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신학적 입장에서 본 국제 관계
2020-10-16
월드뷰 OCTO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2 |
글/ 이성구(통일교육문화원 이사장)
‘미국 우선주의’와 ‘일대일로 전략’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
“대영제국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다만 영원한 국가이익만 있을 뿐이다.” 1840-42년에 벌어진 중국과의 제1차 아편전쟁 당시 영국 외상이던 팔머스턴(Viscount Palmerston)경이 했던 이 말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기억하는 내용이다. 이 선언은 오늘날 치열한 국제 관계에서도 통용되는 무서운 철칙이 되었다. 19세기 중반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은 21세기에 들어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도날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외친 다음의 한마디는 팔머스턴의 언어를 보다 직설적인 언어로 바꾼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America First”
‘미국 우선주의’라고 번역되는 이 말에 상당수의 미국인이 동의하였고, 선거 직전까지 힐러리(Hillary Clinton)의 월등한 우세 속에 당선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이기는 놀라운 결과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자본주의적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공헌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으로 세계가 양분화되어 있던 시절을 지나 80년대 말에 이르러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은 그들의 공산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미국과 유럽의 경제 운용방식을 채택하는 변화를 모색하며 세계는 한동안 대결 구도를 버리고 글로벌 평화시대를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를 선도하던 미국이 엄청난 무역적자로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많은 미국 기업들은 지속해서 미국을 떠나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는 나라로 옮겨갔다. 그 결과 실업자가 증가하며 많은 미국인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정책을 내세우고, 대중(對中) 무역적자 폭을 줄이기 위하여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가 하면, 떠나간 기업의 회귀를 촉구하고 나섰다. 세계경찰국가의 역할을 중단하고 미군이 파병된 곳의 방위비를 더는 미국이 부담할 수 없음을 천명하고 독일로부터 미군을 철수하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한국과 일본 정부에게도 방위비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자국 이익 우선주의는 상호 무역의 벽을 높여 물자의 흐름을 방해하고 세계 경제가 함께 하락하게 하는 결과를 빚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런 미국의 흐름과는 달리 중국은 적은 생산비를 바탕으로 세계의 기업을 자국으로 유치하며 획득한 부를 동원,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전략을 세워 세계를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일대일로라는 이름으로 중국이 추진 중인 신(新)실크로드 전략은 두 가지 방향에서 세계를 중국으로 통하게 하고자 하는 방책이다. ‘일대(一帶)’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一路)’는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10월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처음 제시한 전략이다. 일대일로가 구축되면 중국을 중심으로 육・해상 실크로드 주변의 60여 개국을 포함한 거대 경제권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일각에서는 일대일로 전략이 중화주의의 부활을 꾀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해왔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미국과 유럽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은 언제든지 격화될 여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세계 경제의 양 기둥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결국 세계 경제 전체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고, 양 대국은 서로 간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주변국들에 자국과의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양 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해야 하는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자신들 편에 서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미동맹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의 지금까지 역사와는 달리 현 정부는 중국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이러한 국제정세를 대하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국제 관계를 맺어가는 방안에 대해 어떤 지침을 주고 있는가?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대입시켜서 생각해 볼 만한 구약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국제 관계를 통하여 나라와 나라는 어떤 관계 속에 있으며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지 중요한 원리 두 가지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모든 나라는 이웃 나라와 축복을 공유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구약과 신약성경은 동일한 하나님의 계시를 담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우선 시대적 배경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 삶의 정황도 판이하다. 무엇보다 특별하게 다른 점은 신약은 ‘교회’라고 하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한정할 수 없는 매우 광대한 조직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있지만, 구약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손에 잡히는 작은 실체를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실체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부르는 창세기 12장 1절 말씀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을 약속하신다. 그런데 그 약속의 목적이 새삼스럽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2절에서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신 하나님은 그 복은 아브라함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all peoples on earth)’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구체화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유대인과 이방인, 할례파와 비할례파 등 당시를 분열시키고 있던 요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십자가 사건의 목적이라고 명시한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역시 하나 됨이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복의 통로가 된다면 모두 하나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참된 평화는 하나 됨에 있다. 