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와 주일 집합 예배
2020-07-10
월드뷰 07 JUL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
글/ 이상원(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COVID-19(Corona Virus Disease-19)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이후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확진자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대규모의 확진자가 이단 종파인 신천지교의 집합 예배에서 시작되었다는 추정이 나오자,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집합 예배가 불가피한 교회 예배 특히, 주일 예배를 인터넷 예배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는 동시에, 집합 예배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공무원들을 교회에 파견하여 예배 시행 여부를 감독했다. 대부분 한국교회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행정명령을 받아들여, 집합 예배를 인터넷 예배로 전환했고, 불가피하게 집합 예배를 가질 때에도 마스크 착용, 발열 측정,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준수하여 예배를 진행함으로써, 정부의 조치에 호응했다.
이 같은 현실은 중요한 두 가지의 기독교 윤리학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하나는 전염병 감염으로부터 인간의 신체적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리를 지키기 위하여, 주일에 집합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원리가 유보될 수 있는지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주일에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행정적으로 통제를 하는 것이, 신교(信敎)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
주일 예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식일 계명이 하나님의 율법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개혁신학의 전통은 모세의 율법을 의식법, 시민법 그리고 도덕법으로 분류한다. 의식법은 종교적인 의식과 관련된 규정들을 총괄하는 율법 체계로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임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예표하는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상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완성되었기 때문에, 신약시대 이후에는 문자 그대로 지킬 의무는 부과되지 않는다. 시민법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신정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실정법으로서, 신정 사회인 이스라엘 사회와는 다른 시대와 문화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자구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법은 사랑의 대강령(레 19:18; 신 6:5), 황금률(출 23:9; 신 10:19), 십계명(출 20:1-17; 신 5:1-21) 그리고 성 윤리에 관련된 명령들(레 18:6-30; 20:10-16)을 가리키며,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시대의 모든 기독교인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규범들이다. 안식일 계명은 도덕법에 속한 계명이다. 다만 구약시대에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던 관례는 계시 기관인 사도들의 모범을 통하여 더 나은 준수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그 방식이 바뀌기는 했으나, 안식일 계명의 보편적인 도덕법의 지위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안식일 혹은 주일에는, 출애굽기의 안식일 명령에 따라서, 6일간 행하던 일을 중단하고 하루를 쉬면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신명기의 명령에 따라서,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회중이 모여 공예배를 드리되, 이 예배는 지역에 있는 회중들이 함께 모이는 예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너희가 거주하는 각 처에서” 지킬 것을 명령하는 레위기 23:3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라고 권고하고 있는 히브리서 10:25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주일에는 교회 가기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주일에는 집합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의 중요성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기독교 윤리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나타나야 하는 경우 –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시적인 명령이 주어지거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하는 경우 – 를 제외하면 가장 중요하고 무거운 규범적 가치를 지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인 구속 사역이,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사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고 한 예수님의 말씀(마 16:26), 사람의 생명을 죽인 자에 대하여, 최고의 형벌인 사형을 부과한 규정(창 9:6)이 이 점을 뒷받침한다. 이 원리에 따라 예수님은 안식일 강론 중에도 환자를 치유하여 주심으로써,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안식일 의식을 준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함을 천명하셨다(손 마른 환자를 고쳐 주심, 마 12:9-14; 막 3:1-5; 눅 6:6-11; 18년 동안 귀신 들리고 꼬부라진 여인을 고쳐 주심, 눅 13:10-17;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고쳐 주심, 눅 14:1-5;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허용하심, 막 2:23-28, 마 12:1-8, 눅 6:1-5). 안식일 계명을 준수하는 것보다, 인간의 생명 보호가 선행하며, 인간의 생명 보호를 위해서라면, 안식일 계명 준수도 유보될 수 있다.
