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프라임 대표 김덕윤 선린교회 목사를 소개합니다
2018-11-03
월드뷰 11 NOVEMBER 2018●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OVER STORY |
(편집자 주: 이번 호에 커버스토리로 소개하는 김덕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거쳐 목사 안수를 받고, 1999년 6월 17일에 신대방동에 선린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더치커피 전문회사 주식회사 선한이웃을 통해서 아내,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카페를 통한 일터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는 중앙대학교회에서 대학청년부를 담당하고 있는 이혁기 목사가 수고했습니다.)
이혁기: 안녕하십니까.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교회 개척을 하셨습니까?
김덕윤: 신학교를 마치고 안수 받고, 서울로 와서 부목사로 교회를 섬기다가 아무런 연고도, 사전 지식도 없이, 신대방동에 ‘선한 이웃’이라는 의미의 ‘선린교회’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내가 운영하는 이 카페 이름도 ‘선한이웃’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름을 그렇게 짓고 지금까지 한 20년 정도 목회하고 있습니다.
이혁기: 목회를 하시다가 어떻게 이런 카페나 커피 사업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김덕윤: 선린교회의 크기가 약 30평 정도 되었습니다. 이 면적에서 교인의 수가 50명이 넘어가니 너무 복잡해지고, 60명이 넘어가니 공간 부족으로 인해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심하게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당 공간 부족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교인 수가 늘어나고 헌금이 늘어도 부동산 임대료를 못 따라간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다가 경기도 부천으로 교회를 이전했습니다만 결국 부천에서 실패하고 2016년에 다시 신대방동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혁기: 그러면 다시 돌아오면서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커피점을 열게 된 것인가요?
김덕윤: 아닙니다. 이미 부천에서부터 위기가 닥쳐 더치커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더치커피를 ‘콜드브루’ 방식이라고 하는데 네덜란드에서 유래되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배 안에서 커피를 먹고 싶을 때 원두에 찬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서 만들었답니다. 당시 배에서 뜨거운 물을 구하기 어려워, 차가운 물을 한 방울씩 원두에 떨어뜨리면 약 8시간 걸려 커피가 추출됩니다.
2010년경에 한국에는 교회마다 카페를 세우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저도 바리스타 교육을 받다가 더치커피를 알게 되었습니다. 더치커피를 내려서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치커피를 병에 넣어서 교인들에게 팔았는데, 교인 중 한 분이 이렇게 커피를 병에 넣어서 팔면 식품위생법에 저촉이 되어서 불법이 된다고 했습니다. 커피를 내려서 즉석에서 판매하는 것은 규정이 까다롭지 않지만, 병에 넣어서 팔면 식품 제조에 해당되기 때문에, 식품 제조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석 판매와 달리 식품 제조는 유통 기한이 정해지기 때문에 규제가 많은데다 제조 시설도 갖추어야 하고, 시설 허가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약 3개월에 걸쳐 교육관 하나를 리모델링하고 허가를 받기 위해 건물 용도변경도 하고, 세금도 냈습니다. 그러다 이왕 하려면 주식회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커피 같은 즉석식품을 판매하려면 개인사업체로 허가를 받으면 되는데, 그때는 잘 알지도 못하고 책으로만 공부해서 400만 원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행해주는 법무사도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서 발기인 정하고, 창립총회하고, 정관 만들고, 서류를 등기소에 제출하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정말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더치커피를 제조해 부천에 있는 동안 교회를 유지하고, 신대방동에 와서는 아내 명의로 ‘선한이웃’이라는 커피숍을 개업할 수 있었습니다. 제 더치커피는 아내의 커피숍에서 전량 구매하는 방식으로 판매합니다.
이혁기: 그러니까 목사님은 더치커피 제조업을 하시고, 커피숍은 사모님이 운영을 하시는군요.
김덕윤: 네 그렇습니다. 예전에 제 아내는 큰 유리창 앞에서 억수로 비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따뜻한 카페에서 큰 유리창 너머로 내리는 눈을 감상하면서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카페가 그 꿈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과거에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쓰레기를 투척할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가로등도 흐리고 으슥한 곳이었는데, 저는 한눈에 이곳에서 커피숍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장소가 오래도록 팔리지 않아서 아주 싸게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쓰레기가 있던 구석을 치우고 그곳에 야외용 탁자와 의자를 놓고, 구청에 신고해서 가로등도 밝게 해 달라고 하고, 전신주도 교체해서 주변이 깨끗해지니 주민들이 깜짝 놀라고 좋아했습니다.
