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과 분열의 역사 교과서를 넘어서기 위한 제언

부정과 분열의 역사 교과서를 넘어서기 위한 제언

2020-04-14 0 By worldview

월드뷰 04 APRIL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글/ 이명희(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근대 교육에서 ‘역사’의 정치적 수단화


근대 교육에서 역사는 국어, 지리 등과 함께 국민 만들기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영국의 수리 논리학자, 역사가, 사회비평가인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모든 나라의 역사 교과서는 자국과 자국의 조상 및 문화를 최고로 미화한다고 꼬집었듯이, 대부분 국가는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적 통합과 자긍심 고취를 위해 역사 교육을 이용하였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선각자들도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며 ‘국사’와 ‘국어’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한편,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이유로 역사 교육을 중시하였다. 그들은 역사를 공산혁명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고, 공산화를 이룩한 이후에는 공산당의 일당 독재와 전체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하였다.

교육에서 역사를 정치화 혹은 사회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식민지의 독립이 추진되면서 신생 ‘근대 국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들 신생 국가에서는 국민 통합을 위해 역사 교육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즉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자국 민족 중심의 역사 교육을 강조하였고, 그것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역사 교육 정치화’의 기원


공산(사회)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역사’를 정치적 혁명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즉 그들은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창한 ‘사적 유물론’에 의거하여, 역사는 공산주의를 향해 진보한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진보’로 여기고 다른 사관을 비판하고 배척하는 한편, 민중들에게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또 계급투쟁에 나서게 하는 수단으로 역사를 이용하였다. 우리나라의 ‘운동권’도 ‘사적 유물론’과 마오쩌둥의 ‘모순론’ 등에 근거하여 ‘민중’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하고,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민주화’라는 논리로 한국 근현대사를 해석하며 ‘역사의 정치화’를 추진하였다,

필자의 대학 재학 시절인 1979~1982년 당시 서울대학교의 운동권은 좌파적 사회 과학과 민중주의적 한국 근현대사 학습을 체계화하여 학생 운동의 재생산 구조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인문대학의 국사학과와 사범대학의 역사교육학과 학생들에게 ‘데모하여 감옥에 가는 것 이상으로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였다. 그 결과 국사학계에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혁명적 ‘학술단체’들이 만들어져 ‘민주화’를 위한 역사 연구가 조직적으로 추진되고, 중등교육의 현장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역사 교육’이 조직적으로 실현되었다. 그 후 약 40년이 지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운동권’이 완전한 주류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전체 역사 교사의 1/3이 참여하고 있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전교조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1988년에 창립되었다. 지금도 초·중등 교육 현장에서는 ‘전국역사교사모임’의 교사들을 통한 ‘민주화를 위한 역사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근래에는 이들이 역사 교과서 서술에도 대거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 구조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는 기본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좌파 운동권의 ‘민족주의’는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유행한 근대적 내셔널리즘과는 달리 ‘민중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즉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적 개인으로 구성된 국민이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경제 및 문화 활동을 통해 성립시킨 근대 국민 국가의 발전을 지향하는 내셔널리즘이 아니다. 우리나라 좌파 민족주의는 외세의 침략과 이민족의 지배 그리고 봉건적 압제에 맞서 싸우는 세력으로서 ‘민중’을 개념화하고, 그 민중의 해방과 주류화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이다. 특히, 한일 합병 이후에는 주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지배자 ‘일본인’에 대하여 피지배자 ‘조선인 민중’을 저항의 주체로 설정했기 때문에 한국 운동권의 ‘민중’ 개념에는 종족주의적 성격도 강하다. 여하튼 그들도 ‘근대 국민 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은 서구 사회의 근대 국민 국가의 개념과 거리가 멀다. 조선 말기의 위정척사운동이나 동학운동 그리고 고종에 의한 대한제국 선포조차도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운동이라고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에 의한 근대사 서술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대는 1876년 강화도 조약에서 1945년 일본 패망과 해방까지의 시기로 본다. 이 시기 역사 서술의 기본 관점은 ‘민족의 독립’이다. 그러나 실제 ‘민족의 독립’은 선언적 표방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압제 그리고 수탈에 맞서서 싸우는 ‘조선 민중’의 비타협적이고, 무력을 동원한 저항이야말로 근대사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그 이외의 사항은 비록 보편사적으로 볼 때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도 무시되거나 소홀히 취급된다. 근대 문명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근대적 ‘개인’이 어떻게 성립되고, 그들이 근대적 커뮤니티를 어떻게 만들어 사회 및 정치 참여를 하고, 근대의 경제가 어떤 범위에서 어떤 경로로 발전해 가는지 그리고 그에 비춰 우리 역사에서는 어떻게 전개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오직 제국주의의 지배와 민중의 저항이라는 구도 속에서 근대사가 서술된다.

