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의 기적
2020-06-09
월드뷰 06 JUNE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7 |
글/ 최영섭(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
1. 인천상륙작전의 시동
“5,000대 1의 세기의 도박이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의 말이다.
김일성의 6·25전쟁 침공 나흘 후인 6월 29일, 맥아더 원수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영등포 언덕에 섰다. 적이 점령한 서울 하늘에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길에는 후퇴하는 국군과 피난민이 뒤섞여 아수라장이다.
‘세계 공산화 전쟁이다. 베를린도 파리도 아니다. 바로 여기서 막아내야 한다. 한국군이 버텨줄 것인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때 번개 치듯 영감이 스쳤다. 191년 전 영국군이 로렌스 강을 타고 올라가 프랑스군 후방의 절벽으로 상륙, 기습공격으로 승리한 캐나다 퀘벡전투다.
‘그렇다. 인천상륙작전이다. 적군 후방을 찔러 단칼에 포위 공격 섬멸하자!’
어느덧 40분이 흘렀다. 우신국민학교에 위치한 수도사단장 이종찬 대령을 격려하고 동경으로 돌아왔다. 참모장 알몬드(Edward Almond) 소장에게 ‘인천상륙작전’ 준비를 지시했다.
7월 23일 워싱턴에 보고했다. 그들은 반대했다. 8월 21일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동경으로 날아왔다. 맥아더의 진의를 확인하고 만류하기 위해서다. 8월 23일 GHQ 작전회의에서 각 군 지휘관과 참모들은 모두 다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 접근 수로는 수많은 섬으로 에워싸여 좁고 굴곡이 심하다. 기뢰가 부설되면 접근이 불가능하다.
* 간만의 차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간조 시 진흙 갯벌이 넓고 깊다. 갇히면 요지부동이다.
* 해역이 좁아 함정 기동이 제약된다.
맥아더 원수는 모든 의견을 듣고 나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인천상륙으로 서울을 탈환함은 전략적, 정치적, 심리적으로 긴요하다. 인천은 모든 악조건이 잠재돼 있다. 그러므로 성공 가능성이 크다 … 인천상륙으로 적의 후방을 차단, 포위 섬멸한다. 전 세계는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다. 여기서 패하면 유럽으로 불길이 번진다.”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상륙작전에 실패는 없다. 반드시 성공한다. 10만 장병의 생명을 구한다. 나는 인천으로 상륙한다. 그리고 적을 분쇄하겠다.”
45분간의 신념에 찬 사자후다.
2. 한국 해군의 덕적도, 영흥도 탈환작전
백두산함(PC-701)은 서해경비봉쇄작전 중 8월14일 작전명령을 받았다.
“덕적도를 탈환하고 그곳 수량(水量)을 조사 보고하라.” 서해경비봉쇄작전 중인 함정 승조원 중 100명을 선발하여 특공대 1개 중대를 편성했다. 8월 18일 0600시 함포사격 지원 하에 덕적도 진리해안으로 상륙, 탈환했다. 수량을 보고했다. 해군본부는 또 다시 “영흥도 탈환” 작명을 내렸다. 8월 20일 0600시 영흥도 심포리 해안으로 상륙했다. 적의 저항이 거세다. 적 소대장을 생포하고 섬멸했다. 아군도 4명 전사, 7명 부상 희생을 치렀다. 영흥도 탈환으로 한국해군의 ‘X-레이’ 정찰작전 및 미 극동군 GHQ 클라크(Mark Wayne Clark) 대위의 첩보작전이 전개됐다.
3. “크로마이트 100-B” 작전 전개
* 9월 15일 0시 H-6
맥아더 원수는 자문자답 독백하며 선실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문제는 기습이다. 인천이 유일하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장애 요소가 너무 많다. 워싱턴은 반대했다. 이기든 지든 내 책임이다. 그렇다. 내 책임이다. 잘못하면 수천 명의 병사가 희생된다. 인천 외에 대안이 있느냐? 없다. 내 결정은 건전하다. 위험도 난점도 허용 범위 내다!’ 걸음을 멈추었다. 성경을 꺼내 폈다. 기도했다. 지휘관은 외롭다.
* 9월 15일 지상군 7만5천 명, 함정 261척으로 구성된 제7기동부대의 상륙작전이 전개됐다. 미 제1해병사단, 미 육군 제7사단, 한국 해병 제1연대, 한국 육군 제17연대, 그리고 한국 해군함정 17척이 참전했다. 미 해병 제1사단 25,040명 중 한국군 2,780명, 미 육군 제7사단 24,845명 중 한국군 8,673명이 편입 참전했다.
* 0615시 지원 폭격, 포격이 끝나고 3척의 로켓함이 탄막탄 4,400발을 쐈다. 0633시 제1제대가 월미도 해안에 상륙했다. 0710시 105고지에 성조기가 휘날렸다. 0807시 타폴리트 중령의 “월미도 완전 점령” 보고를 받았다. 맥아더 원수는 전군에 포고했다. “오늘 아침 해군과 해병대가 전례 없는 영광에 빛난다!”
4. 인천상륙작전의 기적
⓵ 6·25전쟁 나흘째인 29일, 맥아더 원수는 인천상륙작전을 결심했다. 세계 전사에 유례없는 기적이다. 하늘의 계시다.
⓶ 인천은 교범상 상륙작전을 수행해서는 안 되는 모든 악조건이 망라된 최악의 지형이다. 워싱턴의 반대를 뚫고 감행, 부산교두보까지 몰린 전세를 단번에 반전시켰다. 기적이다.
⓷ 한 달 채 안 되는 단기간에 방대한 제7기동부대(JTF7)를 편성했다. 기적이다.
⓸ 작전 한 달 전 한국 해군 승조원만으로 인천 수로의 길목인 덕적도와 영흥도를 탈환했다. 기적이다.
⓹ 적 지휘부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간첩으로부터 작전 기도가 있다는 정보를 받았으나 이를 무시했다. 기적이다.
⓺ 9월 초, 적(敵)은 인천 수로 기뢰 부설을 위해 자기(磁氣) 기뢰 10개를 실은 함정을 진남포에서 인천으로 차출했다. 9월 7일 한국 해군이 발견, 격침했다. 진정 기적이다.
⓻ 9월 13일, 적(敵)은 경인지역 방어부대인 인민군 제18사단, 제9사단 87연대, 제489전차연대를 낙동강전선으로 이동시켰다. 인천 지역에는 약 2,000명, 월미도에는 약 400명만이 방어에 임했다. 기적이다.
5. 결언
이 강산,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20만 명의 국군, 5만5천 명의 미군, 1만 명의 UN군의 붉은 피가 스며있다. 뜨거운 그 희생으로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 우뚝 섰다.
북의 핵무장과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 6·25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제2의 6·25에 대비하자.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힘없음이 공격을 유발한다. 강한 것이 최선의 방어다.”라고 했다.
야드바셈 홀로코스트기념관에 “망각은 파멸을 초래하고 기억은 구원의 비결”이라 쓰여 있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 시대에 고할 것이니라(요엘 1:3).”
하나님이 보우하사 대한민국 만세!
<js89094@gmail.com>
글 | 최영섭
일본 동경시립제2중학교(우에노)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대한해협해전참전(1950.6.25.), 인천상륙작전의 연관 작전인 덕적도, 영흥도 탈환 작전, 군산 양동작전에 이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 백두산함 함장, 구축함 충무 함장, 51전대 사령관으로 있었다. 현재 한국해양소년단연맹 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