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단기간에 구축한 최고의 의료시스템
2020-11-03– 자율과 경쟁이 발전의 원동력 –
월드뷰 NOV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
글/ 박윤형(순천향대 의대 교수)
지난 7월 당정이 지역 의사 4,000명 증원, 공공의대 설립을 발표하면서 주요 근거로 제시한 OECD 통계 때문에 국민은 의사 수가 많은 다른 나라 의료에 관해 관심이 높아졌다. OECD는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 개발 기구)의 약자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37개국이 모여 주로 경제협력을 의논하는 국제기구이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에 가입하였다. OECD에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칠레, 콜롬비아, 체코, 그리스, 헝가리, 멕시코, 폴란드, 터키,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경제 수준이 우리보다 못한 나라들도 다수 가입되어 있다.
영국, 미국과 유럽의 의료시스템
영국에 출장 갔을 때 유학생 지인을 만났다. 그는 아이가 아파서 영국 의료기관을 이용했는데 최악이라고 평하였다. 아이가 열이 심하게 올라 주치의에게 전화했더니 가장 빨리 예약을 해 준다면서 2일 후에 방문하라고 하였다. 영국은 주치의 이외에는 진료를 받을 수가 없다. 다음날 아이가 열이 더 올라 다시 전화했더니 인근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라고 하였다.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더니 응급환자 여부를 판단하는 예비 진료실(Triage room)의 간호사가 이 아이는 응급환자가 아니니 다시 주치의에게 연락하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와서 알코올과 차가운 물로 온몸을 적셔서 체온을 내려준 결과 아이의 열은 내렸다. 그다음 날 진료 예약일에 주치의에게 가서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주변의 영국 친구들에게 불평을 말했더니 자기들도 아파도 다 참으면서 산다고 하였다. 영국은 병원 대기 환자 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대기 환자(waiting-list)만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항상 약 50만 명 이상이 병원 입원 치료와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영국 국민은 국가의료시스템(National Health Services : NHS)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NHS는 모든 의료비를 국민의 세금인 국가 예산으로 부담하는 제도이다. 물론 바쁘고 여유 있는 계층(약 15%)을 위해 사보험(私保險)도 있고 사보험 환자만을 위한 병원과 병상이 마련되어 있다. 영국과 같이 NHS를 시행하는 스페인, 이탈리아, 호주, 캐나다 등의 나라도 사정은 영국과 비슷하다. 증가하는 의료비를 예산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국민의 진료를 억제하고 있다. 주치의 제도는 의료이용의 문지기(gate keeper)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완전 사보험 또는 개인 부담으로 진료비를 부담하는 미국은 의료이용에 차이가 크다. 미국은 대부분 직장에서 의료보험을 부담하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같은 좋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거의 무제한으로 최고급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직장이 없거나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직장 종사자는 웬만큼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의료보험이 이직을 포기하는 주요요인(job lock)이다. 오바마(Barack Obama)가 시행한 의료개혁(Obama Health care reform, 일명 오바마케어)은 모든 국민은 사보험인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보험회사는 환자가 AIDS 등 심각한 질병이 있더라도 가입을 거절할 수 없으며,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국민은 국가가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여기에 4천만 명에 이르는 불법체류자 등은 제외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 퇴임 후,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오바마케어 추진에 미온적이고, 노동조합 등에서도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여 반대하고 있다. 또한 연예인, 예술인 등 개인 사업자들도 강제가입을 반대해서 오바마케어의 진행은 지지부진하다. 미국의 보험자도 징수하는 보험료에 비해 진료비가 비싸지자 의료비를 절약할 수 있는 제도로 발전시켰다. 보험사와 의료기관이 계약하여 건강유지조직(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 HMO)을 만들고 직장 가입자가 이 조직을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회사는 의료보험 부담이 줄어든 HMO를 구축한 보험사를 선호하여 가입하였다. HMO는 영국의 의료제도와 유사하다. 즉 반드시 주치의에게 먼저 진료받고 필요하면 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주치의가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일차 의료는 본인부담금이 없다. 이 제도가 도입된 후 많은 불만이 쌓이자 일부 완화하여 계약된 의원을 이용하면 본인부담금이 없으나 비계약 의료기관을 이용하면 본인 부담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 : PPO) 등 유사한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물론 대기업은 예전과 같이 자유로운 이용과 모든 진료비 보장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제도 중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노인에 대한 의료보장인 메디케어(Medicare)와 영세민과 소아를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이다. 