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과 흥남철수작전의 메시지: 생명의 항해
2020-10-19
월드뷰 OCTO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1 |
글/ 안재철(월드피스 자유연합 대표)
생명 구출을 향한 위대한 도전과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위대성
2020년은 6·25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좌파 세력의 영향으로, 나라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70년 전 공산주의에 맞서 대한민국을 구하고자 주저하지 않고 전장으로 달려왔던 이역만리의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목숨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이에 6·25 한국전쟁에서 가장 빛나는 사건인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에 대하여 다루고자 한다. 당시 미군이 주도한 피난민 구출 작전 이야기를 다룬 <생명의 항해(안재철 저, 월드피스자유연합)>를 통해서, 생명 구출을 위한 위대한 도전에 관해 이야기하고,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흥남철수작전 성공의 군사적 전략상 의미
1950년 6월 25일 갑작스러운 북한의 기습으로 낙동강 이남으로 밀려났던 국군이 유엔군과 함께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을 점령하며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1950년 11월 말, 개마고원 장진호 방면으로 진격하던 국군과 유엔군 앞에 어마어마한 수의 중공군이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출현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겨울의 강추위까지 겹치자 유엔군 사령부는 어쩔 수 없이 철수를 결정했다.
10만여 명에 달하는 병력과 10만여 명의 피란민을 안전하게 이동시킨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으로 유엔군은, 흐트러진 전력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과 병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유엔군은 전투 병력뿐만 아니라 장비와 전략물자도 안전하게 옮길 수 있었다. 육·해·공군의 합동작전을 통한 대대적인 해상 철수 작전의 성공은 유엔군의 사기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에 장진호 전투 때 한반도 북동부 전선에 출현했던 중공군 9병단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피해를 보았고 전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미 해병 1사단을 시작으로 미 육군 7사단, 미 육군 3사단, 국군 1군단의 수도사단과 3사단, 국군 해병 1연대 등 미 10군단이 지휘하는 모든 유엔군을 몰살시키려 했던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이것은 중공이 의도하고 기획했던 한반도의 공산화 시도가 실패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더군다나 중국 공산당 지휘부의 무모한 작전은 처음부터 성공할 수가 없었다. 중공군의 작전은 자국 군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무자비한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장진호 전투에서 유엔군의 전투 병력이 모두 희생되었다면 그것은 곧바로 핵전쟁이라는 극한 처방으로 이어져 3차 세계대전까지 연결이 되는 커다란 재앙을 가져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으로 유엔군의 주력 부대가 안전하게 후방으로 철수하고 다시 재반격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기에 한반도의 중공군 주둔 지역이나 만주 지역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극단적인 전쟁 방식이 채택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흥남 철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전력을 기울인 유엔군 사령부의 맥아더(Douglas MacArthur) 사령관과 유엔 해군 사령관과 예하 부대, 유엔 공군 사령관과 그 예하 부대의 모든 지휘관과 병사들이 대한민국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1950년 12월 16일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손에서 구하는 일에 미국 국민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의 결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6월 30일 지상군의 한국전쟁 참전 결정을 할 때도, 의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서둘러 참전을 결정한 신속한 행동으로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손에서 구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흥남철수작전에서 발견한 인류애
흥남철수작전이 전쟁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유는 1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 구출 작전이 함께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북한을 탈출하려는 피난민을 구출하기 위해 지휘관과 병사들이 모두 나서, 엄청난 비용의 군수 물자를 포기하고 인간의 생명을 선택했던 놀라운 인도주의적인 활동에 초점을 맞추면 ‘흥남 구출 작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특히 6·25전쟁 당시 북한의 민간인은 적국의 국민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구출 작전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생명 구출을 우선으로 하는 군사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무한한 자부심을 준다.
세계 전쟁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 8일간 독일군에게 포위되었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 338,000여 명의 철수 작전이었던 덩케르크(Dunkerque) 철수와 흥남철수작전을 자주 비교한다. 그러나 철수하는 병력 10만여 명뿐만 아니라 거의 같은 수의 피란민을 모두 무사하게 철수시켰다는 점에서 흥남철수작전은 덩케르크 철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운 작전이었다.
흥남철수작전의 역사적 왜곡과 우리 사회의 좌경화 병폐의 원인
일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는 흥남철수작전 당시 북한 피란민 14,000여 명을 구출한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수사의 장례 미사에 참석한 2001년 10월 14일 이후, 국가 안보 교육에 모든 것을 걸고, 지난 20년 가까이 5,200여 회의 ‘6·25 전쟁 사진전’과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원한 세계 67개국 국기 퍼레이드’라는 활동과 함께 6·25 한국전쟁에 관한 역사적 자료를 연구, 조사하고 발굴해왔다. 이런 입장에서 6·25전쟁을 해석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대한민국을 지킨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문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희생을 아무 일도 아닌 양 거침없이 무시하는 자들이 문제점을 낳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간 흥남철수작전을 홍보해 오면서, 좌파 일색의 한국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필자가 미군을 칭찬하느라 한국인들의 공로를 짓밟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희생을 자신들의 것으로 훔치는 것이 가장 비겁한 짓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국제시장>에 나왔던 장면 중 ‘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란민 철수 작전에서 피란민을 구출하지 않으려는 미군 지휘관을 한국인 통역관이 설득해서 미군들이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을 구출한 것처럼 꾸민 것’은 가장 비겁한 조작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이들은 ‘영화는 허구이기 때문에 흥행을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그동안 역사를 왜곡하여 좌경화를 부추겨 온 자들이 거짓으로 국민을 선동해 놓고 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지난 40여 년간 국민을 선동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던 거짓 선전을, 예술이니까 괜찮다는 식으로 변명을 한다면 과연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이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결국 이런 일이 반복되고 확대되고 재생산되면서 제대로 된 역사를 모르는 청소년 세대는 거짓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게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미군들이 피란민 문제를 귀찮아하다가, 몇몇 한국인의 설득만으로 막판에 마지못해 피란민들의 흥남 철수를 결정했다면, 미국이 수없이 많은 자국 젊은이들의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전쟁에 참전해서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사실과 상반될 수밖에 없다. 당시의 문헌과 자료를 조사하면 미군은 처음부터 가능한 한 최대한의 피란민 수송 방법을 찾고자 모든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다.
자유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인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도주의적인 사랑과 희생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일자: 1958년 5월 20일
내용: 대통령 단체 표창“대한민국 대통령은 1950년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간부 선원과 선원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표창하는 바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 22일 오후, 공격하는 적군에게 몰살당할 위협에 처한 수많은 피란민이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인 바닷가로 몰려있는 흥남항에 입항하였습니다. 압도적인 공산군의 공격 위협 아래 유엔군으로부터 간청을 받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원들은 전력을 다하여 14,000명의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7,636t의 화물선에 태우고 안전한 곳으로 운송하였습니다.
위험한 바다를 지나 사흘 동안의 항해 후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부산에 도착한 것은 이 인도주의적인 구조 작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사건이었으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참된 그리스도 신앙인의 모습으로 한국인들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이 표창을 통해서 1950년 12월 22일부터 25일까지의 기간에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원들에게 대통령 단체 표창 휘장을 부착하는 명예를 부여합니다.”
<mv14000@gmail.com>
글 | 안재철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현재 The World Peace Freedom United(월드피스 자유연합)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6·25 한국전쟁과 대한민국의 꿈>, <생명의 항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