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Korea! 6·25전쟁을 다시 본다

Again Korea! 6·25전쟁을 다시 본다

2020-06-01 0 By worldview

6·25전쟁 70주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월드뷰 06 JUNE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발행사


글/ 김승욱(발행인, 중앙대 명예교수)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6·25 기념식에서 합창하는 박두진 작사, 김동진 작곡의 6·25의 노래 가사입니다. 과거에는 6월 25일 즈음에 이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듣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금지곡이 되었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면 알까 궁금해서 젊은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잘 모릅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은 날이 갈수록 더 강조되고, 증오감이 증폭되는 반면에, 어떤 사건은 기억에서 흐려집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에게 6·25전쟁 이야기를 하면 꼰대라는 소리 듣기 쉽습니다. 7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기억에서 흐려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오래 전에 있었던 일제시대를 이야기하면 의식 있다는 평가받는 것과 비교하면, 6·25 전쟁은 우리 국민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 가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d War)”이라고 불립니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여 6월호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특집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6·25전쟁은 태어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던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6·25전쟁 이후 남북한은 각각 정체성이 분명해졌습니다. 마치 막대자석을 쇳가루에 놓으면 남극과 북극에 쇳가루가 몰리듯이 북한의 기독교인, 지주계층, 상공인 등 앙트로프르너십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 대한민국을 찾아 월남했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이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월북했습니다. 그리고 군사분계선에 철책이 쳐지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휴전선 북쪽에서는 박헌영의 남로당 일파가 숙청되고 김일성 독재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남쪽에서는 반공을 국시로 삼았고, 상대를 공산당 또는 좌익이라고 부르면 욕을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매년 6월이 되면 6·25전쟁을 상기하는 영화도 보았고, 미술 시간에 6·25전쟁을 소재로 한 포스터도 그렸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군에 속해 자유 대한민국을 방어한 사람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탄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제 부친은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소대장으로 참전했습니다. 향로봉 전투 중에 부친 소천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큰형은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작은형은 5사단에서 전투를 하고 있어서,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막냇동생이 장례식을 치렀다는 소식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전장에서 듣고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후에 고성지구전투(351고지)에서 부상당해 후송되었고, 다음 날, 중공군의 반격으로 전 중대원이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육군본부 초대 전산소장을 끝으로 평생 군에 몸담았던 부친의 영향으로 아들들과 손자들까지 모두 현역으로 군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집안은 적화통일되면 가장 먼저 처형당할 것이라고 농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직업군인 집안에, 5대째 기독교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3대의 남자가 모두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는 가정에게 주어지는 병역명문가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권자인 조카까지 자원입대 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올해는 병역명문가문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가정에 주는 병무청장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조부모나 부모가 대구사건, 4·3사건, 여수순천사건 등으로 인해서 사망하거나, 6·25 전쟁 중에 월북한 가정도 많습니다. 정확히 추계하기 어렵지만 약 1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와 연관된 사람의 숫자는 훨씬 많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들 가족들이 북한처럼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한때는 연좌제로 인해서 취직에도 제한을 받는 등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가족과 친지를 잃었는데, 이런 대접까지 받았으니 그들이 대한민국에 대해서 갖는 심정이 어떠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연좌제는 과거 왕조 시대에나 있었던 것이고, 1894년 갑오개혁 때 이미 금지되었는데, 이념 갈등으로 인해서 부활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연좌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 8월 1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2014년 법원에서는 국가 배상 판결을 내린 바도 있습니다.

이제 과거의 이러한 잘못을 모두 청산하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는 묻는다고 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짓을 규명하고 정확한 사실 판단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사에 온 국력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고 코로나19와 같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 시대에 온 국민이 과거 문제에 매달려서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들의 판단에 맡길 문제입니다. 전문가들이 충분한 객관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올바른 사실 파악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그래서 결론에 도달될 때까지 국민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 구호처럼 정치가들이 자신의 짧은 임기 중에 역사 해석을 하겠다고 하는 교만은 사라져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교육현장에서도 정치 이념에 따른 교육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사들과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역사 해석은 특히 민감한 사안입니다. 19세기에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그려낼 수 있으며, 과학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주관주의적 해석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렇게 역사는 주관을 배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5시(서머타임 적용하지 않는 북한 시간으로는 4시)에 전 38선에서 일시에 공격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며 6·25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북한 공산당의 남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면서 휴전일인 7월 27일을 기념합니다. 이는 미 제국주의하에 식민지인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3년 1개월 동안 많은 전투가 있었지만, 모든 전투 상황을 기록할 수 없습니다. 남북한이 기록한 전쟁사료집에 기록된 전쟁은 상당히 다릅니다. 무엇을 기록하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느 측에서 통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6·25전쟁은 명칭부터 성격까지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사회는 6·25전쟁을 어떻게 조명해 왔으며, 앞으로 자라는 세대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사회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도 서로 공감대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6·25전쟁의 발발부터 휴전까지, 그리고 전쟁 이후의 체제 형성과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는지 등에 대한 내용으로 특집을 꾸몄습니다.