이혁기: 카페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카페를 손수 디자인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목사님은 카페 손님들에게 전도도 하시는지요? 그렇다면 일터가 교회인 셈이네요.
김덕윤: 예, 저는 교회와 일터사역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세상과 교회를 구분하려고 합니다. 6일 동안 세상 속에서 세속적으로 살다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고, 힘을 받고, 다시 세상에 나가지만 역시 또 세속적으로 삽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아예 세상 속에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터교회 운동은 그 일터를 거룩하게 하자는 운동입니다.
이혁기: 목회를 하면서 이런 사업을 병행하다 보면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일은 없었는지요?
김덕윤: 딱히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다행히 장사가 잘 되어 사업 스트레스도 없고 오히려 어려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자유로워지고 건강해지고 마음이 편합니다. 죄를 지으면 사업 스트레스가 생기겠지요. 그런데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격을 속이지 않고, 큰돈 벌려고 하지 않고, 아름다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하니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이혁기: 요즈음 자영업자들이 어렵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주변에 빵집이 많아지면, 고객이 줄고 그래서 소득이 감소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김덕윤: 그런 사람도 있지요. 그것은 그 사람이 판단을 잘못한 것이지 사업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직원이 아닌 이상, 사업에 따른 위험요소는 경영자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소득이 안 나오면 본인이 경영을 잘못한 것입니다. 직원은 성실하게 맡겨진 일만 잘 하면 됩니다. 그러나 경영이란 부동산, 자금 관리, 상권, 손님들의 취향, 음식의 질과 맛 관리, 가격 결정, 메뉴, 인테리어, 시세 파악, 유행 등등 모든 것을 책임지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 책임을 사업자가 져야 하지 누가 대신 져 주겠습니까? 또, 자신이 예상치 못하는 시대적 위기 상황도 발생합니다.(요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같이) 그런 위기를 잘 넘어가는 지혜도 경영이라고 봅니다.
이혁기: 이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다는 말씀을 들으니 부럽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저도 이중직 목회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목사님은 이중직 목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덕윤: 저는 이것을 거창하게 이중직 목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냥 생업입니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교회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평신도들도 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평신도들보다 교회의 일을 좀 더 많이 한다는 것뿐입니다. 목사는 교회에서 성도들의 헌금의 일부를 사례로 받으니까, 좀 더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혁기: 사실 제가 목회하는 중앙대학교 앞에도 목사님처럼 카페를 운영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특히 세금 문제를 깨끗하게 한다니 저도 이런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김덕윤: 저는 이런 이중직 목회 또는 자비량 목회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목사들이 목회 영역에만 머무르지 말고, 세상 속으로 파고든다면, 일터를 거룩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제2의 부흥이 올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핍박을 피해 다른 나라로 가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이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서 스위스와 네덜란드, 독일 그리고 나중에는 영국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만들어 내면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가톨릭은 세상과 멀어졌지만, 개신교는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일을 하면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한국에 이러한 개신교가 들어왔는데, 유교의 양반 정신에 물들어 목사는 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혁기: 그래도 여전히 목사는 목회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목사로써 생업의 현장에 있으면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셨나요? 정체성의 혼란이 왔던 적은 없으셨는지요?