집합 예배와 인터넷 예배
COVID-19로 인한 생명의 위협 때문에, 주일에 드리는 집합 예배를 인터넷 예배로 대체하는 행위는 “아디아포라1)는 없다”라는 윤리적 원리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COVID-19와 주일 집합 예배”의 문제는 “아디아포라는 없다”라는 원리가 적용되는 문제와 성격이 다르다. “아디아포라는 없다”라는 원리가 다루는 문제는, 성경에 명시적으로 제기된 윤리적 지침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문제를 다루며, 행위자들의 믿음의 정도와 상황에 따라서, 가변적이지만, “COVID-19와 주일 집합 예배”의 문제는 두 개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들이 상충하는 문제로서, 행위자의 주관적인 믿음이 문제가 되는 사안은 아니다. 인간의 생명 보호는 가장 중요한 기독교 윤리학의 규범적 원리이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선순위를 차지해야 하며, 이 점은 안식일 계명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COVID-19가 전염 위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집합 예배를 재고해야 하지만, 예방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예배 시간을 여러 차례 나누어서 드리는 등의 방법으로 집합 예배를 드리면서도, 전염의 위험을 차단할 방안을 찾아야 하며, 인터넷 예배는 최후의 비상수단임을 명심하고, 인터넷 예배의 편의성에 빠져 주일 집합 예배의 필요성에 관한 관심이 느슨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
한국 정부는 COVID-19의 대량 전염을 차단하기 위하여 매 주일 모이는 교회 예배 모임을 통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집회를 가지는 교회들이 있는가를 확인했고, 예방수칙을 준수하는가를 감독하였다. 교계 일부에서는 주일 예배에 대한 정부의 행정통제가 신교(信敎)의 자유를 침해하고, 교회의 내부정치에 국가가 부당하게 간섭하기 시작하는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국가는 교회를 포함한 사회기관들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고유한 주권과 법에 따라 옆에 그리고 나란히 존재하는 기관으로서 서로 교회와 유기적인 관계 안에 있으나, 교회가 국가의 고유한 영역에 간섭하면 안 되듯이, 국가도 교회의 고유한 영역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법과 강제력의 차원에서 죄를 통제하고 정의를 구현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안전과 건강을 추구하는 기관이며, 교회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에서 죄를 통제하고, 회원들의 영적인 안전과 건강을 추구하는 기관이다. 교회라 할지라도 국가의 법적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국가라 할지라도, 교회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OVID-19의 전염으로 인하여, 국민의 생명에 위협이 찾아올 가능성이 분명하고, 교회의 집합 예배가 COVID-19의 전염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음이 분명할 때, 국가가 교회의 집합 예배에 관하여 행정지도를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교회의 주일 집합 예배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명령을 준수하는 교회 존립의 본질과 관련된 핵심적인 행사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개 교회들을 향하여 직접 주일 집합 예배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와 같은 지도방식은 명분이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교회의 고유한 주권의 부당한 침해의 요소가 있으며, 교회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교회가 국가와의 관계에서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자체 안에서 교회에 대하여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이 교단이다. 따라서 정부는 교단 관계자들을 만나서 상황설명을 하고 협조를 구하여, 교단 자체의 지도체계를 통하여 자율적으로 예방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모이는 인원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여러 번 예배를 드리는 조치나 비상시의 인터넷 예배 등을 마련하여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국가는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고유하게 받은 본질적인 행사에 대하여, 강제력을 동원하여 일방적으로 행정통제를 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교단을 통하여 합리적으로 설득하여, 교회가 자발적으로 통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비록 국가가 교단을 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제조치를 취하는 방식이 교회의 내부 간섭의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행정통제 조치하는 이유가 절대적인 가치인 인간의 생명 보호를 위한 것에 한정된 것이라면, 이 상황이 해소될 때까지 정부의 조치에 순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swlee7739@hanmail.net>
1) 아디아포라란 도덕적으로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수 없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일들을 가리킨다.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에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 M.)와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 D.)를 졸업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봉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