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목걸이

사라진 목걸이

2020-06-27 0 By worldview

월드뷰 06 JUNE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5


글/ 나은혜(목사, 소설가)


벌써 삼 일째였다. 노인의 표정은 차갑고 무표정하게 굳어져 있었다. 얼마 전 미국 다녀온 며느리가 노인에게 선물한, 은색 줄에 파란 보석이 달린 깜찍하게 생긴 목걸이가 감쪽같이 없어져 노인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그 반짝이는 가볍고 작은 목걸이는 노인의 마르고 긴 목에 참 잘 어울렸다. 노인에게 다른 목걸이들이 몇 개 더 있었지만 다 크고 무거웠다. 그래서 이번에 며느리가 선물한, 파란 보석이 달린 작은 은색 목걸이가 노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문제는 그 목걸이를 노인이 며칠 목에 걸지도 않았는데,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노인은 속이 상했다. ‘그까짓 거, 없었던 셈 치면 되지.’ 하면서도 자꾸만 사라진 목걸이 생각이 났다. 그 생각만 하면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마침 현관문이 열리면서 집으로 들어오는 며느리를 보자, 노인은 단단히 별렀다는 듯이 “너 이리 좀 와 봐라. 여기 내 방에 누가 왔다 갔니?” 하고 따지듯이 묻는다. 며느리는 천연스럽게 “아무도 안 왔다 갔어요.” 한다.

며느리가 그렇게 천연스럽게 나올수록 노인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날 저녁엔, 자신이 좋아하는 멸치육수에, 김치를 송송 썰어 무쳐서 얹은 잔치국수를 며느리가 만들어 주었지만, 노인은 화난 표정으로 말없이 국수를 건져 먹을 뿐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아이고 이 국수 참 맛있구나. 국물도 아주 시원하고, 너는 참 요리를 잘한다.” 하며 너스레를 좀 떨면서, 며느리의 국수 만든 솜씨를 칭찬해 주곤 하던 노인이었다.

며느리의 충청도식 음식을 먹으면서, 매번 맛있다고 칭찬할 만큼, 이북이 고향인 노인은 어느덧 며느리가 만들어 주는 충청도식 음식에 입맛이 길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요 삼일은 도통 입맛이 없었다. 무얼 먹어도 맛이 없었다.

저녁이 되었다. 노인의 큰아들이 어머니의 불편한 심기를 읽은 모양이었다. 그는 큰 소리로 자신의 아내를 부른다. “여보! 수사반장! 어서 와서 어머니 목걸이를 찾아봐요. 당신은 수사반장이니까 찾을 수 있을 거야.” 큰아들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의심병이 생겨서 번번이 소란을 떨 때마다, 아내가 노인이 잃었다는 물건이라든가 돈을 찾아내었기에, 그런 별명을 아내에게 붙여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씩 웃으며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미가 목걸이를 꼭 찾아낼 거니까요.” 한다. 이제 수사 의뢰를 맡은 수사반장 며느리가 노인의 방에 들어서서 수색하듯이 목걸이 찾기 작전을 전개하였다.

노인의 아들에게 수사 의뢰를 받은 며느리는, 먼저 그동안 노인이 입었던 옷들의 호주머니를 샅샅이 검사했다. 이쪽 바지 주머니에서 다른 목걸이 하나가 나온다. 저쪽 윗도리 주머니에선 열쇠 하나가 나온다. 그러나 노인이 오매불망 찾고 싶어 하는 파란 보석이 달린 반짝이는 은색 목걸이는 끝내 나오지 않는다.

이제 수사반장 며느리는 노인의 화장대 위에 있던 작은 문갑 서랍들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문갑 서랍에서 숟가락이 하나 나온다. 다른 서랍에서는 과도가 하나 나온다. 또 다른 서랍에서도 작은 칼이 나온다. 찾고 있는 파란 보석이 달린 은색 줄의 목걸이는 여전히 나오지 않은 채 말이다.

수사반장 며느리는 모두 두 개의 과도와 숟가락을 하나 찾아서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요즘 주방에 세 개나 있던 과도가 하나밖에 없었던 비밀이 풀려서, 수사반장 며느리의 입가에 보일 듯 말듯, 살포시 미소가 지나갔지만, 아무도 눈치를 채지는 못했다.