김덕윤: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목회의 길에 들어선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명을 발견하고 목회를 병행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중직 때문에 목회자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학의 영향 때문입니다. 일하는 것을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해서 그렇습니다. 오히려 일터를 사명으로 생각하고 이 일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을 구원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도 구원해야 합니다. ‘너희는 거룩하라’는 명령은 교회에서만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일터에서도 그렇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야 그 일이 제대로 되어, 산업이 발전하고 건물이 세워지고, 사람됨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개신교 신학 하에서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은 성과 속을 분리합니다. 이는 잘못된 신학사상입니다. 일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이 돌아갑니다. 속이지 않고, 일을 일답게 하면, 생산성과 부가가치가 올라갑니다. 그러면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신뢰가 형성되면 경제는 잘 돌아갑니다. 돈이 없어서 경제발전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신뢰가 없어서 경제가 제대로 안 돌아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혁기: 저도 이제는 길 가는 사람들에게 교회 이름 등이 적힌 티슈나 홍보지 나눠주는 전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진실해지는 것이 정말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김덕윤: 맞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정말 바뀝니다. 저는 전국의 카페들이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운영되면 좋겠습니다. 목사가 직업으로 일을 하기에는 카페가 참 좋습니다. 목회자들과 세상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목회와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외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도 목사들이 운영하면 잘 할 수 있습니다. 카페가 있는 이 건물에도 학원이 많습니다. 주일학교를 학원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목회자가 학원을 운영하면서 교회 사역도 병행하면 좋습니다. 유흥업만 아니라면 목회자들이 다 할 수 있습니다. 재능에 따라서 일에 대한 올바른 신학만 가지고 있으면 가능합니다.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목회자들은 너무 많습니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목사들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혁기: 어떤 이는 이중직 목회를 또 하나의 종교개혁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분도 있는데요, 교인들은 목사님이 목회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지고 계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덕윤: 제2의 종교개혁에는 많은 부분들이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이중직 목회 또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일터에 대한 거룩성, 침투 사상은 매우 소중하며, 이는 앞으로 천년왕국을 지향하는 교회의 모범 모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은 저의 생활을 책임질 경제적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생활비를 받지 않는 대신에 주 중에 교회 일에 대해 자유롭습니다. 심방은 요청하는 가정만 하고, 새벽 기도회는 각자가 가까운 교회에서 자유롭게 하라고 합니다. 저는 체질적으로 야행성이어서 밤늦게까지 책을 읽습니다. 이런 선언을 하기 이전에는 새벽 기도를 십여 년간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 대부분이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기 때문에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교회까지 오기 어려워 한두 분밖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새벽기도회를 십여 년 동안 꾸준히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야행성인 저는 새벽 기도회 후에 오전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개인적으로 새벽 기도회와 상관없이 날마다 일터에서 기도합니다. 제가 부천교회를 담임할 때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서 매주 수요일에 밥퍼 사역을 했습니다. 밥퍼 사역을 하면서 예배드리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내의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교인들이 도와주었지만 제일 힘든 사람은 아내였습니다. 지금은 금요일부터 저는 일을 멈추고 오전에는 금요 저녁기도회를 준비하고, 토요일은 주일 예배와 찬양예배를 준비합니다.
이혁기: 일반 목회와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김덕윤: 성도가 많은 기성교회 목사는 굳이 일터에서 헌신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일터에 대한 신학만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전통적 목양만으로도 충분히 분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척을 준비한다거나 일터에 대한 남다른 재능이 있는 분들은 먼저 일터에서 성공하고, 그 힘과 여력으로 교회를 개척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목회를 생활 수단으로 여기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목회는 사명이지 결코 밥벌이가 아닙니다.
이혁기: 그동안 한국에 신학교가 너무 많아서 목회자들을 너무 많이 배출했고,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잉여인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목회자들이 무형의 가치로 신자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필요에 비해서 너무 많은 사람이 목회의 길을 간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저 스스로도 나는 국가 발전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많은 목사님들이 개척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지요?
김덕윤: 예. 그것이 문제입니다. 한국에는 목회자와 선교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현상을 일터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봅니다. 그동안 큰 교회는 가난한 목회자나 선교사를 후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방법이 크게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생활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합니다. 먼저 일터를 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목양이 자신의 생활 방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선교지에도 이런 운동이 많이 일어납니다. 인도네시아 선교를 선교적 허브로 여기고 헌신하시는 분을 소개 드립니다. 미사강변 우리들 교회 김기제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매년(올해는 11월 첫째 주간에) 선교지의 현지인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운영합니다. 특별히 올해는 비즈니스를 통한 교회 자립에 대한 주제로 한국에서 몇 교회가 사례를 발표하게 되어 저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현지인 목회자들에게 큰 교회에서 보내주는 선교비에만 목매지 말고 일을 통해서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이혁기: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작은 개척교회를 하다보며 자녀 키우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목사님은 어떠신지요?