6·25전쟁 당시 폭격을 맞은 잔햇더미 속에서 얼굴 상처를 입은 듯한 어린이가 등에 업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CNN)


표지 인물(Cover Story)


이번 6월호 커버스토리는 그동안 교과서의 편향 문제에 대해 지적을 많이 해 온 영산대 정경희 교수를 모시고 역사교과서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편향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경희 교수는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2013, 비봉출판사)>에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이념 편향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면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미술 분야에서 이룬 업적으로 인해서 그의 사상도 옳다고 믿기 쉽습니다. 그런 것을 “후광효과(Halo Effect)”라고 합니다. 미술 분야의 대가라는 후광으로 인해서 그가 6·25전쟁에 대한 해석에도 역시 권위가 있을 것이라는 편향(bias)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두가 간직하고 있을 추억을 나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 공산당에 입당하던 날의 기억입니다. 나는 파리에서 입당했습니다… 내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공산주의자의 6·25전쟁 해석이 자유 대한민국의 장래를 이어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명백한 이념 편향적 교육입니다.

정경희 교수는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공저)>, <1948: 대한민국 건국이야기(공저)> 등을 저술했으며,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부터 2년간 한국사 교과서 분석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때 한국사 교과서에 마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정통성을 지닌 정부인 것처럼 쓰여 있다는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 역사 교과서가 북한 역사책을 그대로 베낀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뉴데일리 기자로 있는 양일국 박사가 수고했습니다.

전복된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여성들 1월 8일자 자료 (by the Korean National Archives). 출처: english.hani.co.kr


기획특집(Issue) 칼럼


이번 6·25전쟁 칼럼은 크게 4부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제1부 “6·25전쟁의 주인공들”에서는 4종류의 주인공 즉 1)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박헌영, 2) 이를 막아낸 이승만 대통령, 3) 미군과 4) 한국군 장군들에 대한 글을 실었습니다. 펜앤드마이크 김용삼 대기자는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이 김일성 한 명이 아니고, 남로당의 주역 박헌영과 함께 일으킨 전쟁이며, 그들을 이용한 스탈린(Joseph Stalin)과 마오쩌둥(毛澤東)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6·25 공모 과정에서 박헌영이 보조자가 아니라, 실질적인 주역 내지는 공범임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6·25전쟁의 두 번째 주연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의 도서연구실장 남정옥 박사의 글을 실었습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공산당 세력의 침공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북진통일을 추진했으며, 국군의 전력증강과 한반도 안전을 보장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이었다고 합니다. 휴전 후 오늘까지 북한이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목숨을 내걸고 얻어 낸 한미동맹 때문임을 기억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전시 역할과 활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 고급지휘관들에 대한 평가는 한미안보연구회 정일화 이사가 담당했습니다. 맥아더, 월튼 워커 8군 사령관, 조이 제독, 스트레이트마이어 공군 사령관 및 각 예하 사단장들은 2차 대전에서 살아남은 맹수 같은 인물들이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 한국군 장군들에 대한 소개는 월드피스 자유연합 안재철 대표가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가장 먼저 38선을 넘어 북진한 부대의 지휘관 김백일 장군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두 번째 큰 주제는 제2부 “6·25전쟁을 둘러싼 기적들”입니다. 6·25전쟁은 수도를 두 번 뺏기고 다시 뺏은 유례없는 전쟁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토의 대부분을 적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거꾸로 상대측 국경 끝까지 밀어붙인 특이한 전쟁입니다. 이런 특이한 현상을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이 기적에 대해서는 두 분이 각각 대표적인 기적 5가지를 선정했습니다. 먼저 육군 정훈감을 역임하고 “6·25 진실알리기 운동본부” 이사로 수고하는 배영복 장군은 1) 6·25전쟁 첫날, ‘전쟁 소식’을 미국이 먼저 알고 대처한 것, 2) 안보리 소집에 소련 대표가 불참한 것, 3) 침략군을 서울에서 멈추게 하시고, 4) 중공군을 수원에서 멈추게 하신 것 그리고 5)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세우고 모세처럼 사용하신 것을 5가지 기적으로 꼽았습니다.

