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와 동성애 합법화
2020-09-18
월드뷰 SEPT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1 |
글/ 이상원(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를 의지해서는 안 되고, 믿음을 통로로 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인간의 의를 의지해서는 안 되는가?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고, 따라서 인간 안에는 하나님께 내어놓을 만한 의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31절에서 이방인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가를 말하고 있다. 2장 1절에서 3장 18절까지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가를 말함으로써, 모든 인류는 하나님에 내놓을 만한 의로움이 없는 죄인임을 논증한다.
1장 18절에서 바울은 모든 인류에게 나타나는 죄를 두 가지로 분류하여 제시한다. 하나는 경건하지 않음이고 다른 하나는 불의다.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를 어떻게 다루시는가?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신다, 심판을 내리신다고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그런데 여기 “나타나다”라는 동사는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왜 현재형인가?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는 물론 종말의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마지막 심판을 받아야 하는 죄악들이 되기도 하지만, 종말의 날까지 갈 것도 없이, 이미 현재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죄라는 것이다.
“경건치 않음”이 종교적 죄악에 방점을 찍었다면, “불의”는 윤리적 죄악에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경건치 않음과 불의가 동등한 수준의 죄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죄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현재, 역사 안에서, 같은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된다. 계속되는 본문을 통하여 바울은 이방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건치 않음의 구체적인 예와 불의의 구체적인 예를 제시한다.
경건하지 않음,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그러면 바울이 경건치 않음의 가장 크고 심각하고 두드러진 예로 제일 먼저 제시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울은 19절에서 23절까지, 그리고 25절에서 이 경건치 않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안에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 – 하나님을 알만한 것 – 을 두셨고, 자연에는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과 지혜로 우주를 만드셨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들을 두셔서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도록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증거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 곧, 사람이나 동물을 하나님 대신 경배하는 우상 숭배에 빠졌다.
이제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로 눈을 돌려 보자. 일본강점기에 한국교회가 어떤 “경건치 않음”을 범했는가? 바로 신사참배다. 신사참배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제1계명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제2계명을 명백하게 범하는 우상 숭배다. 그러나 다수의 한국교회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신사참배는 단순한 국가에 대한 의례 행위로서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유혹을 받아들여 신사에 참배하였고, 193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총회장이 총회 임원들을 모두 인솔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를 대표하여 신사에 집단 참배하였으며, 전국 교회에 공문을 보내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자들은 구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범하는 것이라는 엉뚱한 경고를 발하기까지 했으며, 주기철 목사를 비롯하여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목회자들을 출교하였다. 그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오늘날까지 신사참배를 한 죄악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회개하지 않았고, 사죄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신사참배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은 한국교회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하여 준엄한 심판을 내리셨다. 북한 지역에 일제 군국주의 정부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신사참배를 가결한 도시 평양은, 신사보다 훨씬 더 가증스럽고 기괴한 거대한 김일성 우상에 철저하게 장악된 도시로 변했다. 6·25 동란이 일어나 많은 국민이 살해당했고, 한반도의 절반이 넘는 북한 지역은 전무후무한 김일성 일가의 교주적이고 왕조적인 잔인한 독재 통치를 받으며, 기독교인들을 가혹하게 핍박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라는 경건치 않음의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은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를 무섭게 심판하신 것이다.
불의, 동성애 합법화 시도
다음으로 바울이 “경건치 않음”과 동등한 수준의 죄인 “불의”의 예로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1장 24절, 26절에서 31절까지 불의를 반영하는 22개의 항목을 제시한다. 그런데 다른 항목들은 한 번만 언급하고 끝나는데, 동성 간의 성교는 제일 먼저, 그리고 3절이나 할애하여 길고 소상하게 다루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성교하고, 여자가 여자와 더불어 성교하는 동성 간의 성관계는, 모든 윤리적인 불의들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가증스러운 죄로서,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성 간의 성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24절, 26절,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다”,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다”,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다”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동성 간의 성교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이미 즉각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동성 간의 성교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을 불러올 만큼 심각한 윤리적인 죄다. 동성애에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면 동성 간의 성교가 이방의 사단적인 문화와 기독교적인 거룩한 문화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정부가 선두에 서서 입법, 사법, 행정, 언론, 공교육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전 방위적으로 동성애 합법화를 온 국민에게 강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행태는, 한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하나님 앞에서 범하는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죄로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대상이 된다.
만일 한국 안에 기독교인이 없다면, 하나님은 소돔 성이나 폼페이처럼 주저함 없이 바로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 대하여 하나님은, 숨을 고르시면서 심판의 방식을 변경하신다. 하나님은 한국이라는 국가가, 동성애를 합법화하려고 시도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기에 앞서서, 동성애 합법화에 대하여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를 보시고, 한국이라는 국가에 징벌을 내리시는 여부를 결정하실 것이다.
대한민국의 운명, 기독교인의 태도에 달려 있다
만일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권력과 다수의 힘의 눈치를 보면서, 이 세력과 야합하거나 타협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미지근하게 흐리면서 회피하고, 심지어 동성애 합법화를 강제하는 시도에 편승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하나님은 한국의 배도한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징벌하시기 위해서,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에 징벌과 심판을 가하실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다가, 자신이 탄 배를 거센 폭풍 속에 몰아넣은 요나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일본강점기에 신사참배라는 난관 앞에서 굴복한 한국교회가 요나의 길을 따랐다가, 한국이라는 국가에 엄청난 재앙을 안겨 준 것처럼, 한국교회가 동성애 합법화에 대하여 침묵하고 타협하고 굴복한다면, 한국이라는 국가에 전례 없는 무서운 재앙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나 언론이나 공교육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간에, 동성애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고, 기도하는 가운데 동성애가 사회 전체를 장악하는 사태를 막기 위하여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그리하여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한다면,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한국이라는 국가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다. 이때 우리는 로마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길에 들어선 결과, 함께 탑승했던 모든 이방 선원들을 안전하게 살려냈던 바울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 27:24).”
요나가 탑승하기 전 다시스로 가는 배의 운명은 하나님의 백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진행되었으나, 일단 요나가 탄 이후에는 요나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서 배에 탄 이방 선원들 전체의 운명이 결정되었고, 바울이 타기 전에는 배에 탄 이방인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백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진행되었으나, 바울이 탑승한 이후에는 바울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서 탑승객들 전체의 운명이 좌우되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우리 기독교인의 손에 달려 있다. 이것이 우리가 동성애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태도를 보여야 하는 이유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동 신학대학원(M.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 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 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와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