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에서의 국제 동성애 운동의 전개 과정과 전망
2020-09-04
월드뷰 SEPT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
글/ 유정우(애드보켓코리아 회원)
1. 세계인권선언의 의의
두 번의 참혹한 세계대전은 국제사회 전체가 인간의 천부적 존엄성의 중요성을 깊이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공감대를 배경으로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는 기본적 인권의 기준을 30개 조문에 담아낸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을 58개 회원국 중 50개국의 찬성으로 채택했다. 정치적·도덕적 정책선언문 성격인 이 문건은 유엔 회원국들에게 인권에 관한 국제법적 의무를 부여하거나 구체적인 인권을 창설하는 효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무시와 멸시가 초래했던 인류의 양심을 격분시키는 만행’을 기억하고 근본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존중을 촉구한다는 이 선언의 취지와 내용은 후일 ‘국제인권법’이라 불리게 된 많은 국제인권조약과 각국 인권법의 정당성의 근거와 원형이 되었다.
2. 교회가 주도했던 냉전시대 국제인권운동
그러나 유엔 출범 후 시작된 냉전체제는 인권의 보편적 존중이라는 세계인권선언의 취지를 위축시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대립했던 두 진영은 자기 진영 내 인권 문제는 침묵하고 상대 진영 문제는 공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자유진영에서는 공산정권의 인권탄압 실상을 폭로하고 공산진영은 자유진영 선진국들의 식민지 인권침해 문제를 공격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제인권운동을 주도했던 것은 교회였다. 당시 교회는 국제사회에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하고 확산하는 통로였다. 술집에서 자유를 위해 건배를 했다는 이유로 징역 7년에 처해진 포르투갈의 두 청년들을 위해 1961년 12월 10일 영국 런던의 성 마틴 교회에서 시작된 촛불기도회는 몇 년 후 ‘앰네스티인터내셔널’로 발전하였고, 루마니아 공산정권 치하에서 14년간 옥고를 치른 웜브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가 1967년에 설립한 ‘순교자의 소리’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제인권단체가 되었다. 전체주의 국가들의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탄압 문제를 지적하는 기준이 된 ‘수용자 처우에 관한 유엔 최저기준 규칙’(후일 ‘만델라룰’)을 제시한 ‘국제행형교정위원회’도 1870년 기독교를 배경으로 설립된 ‘국제교정위원회’의 후신이었다.
3. 미국의 인권외교와 이를 모방한 국제인권운동
이러한 분위기는 1970년대 들어 카터(Jimmy Carter) 미국 대통령이 진영과 관계없이 인권을 미국의 대외정책과 연계시키는 ‘인권외교’를 펼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미국은 이란, 필리핀, 니카라과 등 전략적 우방들에게도 자국 내 인권 상황 개선을 요구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권문제가 주한미군 철수와 맞물릴 정도의 사안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 결과 카터 행정부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선진국 시민사회의 인권여론이 개발도상국의 국내정치에 직접 영향을 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인권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이들은 1976년에 발효된 ‘자유권규약’ 등 각종 국제인권조약 이행감시 체제 및 특별절차를 활용해 각국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갔다.
이러한 변화는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체제가 막을 내린 1990년대에 두드러졌다. 1991년 파리회의와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시민사회의 영향력을 배경으로 각국에 인권위원회 설치가 구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더하여 2000년대 들어 유엔이 인권을 안보 및 개발과 함께 국제사회 3대 주요과제로 격상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그 일환으로 2006년 유엔 총회 결의로 ‘인권이사회’를 신설하고 지역 내 국제기구들과 인권문제의 협력을 강화하며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했다. 그러자, 유엔은 국제네트워크를 구축한 각종 이념별 인권단체들이 자신들의 어젠다를 국제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다. 그 결과 이미 사회 전 분야에 융합된 인권코드는 인터넷으로 통합된 국제사회 속에서 정부와 시민단체의 경계 및 각국의 국경을 넘나드는 핵심적인 정치 이슈가 되었고, 각국 정책당국자들의 책상과 책상을 연결한 유엔과 지역기구는 이들의 이데올로기와 그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의 각축장이 되었다.
