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도전받는 표현의 자유
2020-08-03
월드뷰 08 AUGUST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
글/ 음선필(홍익대 법대 교수)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8-20).”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신앙의 자유와 함께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행복한 삶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인간다운 삶과 문명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건이 된다. 오늘날 표현의 자유를 이론적으로 확립한 자로 추앙받는 밀턴(J. Milton)은 1644년 발표한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내게 그 어떤 자유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설파하였다. 검열제도를 도입하려던 영국 의회에 대한 항의문에서, 그는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free and open market of ideas)이라는 자유주의의 핵심어를 제시한 것이다.
시대에 따라 범위가 넓어진 표현의 자유
사상, 신념, 의견이나 감정을 불특정한 여러 사람에게 표명·전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는 시대에 따라 그 범위가 넓어졌다. 고전적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에는 언어(말)로 표현하는 언론의 자유, 문자·형상으로 표현하는 출판의 자유, 다수의 모임으로 표현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있다. 언론 및 출판의 자유가 개인적 차원의 표현의 자유라면,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집단적 차원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매개체와 방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 사상 또는 의견을 외부로 표명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현대적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는 사상 또는 의견을 단순히 외부로 표현하는 것 이상이다. 오늘날 표현의 자유는 정보 유통 과정으로 인식되면서 ‘정보수집 → 정보처리 → 정보전달’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걸쳐 보장하는 총체적인 권리로 이해되고 있다. 정보 유통의 각 단계에 상응하여 표현의 자유가 더욱 확대되었다. 정보수집 단계에서 방송사·신문사 등 언론기관은 취재의 자유를, 일반 개인은 정보공개청구권을 가진다. 또한 취재의 자유와 정보공개청구권의 전제로서 보장되는 권리가 바로 ‘알 권리’(right to know)이다. 우리 헌법에는 알 권리가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서 표현의 자유에 속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보처리 단계에서 정보가 선택되고 재구성되는데, 이를 통하여 개인이나 언론기관은 각자의 의견을 형성하게 된다. 개인의 의견 형성은 헌법상 사상·양심·학문의 자유에 의하여 보장되며, 언론기관의 의견 형성은 편집권·편성권으로 보호를 받는다.
마지막 단계인 정보전달 단계에서 드디어 정보가 외부로 전달된다. 고전적 의미의 표현의 자유가 바로 이를 보장한다. 그런데 오늘날 언론기업이 집중화되고 독과점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일반 시민은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의 덕택으로 개인의 의견 전달이 한결 용이해진 것은 사실이나, 정보수집이나 정보처리의 단계에서 여전히 대중언론기관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 또는 시청자로서 자신의 의견을 언론기관에 적극적으로 전달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상응하여 언론기관에의 접근 및 이용권이라 할 수 있는 액세스권(right of access to mass media)과, 언론기관의 정보전달에 반론 게재를 요구할 수 있는 반론권(반론보도청구권)이 인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표현의 자유는 단계적이며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경우에 따라 표현의 자유가 기술적으로 교묘하게 통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정보 유통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 정보의 왜곡과 이에 따른 정책 및 입법의 오도(誤導)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표현의 자유가 가진 내재적인 취약성을 알 수 있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인류는 표현의 자유가 정신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중핵임을 알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표현의 자유를 인권으로 명시한 각종 헌법적 문서가 등장하였다.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 1789년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그리고 1791년 미국연방헌법 등이 그것이다. 특히 미국연방헌법 수정 제1조는 “연방의회는 국교를 수립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인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라고 하여 표현의 자유를 종교의 자유와 동등하게 보장하였다.
표현의 자유는 인격적·사회적·정치적 존재로 살아가는 국민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무엇보다도 각자 자신의 신앙, 사상 또는 의견을 자유로이 표명할 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게 된다. 아울러 자유로운 표현을 통하여 정서적 안정과 지적 성장을 경험하며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도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타당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생각한 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결코 의미 있는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는 일차적으로 일상적인 사회관계의 형성과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각자 고백하는 신앙의 교리, 이성적 사유에 따른 연구결과 그리고 양심에 따른 도덕적 판단을 충분히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표현의 자유는 다른 정신적 자유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중첩된다. 종교적·학문적·양심적 표현의 자유는 그 내용의 중요성 때문에 일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특별법의 지위를 차지한다.