하지만 노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은색 줄에 파란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아직 안 나왔기 때문이다. 수사반장 며느리는 이번에는 노인의 침대 밑에 깔린 침구를 들쳐 본다.

그런데 그런 며느리를 보면서, 노인이 돌연 화를 벌컥 내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감추어 놓고 너보고 찾으라고 하는 줄 아냐?” 노인의 심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 챈 아들이 “여보, 그만 찾아요. 됐어요.” 한다. 자칫 어머니의 불똥이 아내에게 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불똥이 아내에게 튀어 버리고 말았다. 며느리를 보는 노인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이다. 새벽 기도를 나가는 며느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노인은 큰소리로 “야~” 하고 부른다. 그리고는 대뜸 “나 오늘 복지관(치매 노인 보호기관) 안 간다. 가라고 하지 마라!”라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낸다. 노인은 파란 보석 달린 은색 목걸이가 없어진 것에 대해 불만 시위를 꼭두새벽부터 며느리에게 시작하는 것이다. 며느리가 조그만 소리로 “집에 계시면 심심하실 텐데요… 알았어요.” 대답하고는 교회로 간다.

며느리는 새벽 기도하러 가자마자 하나님께 일러바치기 시작한다. “하나니임~ 미국서 사 온 그 파란 보석 달린 은색 줄 목걸이가 어디로 갔을까요? 어머니가 그 목걸이 없으면 마음이 도저히 풀어지시지 않을 것 같아요오~ 어서 찾게 도와 주세요오~”

기도하던 며느리는 갑자기 남편조차 자신에게 억지소리를 한 것이 생각이 나서 눈물이 핑~ 돈다. 어머니가 자꾸 골을 부리자 남편은 아내에게 “당신 앞으로 어머니에게 선물하려면 기도해보고 해요. 괜히 그런 목걸이는 선물해서는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말이야!”

남편도 어머니의 며칠간이나 계속되는 잔뜩 구름 낀 얼굴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얼마나 억지소리인가?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푹~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찾아도 파란 보석 달린 은색 줄의 목걸이는 나오지 않았고, 그러니 도대체 무슨 방법이 있는가? 기도하는 수밖에….

한참 동안 기도를 하고 난 며느리는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교회를 나와서 동네 빵집인 파리바게뜨로 가서 빵을 샀다. 노인이 빵을 좋아하므로,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아침에 갓 구운 따끈한 빵을 사서 조반으로 차려 드리곤 했다.

이렇게 며느리는 노인이 좋아하는 아침상을 준비하고 정성을 들인다고 해도, 어머니는 그 파란 보석 달린 은색 줄 목걸이를 찾기 전에는 기뻐하지 않으시겠지,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며느리는 집안 분위기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느꼈다.

‘어? 이거 어떻게 된 거지?’ 하고 며느리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노인은 뜻밖에도 산뜻한 흰색과 노란색이 한 줄씩 배합된 가로줄 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요즘 보기 드물게 밝아진 노인의 모습에 며느리는 또 의아해졌다.

남편이 싱긋이 웃으며 아내를 맞이한다. “어서 와요. 여보! 어머니가 그 목걸이 찾으셨어.” 한다. 며느리는 “아니, 어디서요? 그렇게 찾아도 안 나오던 목걸이가 도대체 어디서 나왔어요?”하고 물었다.

말할 것도 없이 며느리는 너무 기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소리친 것이다. 너무너무 고맙고 반가워서 말이다. 그러나 그 목걸이를 도대체 어디서 찾았을까? 그렇게 찾아도 안 나오던 그 애물단지가 말이지.

며느리는 강한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아침으로 준비해 온, 갓 구운 따끈한 빵을 접시에 놓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우유와 과일을 꺼내었다. 그러고 나서 아주 조심스레 “어머니 좋아하시는 빵 사 왔어요. 어서 아침 드세요.” 하고 말하며 어머니의 안색을 살펴본다.