4. 동성애 인권화 운동의 국제적 전개 과정
네오 마르크시즘에 뿌리를 둔 각국의 동성애 인권화 운동권 역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유엔을 숙주로 삼아 자신들의 어젠다를 확산시켜왔다. 이들은 1990년 세계보건기구가 정신병 목록에서 동성애를 애매하게 제외한 석연찮은 결정과 1994년 호주 태스매니아주 동성애자 투넨(Nicholas Toonen)이 제기한 자유권 청원절차에서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사유인 성별(Sex)에 포함될 수 있는 듯 해석한 잘못된 권고 등을 근거로 세계인권선언 이후 구축된 전통적 국제인권법 체제 속에 동성애 코드를 교묘히 편입시키는 방법을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 및 규범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유니세프 등 유엔의 각 부속기관들에 영향력을 발휘해 동성애 지지 선언을 유도하고 앰네스티인터내셔널 등 전통적인 국제인권단체들을 포섭하여 유엔 이곳저곳에 지지 여론을 확산시켰다. 또한, 1990년 이후 급성장한 페미니즘 세력과 연대해 유엔 내 낙태권 여론 확산 로비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11년 동성애 인권침해 실태조사 및 2016년 인권조사관 임명을 계기로 동성애 인권화 움직임이 전면적 국면에 돌입하였는데, 미국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행정부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지지와 2015년 미국 동성결혼 합헌 판결에 힘입어 가속화되었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에서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가 취했던 정책을 연장하지 않는 방법으로 동성애 지지 정책을 철회하고 있다. 현재 이들이 활용하는 전략은 ‘소프트 로’(Soft Law)의 선점과 확산이다. 이는 조약처럼 법적 효력을 갖는 ‘하드 로’(Hard Law)에 대응하는 용어로, 유엔이나 각종 인권단체들의 선언, 결의, 원칙 등과 같이 대외적 규범력은 없으나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문서들을 통칭한다. 소프트 로 선점에 의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하드 로 국제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방법론은 각국이 동성애를 보장하는 법을 만들도록 과장된 국제여론을 조성해 압박하는 것이다.
5. 국제인권법 어디에도 없는 동성애 인권
단언컨대 국제인권법 어디에도 동성애를 인권이라고 규정하거나 차별금지사유로 명시한 조문은 없다.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과 같은 용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은 동성애가 차별금지사유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는 이행감시기관의 해석을, 확립된 국제법 법리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조약의 효력이 체약국에만 적용된다는 기초적인 국제법 원칙에 비춰봐도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개인청원제도를 담고 있는 인권조약 선택의정서도 조약이므로 이를 비준한 국가들에게만 적용된다. 더욱이 인권조약 이행감시기관은 법원이 아니다. 대표적 인권조약인 자유권규약의 이행감시기관의 경우, 미국은 법원처럼 오해되지 않도록 그 명칭부터 “Human Rights Tribunal”로 하는 것을 반대하고 “Human Rights Committee”라고 명명하자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도 기관의 권고가 법원 판결처럼 오해되지 않도록 ‘견해’(View)라는 용어를 쓰도록 제안했다. 이 의견들이 받아들여진 것은 물론이다. 한국 헌법재판소도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헌법소원 등에서 이행감시기구 견해는 권고로 보고 있다.
이행감시기관 견해의 중립성에도 문제가 있다. 자유권규약 이행감시기관의 경우 구성원 18명 중 2/3가 동성혼 인정국 출신이며, 이들이 2016년에 채택한 최종견해의 85%가 낙태와 동성애 문제였다. 이를 개인 특성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유엔 인권이사회 정례보고 통계에 따르면 193개 회원국의 15%가 채 안 되는 25개 동성혼 인정국들이 제기한 동성애 인권문제가 90%를 차지한다. 이행감시기관 편향성이 유엔의 구조적 문제인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동성애 차별금지가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것도 아니다. 국제관습법이 성립하려면 일관된 국제관행과 그 준수에 대한 법적 의무감이 요구되나, 동성애는 유엔에서 늘 의견이 분명히 갈리는 논쟁적 주제이므로 일관된 국제관행 자체가 형성될 수 없다. 물론 인권의 보편적 존중 차원에서 인권조약 적용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회적 여건이 서로 다른 국가들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확대되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6.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동성애 인권화 논쟁이 본질적으로는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앞으로도 동성애가 국제법상 ‘보편적’ 인권으로 규범화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렇기에 이들의 현실목표는 국제여론을 통해 정부를 압박하여 입법, 사법, 행정 분야에 자신들의 어젠다를 구현할 권력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동성애 운동의 본질이 계급독재를 목표로 하는 마르크시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생각의 시장’을 지켜야 한다. 생각의 자유로운 교환을 가로막는 어떠한 공권력의 행사나 태만도 거부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종교개혁에서 착근된 근대 인권의 역사를 갈파한 옐리네크(Georg Jellinek)는 종교의 자유를 ‘인권의 어머니’라 불렀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은 인권의 기원을 멸시하는 패륜일 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인류의 양심을 격분시키는 만행’을 재발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와 기독시민단체들이 국제연대를 통해 종교의 자유 보호를 위한 소프트 로의 확산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인권관의 확립과 국제인권운동을 주도했던 원조가 서구의 교회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개발도상국 교회들과 선진국 교회들의 중간자 위치에 있는 한국교회의 사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7. 국제연대의 주제
