었다’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반인의 인식과 의학적인 지표인 심장박동 감지를 기준으로 하여, 생명의 시작인 수정란 착상 시부터 심장박동이 감지된 시점 이전의 태아의 경우에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합법적으로 침해할 수 있도록 입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구체적인 입법 방향

심장박동이 감지되기 전(임신 5주에서 6주)까지는 자유롭게 낙태를 허용하되, 심장박동이 감지된 시점 이후에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낙태할 수 있으나, 낙태가 가능한 시점을 임신 10주로 한계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의학적, 윤리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경우는 현재 모자보건법 시행령의 규정을 기초로 하되,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를 고려하여 24주에서 22주로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즉 정부안과 비교하면 자유로운 낙태의 경우 정부안은 임신 14주까지이나 입법 대안은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기 전까지이며,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의 경우 정부안은 임신 24주까지이나 입법 대안은 임신 10주까지, 의학적・윤리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경우 정부안은 임신 24주까지이나 입법 대안은 임신 22주까지인 것이다. 정부안과 비교하면 입법 대안이 더욱 구체적이며 세분되어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임신 10주까지 설정한 것은 의료현장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대한산부인과 낙태법 특별위원회는 임신 10주 전에는 수술 도중 위험성과 합병증 발병, 장 천공 등 수술 전후에 대한 생리적 변화가 크지 않으나 10주를 넘어서면 생명체를 조각내 긁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므로 임신 10주가 임산부에게 가장 안전한 주수이자 유해가 적은 마지노선이라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 상담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숙려기간의 필요성

임산부가 허용된 낙태를 하기 위해서는 상담절차를 거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상담 과정에서 낙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부여하여 낙태하려는 마음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안에서는 숙려기간을 24시간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는 숙려기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짧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낙태 경험자 중 의사와 상담 후 가진 숙려기간을 조사한 결과 3일 이내가 28.3%, 3일~1주일 이내가 38%, 1~2주 이내가 19.6%, 2주~1개월 미만이 7.8%였다. 1개월 이상의 숙려기간을 가진 경우는 전체의 6.4%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심장박동 감지 후 10주까지는 4주에서 5주라는 시간이 부여된다. 이 기간은 임신한 여성이 현재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여 출산할 것인지 낙태할 것인지 숙고하기에 충분한 기간으로 판단된다.

3. 출산 장려를 위한 모자보건법상 상담 절차의 강화

낙태가 법적으로 허용됨으로 인해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낙태 여부를 고민하는 임산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에서 모자보건법의 상담절차 규정을 신설하여 임신과 출산에 대해 임산부들의 걱정과 고민을 해소하고, 낙태 여부를 고민하는 임산부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상담을 하도록 상담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상담기관이 무분별하게 설치⋅운영되어 임산부에게 부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 우후죽순 설립되지 않도록 시행령이 아니라 법률에 상담기관을 규정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제안하는 입법의 방향은 우선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에 임신⋅출산기관을 설치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각 지역 보건소에 종합상담기관을 설치하여 임산부에게 자녀 출산을 권장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다양한 상담내용 중에서 낙태와 관련된 상담은 반드시 의사 면허증을 보유한 상담원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해서 임산부가 정확한 정보를 받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임신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불안한 여성들을 상담하는 직역이라는 특성상 성범죄를 범한 자는 상담원 자격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Ⅳ. 맺음말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들에게 태아란 귀중한 생명체라기보다는 부모 인생의 크나큰 장애물이며, 태아가 출생해 성년이 되기까지 부모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부모를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정부안 역시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힘들다고 자살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국가가 앞장서서 태아를 죽이자고, 14주까지는 제한 없이 죽이고, 24주까지는 요식행위만 거치면 죽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태아 역시 생명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는 태아를 위해 강력한 보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고 헌법을 수호하는 책임 있는 태도다.

<rombrosso@hanmail.net>


글 | 권우현

성균관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하였으며,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전문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현재 한국기독문화연구소 변호사, 법무법인 추양가을햇살 구성원 변호사, 자유와인권연구소 법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