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교 보수주의자입니다
2020-10-21
월드뷰 OCTO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3 |
글/ 황선우(작가)
대학에 입학하고 첫 MT 일정이 잡혔다. MT 문화가 별로 당기지 않았던 나는, 먼저 MT를 갔다 온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MT 별로 안 가고 싶은데, 가는 게 좋을까?”
“한 번 가봐.”
“왜?”
“세상에 그렇게 시간 아까운 게 없다는 걸 가서 한 번 느껴봐.”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지혜로운 조언이었다.
“그럼 가지 않고도 그게 시간 아깝다는 걸 알면 안 가도 된다는 거네?”
“그렇지.”
그래서 가지 않았다. 그 선택은 탁월했다.
나에겐 고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가 있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 입학하고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의미 있는 관계가 아니면 크게 가까이하지 않았고 그저 술친구나 유흥 친구는 더더욱 별로 의미 있어 보이지 않았다.
대학교 친구
대학에선 자연스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시간을 정말 의미 있게 쓰고 싶었지만 신입생 때는 방법을 몰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남는 시간 동안 도서관에서만 살아보기도 하고, 대외활동을 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아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양한 경험을 맘껏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활동과 경험을 하면서 ‘의미 있는’ 진짜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겪은 후에는 나름 삶의 균형이 꽤 잘 잡혔다.
1학년 때, 봉사 시간도 채울 겸 경험도 해보고자 교육 봉사를 신청했다. 수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은 꽤 많았다. 그때 갔던 곳이 ‘북한인권시민연합’이라는 단체였다. 그곳에서는 탈북 청소년 교육 봉사자를 모집 중이었다.
나는 지금도 교육 쪽에는 전혀 관심 없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하지만 이때 수학을 가르치면서 대화 나눴던 탈북자 친구는 나의 대학 생활과 비전을 많이 바꾸어 주었다.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깊이 반성했다. 이 친구가 내가 대학 입학 후 사귄 첫 친구였다.
3학년이 되고, 계속 수업이 겹치는 과 동기가 한 명 있었다. 이전 학기까지는 그냥 가끔 인사만 했는데, 자꾸 부딪치다 보니 처음으로 길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이 친구는 한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1학년 때부터 MT 같은 건 시간이 아까워 가지 않았다.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한 인권 문제에도 청소년 시절부터 깊이 관심이 있었고 각종 강연을 들으면서 자유 통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선생님 일을 꾸준히 하며, 통일 이후 다가올 북한 출신 국민들에게도 좋은 교육을 전해주고 싶다는 비전이 있는 친구였다. 이 친구가 내가 대학 입학 후 사귄 두 번째 친구다.
기독교 보수주의 학생운동
올해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마지막 해이다. 그래 봐야 아직 20대 중반이라 더 배워야 할 게 무수히 많겠지만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조금씩 배운 것들은 앞으로 나의 삶에서 끝내 지키고 있어야 할 큰 보물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다. 수학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에 갔다가 글 쓰는 것에 흥미가 생겨 국어국문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글쓰기를, 이른바 ‘학생운동’ 하는 데 사용했다. 보통 학생운동이라 하면 반(反)체제적이고 좌파 성향을 띠기 쉬운데, 나는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세워진 위대한 나라”라고 말하며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거나 대자보를 쓰는 등의 남들과는 다른 학생운동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하면서 썼던 대자보가 언론사에 칼럼으로 실리기도 하고, 나중에는 그 칼럼들 중 일부가 책에 실려 작가 데뷔까지 했다.
공식적으로 어떤 글을 쓰거나 말을 한다는 건 굉장히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배우고 가꿔야 할 시기에 가르치는 자가 된다는 것, 돈을 내서라도 배워야 할 시기에 오히려 돈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하는 일이며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야 할 크리스천으로서는 더욱더 그렇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타협할 수 없는 진리 혹은 대한민국의 선배 세대가 남겨놓은 지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소위 ‘꼰대’라는 이름으로 무시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오히려 같은 학생이 이 풍조를 거부하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보수주의적 질서를 말할 때 또래 친구들이 더욱 귀 기울여주는 것을 봤다. 이것이 크리스천 학생으로서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학생운동이다. 물론 이 역시 자신의 의가 하나님의 의보다 높아지면 결코 좋은 효과를 보일 수 없다.
이제 학생운동을 마치며, 대학을 졸업하기 전 나의 이야기를 남겨놓으려 책 <나는 기독교 보수주의자입니다>를 집필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일반 또래들보다 써온 글의 양도 많았고, 또 작가로 데뷔도 한 상태라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여기며 겸손히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기다린다.
<sunu8177@naver.com>
글 | 황선우
세종대학교에서 수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며, 기독교 보수주의 학생 단체 ‘트루스포럼’의 세종대 대표로서 2년간 활동했다. 저서로는 <상처가 또 다른 씨앗이 되기까지(천안함 생존자 전준영의 이야기)>(2020) 그리고 <나는 기독교 보수주의자입니다(대학생 황선우의 이야기)>(2020)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