개인 상호 간의 관계든 다자(多者)들이 얽힌 국제 관계든 하나 됨이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문제해결의 시작이고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 의미하는 바는, 첫째로 인류가 누리는 복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기보다 위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이 주어지려면 누군가가 그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아브라함이요 나아가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둘째로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신약의 용어로 풀이하면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려 한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므로 교회가 모든 이방 민족이 복을 얻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스라엘은 원천적으로 자신이 복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타인이 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공동체여야 그 존재 목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이 세계를 위한 복의 통로가 되도록 견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갈 길을 잃은 듯하다. 북한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여겨지는 우리 정부는 세계 속에서의 역할이나 각국과의 적극적인 외교 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동맹 관계를 예사로 여기고 마치 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이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소련의 긴장 관계에 완충 역할을 하고 세계 각국의 갈등 해결을 위해 군대를 파송하던 위치에서 빠져나오는 결과를 빚고 있다. 따라서 민족 간의 분쟁,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각 곳에서 일으키는 분쟁 등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조정 역할을 할 힘이 사라진 세계의 앞날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다른 나라들에 복의 통로가 되기는커녕 중국의 자국 팽창주의 의도를 깨달은 개도국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어 국제 관계가 더 꼬여들 위험이 있다. 두 대국이 자국 이익 중심으로 나아갈수록 세계는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이럴 때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와 더불어 국가 운영의 목표를 자국 이익 중심에서 서로에게 복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도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은 각각 한국 정부를 향하여 자국 편에 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정부가 얼마나 난감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럴 때 세계 모든 나라가 자국중심주의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는 역할’을 감당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 분야에서 ‘복의 세계화’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계 열방은 축복과 함께 심판도 함께 겪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호세아서를 제외한 구약의 모든 예언서에는 빠짐없이 이스라엘 밖의 나라들, 즉 열방(列邦)에 대한 예언들이 담겨있다(사 13-23장, 렘 46-51장, 겔 25-32장, 암 1:3-2:5 등). 열방예언(OAN, Oracles Against the Nations)은 구약 예언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어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의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로 그는 북쪽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유다에서 북이스라엘로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먼저 이스라엘을 둘러싼 열방 나라들을 대상으로 심판을 선포하였다. 다메섹을 비롯하여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유다 등 이웃 7개 나라를 향하여 차례로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징벌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열방을 심판의 상황에서 구분하지 않으심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축복을 모든 나라와 공유하는 것이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이라면 주어진 기대에 어긋날 때 심판도 함께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주변국 모두가 축복과 심판의 자리에 동일한 자격으로 서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확고한 원리이다.
세계는 이미 지구촌(global village)이 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어느 나라든지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홀로 무엇을 이룰 수는 없다. 경제 문화적 발전의 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면, 한 나라가 저지른 잘못 역시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브라질 아마존 삼림의 훼손이 전 세계의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고, 북극의 빙하가 사라지는 것을 두고 전 지구촌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세계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생존 터전이기 때문이다. 지구 환경은 모두가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구조로 되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세계인들은 국제연합(UN)이라는 기구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항구적인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여러 국제기구에 참여하여 국제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국제사회는 갈수록 점점 정글의 법칙을 따르는 느낌을 받는다. 각국이 자신의 유익을 우선하는 바람에 경쟁은 과열되고 자연은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으며, 인간의 삶은 급속도로 피로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아무리 자국중심주의로 살길을 찾는다고 해도 그들 역시 홀로 잘 살 수 있는 길이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세계가 겪는 어려움을 두 나라만 피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창조의 원리이고 삶의 현장이다.
결론
경쟁 없이 살 수 없고 지나친 경쟁이 모두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오늘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 가운데서 성경의 역사는 우리에게 구원역사의 시작부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앞에 두고 모든 민족에게 복을 안겨주는 삶을 기대하셨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대국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을 주변국과 함께 벌할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이나 앗수르 혹은 바벨론을 의지하는 행위를 질타하시며 그들을 반드시 멸할 것을 예언하셨다. 갈수록 다른 나라, 지구촌 전체에 미칠 영향보다는 철저하게 자기 유익만 지키려 하는 국제사회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그의 백성들은 각 곳에서 축복과 심판을 함께 공유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sungklee814@hanmail.net>
글 | 이성구
부산대, 고신대 신학대학원과 대학원, 영국 브리스톨 트리니티 대학에서 구약윤리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였다. 경성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가르쳤고 현재 통일교육문화원 이사장, 애국지사 손양원목사 기념사업회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