또한, 백석대학교 이상규 석좌교수도 6·25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의 역사에서도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지켜진 것은 애국가 가사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고, 하나님의 역사 간섭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배영복 장군과 비슷하게 이상규 교수도 1) 미국의 신속한 참전, 2) 유엔 상임이사국의 참전 결정, 3)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4) 흥남 탈출, 5)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을 5가지 기적으로 꼽아 소개했습니다.

<월드뷰> 2018년 10월호에서 대한해협전투의 기적을 소개했던 최영섭 고문(당시 백두산함 갑판사관)은 이번 호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의 기적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인천은 교범상 상륙작전을 수행해서는 안 되는 모든 악조건이 망라된 최악의 지형이라고 합니다. 워싱턴의 반대를 뚫고 감행하여, 부산교두보까지 몰린 전세를 단번에 반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침략군이 서울에서 멈춘 기적의 원인에 대해서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사를 가르치며, 박근혜 정부 당시에 역사 국정교과서의 필진으로 참여했던 나종남 교수는 전술사적으로 볼 때 가장 큰 기적은 국군 제6사단 장병과 춘천 시민이 함께 이뤄낸 춘천전투라고 합니다.

세 번째 주제는 “6·25전쟁을 둘러싼 왜곡된 견해들”입니다. 6·25전쟁과 관련해서 가장 잘못된 주장은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이승만기념관 김성훈 자문위원은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쳤다”, “일본으로의 망명을 타진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런승만’,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오해라고 강조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혼자만 살겠다고 도주한 뒤, 서울 시민에게는 안심하라 방송하고 한강 인도교를 폭파시켰다는 유언비어는 전후 관계를 생략한 악마적 편집에 의한 해석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6·25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정부가 일본에 망명을 요청했다”는 허위 보도를 낸 KBS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최후까지 싸우라” 방송한 뒤 중국으로 도망간 김일성이 진짜 도망자임을 알려줍니다.

또 많은 오해를 받는 인물은 맥아더 장군입니다. 건국대학교 이상호 겸임교수는 맥아더가 6·25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을 지시했다는 주장이나 핵무기로 한민족을 말살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에서 드러나듯이 6·25전쟁 동안 있었던 학살 문제도 대표적인 왜곡 사실 중의 하나입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책임연구위원을 역임한 이희천 자유리더캠프 공동대표는 6·25전쟁은 김일성이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으로 처음부터 반동분자를 숙청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가지고 시작한 사상전쟁이며 체제전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시작부터 사상이 다른 민간인들이 학살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이희천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노근리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미군, 한국군, 경찰 등에 의한 민간인 처형사건만 부각 될 뿐, 북한군과 남한 좌익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전쟁 중에 월남한 사실에 대해서 잘못된 주장이 있습니다. 서울YMCA 월남시민문화연구소 김명구 소장은 최근 한국 학계의 일각에서는 교회가 북한 정권의 정책에 협조적이었거나 엄격히 정교분리를 했다면 박해를 피할 수 있다는 논리의 주장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합니다. 북한 정권은 신앙의 자유를 거듭 보장하고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그것은 명분이었고 애초부터 유물론 이데올로기 아래 기독교회의 존립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주제는 “6·25전쟁의 성격과 한국에 미친 영향”입니다. 연세대학교 김명섭 교수는 6·25전쟁을 끝낸 휴전협정으로 탄생한 정전체제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전쟁을 잠시 중단했다는 의미의 정전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채결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김명섭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일본과는 평화협정을 맺었고, 독일과는 평화협정을 맺지 않았는데, 동아시아가 유럽보다 더 평화롭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1973년의 베트남 평화협정은 바고 공산화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평화협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완전하고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평화협정에 대한 진실성 있는 논의는 6·25전쟁이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관한 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서울신대 박명수 명예교수는 6·25전쟁을 단지 한국인들끼리의 내전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이는 냉전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 생긴 체제 수호 및 확장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런 시각에서 왜 6·25전쟁이 일어나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하면서, 한반도는 체제경쟁의 터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염원처럼 6·25전쟁이 자유 대한민국에 부과한 과제는 북한 동포들이 자유를 맛보고, 한반도가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6·25전쟁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가운데, 사회 복지 체계에 미친 영향을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장금현 연구교수가 소개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세계회의 활동을 소개하고, 기독교 외원 단체의 활동이 한국 기독교 복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복지 체계를 세우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안양대학교 이은선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는 데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 발전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미방위동맹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을 다시 도약시킬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어머니로 보이는 숨진 여성 곁에서 울고 있는 전쟁 고아들 (wikipedia)