특히 메디케이드는 적용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 달하는 약 5천만 명인데 국가에서 지원하는 진료비는 우리나라 전체 의료보험 재정 약 60조 원의 5배인 300조 원 정도이다. 메디케어는 메디갭(medigap)이라는 보충 사보험을 연계하고 노령층을 가입시켜 정부의 의료보장과 함께 본인이 원하는 의료를 더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아울러 군(軍)병원과 보훈병원 등에 대한 투자를 충분히 해서 미국 내에서 최고의 병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은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인 전국민의료보험으로 운영되는데 프랑스는 진료받고 진료비를 의원에 직접 낸 후, 본인 부담을 제외한 금액을 보험사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국민이 자유롭게 의료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고, 독일은 의료보험조합과 의사회가 총액으로 계약을 맺고 의사회에서 총액 범위 내에서 운영하도록 하는 등 의료이용에 자율성을 주고 있다. 저소득층에 대하여는 국가가 의료보험료를 대신 내주는 제도로 운영하여 저소득층에 대한 차별을 예방하고 있다. 프랑스나 독일은 입원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은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병원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약 150만 명의 저소득층에 대하여는 의료보험과 별도로 의료급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진료에 일부 차이가 있고 의료급여 진료비 지급도 예산 부족으로 연체되고 있어 의료급여환자는 다소 차별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주로 진료하는 국공립병원은 시설, 장비, 인력 측면에서 낙후되어 있다.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의사 인력의 수나 병상 부족이 아니라 국가의 투자 의지가 없는 점이고 실제로 투자액도 선진국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전국에 구축된 공중보건시스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편리하고 우수한 보건의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먼저 우수한 지역사회 공중보건체계인 보건소망을 가지고 있다. 보건소는 6·25 남침 전쟁 종전 후 전염병이 창궐하고, 의료기관이 파괴되는 등 비참한 한국의 의료현실하의 한국을 돕기 위해 세계보건기구 등에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던 것을 정부에서 받아 보건소망으로 발전시켰다. 현재 전국 250개 시군구마다 설치 운영되고 있고 주민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읍면에는 보건지소를 설치하여 군복무 대신 3년간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를 배치하여 진료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섬 등 오·벽지에는 보건진료소를 배치하여 간호사인 보건진료원이 간단한 질병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의촌을 완전히 없앴고 의사를 배치하기 어려운 섬 지역을 위하여 병원선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은퇴 의사를 활용하여 보건지소에 의사를 배치하고 있으나 많이 모자라는 실정이고 미국은 주로 공무원 의사가 아주 부족한 지역인 인디언 보호구역 등에 배치되어 있다.
OECD 통계로 본 의료시스템
의료체계는 의사 수, 의원, 병원,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의 수와 지역별 분포, 의사 교육시스템과 의료의 질, 의료서비스의 만족도 등을 종합해서 평가한다. 이번에 정부가 인용한 OECD 보건의료통계를 보면 인구 1천 명 당 의사는 평균이 3.5명인데 우리는 2.4명으로 적다. OECD 국가 중 우리가 잘 아는 국가의 인구 천 명 당 의사는 캐나다 2.7명, 프랑스 3.2명, 독일 4.3명, 이탈리아 4.0명, 일본 2.5명, 스페인 4.0명, 미국 2.6명으로 유럽 쪽이 높고 미국, 캐나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다. 한편 의사 수와 함께 다른 통계들을 살펴보면 인구 천 명당 병상 수는 OECD 평균이 4.5인데 우리나라는 12.4로 2.5배가 높다. 일본 13.0 병상에 이어 OECD 국가 중 2번째로 많으며 프랑스 5.9, 독일 8.0, 이탈리아 3.1, 미국 2.9보다는 월등히 높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의사는 매우 적은데도 병상은 최고로 많다. 한편 국민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를 보면 OECD 평균이 6.8회인데 우리나라는 16.9회로 가장 높다. 다른 나라는 캐나다 6.7, 프랑스 5.9, 독일 9.9, 스페인 7.3이며 일본이 12.6으로 우리에 이어 2번째이다. 즉 우리나라와 일본은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수의 의사로 가장 많은 병상을 유지하며 가장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으면서도 국민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의료체계는 각 나라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발전되고 정착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가 간 특정 지표를 비교하기보다는 의료자원과 재정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분석한다. 따라서 OECD 평균에 비해 적기 때문에 의사를 대규모로 증원해야 한다는 것은 별 의미 없는 통계를 인용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반응
실제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의료이용체계는 어떠할까? 정부는 정기적으로 의료서비스조사를 하고 있다. 2019년에도 전국에서 표본으로 추출된 6,000가구의 12,507명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 경험조사를 하였다.