그 파란 보석 달린 은색 줄의 작은 목걸이 하나 없어진 것 때문에 어머니의 얼어붙은 표정과 태도로 인해 온 집안 분위기가 며칠 동안 얼마나 썰렁했던가?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냉랭한 태도에 그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힘이 들었었던가? 그런데 그 요물단지 같은 목걸이가 도대체 어디서 튀어 나왔단 말인가?

며느리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어머니의 방을 다시 하나하나 뒤집어 가며 그 목걸이를 찾아내고야 말리라 생각하던 참이었다. 왜냐하면, 똑같은 목걸이를 구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대책 없는 화내기와 불만을 포함한 냉전은 계속될 터였으니 말이다.

특히 이런 경우에 노인은 아들보다는 며느리가 만만한가 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며느리를 의심하는 것이다. 실은 이번뿐이 아니었다. 노인은 번번이 며느리에게 트집을 잡았다. “얘, 너 이리 좀 와 봐라. 여기 있던 돈 못 봤니?” 늘 이런 식이었다.

아무튼, 속상한 마음으로 교회에 달려가 새벽에 하나님께 일러 바친 것이 즉각 응답이 된 셈이었다. 며느리는 자신의 남편을 향해 “여보! 도대체 어디서 그 목걸이가 나왔어요? 그렇게 찾아도 안 나오던 것이….” 하고 묻는다. 남편은 싱겁게 씩 웃으며 “응, 어머니 방 화장대 밑바닥에 들어가 있었대.”

“어머니가 화장대 밑을 손바닥으로 넣어 쓸어 보시다가 발견하셨대. 아마 목걸이가 바닥에 떨어져서 밀려서 화장대 밑으로 들어갔나 봐.” 한다. 며느리는 “세상에… 화장대 밑바닥에 어떻게 목걸이가 들어갔을까요? 아마 수사반장인 나도 그건 절대 못 찾았을 거예요.” 하며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노인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며느리가 아침에 사 온, 갓 구운 따끈한 빵을 찢어서 우유에 찍어 드시면서 “아이고~ 그 빵 참 맛있다.” 하신다. 이제 드디어 노인의 폭발물 같은 기세의 냉전이 끝나고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아들과 며느리는, 언제 내가 골을 내었느냐는 듯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맛있게 빵을 드시는 모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부부는 의미 있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물론 어머니가 눈치 채지 못하게 말이다. 먼저 아내의 눈빛이 말한다.

“휴~ 여보 십 년 감수했어요. 알츠하이머(치매) 걸린 어머니 모시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네요.” 남편의 눈빛이 말한다. “미안해요. 그리고 당신 말 백 프로 수용해요. 내가 더 기도 많이 할게. 당신이 더 힘들지 않도록….”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복지관 데이케어센터 차가 온 것이다. 노인을 모셔 가려고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며느리는 목소리도 명랑하게 “어머니, 잠깐만요. 목걸이 찾은 기념 인증사진 찍고 가셔야죠.”하고 속없는 여자 모양으로 해죽이 웃는다.

노인은 그동안 당신이 며느리에게 해왔던 행동에 대해선 전혀 기억이 안 나신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노인은 활짝 웃었다. 노인은 조금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포즈를 밝게 취해준다. 며느리는 찰칵~ 하고 사진을 찍는다.

창밖을 보니 그동안 장맛비처럼 계속 내렸던 비가 어느새 멈추었나 보다. 밝고 환한 햇살이 창가로 흠뻑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눈부시게 맑은 햇빛 한 줄기가 노인의 가느다란 목에 걸린 파란 보석 달린 은색 줄 목걸이에 ‘반짝’ 하고 부딪히고는 이내 사라진다. 초여름의 맑은 햇살이었다.

<luomingshu@hanmail.net>


글 | 나은혜

남경사범대학 한어언문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 및 선교학 석사(MA), 미국 그레이스 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D.miss.)를 하였다. 1997~2007년에 중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였고, 현재 한국에서 지구촌 선교 문학 선교회(GMLS)를 설립하여 대표로 문서 선교와 선교사 멤버 케어 사역을 하고 있다. 2017년 창조문학 소설부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떠오르는 부인 선교사 리더십 개발하기(2005, 선교타임즈)><세 개의 보석(2007, 선교타임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