그렇다면 국제연대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제일 중요한 승부처를 꼽으라면 필자는 세계인권선언의 ‘체계적’ 해석을 둘러싼 소프트 로의 확보라고 답하고 싶다. 동성애 운동권의 논리는 모두 국제인권법의 ‘해석’에 기초를 두고 있으므로 그 해석이 국제인권법의 모태인 세계인권선언과 상충한다면 그들의 논리는 사상누각이 된다.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동성애가 국제인권법상 차별금지 사유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아마도 ‘모든’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세계인권선언 제7조에서 쉽게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의 기저에는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 구조의 해체가 전제되어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결혼·가족 제도의 부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국가는 성인이 된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통해 세워지는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한 세계인권선언 제16조와 상충된다. 동성애 운동권이 이 두 규정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해석해 내고 또한 그것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이들의 주장은 논리적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문제는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법 어디에도 ‘가족’을 정의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양 진영은 ‘가족’ 개념을 담은 소프트 로를 선점하기 위해 유엔에서 격돌하고 있다. 동성애 운동권은 주로 “various forms of family”를, 반동성애 진영은 “natural and fundamental group unit of society”라는 문구를 관철하기 위해 적극적인 로비를 펼치고 있다. 유엔에서는 동성애에 관해 회원국 간 입장 차이가 현격하여 지금까지 총회나 이사회 차원에서 단일 합의가 도출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이사회는 2014년과 2015년 연속 2년간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선진국 대표들과 국제 동성애 운동권 단체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자연적’(natural) 가족의 보호 필요성을 명시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당시 결의들은 각각 26:14, 27:14의 큰 표 차이로 채택되었고, 가족의 중요성과 회원국 정부가 가족 보호를 위해 다양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는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가족의 정의를 둘러싼 소프트 로 선점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부담은 소수의 전문가만의 몫이 아니다. 유엔의 소프트 로 경쟁은 결국 각국 시민사회의 여론문제다. 각국의 시민사회가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지켜내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때 가능해지며, 이 과정에서 교회의 사명은 더욱 분명해진다. 필자는 이 지점이 한국교회가 국제연대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부록]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국가인권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의 ‘인권지식센터’ 코너에 세계인권선언 번역문이 소개되어 있으나, 제16조를 포함한 여러 규정에 조항들이 누락되어 있는 등 그 내용이 매우 불완전하다. 이에 본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16조 원문과 필자 개인의 번역문을 붙인다.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rticle 16 (1) Men and women of full age, without any limitation due to race, nationality or religion, have the right to marry and to found a family. They are entitled to equal rights as to marriage, during marriage and at its dissolution. (2) Marriage shall be entered into only with the free and full consent of the intending spouses. (3) The family is the natural and fundamental group unit of society and is entitled to protection by society and the State.
세계인권선언 제16조 (1) 성년에 이른 남자와 여자는 결혼하여 가정을 세울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에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는 결혼에 대하여, 결혼 생활 중에 그리고 이혼에 있어서 동등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2) 결혼은 약혼 배우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성립되어야 한다. (3)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구성단위이며, 사회와 국가는 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davidlyou@gmail.com>
글 | 유정우
한국법, 미국법 및 국제법을 전공하고 2003년부터 애드보켓코리아 회원으로 활동했다. 경기대에서 회복적 정의를 주제로 교정보호학 박사를 취득하였고, 현재 소망교도소 사회복귀과 정책연구계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5년 미대법원 동성혼 판결, 2017년 마이클 브라운의 <Outlasting The Gay Revolution(성공할 수 없는 동성애 혁명)> 번역 등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