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을 강요하는 법안
2020-08-05
월드뷰 08 AUGUST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3 |
글/ 이상원(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정의당 국회의원들의 주도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률들이 충분히 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숨은 목적은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모든 유형의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궁극적으로는 젠더(gender)평등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데 있다.
동 법안은 제2조(정의)에서 성별에 여성과 남성에다가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을 포함시키고, 성적 지향에 이성애뿐만 아니라 동성애와 양성애를 추가하고, 성별 정체성을 자신의 성별에 관한 인식으로 정의함으로써, 염색체와 생식기구조에 기반하여 성을 정의하던 기존의 성 인식을 버리고, 인간의 주관적 인식에 의거하여 성을 규정하는 젠더주의를 수용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동 법안은 수천 년 이상 인류 사회의 기반을 형성해 온 생물학적 성 인식을 버리고 젠더주의를 채택한 이유에 대하여 어떤 해명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새로운 성 인식을 받아들이도록 강압한다.
동 법안은 자의적으로 새롭게 정의한 성 인식에 기초하여, 제10조에서 제20조까지 성적 지향의 차이에 근거한 고용상의 차별을 철저하게 금지한 다음, 제44조와 제50조에서 교육기관에서 생물학적 성 인식에 바탕을 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동성애, 동성혼, 젠더 개념 등에 대한 모든 형태의 – 종교적, 보건의료적, 윤리적 – 비판을 법적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내용이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청중들에게 “혐오”의 감정을 유발하기만 하면 바로 무거운 형사 및 민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동 법안이 입법화되면 기독교 학교와 신학교에서 성경에 근거한 동성애 및 젠더 성 인식에 대한 비판교육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필자는 두 가지 관점에서 차별금지법에 내포된 위험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동 법안의 배경에 숨어 있는 법철학이 병든 궤변론에 근거하고 있고, 병든 궤변론은 결국 사회를 극심한 도덕적 공황과 혼란 속에 몰아넣게 될 것이다. 둘째로, 동 법안이 동성애와 젠더적 성 인식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법적 강제력으로 차단하는 것은 국가권력을 독재적으로 남용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내포된 위험 1
첫째로, 동 법안의 배경에는 “소통 불가능한 정치적 궤변”(incommunicable political sophistry)이 법철학으로 깔려 있다. 인류 사회는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객관적 토대 곧, 염색체와 생식기구조라는 생물학적 기반에 근거하여, 성별, 성 정체성, 성행위를 규정해 왔다. 인류는 인간이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관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결혼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성 인식에 대하여 보편적인 도덕적 합의를 유지해 왔고, 그 기반 위에서 대화를 진행하고, 학문 체계를 세우고, 또한 사회구조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성 심리학과 마르크스주의적 행동전략이 결합되어 나타난 젠더주의는 생물학적 성 인식을 폐기하고 인간의 주관적인 정서적 기호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성 정체성과 성교의 대상을 결정하는 성 인식을 수용했다. 젠더적 성 인식에 따르면 보편적이고 고정된 성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성교의 대상도 이성에게 제한되었던 규범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제는 성에 대한 어떤 규범적 지도도 허용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여전히 이성애만을 고집하는 사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젠더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이성애자들을 법적 강제력으로 괴롭히는 정치적 실천을 통하여 이들 – 주로 기독교인들 – 의 입에 재갈을 물려 침묵시키고 어떤 규범적 통제도 받지 않는 성해방사회를 향한 성혁명에 매진한다.
젠더주의의 방법론은 고대 희랍 사회의 궤변론의 틀 안에 있다. 희랍의 궤변론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에 관한 진술은 정치적 이익과 출세를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된다. 궤변론자들의 논증은 청년들의 인기를 끌었으나 이들을 타락과 무규범적 혼란 속에 빠뜨렸다.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이어받은 것이 바로 궤변론의 전통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증은 두 단계로 전개된다. 첫째 단계는 언어 정의의 단계다. 말의 의미는 발화자(發話者)의 의도와 문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말이 발화자에게서 나오면 발화자의 의도와 문맥으로부터 분리된다. 그러면 누가 이 말의 의미를 결정하는가? 청중의 해석이 말의 의미를 결정한다. 청중은 발화자의 의미와 문맥을 무시해 버리고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발화자는 청중의 독단적 판단의 제물이 되고 의사소통은 불가능해진다. 이때 청중의 판단을 좌우하는 것은 청중의 정치적 이익이다. 청중의 정치적 이익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그럴듯한 사이비 전문용어로 포장되어 학문적인 권위를 꿰찬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두 번째 단계다.