셋째, 국가공동체에서 정치적 존재로 살아감에 있어서도 표현의 자유는 매우 중요하다. 민주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국가권력에 대한 꾸준한 견제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이다. 정치참여는 주로 선거를 통하여 이뤄지는데, 선거과정에서 중요한 정치적 표현이 선거운동이다. 선거운동은 후보자와 정당이 정치적 정보를 제공하고 선거권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운동을 통하여 정확한 정치적 정보의 제공 및 수령이 가능하게 된다면, 선거과정은 선거권자의 진정한 정치적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게 될 것이다. 만약 왜곡되고 거짓된 정보에 의하여 수시로 선거결과가 결정된다면, 민주체제는 거대한 사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정치참여는 집단적 차원의 표현인 집회를 통하여 이뤄진다. ‘움직이는 집회’에 해당하는 시위는 언론매체를 소유하지 못하고 이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수자에게 매우 유력한 표현수단이 된다. 특히 정치적 항의를 목적으로 하는 시위는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집단에게 매우 효과적인 표현방식이다.
아울러 표현의 자유는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체제를 건강하게 만든다. 국회의원에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면책특권도 바로 비판의 자유를 강력하게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정치권력에 대하여 일상적인 견제와 비판이 허용되어야 하는데, 그 임무는 주로 언론기관에 주어져 있다. 그래서 자유민주 체제에서 언론기관은 입법부, 집행부, 사법부에 대응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제4부’(the fourth estate)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비록 헌법상 권력기관은 아니지만, 언론기관이 실질적으로 다른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기관과 국가권력 간의 긴장관계를 ‘기능적 권력분립원리’가 구현되는 일례라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보장
인권체계에서 차지하는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 때문에 헌법은 이를 강력히 보장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후통제와 달리, 헌법 제21조는 사전통제에 해당하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공권력의 주체가 특정한 경우에 한하여 선별적으로 금지를 해제하는 허가제나, 사상 또는 의견이 발표되기 전에 그 내용을 심사하여 사전에 억제하는 검열제는 국민이 무엇을 읽고 듣고 볼 것인가를 자의적으로 선별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까지 전면으로 부정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에서 무과실의 검열관이 있을 수 없다는 점, 국민이 알아도 무방한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당국이 선별하는 것은 필자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는 점을 들어 사전검열을 통렬히 비판하였던 것이다.
한편,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의 합헌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경제적 기본권의 규제입법에 비하여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에서 확립된 ‘명확성의 원칙’과 ‘명백·현존 위험의 원칙(rule of clear and present danger)’이 있다. 명확성의 원칙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규정이 명확해야 하므로 막연한 경우에는 무효로(void for vagueness) 판단한다는 원칙이다. 예컨대 미국 연방대법원은 영화검열의 기준으로 “유해하지 않아야(harmless)”, “도덕을 문란케 하는(tending to corrupt morals)” 등의 표현이 막연하다는 이유로 해당 규정을 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명백·현존 위험의 원칙은 문제되는 표현이 실질적인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때에만 억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어떤 표현이 단지 위험한 경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규제할 수 없고, 실질적으로 그 해악을 초래할 위험의 정도와 근접성을 따져서 규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표현의 자유를 강력히 보장하는 것은 이로 인하여 진리가 거짓을, 의가 불의를 이길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억압과 쟁취의 끝없는 긴장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억압하려는 권력과 이에 대항하려는 세력 간의 끝없는 싸움 가운데 발전하였다. 한때 무지막지한 고문과 형벌로 반대자를 억눌렀던 독재권력이라도 오늘날에는 그런 무식한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아직도 그런 무식한 정권이 여전히 일부 존재하기는 하지만). 비판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조차 못하도록 침묵하게 만드는, 보다 세련된 방식을 즐겨 택한다. 겉으로 온화한 미소를 띠지만 속으로는 침묵을 강요하는 이른바 ‘조용한 독재’가 나타난 것이다. 조용한 독재는 직·간접적인 언론 통제를 통하여 권력의 입맛에 맞게 선별·왜곡된 정보만을 매력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조작된 정보가 정보의 부재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사상의 자유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제기된다. 거짓과 진리가 대결하여 경쟁을 벌이면 반드시 진리가 승리한다고 보는 인식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볼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공영언론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방송사나 신문사를 사기업으로 운영하는 경우, 사주나 대주주의 정치적 성향, 경제적 이익, 개인적 야심에 따라 논조가 달라지고 심지어 사실보도의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권력과 언론기관의 결탁(정언유착)도 심각한 문제점을 낳고 있다.
또한 인터넷 등 온라인매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을 포함한 소셜 미디어에서도 기술적으로 왜곡된 여론 형성이 가능함에 따라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한편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등장에 따라 개인의 자율적인 의사소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존 거대 언론기관이 정치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에서는 소셜 미디어가 강력한 대응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정치체제의 변화 그리고 도덕적 가치체계의 변화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더욱 다양한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인류에게 행복을 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거짓과 사악함 그리고 비루함이 도처에 횡행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경각심을 높이며 선한 의지를 벼려야 할 것이다.
<eumsp@hanmail.net>
글 | 음선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헌법 전공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이면서 기획처장 직책을 맡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자문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 법제처 법제자문관의 역할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