김덕윤: 큰 교회 담임을 하시는 분들은 자녀들은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작은 교회를 하고, 일과 목회를 병행하다 보면, 오히려 자녀와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저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디모데 학교라는 방과 후 교실을 운영했습니다. 요즈음 교회마다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는데, 저는 이런 붐이 일어나기 전부터 아이 둘을 앉혀놓고 시작해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방과 후에 친구들을 교회에 데리고 오라고 해서 성경도 가르치고 교육도 했습니다. 어차피 내 자녀를 가르치니 친구들도 함께 가르치는 것이지요. 거의 매일 하다 보니 나중에는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한 10~20명이 모였습니다. 그 아이들 데리고 공부도 하고, 놀이공원도 가고, 바닷가도 가고 그랬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큰 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훈련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가르쳐서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이혁기: 부모와 좋은 시간 보낸 아이들은 사춘기가 없다고 하더군요.
김덕윤: 그렇습니다. 제 아들은 KC 대학교 신학과를 나와서 보라매기도의 집 간사와 선린교회 전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제 딸은 지금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3학년입니다. 영락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섬기고 있으며, 여성 군목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장신대 교회음악과로 진학하라고 했는데, 저 몰래 그리스도신대 신학과에 갔습니다. 지금은 졸업하고 전도사로 봉사하며 보라매 청년기도의 집과 예배시간에 찬양을 인도합니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청년기도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선교지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인맥이 형성되다 보니 선교지에서 사귄 청년들이 우리 기도의 집에 와서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숙소를 6개 만들었습니다. 해외 선교사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한국에 오면 머물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이 청년들은 기도의 집 특별회원으로 입회하고 회비를 내면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이곳은 지하철이 가까워서 청년들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숙소는 청년들 기도운동 네트워크를 통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 명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해서 들어오곤 합니다.
이혁기: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기숙사 같은 곳이군요.
김덕윤: 네 그렇습니다. 청년들은 아주 자유롭게 생활하게 합니다. 교회가 요구하는 것은 십계명을 지키고, 교회생활을 잘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든 출석할 수 있습니다. 술이나 담배를 하는 청년도 없지만, 간섭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법이 음주음전을 금지하고, 실내에서의 흡연을 금지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법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만 지키면 됩니다.
이혁기: 마지막으로 이중직 목회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지요.
김덕윤: 제가 알기에는 우리 통합 측 교단 헌법에서 이중직 목회를 금지하는 이유는 목회자의 생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교단 산하 기관에서의 이중직을 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기독공보사 사장을 하면서 교회를 담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합 측 헌법에 ‘목회를 한다면 생계유지를 위해서 택시 운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봅니다. 목사 안수 받기 위해서 면접할 때 면접위원에 따라 목회에 전념하고 다른 직업을 갖지 말라는 권면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중직 금지가 헌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칼빈이 이중직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유는 전문적인 목회 인재 양성을 위해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종말론에 빠져 있거나, 기독교 율법주의에 빠져 있거나, 내세를 위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 교육에 치중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겨내거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도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무심했습니다. 그것은 목회자 스스로가 세속적인 삶을 살아간 적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은 대부분 세금 문제에 대해서도 무지하며, 이념 갈등에 대해서도 무심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오히려 세속적인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목회자의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곳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치유, 상담, 코칭, 부의 이동, 교육, 윤리적·문화적 리더십 등) 이제 다시금 여러 영역에 대한 기독교적 가치관의 확장에 대해서 연구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일터를 통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혁기: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해 주시고 맛있는 커피까지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덕윤 목사 – 현재 더치프라임 대표 및 선린교회 담임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용천노회 소속. 장로회신학대학교,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거쳐 전남노회에서 목사 안수, 문성교회 부목사 역임. 1999년 6월 17일. 신대방동에 선린교회 개척. 2012년 더치커피 전문회사 주식회사 선한이웃 설립
* 이혁기 목사 – 중앙대학교회 대학청년부 담당목사.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 합동신학대학원 졸업(M.div) 중앙대학교회, 광야교회, 대림교회 전도사 역임. 현재 중앙대 기독학생연합회 지도위원 및 중앙대학교회 대학청년부 담당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