따라서 한국 근대사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876년의 강화도 조약과 1880년대 미·영·독·러·프 등 서구 제국과의 수호조약 체결을 모두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간주하며, 여기에 대항하여 일어난 위정척사운동과 동학운동을 이 시기 역사의 주역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이것은 을사조약을 계기로 ‘의병전쟁’으로 발전해가고, 한일 합병 이후에는 무장 독립군 활동이나 1920년의 ‘의열투쟁’에 계승되는 것으로 서술한다. 또한, 1919년 전후하여 도입된 사회주의 운동이 일제에 의해 가혹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비타협적 투쟁을 지향하였다며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역사의 왜곡이 있다. 하나는 1876년부터 1900년경까지 일본이나 미국과 영국 등은 단지 수호 통상을 요구했고, 그래서 수호조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것을 배타하는 위정척사운동이나 동학운동을 편파적으로 옹호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1920년대 한국에서 전개된 사회주의 운동이 일제에 의해 가혹하게 탄압을 받고, 또 일제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독립운동’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중대한 역사 왜곡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주의의 지리적 확산 과정 그 자체가 공산 제국주의의 침략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공산주의를 만주 지역과 한반도에 침투시키기 위해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하였고, 그 후 스탈린은 코민테른을 통해 조선 공산당을 철저하게 통제하였다. 따라서 식민지하에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운동을 민족운동이나 독립운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안이한 시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의한 현대사 서술


한국 교과서에서 현대는 1945년 해방에서부터 현재까지이다. 이 시기에 대한민국을 건국하였고, 6.25 전쟁으로부터 신생 대한민국을 수호하였으며, 1950년대 말에 ‘의무교육 달성’이라는 교육 혁명을, 1960-70년대에 ‘산업화’라는 산업 혁명을, 1980년대 말에 ‘민주화’라는 정치 혁명을 이룩하였다. 이때를 한국사 교과서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한국사 교과서에서 현대사에 대한 ‘민족주의’ 관점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원래 우리 민족은 단일 통일 국가 수립을 원했는데 미국 및 단정 세력 때문에 분단국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 국가 수립을 방해한 외세로서 미국과 국내의 단정 세력은 우리 역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둘째는 분단된 남북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북한이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민족’(같은 종족)이기 때문에 형제로서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고 도우며 통일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통일 이후 어떠한 국가·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보편적인 의미의 ‘근대적 국민 국가’를 지향하는 민족주의라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사회의 형성을 표방하겠지만, 한국 운동권의 ‘민족주의’는 미래상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특징이 있다.

현대사에 대한 한국 운동권의 ‘민주주의’ 관점은 어떠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 성립 직후 급하게 만든 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은 〈대한민국〉 단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민주화 운동은 곧 반독재 투쟁이라는 점에서 독재 체제의 반민주성과 인권 유린의 사례를 유념하며 서술한다.”라고 하여, ‘민주화=반독재’라는 단순한 도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일제 식민지기의 ‘독립=반일’이라는 도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한민국 건국 이전까지 한국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나 깊은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 이념에 따라 제헌헌법을 제정하고 국가·사회를 운영하였다. 그 과정에서 ‘반공’=‘민주주의’가 등식화되어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잘못된 의식이 널리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정치인들은 그것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민주화=반독재’라는 단순한 도식을 성립시켜, 역사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을 교육하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우파의 역사 교과서에 대한 문제 제기와 좌절


2005년 1월 ‘교과서 포럼’이 창립되어 당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거의 전부가 ‘자학사관’에 의해 대한민국을 비하하고 있다”라며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2008년에는 ‘대안 교과서-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편찬하여 역사 교과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일부 긍정적인 반향도 있었지만, 좌파 연구자와 언론들이 ‘친일 교과서’라고 비판을 제기하면서 국민적 확산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2011년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중 고등학교의 역사 교육 과정을 부분 개정하며 현대사의 ‘민주주의 발전’ 단원의 명칭을 ‘자유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수정하였다. 이때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언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대다수  국민은 대한민국이 어떤 성격의 국가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나라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2013년 5월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예비 검정 통과가 보도되었다. 이때는 교과서의 내용이 일반에게 공개되기 전이었고, 결과만이 발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계열 시민단체들은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은 역사 교과서 문제가 정치 문제화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초 전주의 상산고등학교 등 20여 개교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공식 교과용 도서로 채택을 하였으나 좌파 시민단체 등은 학부모 및 동창회와 합세하여 학교 앞에서 데모를 벌이고 학교 관계자를 협박하는 등 대대적인 압박을 가함으로써 채택을 취소하게 만들었고, 교과서 선정을 앞두고 있던 학교들은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를 포기하게 되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를 지켜보았던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약 1년 6개월간의 고심 끝에 2015년 10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조치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적용 시기를 2018년 3월에서 2017년 3월 1일로 1년 앞당길 것을 발표하고 국정 교과서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역사 교사 단체와 한국 사학계를 비롯한 좌파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에서도 이를 맹비난하였다. 이후,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이 결정되자, 친전교조 교육감들은 “국정 교과서의 즉각 폐기”를 주장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고(12월 23일), 정부는 국정 교과서 적용 시기를 2018년 3월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3일 만에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는 제1호 교육 적폐가 되어 폐기되고 말았다.