성경과 세계관(Bible & Worldview)


이번 호 역시 기획 특집 칼럼이 많이 실려서 고정 칼럼을 줄였습니다. ‘성경적 세계관’ 세션에서는 2편의 글만 실었습니다. [이상원 칼럼]에서 총신대 신대원 이상원 교수는 5월호에 이어 다섯 번째 “신 존재 증명” 칼럼을 주었습니다. ‘종교적 논증’은 모든 인류에게 신을 숭배하는 생활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논증 방법입니다. 신 숭배 관습이 어디서 기원하였는가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이 주장들은 ‘신 관념’이 어떻게 인간 안에 형성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신 관념’을 넣어줄 수 있는 존재는 인격적인 존재이면서 신 관념을 아우를 수 있는 존재여야 하는데, 이 조건에 맞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기에 하나님은 실재하신다고 합니다.

[삶을 위한 성경 강해]에서 이우제 목사는 요한계시록 강해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을 가로막는 세력인 바다짐승의 공격에 교회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는 ‘인내하는 믿음’을 강조하며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세력과 끝까지 전투해야 한다고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격려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신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바로 보기(Worldview)


세상의 다양한 이슈를 성경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세상 바로 보기’ 세션에서도 2편의 글만 실었습니다. [정치] 칼럼을 맡은 조평세 박사는 계몽의 세기라고 불리는 18세기 말에 있었던 두 가지 혁명이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1776년 미국 혁명이 추구했던 자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했던 것인 반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추구했던 자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사람을 살리는 자유를 낳았고, 유럽에서는 사람을 중심에 두었음에도 사람을 죽이는 자유를 낳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창조질서’에 입각한 자유 정신과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유 정신이 격돌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어떤 자유를 선택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IT 기술과 복음] 칼럼에서 독수리기독학교 기독교학교연구소장 이윤석 박사는 기독교 대안학교인 독수리기독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제시되고, 이어서 3월에는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완파하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독수리학교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이며 학교 차원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고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찍부터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준비해 왔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학의 상황에서도 교육의 결손을 최소화하며 학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관 운동(Worldview Movement)


‘세계관 운동’ 세션에서는 3편의 글을 실었습니다. [복음통일을 위한 생명의 강] 칼럼에서 정교진 박사는 총선 이전에 원고를 주었는데, 원고가 넘쳐서 이번 호로 미루어져서 내용 중에 총선에 관한 부분은 과거가 미래처럼 기술되어 시제가 맞지 않은 점이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난 2월 4일 이인영 의원은 토지 공개념을 거론하며 농업인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 실행을 내비쳤습니다. 정교진 박사는 북한의 토지 개혁을 반면교사 삼아 토지 공개념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를 판단해야 하며,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토지 단일세를 제시하며 경제 전 분야로의 개혁은 사회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한 것을 상기할 때라고 강조합니다.

작년 8월에 출범한 “복음한국” 운동을 격려하며, 그 운동 방향을 제시하는 [청년 복음한국]에서는 김수인 선생이 영화 <인터스텔라>가 기독교 세계관을 담은 보수주의 영화라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붕괴된 미래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통해 기독교의 핵심인 삼위일체와 구원의 복음 그리고 당장에 보이지 않아도 더 근원적인 사랑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 영화를 봤지만, 이런 각도에서 생각을 못했는데,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빠의 약속] 운동을 위한 칼럼에서 월드뷰 오광일 미디어 팀장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칼럼을 써주었습니다.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베푼 사랑처럼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남편으로서 아내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아내와 가정을 살리는 남편의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문화와 세계관(Culture & Worldview)


