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70주년에 다시 겪는 중공군의 침략
2020-04-23
월드뷰 04 APRIL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1 |
글/ 안재철(월드피스 자유연합 대표)
6·25 한국전쟁 상황과 유사한 우리의 현실
2020년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안보도 발전할 거라고, 착각한 우리는 지금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어찌 보면,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단순한 전염병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공산세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자유 통일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 틈을 타서, 중국 공산당이 대한민국을 산산이 조각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6·25전쟁 당시와는 달리,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소중한 국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의 공격으로, 전선이 절망적인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전세를 뒤집은 중요한 사건을 소개하려 한다. 이 사건을 읽으면, 아무리 어려운 위기를 만나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떠한 시련도 극복할 수 있고, 결국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유엔군과 국군은 북진통일을 기대하였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바뀌었다.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 1차 공세는 미국이 중심이 된 유엔군과 국군을 점검하기 위한 시험적인 테스트였지만, 11월 25일 북서부 전선과 11월 27일 북동부 전선에서의 30만 명의 군대가 동원된 중공군 2차 공세는, 본격적인 중국 공산당의 참전이었다.
중공군의 본격적인 참전으로 6·25 한국전쟁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중공군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인해전술에 눌려 1951년 1월 4일, 서울을 포기하고 37도 선까지 후퇴한 유엔군과 국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엔군이 한반도를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나왔다. 그러던 중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고 평양까지 북진하였던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이 1950년 12월 23일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전사하였다. 후임인 매튜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 중장은, 전세를 파악하고 중공군의 한계를 현장에서 체험한 후, 이기기 위해서는 유엔군과 국군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파악하였다. 그래서 리지웨이 사령관은 전선에서 싸우는 장병들에게 대한민국을 사수하여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의미심장한 말을 전하였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1951년 1월 21일, 미 8군 사령관의 명령문 형식으로 발표된 지휘관의 격려는 유엔군과 국군 장병들의 마음을 움직여, 마침내 6·25 전쟁의 흐름을 바꾸어, 중공군을 물리치고 다시 북진하기 시작하였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이러한 명령문이 발표된 후 얼마 되지 않은 1951년 2월 13~15일에 유엔군과 국군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벌어진 지평리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동안 팽배했던 패배 의식을 극복하고, 현재의 휴전선 인근까지 북진할 수 있었다.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 4개 사단에서 각각 1개 연대씩 차출하여 구성한 4개 연대와 미 육군 2사단 23연대와 프랑스군 1개 대대, 국군 카투사 1개 중대 병력 간에 벌어진 전투였다. 유엔군과 국군의 사기를 높인 사령관의 명령문을 공개한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 그 당시와 너무도 유사하여, 우리에게 더욱더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수신: 사령부 각급 제하 부대 지휘관
내가 한국에 온 지난 수 주(數週) 동안, 미 8군 장병들의 마음속에 두 개의 절실한 의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이다.
8군 사령관으로서 나는 모든 장병이 나의 대답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1951년 1월 21일 자로 8군(軍)에 소속되거나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아래와 같은 나의 대답을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첫 번째 질문,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에 대한 답은 간단명료하다. 우리가 존중하는, 정부의 합헌적(合憲的)으로 구성된 당무자들이 내린 결정에 따라, 우리는 여기에 와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유엔군 사령관의 자격으로 말했다: “유엔 회원국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임무에 따라서, 우리 사령부는 한국에서 군사적 포진(布陣)을 유지할 것이다.” 더 이상의 논평은 불필요하므로,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바치고 기대하는 충성심은, 이상의 명령에 대한 아무리 사소한 의문이라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단호한 것이다.
두 번째 의문은 더욱 중요한 것이므로, 우리 사령부 소속원들은 논리적이고 완전한 답변을 들을 권리가 있다. 나의 답변은 이렇다. 나로선 문제가 명쾌하다. 한국의 이런저런 도시와 농촌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그런 부동산(不動産) 문제는 부수적인 것이다. 문제는 동맹국 한국의 자유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한국인들의 지조와 용기가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꺾이지 않았음을 우리는 높게 평가하지만, 한국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것은 더 큰 명분의 한 상징이며 이 대의(大義)명분 속에 포함되는 셈이다.
문제의 본질은 서구 문명의 힘, 주님께서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에서 꽃피도록 하신 그 힘이 공산주의를 저지하고 패배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비웃고, 포로들을 사살하고, 시민들을 노예로 삼는 독재 세력이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신성(神聖)하게 보는 자유 민주세력을 뒤집어엎도록, 방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나아가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 것인가, 아니면 주님 없는 세상에서 무의미하게 살다 멸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싸움은 동맹국 한국의 국가적 생존과 자유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이 논란의 여지도 없이 명백해진다. 이 전쟁은, 우리의 조국이 독립과 명예를 누리는 가운데, 우리 자신의 자유와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우리가 바친 희생과 계속하여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타인(他人)을 위한 자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직접적 자위(自衛) 행동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여기 한국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공산주의냐, 개인의 자유냐의 투쟁이며, 우리가 목격한 그 겁에 질린 사람들의 대탈주를 중단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해외에까지 전선이 확대되어, 결국은 우리 조국에서도 대탈출을 겪게 되고, 언젠가 머지않은 장래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절망적이고 비참한 그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도록 방치할 것인가이다.
이것들이 우리가 싸우는 이유다. 일찍이 그 어떤 군(軍) 사령부의 소속원들도 우리가 직면한 이런 도전을 감당한 적이 없다.
이는 도전(挑戰)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 국민 앞에서 최선의 노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리하여 군인이란 직업과 우리를 키워준 용감한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자.
1951년 1월 21일
주한 미 8군 사령관 매튜 리지웨이 중장
<mv14000@gmail.com>
글 | 안재철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현재 The World Peace Freedom United(월드피스 자유연합)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6·25 한국전쟁과 대한민국의 꿈>, <생명의 항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