이상과 같이 2000년대 초반 이후 10여 년 이상 보수·우파 계열로부터 역사 교과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전개됐지만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우리나라의 과거는 완전히 좌파 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그 결과 역사 교과서는 근대를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현대를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운동권의 ‘민족주의’나 ‘민주주의’의 개념은 보편적인 의미의 민족주의 및 민주주의와는 전혀 별개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부정과 분열을 초래하는 역사 교과서


‘민족주의’ 관점에서 우리 근대사를 보면 ‘반제국주의 투쟁’ 이외의 역사, 즉 개화 운동과 독립협회 운동 및 애국계몽 운동 그리고 3.1 운동과 실력양성 운동 및 각 분야에서 전개된 자발적 근대화 노력 등이 부정되거나 소홀하게 취급된다. 그리고 제국주의를 확대 해석하여 근대사를 왜곡할 뿐 아니라, 통일도 근대 국민 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보편적 민족주의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민중적 혹은 종족적 이유에서 추진하는 ‘전근대적 통일’을 지향하게 된다. 나아가 제국주의와 결별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 세계에서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 등과도 관계를 청산할 것이 예정되어 있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에 접근하면, 현대 정치사는 ‘반독재 투쟁의 역사’로 치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근대 이후 역사는, 특히 대한민국의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는 17·8세기 서구 문명이 이룩한 ‘근대문명’에 기초해 있으며 따라서 정치를 비롯한 모든 분야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만약, 현대 정치사를 ‘반독재 투쟁사’로 치환하여 이해한다면 그것은 역사 인식의 파탄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치사는 그 밖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과학·기술 등과 연계가 무시되는 ‘고립된 정치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편협하고 폐쇄적인 역사 인식이 형성되고, 다른 시각이나 가치를 부정하는 독선적인 역사의식을 육성하게 될 것이다.

근대의 역사 교육은 국민 국가를 긍정하고 그 국민을 단결하고 통합하기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에 의한 역사 교과서는 반제국주의 투쟁과 반독재 투쟁이 아닌 역사는 부정한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개화기의 위정척사 운동이나 동학 운동 그리고 일제하의 의열단 투쟁이나 사회주의 운동 및 독립 무장 투쟁 만을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화 운동-독립협회 운동-애국계몽 운동-3.1 운동-실력양성 운동 및 외교 운동 등도 계승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상당 부분을 부정하고 있다. 현대사에서 단정 수립을 부정하고, 미국과 유엔의 대한민국 원조를 부정하고 나아가 반독재 투쟁 이외의 정치적 노력 모두를 부정하고 만다. 이렇게 자국의 역사를 부정하게 되면, 부정에 찬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 간의 분열을 만들게 된다. 현재의 역사 교과서가 부정과 분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반(反) 역사 교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어와 대안


“과거를 장악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은 특정 세력에 의해 과거가 장악되어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현재가 혼란스럽고, 미래가 매우 위태롭다. 자유 민주주의 세상에서 ‘과거’를 어느 개인이나 정치 세력이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자유 민주주의의 적’이다. 만약, 그러한 기도가 있다면 자유 민주시민은 분연히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 교과서를 개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시도를 해보았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국가·사회 나아가 세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지리적 환경이 국가에 미치는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영향을 거시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지정학(Geopolitics)이라는 학문이 있다. 필자는 역사 인식이 국가 및 세계에 미치는 정치적, 군사·외교적, 경제적, 문화·교육적 영향을 연구하는 사정학(史政學, Histopolitics)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의 과거 인식과 그리고 현세 및 미래 인식이 국가·사회의 전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견지에서 역사 교과서 문제의 해결에 착수할 것을 제안한다.

<mhlee9811@hanmail.net>


글 | 이명희

중·고교 교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일본 筑波(츠꾸바)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전교조와 역사 교과서 문제를 비판하였고, 이명박 정부에 교육 정책 자문을 하였으며, 2013년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술에 참여하였다.