요약하면, 차별금지법의 배후에는 성해방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동성애자들과 젠더주의자들의 정치적 이익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궤변론적 법철학이 깔려 있다. 궤변론적 법철학은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며, 사회를 무규범적인 성해방사회로 해체시켜 버릴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내포된 위험 2
둘째로, 동 법안이 지닌 또 하나의 문제는 법의 적용 영역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헤르만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 하워드 마샬(Howard Marshall) 등을 통하여 전개되어 온 개혁주의 정치윤리의 틀인 영역 주권론(sphere sovereignty)은 국가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이 상호 간에 긴밀한 상관관계 안에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두 영역을 구분했다. 국가의 영역과 다양한 사회의 영역들은 하나님께서 각 영역에 두신 고유하고 독특한 원리들에 의해 운영된다. 국가의 영역을 지배하는 고유한 원리를 획일적으로 확장하여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것은 국가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다. 국가의 운영원리는 “법”이다. 법 가운데서도 실정법만이 국가의 운영원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정법은 사회 안에서 외형화된 인간의 행동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법은 그 속성상 인간의 마음을 강압할 수 있어도 통제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을 통제하는 것은 도덕, 이념, 신앙이다. 인간의 마음은 도덕법, 사상, 신앙의 원리에 의하여 운영되지만, 이 원리들도 인간의 마음을 강제하지 않고, 다만 자유로운 선택에 근거하여 양심, 논리, 결단 등에 호소한다. 도덕, 이념, 신앙이 외형적인 사회적인 관계에서 타인에게 명백한 해(害)를 가한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법의 힘으로 도덕, 이념, 신앙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차별금지법의 문제는 법의 힘으로 마음을 통제하고자 시도하는 데 있다. 첫째로, 동성애가 성경적으로 죄임을 지적하는 것은 종교적 차원에서 하는 작업으로서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다. 동성애가 윤리적으로 죄임을 지적하는 것도 도덕의 차원으로서 하는 작업으로서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동성애가 성경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죄라고 지적하는 발언을 법으로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차별금지법은 발언하는 자의 의도와 문맥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명도 하지 않은 채, 단지 청중이 “혐오”감을 느끼기만 하면 그것에만 근거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런 발상은 궤변론적 법철학을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발언자의 의도와 문맥 안에서 발언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인문학의 ABC이자 의사소통의 기본원리다. 이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만든 법 규정은 국가권력의 남용이며, 정치적 선동과 정치 공학의 도구로 악용될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규범에 반하는 인간의 죄의 실상을 드러내는 한에 있어서는, 법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든 전혀 개의하지 않고, 그리고 청중에게 어떤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는가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100% 자유롭게 선포한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는 문맥 안에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비판하자, 산헤드린 공의회는 베드로를 불러서 설교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라고 대답하면서 산헤드린 공의회의 요구를 거부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비윤리적인 근친 결혼을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막 6:17), 예수님과 바울은 성적 일탈 행위를 포함하여 청중들에게 지극히 강한 혐오감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표현들을 동원하여 인간의 부패한 마음과 행위를 비판했다(막 7:20-23; 롬 1:29-32).
현재 동성애 합법화를 추진하는 정치세력은 초중고등학교와 일반대학교 차원에서는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의식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전제하에 기독교 학교와 신학교의 동성애 비판을 포함한 성경적 성 윤리 교육을 차단하기 위하여 차별금지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차별금지법 자체만으로도 한국 헌정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법이지만, 이 법안은 앞으로 줄줄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법안들의 등장 신호탄이 될 것이다. 차제에 타 종교 비판금지법이 등장하게 될 것이며, 이어서 개종금지법이 등장하게 되면 이 사회는 영국과 같은 “기독교인의 지옥”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이 문제를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모든 정치적 실천 수단을 총동원하여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표현의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피를 흘리기까지”의 투쟁이 있어야 겨우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에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 M.)와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 D.)를 졸업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