국민 10명 중 7명이 1년에 1회 이상 외래진료를 이용하고 그중 60세 이상은 10명 중 9명이 외래진료를 받았다. 소득이 낮은 사람(1분위)과 농어촌 읍면 거주자와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더 많이 이용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의료이용 경험으로 ‘담당 의사가 예의를 갖추어 대해주었다’가 90% 이상이었으며 ‘담당 의사가 어떤 검사를 왜 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주거나, 치료나 시술을 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효과와 부작용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가 86%, ‘담당 의사에게 질문하거나 관심사를 말할 수 있었다’가 84%, ‘검사 여부나 치료법을 선택할 때 본인의 의견을 반영했다’가 84%로 만족도가 높았다. ‘이용한 의료기관이 안락하고 편안했다’가 85%이었다.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동안 의료진이나 직원들이 개인정보(연령, 병명 등)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였다’가 84%, ‘이용한 의료기관을 주변인에게 추천하겠다’가 80%이었다. 의사의 평균 진료시간은 8.7분으로 확인되었다.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서 접수 후 기다린 시간은 평균 20분이었다. 외래진료를 예약 없이 당일에 바로 받은 경우가 75%이었으며 입원 진료도 예약 없이 당일에 바로 받은 경우는 45%이었다.
대부분의 선진국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당일에 즉시 전문의에게 진료받을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고 병원 입원 대기시간도 우리나라는 매우 짧은 편이다. 암 치료율 등 의료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단기간에 구축한 선진 의료체계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전통 한의학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19세기 말에 일본과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과학적 현대의학이 도입되어 의학교가 설립되고 국가 면허제도가 도입되었다. 해방 후 미 군정기에는 미국의 공중보건체계가 도입되어 일제시대 경찰이 운영한 위생경찰에서 과학적 공중보건제도로 변화되었다. 6·25전쟁 후 폐허 속에서는 해외 원조 때문에 무료 진료소가 지역에서 활동하고 국립의료원도 스칸디나비아 3국의 원조 때문에 설립되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에 이르는 경제개발시대에는 의료분야에 국가의 예산지원은 거의 없었다. 이때 많은 의사가 미국에 유학하여 전문 과목을 수련하고 와서 전문의 제도를 구축하였고 우리나라 의료가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는 기반을 쌓았다. 의료의 기반인 의과대학과 의료기관은 민간분야에서 국가의 지원 없이 발전시켜 나갔다. 민간부문에서 경쟁과 협력을 기반으로 의료기반이 발전한 결과 의료기관의 시설과 장비, 의료 인력의 질, 의료기술의 개발과 발전, 서비스 개선 등 많은 부문에서 선진국 의료와 동등하게 발전하였다. 정부는 민간자본을 학교법인이나 의료법인 등을 구성해 운영하게 하여 사회적 자본으로 구축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예산과 재정융자 사업, 농어촌 특별세 재원 등으로 농어촌 병원 건립 지원, 병상확보를 위한 차관 장비 지원 등 역할을 하였고 현재는 농어촌 산부인과 지원, 어린이 소아 응급실 지원, 응급의료센터 등 지원, 심뇌혈관 센터 건립지원 등 민간이 하기 어려운 분야에 지원하고 있다. 의료체계 발전을 위해서는 그동안의 정책과 같이 의료계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경쟁과 효율을 통해 발전하도록 하고 정부는 필요한 부문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본다.
<parky@sch.ac.kr>
글 | 박윤형
현재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며 세계보건기구 협력센터장(WHO Collaborating center for Healthy cities and Health in all policies)을 맡고 있다. 순천향의대 학장과 국립공주병원장, 경기도립의료원장, 의료정책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한국보건행정학회장을 역임하였다. ‘의료정책 현장에서 답을 찾다’, ‘의사의 직업규범과 윤리’ 등 저술과 ‘보건경제학’ 등 번역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