‘문화와 세계관’ 세션에서는 그림과 수필, 그림책 소개, 영화평, 단편소설 등이 실렸습니다. [그림] 코너에서 항상 차분한 느낌의 수묵 풍경화를 선사하는 홍익대 이선우 교수는 이번에는 “나무와 사람”이라는 주제의 그림과 글을 보내왔습니다. 사람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수필] 코너에서 조혜경 작가는 딸의 아토피 극복기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잃는 게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는 것,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알지 못할지라도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나아가면 우리 앞의 어려움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그림책] 코너에서는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현은자 교수가 참 소망을 부르는 ‘인내’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해리엇 지퍼트(Harriet Ziefert) 글, 아니타 로벨(Anita Lobel) 그림의 <안나의 빨간 외투(New coat for Anna)>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영화] 코너에는 항상 흥미 있는 영화 해석을 해 주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남정욱 공동대표의 글을 실었습니다. 어느 날 불쑥 정체불명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와 나의 남은 수명을 알려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남정욱 대표는 이런 흥미진진한 설정으로 시작되는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소개했습니다. 신앙인의 시각으로는 아슬아슬한 부분이 많지만, 흥미라는 측면에서는 한번 볼만하다고 합니다.

[단편소설]에서 나은혜 목사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를 다룬 ‘사라진 목걸이’라는 소설을 보내왔습니다.


서평(Book Review)


신간 서적을 소개하던 서평 코너에 기획특집과 관련된 도서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6·25 전쟁과 관련된 4편의 도서를 소개했습니다. 먼저 학술적인 저서로 김명섭 저, <전쟁과 평화: 6·25전쟁과 정전체제의 탄생(서강대학교출판부, 2015)>을 조평세 박사가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프란체스카 도너 저,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기파랑, 2011)>를 남정옥 박사가 소개했습니다. 전쟁 중에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일화를 아내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매일 일기의 형태로 기록한 일종의 난중일기입니다. 이를 보면 이승만 부부의 진솔한 삶을 드라마로 보듯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 기자 앤드류 새먼이 지은 <마지막 한발(시대정신, 2009)>을 본보 오광일 팀장이 소개했습니다. 1·4후퇴 중에 서울을 재탈환 하려는 북한과 중공군의 진격을 막기 위한 한강방어선에서 사투를 벌인 영국군 생존자를 인터뷰하고 자료를 조사해 기록한 감동적인 스토리입니다. 유엔 16개 참전국들의 수고를 알 수 있으므로 일독을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읽는사자가 전쟁을 ‘만나게’ 해 주는 책으로 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2015)>를 소개했습니다.

기획특집과 관련된 읽을거리를 추천하다보니, 지면 부족으로 이번 호에서는 신간서적은 한 권 밖에 못 실었습니다. 노진준 저, <믿음을 의심하다(두란노, 2020)>에 대한 서평을 스데반 황 목사께서 주셨습니다.


맺으며


이번 6월은 <월드뷰(Worldview)>라는 제목으로 잡지가 발행된 지 만 10년이 되는 달입니다. 통권이 240호이므로 매월 발행하면 20년이 되는 셈입니다. 처음 잡지가 발행될 때는 <온전한 지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행이 되었으며, 격월간 주기로 발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학문연구회”의 소식을 전하는 소식지(New Letter)의 통권 번호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통권번호는 잡지와 연관이 적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하자면 <온전한 지성>이 발행된 2002년 3-4월호가 창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18년 정도 되었습니다. 2022년 3월에 창간 20주년 기념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호가 <월드뷰> 발행 10주년이라는 것은 “월드뷰”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이 만 10년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기념해서 기획칼럼을 보완하여 단행본을 만들 예정입니다. 이전에 실었던 6·25전쟁과 관련된 글도 포함시키고, 필자들이 이번 호에서 다 다루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넣어서 단행본을 제작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editor.worldview@gmail.com>


후기 <월드뷰> 2020-5월호 기획특집 “가정의 달 – 여성의 역할을 생각한다”를 읽고.

지난 호를 읽은 한 구독자분께서 기획 특집(Issue)의 글들이 거의 비슷한 느낌이 들고, 그래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특집 주제에 대해서 여러 필진이 각자 글을 쓰다 보니 중복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획 칼럼들도 중복되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으로 가능한 중복되는 부분을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귀한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독자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글 | 김승욱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고 UNPD 국제 전문가와 경제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9년에 9명의 교수들과 함께 “기독교학문연구회(현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를 창립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회장으로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